디아볼로 예술감독 자크 헤임

인간, 중력을 거부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 ‘플루이드 인피니티스(Fluid Infinities)’

건축과 움직임으로 인간의 존재성에 질문을 던지는 융·복합 퍼포먼스 단체 디아볼로가 첫 내한을 앞두고 있다

니체는 말했다. 인간만이 중력을 거스른다. 중력을 거스를 때 비로소 춤을 출 수 있다. 중력을 거슬러 뛰어올라라. 그렇게 그대의 춤을 추라. 자신과 그 인생을 사랑하는 자만이 춤을 출 수 있다.

구조물을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인간. 디아볼로 아키텍처 인 모션(Diavolo-Architecture in Motion, 이하 디아볼로)의 공연을 보며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1992년 LA에서 시작된 디아볼로는 오랜 세월 도형과 건축, 움직임에 심취해온 프랑스 출신 안무가 자크 헤임(Jacques Heim)이 세운 단체다. 자크 헤임은 디아볼로와 함께 1992년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에서 마르타 힐 안무상을 수상했고, 1998년 ‘LA 타임스’ 선정 ‘예술부문 주목해야 할 인물’로 2005년 태양의서커스 ‘카(Ká)’ 예술감독,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인정받아왔다. 그가 이끄는 디아볼로는 일찍이 에든버러 축제에서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LA 시가 문화유산으로 선정(2007)한 데 이어 2010년 미국 내셔널 예술기금상을 받았다.

디아볼로(Diavolo)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이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dia’는 에스파냐어로 ‘하루’를, 그리스어 접두사로는 ‘장애물에서 더 큰 장애물로’를 의미한다. ‘volo’는 라틴어 동사 ‘vola’에서 가져온 것인데, ‘날아오르다’라는 뜻이다. 예술감독 자크 헤임은 “항상 쉬지 않고, 도전에 도전을 기하며 날아오르다”라는 말로 단체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들의 공연을 한마디로 설명할 장르 카테고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의 공연은 음악·무용·건축에서 비롯된 요소들이 뒤섞인 가운데 구조적인 환경과 신체를 탐험하고 강조한다. 서커스 퍼포먼스와 디아블로 공연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 자크 헤임은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성, 건축물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상호작용의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숨 쉬게 하고, 살게 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안무가나 예술감독보다 ‘움직임이 있는 조형물 건축가’로 부르길 원했다.

디아볼로는 첫 내한 공연으로 예술감독 자크 헤임의 ‘시간의 공간(L’Espace du Temps)’ 3부작 가운데 완결판인 ‘플루이드 인피니티스(Fluid Infinities)’를 선보인다. 에사 페가 살로넨의 곡이 담긴 1부작 ‘Foreign Bodies’(2007), 존 애덤스의 음악이 사용된 2부작 ‘Fearful Symmetries’에 이어 LA 필에 위촉받아 필립 글래스의 교향곡 3번을 기초로 만든 3부작 ‘플루이드 인피니티스(Fluid Infinities)’를 통해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총 3개 챕터로 나뉘는 이번 공연은 각기 다른 구조물의 시각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부 ‘플루이드 인피니티스(Fluid Infinities)’는 무대 중앙 반구형 구조 건축물이 등장하며, 1999년 초연된 바 있는 ‘궤도(Trajectorie)’에선 보트 모양의 조형물이, 2002년 초연, 2006년 개작된 ‘휴마시나(Humachina)’는 인간(human)과 라틴어로 기계를 의미하는 ‘machina’를 결합시킨 제목에 걸맞게 대형 바퀴가 무대에 등장해 각기 다른 구조물과 소통하는 인간의 몸을 보여준다. 11월 3~7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내한 공연을 앞둔 디아볼로의 자크 헤임을 이메일 인터뷰했다.

공연예술계에 대한 첫 경험을 거리 공연을 통해 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 당신을 지금의 길에 들어서도록 매료시켰나.

예고되지 않은 상황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보곤 한다. 과거 거리 공연을 할 때,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순간순간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할지 깨달았고, 유기적인 반응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도시의 건축 환경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지 그 관계성에 파고들게 됐다.

당신의 작품 속 구조물들은 언뜻 익숙한 것 같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생김새나 기능 면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디아볼로는 움직이는 추상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작은 이야기보다 인간의 상태, 해체, 재건, 믿음, 팀워크 같은 더 큰 테마를 토대로 삼는다. 나는 구조물이 어떤 형태와 모양으로 나뉘고 변화하는지, 그리고 관객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늘 관심을 갖는다. 더불어 인간의 신체와 도시 건축 환경의 관계가 사회적·육체적·정서적으로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주목한다. 그리고 이것은 무대에서 추상적이고 흥미롭게 표현된다.

작품을 만들 때 음악, 움직임, 조형물 중 먼저 고려하는 것은.

