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변화와 실험이 일궈낸 울림
지난 6월 김광보 연출가가 서울시극단의 새로운 예술감독이 됐다.
연극 ‘나는 형제다’는 서울시극단과 김광보의 첫 작품이면서 그동안 김광보와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춰온 고연옥 작가의 신작이기도 하다. 예술감독으로서 김광보가 어떤 지향을 보여줄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의미의 작품이기 때문에 선택의 부담이 컸을 텐데, 고연옥의 신작으로 결정한 것은 익숙함을 토대로 그 부담을 덜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도와 상징적 의미를 떠나 결과적으로 ‘나는 형제다’는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한층 심화된 고연옥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무대화한 김광보의 영리한 감각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룬 공연이었다.
2013년 3명의 사망자와 230여 명의 부상자를 낸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사건이 작품의 모티브라고 밝힌 작가의 의도에서 읽혀지듯, 고연옥의 시야는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으로 확장됐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모의 말을 실천하려는 형제는 점점 사회적 패배자가 되어간다. 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결과는 항상 엇나간다. 형제의 삶은 앞으로 나가는 듯하지만 결국 악순환을 반복하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었던 것이다. 원인을 모른 채 패배를 거듭하던 형제에게 테러는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버리는 극단적 방법인 셈이다.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시스템, 즉 가난한 사람은 대를 물려 가난하고, 노력하면 할수록 패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한 고연옥의 문제 제기는 테러라는 극단적 폭력을 통해 매우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라는 형의 대사는 테러리스트가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임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수(單數)인 ‘나’가 복수(複數)인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의 묵직한 문제의식은 김광보의 손을 거쳐 무대에서 구체화됐다. 빼곡하게 놓인 무대장치들은 희망과 출구가 없는 형제의 팍팍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각의 공간에 다음 장면의 등장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개별 장면을 분절하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주제의식을 시각적으로 부각시켰다. 영화관 장면에서는 무대 위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 대화를 나누는 형제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영화 같지만 결코 영화일 수 없는 그들의 삶을 강조했고, 오롯이 형제에게만 비춰진 조명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고립되어 있는 그들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이창직을 비롯한 서울시극단 단원과 이승주·천정하 등 외부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어 연출에 대한 배우들의 신뢰를 보여주었다.
작가의 문제의식과 연출의 감각 모두 훌륭했다. 이 둘은 지금 이 시기가 연극 인생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이르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물오른 작품을 새로운 활력의 첫 출발로 선택한 서울시극단도 김광보 예술감독과 함께 화양연화를 맞이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사진 세종문화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