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테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15주년 맞은 창작 뮤지컬의 심미

11월 10일~2016년 1월 1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수십 번 찾은 관객도 있었다. 큰 인기를 끈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에 멀리에서나마 작게 들리는 선율이라도 만나려 매일 극장 로비로 출근(?)하는 사람도 봤다. 이들은 아마 자발적으로 결성한 동호회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의 멤버들이었으리라. 창작 뮤지컬로는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15년 세월이 흘렀다. 베르테르에 열광하던 관객들은 어느덧 중·장년층이 됐다. 그 시절 기대대로라면 든든한 한국 창작 뮤지컬의 버팀목이자 열혈 소비층으로 성장했어야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공연장에는 젊은 관객들이 대부분이다. 사는 게 바쁘고 돈 벌기가 힘드니 열정은 접어두고 현실만을 강요당하는 건 아닌지 괜히 씁쓸해진다.

‘베사모’는 사라졌지만, 작품은 성장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진화’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공연장 규모도 커졌고, 볼거리도 풍성해졌다. 객석 한쪽을 막아놓고 실내악을 들려주던 소박한 연주석은 거대한 오케스트라 피트로 변했고, 화려한 볼거리의 무대는 창작 뮤지컬임을 의심하는 관객을 등장하게 했다. 고선웅의 대본도 리바이벌을 거듭하며 훨씬 정교해졌다. 김광보·조광화·김민정의 연출을 거치며 개연성을 강화해온 결과다. 이번 앙코르 무대 역시 과거에 비해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롯데의 번민이 더욱 잘 이해되고, 알베르트의 황당함과 당황스러움도 납득이 된다. 숙성의 시간이 작품에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한다.

올해 무대의 특징은 화려한 캐스트다. 주인공 베르테르 역으로는 조승우와 함께 엄기준과 슈퍼주니어 규현이 가세했고, 롯데는 전미도와 이지혜가, 알베르트는 이상현과 문종원이 연기한다. 특히 조승우의 창작 뮤지컬 출연은 지금처럼 유명세를 얻기 이전의 ‘명성황후’ 이후 오랜만이다. 그의 존재감이 창작 뮤지컬의 발전과 흥행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나아가 앞으로 나올 창작물의 새로운 캐릭터 창조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무대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한층 간결하고 인상적으로 변모한 연출과 시각적 장치다. 베르테르의 죽음을 앞두고 건장하게 서 있던 해바라기들이 힘없이 쓰러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자석 효과를 활용한 듯한 무대의 변화는 엔딩 신의 권총을 든 베르테르의 실루엣과 함께 무척이나 강렬하게 오랜 잔상을 남긴다. 붉은 장미로 상징되던 과거와 달리 노란 해바라기 꽃잎이 가득한 요즘 포스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이미지다. 롯데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하지만, 덕분에 베르테르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영원한 연인이 된다.

올 연말 대한민국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들의 일대 격전장이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와 ‘레미제라블’,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로도 유명했던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작품들의 매력은 활자가 무대화하고, 노래가 되고, 안무가 되어 관객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각인된다는 점이다. 작품을 보고 좋아서 원작까지 찾아보는 젊은 세대는 특히 더 반갑다. 늦가을 정취에 잘 어울리는 무대이니 만끽하길 바란다.

사진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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