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리뷰

신진무용가 지원 사업을 들여다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동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부단한 움직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진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인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rko Young Art Frontier, AYAF, 이하 아야프)’의 2015년 공연예술 파트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가 2016년 1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남산골 한옥마을 남산 국악당,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우정국, 문화역서울 284 RTO, CJ아지트 등 7개 장소에서 공연됐다.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다원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만 35세 이하 신진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이 사업은 작품제작비(3000만 원) 지원 외에 연구조사 활동 지원과 해외 리서치 등 국내외 교육 기회 제공, 작품 프로덕션 관련 멘토링 등 창작역량 개발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 선정된 20명의 예술가 중에서 무용 분야는 김나이, 김범호, 김성의, 도황주, 안지형, 이수윤, 하영미 등 7명으로 장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 김성의 ‘리턴 티켓’ ©최윤석

1월 5~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김성의의 ‘리턴 티켓’은 1905년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 정착한 조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직접 쿠바를 찾아 5·6세대 후손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은 김성의는 세 명의 무용수, 두 명의 배우와 함께 한 시간 품의 작품을 만들었다. 낡은 목재 벽에 둘러싸인 무대에서 품바타령의 신명과 그 이면의 애환을 가감 없이 보여준 초반, 그리고 상의를 벗어 머리 위의 봇짐을 만드는 후반의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나 클라이맥스의 슬픔과 분노에 도달하는 논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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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황주 ‘Contact 변:태’

1월 8~9일 문화역서울 284 RTO에서는 도황주의 ‘Contact 변:태’가 공연됐다. 이 작품은 현대사회의 성과에 대한 강요 속에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주변의 자극과 스트레스로 인한 자기 변화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세승, 김서윤과 만든 60분 품의 3인무는 무대미술, 조명, 3면의 객석 등 계속해서 삼각형을 강조하는데, 이 시각적 테마인 삼각형 외에 춤 움직임은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특히 시작과 끝을 같이 한 수미상관 구성은 초급 수준으로 읽혔다.


▲ 하영미 ‘쭈크러진 창’

1월 9~11일에는 하영미의 ‘쭈크러진 창’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됐다. 위안부 피해자와 베케트의 ‘NOT Ⅰ’에 등장하는 캐릭터 ‘입’의 부조리한 삶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 이 작품은 무용가 하영미와 배우 양조아 두 사람이 이끌어간다. 무거운 주제인 만큼 진지한 접근이 보이지만, 마임극에 그친 일차원적 표현은 춤이 갖는 상징과 은유라는 특성을 건드리지 못했다. 총을 든 군인영상과 시종일관 고통스러운 연기는 무겁고 불편한 잔상을 남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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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이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신희만

김나이의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는 같은 극장에서 1월 15~16일 공연됐다. 이상의 시 ‘오감도’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이번 아야프 사업 중 빛나는 성과로 꼽을 만한 것이다. 영국의 로열 발레 학교와 뉴욕대에서 수학하고, 바리시니코프 재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활동하던 김나이는 지난 2013년 한남동의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장화홍련 리비지티드’로 춤 공간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역시 공간에 대한 파격적 디자인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객석을 없앤 무대에 2미터 높이의 담벼락 두 개로 좁은 골목을 만들고, 관객을 그 위에 앉게 한 과감한 모험은 관객에게 골목을 질주하는 다섯 무용수를 내려다보며 그들의 불안을 공감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 작품은 실험적 무대미술 외에도 치밀한 춤과 무용수들의 집중력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무음을 간신히 벗어난 정도의 소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평이한 춤이 계속되는 중반은 다소 밀도가 떨어지기도 했으나, 대찬 무용가 김나이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의 흐름

신진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1973년 설립) 시절부터 진행되어왔다. 1985년 문화공보부에서 발표한 ‘문화발전장기정책구상’의 하나로 1989년 신진예술가의 해외 시찰을 지원하는 등 특별사업 형식으로 이뤄지던 지원은 1993년 본격적으로 제도화됐다. 무용 분야는 ‘젊은 춤꾼 발표무대’를 신설하여 지원했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는 해외 연수나 공연 시 문예진흥원의 지원 우선권을 혜택으로 받기도 했다. 이후 따로 진행되던 해외 연수 지원과 신진예술가 창작 지원을 통합하여 운영해왔으며, 2005년 민간 자율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된 후 다원예술 분야를 신설하여 분야별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그 명칭을 AYAF(Arko Young Art Frontier)로 바꾸고 새로이 기수를 세고 있어 이번 2015년 수혜자들은 5기가 됐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파트로 이분화하는 것 외에 기존의 신진예술가지원의 맥을 잇고 있으므로 명확한 기록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2014년에는 ‘신진예술가 페스티벌(AYAF Festival 2014)’을 개최하기도 했는데 돌발적 축제여서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고, 2013년에는 무용수·배우·연주자를 위한 ‘실연자 지원’ 파트를 신설하여 기존의 창작자 지원과 병행했으나 단발에 그쳐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공연예술을 위한 대부분의 창작기금이 지역문화재단으로 분배된 뒤 신진예술가지원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분야가 됐다. 예산 규모로는 국제교류기금이나 소외지역문화 사업 등에 비할 수 없이 작지만, 예술창작을 위한 순도 높은 지원인 이 사업은 선정자에게 어떤 콩쿠르의 수상보다 명예로운 경력이 됐고, 매년 선정자 명단은 예술계의 관심 대상이다. 그간 1년 지원 사업이 2년 연속지원으로 바뀌기도 했고, 공연·전시 의무화를 없애고 운영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창작과정 및 환경 지원을 포함한 결과물 발표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세심한 방향성이 필요하다

이번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는 통일되지 않은 각자의 공연 진행이 사업의 고유성을 흐리는 단점으로 드러났다. 특히 빈약한 인쇄물은 20개 공연이 하나의 사업에서 나온 것이란 연관성을 잃고 있다.

물론 추후에 전 과정을 기록한 ‘창작노트’를 발간하여 공연 영상과 함께 아카이빙 자료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대중은 물론 예술계 어느 범위까지 공유될지는 알 수 없다. 약 1개월의 기간 동안 7개 공연장에서 분산 발표되는 형식 역시 집중에 어려움을 준다. 창작산실 지원 사업처럼 통합된 리플릿이 미리 발간됐다면 올 해 공연뿐 아니라 사업에 대한 홍보와 이해를 돕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 문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이 사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는 점이다(지원자 공모 안내 단 한 페이지만 있다). 아야프는 지원 사업 목록 어디에도 없고 ‘기획공모’로 진행된다는데, 선정 기획사도 찾아볼 수 없다. 홈페이지가 이 정도이니 예술 현장의 체감 온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인력 부족이 늘 지적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더욱 체계적인 매뉴얼을 갖춰 고유성을 인정받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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