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관현악의 두 본거지, 로열 페스티벌홀과 바비컨센터는 2015/2016 라인업에 콘서트 오페라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았다.
먼저 바비컨센터는 사이먼 래틀/런던 심포니와 합작으로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BBC 심포니와 레온카발로의 ‘자자’, 벨리니의 ‘아델손과 살비니’, 루이스 안드리센의 ‘라 코메디아’를 제작한다.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는 이언 보스트리지를 캐스팅해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즈의 귀환’을 9월 29일 함께했다.
로열 페스티벌홀에선 오페라 노스가 바그너 ‘링’ 사이클을, 이반 피셰르/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체코 필이 야나체크의 ‘예누파’를 공연한다. 10월 2일에는 파비오 루이지/취리히 필하모니아가 취리히 오페라 합창단과 함께 베르크 ‘보체크’로 영국을 방문했다. 9월 취리히 오페라극장 개막 버전을 콘서트 포맷으로 축소해 런던에 온 것이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가 부상으로 투어에 불참하면서 레이 멜로즈가 보체크를 맡았다.
런던에 콘서트 오페라 붐이 일어난 건 불과 2~3년 전 일이다. 2012/2013 시즌 로열 오페라가 코번트가든에서 ‘카프리치오’와 ‘시몬 보카네그라’를 콘서트 버전으로 상연하고 2013년 여름, BBC 프롬스의 바그너 ‘링’ 사이클이 흥행과 비평에 성공을 거두면서 런던 클래식 음악계는 콘서트 오페라 제작에 활기를 띠었다.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가 ‘가디언’지에 “가수 입장에서 콘서트 오페라는 배역 이해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기고하고, 저예산과 더불어 짧은 연습에도 고품질 하모니가 가능한 콘서트 오페라의 장점이 널리 퍼지면서 콘체르탄테와 콘서트 오페라의 열기가 런던 밖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10월 2일 로열 페스티벌홀의 ‘보체크’는 일체의 간이 무대 연출도 배제한 채, 가수들의 마임만으로 휴식 없이 95분간 진행했다. 3막 15장 구성으로, 매 장이 바뀔 때마다 배역들이 등·퇴장을 반복했지만 동선 처리가 매끄러워 온전히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바리톤(보체크), 리릭 테너(앙드레)·베이스(도제 장인1)·하이 바리톤(도제 장인2)의 음역 구분이 오페라 극장에서보다 더 선명해졌다. 성악진과 지휘자, 오케스트라의 조직력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런던에 넘어왔고, 공연의 관건은 멜로즈에게 달렸던 무대다.
멜로즈를 제외한 모든 배역이 악보를 보지 않고 가창했고, 멜로즈만이 악보를 넘기며 차례로 등장인물을 상대했다. 그러나 마치 드라마 대본 리딩처럼 이어진 멜로즈의 역할 소화는 완벽했다. 부분 가창(half-singing)·구두 가창(spoken singing)·완전 발성(full vocalisation)을 오가는 순발력이 발군이었다. 2013년 영국국립오페라 ‘보체크’로 ‘옵저버’지의 극찬을 받은 기량이 그대로 재현됐다. 게르하허의 부재가 낳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파비오 루이지와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가수의 반주자이기보다 슈트라우스나 말러의 관현악 편성 성악 작품에서처럼 중립적이었다. 관현악 공연이나 독주곡 공연에선 음향 조건의 미흡함으로 비판받는 로열 페스티벌홀이지만 콘서트 오페라에선 어쿠스틱의 문제를 제기하는 비평을 찾기 어려웠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과 함께 대타로 나선 멜로즈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 2012년 브린 터펠과 취리히 오페라가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함께했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정도의 화제를 모으진 못했지만, 신임 사우스뱅크센터 음악감독 질리언 무어의 향후 기획 스타일을 추측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