대개 조형물이 1순위다. 아이디어를 위해 엔지니어·건축가·무대디자이너·안무가와 함께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조형물이 탄생한다. 종종 안무가와 공동 작업을 하는 무용가들이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구조물이 들어오면 그들은 나의 지시에 따라 구조물과 함께하는 몸짓을 만들어낸다. 반면 이번 내한 공연에서 선보이는 ‘플루이드 인피니티스’는 LA필의 위촉과 함께 필립 글래스의 곡을 우선으로 삼았기에, 음악에서 작품 방향을 잡아나갔다.

무용 외에도 아크로배틱 등 다양한 움직임을 소화하는 무용수들이 눈에 띈다. 어떤 단원들이 디아볼로에 소속되어 있나.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매일 체조·태권도·모던댄스·발레·힙합·즉흥연기 등 다양한 스타일의 움직임을 소화한다. 일반적으로 무용수는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채 안무가의 지시만을 따르지만 디아볼로의 무용수에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춤이 요구되며, 그 스스로 안무가로서 창조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창조적이지 않는 예술가’는 설 자리가 없다. 우리에게 완벽한 퍼포머란 몸과 정신이 강하게 무장됐을 뿐 아니라, 창조성까지 고루 갖춘 사람이다. 재능을 뛰어넘어 창작의 과정을 위한 희생, 헌신, 집요함과 끈기를 가진 이들을 탁월한 퍼포머로 손꼽는다.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지속적인 소통이 관건이다. 우리는 작업할 때 서로 일관된 감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한다. 디아볼로에 속한 모든 이는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갖고 분명하게 주고받고 있다. 디아볼로라는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구성원 간 정확한 의사소통은 필수다.

‘플루이드 인피니티스(Fluid Infinities)’를 보면서 우주와 인간 사이, 정반합의 원리가 떠올랐다. 당신이 고민한 주제 의식은 무엇인가.

미지의 목적지에 관한 것이다. 살면서 던지는 ‘그다음은 뭐지?’라는 질문과 고민이 과연 우리의 지식을 더 높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견할 때 그에 따른 위험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에 담긴 이런 질문들이 관객에게 각자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고, 또 그에 대한 대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궤도(Trajectorie)’에서는 대칭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특히 중력을 인식하고 다루는 관점, 방법에서 독특함을 느꼈다.

인간의 운명과 그에 대한 방향, 그리고 연약한 존재로서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궤도’다. 이 작품은 강력하면서 연약한 인간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중력을 다룬다. 작품에서 공중을 나는 것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최종 목표와 관련 있다. 이카로스가 태양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더 알고, 더 발견하기를 열망한다. 공간, 공간 안의 사람, 공간 안의 도시… 다음은 무엇인가? 발견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중력에 대한 저항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날기 위해 얼마나 대지에 서 있어야 하고, 그 중심에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했다.

‘휴마시나(Humachina)’에서 거대한 바퀴를 내세운 이유는.

바퀴의 발명으로 인간사회는 무한한 변화를 겪었다. 또한 이 발명은 인간이 자연과 환경, 과학 그리고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만들었다. 결국 바퀴는 인간과 기계를 연결시키는 역사적인 역할을 갖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그래왔듯, 앞으로도 세상의 자연스럽거나 또는 부자연스러운 모든 과정 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계속 진화할 것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플루이드 인피니티스’의 필립 글래스 음악은 어떻게 택했나.

작품을 위촉한 LA 필이 미국 출신 작곡가들의 명단을 건넸고 나는 망설임 없이 필립 글래스를 지목했다. 그가 우리 작품에 가장 완벽한 작곡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우리 작품의 추상성을 강화해주었고, 극도로 긴장감 넘치는 우리의 작품을 아주 잘 표현해줬다.

작품 주제와 무대에 사용되는 조형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는가.

눈앞에 펼쳐진 모든 인생이 곧 영감이다. 주변 환경에 따른 상호작용에 대한 궁금증은 인생 전반에 걸친 큰 과제였고, 디아볼로의 제작 과정도 이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것이다. 더불어 여러 건축가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작품을 구상하기 전, 프랭크 게리·산티아고 칼라트라바·안도 타다오·토머스 헤더·자하 하디드·장 누벨·렌초 피아노 같은 건축가들의 삶 속에 잠시 빠져들어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공간에서 영감을 받는다.

결국 디아볼로의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 건 ‘인간’이다. 당신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역경·승리·사랑·위험·공포·열정·생존 또는 아름다움 등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환경과 그 안에 서로 연결된 인간의 관계를 탐험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정의에 대한 대답은 ‘아름다움’이다.

한국의 몇몇 관객은 디아볼로의 작품을 서커스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당신의 공연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무용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무용을 기대하고, 서커스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서커스를 기대한다. 우리에게 순수 무용이나, 서커스를 기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디아볼로는 ‘건축학적 조형물의 움직임’을 선보이는 융·복합 공연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작품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유는 오늘날 전형적으로 정의되는 무용의 경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무용계의 많은 사람은 우리가 규칙에 어긋난다 말하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들의 목표란 새로움을 시도하고, 경계를 확장하며, 무용이 진정 무엇인지 재발견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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