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아쉬웠던 설득의 묘미
애호가들을 위한 교양 강의가 끝난 후 질문 시간에 나오는 내용은, 쉽지만 답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똑같은 악보를 놓고 연주하는데 연주자마다 그 결과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음악에서 ‘해석’은, 그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타인에게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똑같은 다이내믹 기호도 사람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하고 프레이징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른 것인데, 특정한 작품의 여러 가지 해석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는지 반문하면 대개의 경우 그렇다는 반응이다. 결국 가슴을 열고 음악을 받아들인 애호가들의 질문은 이렇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연주가 정말 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이 열연을 펼친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과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새로이 생각하게 만든 자리였다. 악보를 매력적으로 꾸미는 기술과 그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기술은 분명 다른 것임을 실감했다.
독일의 신예 크리스토퍼 박의 슈만 협주곡은 첫 음부터 연주자의 독자적 노선을 기대케 했다. 서두르거나 몰아붙이려는 기색이 없는 프레이징은 사색이 느껴졌으며, 음표마다 ‘내 생각’을 넣으려는 강한 의지도 느껴졌다. 도입부의 주제는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처리됐으며, 작곡가 특유의 센티멘털도 충분히 풍겨 나왔다. 달콤한 꿈과 제어되지 않는 충동이 교차되는 섹션들도 작품의 본질대로 기복이 크게 설정되어 뚜렷한 선을 그렸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는 타이트하지 않게 조절하여 음악적 여백이 드러났는데, 오히려 이런 자세가 협주곡인 지닌 내성적 기질을 잘 나타내주었다. 은근한 서정성과 산문적 내레이션을 시도했던 2악장, 반짝이는 톤과 날렵한 손가락으로 상큼한 악상을 전개한 3악장도 호연이었다. 피아니스트와 지휘 양면에서 ‘달인’ 급에 들어가는 에셴바흐의 조력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감칠맛을 내는 요긴한 양념처럼 빛을 발했다. 스윙감이 느껴지는 현 파트의 리듬 설정과 가벼운 율동감이 특히 절묘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객석으로 온전히 전달돼야 할 ‘설득’의 문제였다. 탁월한 집중력과 예민한 감각, 독창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으나, 청중의 입장에서 보면 크리스토퍼 박의 연주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정성스레 ‘진열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본디 자기주장을 하는 방법이 부드럽고 조심스런 연주자일 수도 있으나, 창의력이 넘쳐나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다른 스타일도 빨리 맛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피아니스트와 비교하여, 에셴바흐의 전달 방식은 최소한의 힌트와 변화로 최대한의 효과를 냈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은 10곡 중 초기작인 동시에 다성부적인 복합성과 상반된 아이디어의 돌발 상황이 가장 적어 멜로디나 구성을 이해하기에 가장 용이한 곡이다. 이런 작품의 특성도 고려했다고 보이는 바, 에셴바흐는 전반적인 스케일의 조절보다 디테일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씩 엿보이게 설정한 내성부, 루바토의 과감한 생략과 예상 밖으로 나타나는 건조한 표정, 세심하게 연출된 관현악의 밸런스 등에서 청중에게 익숙한 즐거움과 의외의 쾌감을 동시에 전달했다. 완만하게 흘러가며 점층적인 클라이맥스를 형성한 1악장, 묵직한 무곡의 분위기로 마무리된 2악장, 가요적인 표현력을 보여준 3악장, 비상과 추락의 미학을 거친 맛으로 그려낸 4악장 등은 노련한 지휘자가 재능과 센스를 겸비한 오케스트라에게 마치 퀴즈의 힌트를 주듯 가볍고 부담 없는 분위기 안에서 만들어진 개성 넘치는 결과물이었다. 섬세하면서도 재치 있는 소통의 지휘자 에셴바흐가 서울시향과 좀 더 친숙한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자리였다.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