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복합문화공간 두잉
소박하고 단단한 , 그들의 첫 이야기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근처 어느 건물 지하 복합문화공간 두잉. 이곳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연극으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서태지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페스트’도 화제였다. 1947년 출간된 카뮈의 소설에 동시대 예술가들이 왜 이토록 공감하는 것일까? 성수동에 자리한 공연장도 낯설지만 극단 송곳이라는 이름도 낯설다. “기성 극장의 일방적인 소통구조 ”를 벗어난 대안 공간을 찾고자 했다는 인터뷰도 있었지만 프로그램 북에 실린 글에 좀 더 솔직한 고백이 들어 있다. “극장을 빌릴 돈이 없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연극인 검열의 와중에 대학로 연극의 제작 편수도 줄어든 상태다. 대학로의 상업지구화로 대학로 이외의 대안 공간을 찾는 일도 다급해졌다.
연극 ‘페스트’는 극단 송곳의 창단 공연이다.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소박하지만 단단한 공연이 준비되었다. 원래 카페였던 공연장은 극장 시설로는 열악했지만 공연은 묵직한 감동과 믿음을 주었다. 놀랍게도 페스트의 대재앙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냉정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4월 16일 이후 계속되던 페스트가 끝났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전율이 느껴졌다. 극단 송곳은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생 극단이다. 안산 극단이기 때문에 ‘페스트’를 세월호의 맥락으로 재구성한 것일까? 그제야 확인해보니 카뮈의 소설 원작 자체가 4월 16일 아침, 한 마리 쥐 시체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도시를 덮친 페스트로 도시는 폐쇄되고 알제리의 오랑 시는 거대한 격리병동이 된다. 별다른 연극적 기술이 없이도 이 공연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던 것은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 형성된 우리의 경험 때문이다. 알제리 오랑 시의 4·16 페스트의 창궐의 과정은 세월호와 메르스 당시 사람들의 몸의 기억을 생생하게 환기했다. 안산과 세월호, 4월 16일과 소설 ‘페스트’, 현기증 나는 우연의 일치다.
공연팀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카뮈의 원작에 깊이 공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장 타루가 모집하는 자원봉사대 보건대의 표식은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연상되는 검은 리본이다. “페스트가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노래를 부르는 ‘오랑 시의 미친 리어’ 라는 별명의 코타르는 원작에서 가장 많이 변형된 인물이지만 모두 다 불행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불행의 연대에 대한 역설적인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이해시켜준다.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 원작을 공연은 1시간 20분의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하고 있고,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과 연대의 드라마를 단단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각색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실제 독일군 점령 아래 프랑스 파리의 봉쇄 당시를 페스트로 비유하고 있는 카뮈의 총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작가적 태도가 지금 우 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임을 말없이 깨닫게 한다.
8명의 배우들의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해설자의 객관적 보고와 묘사, 전쟁과 테러와 질병과 세월호 등 영상 자료의 미디어 아트, 페스트의 죽음의 춤과 아무 죄 없이 죽어가는 어린 희생자의 춤의 활용, 영화적 전개 방식 등 젊은 극단다운 생동감과 함께 원작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는 성실한 태도가 인상 깊다.
현재 대학로 연극은 ‘다원’의 카테고리로 다양한 실험적 양식의 극들이 이미 대극장과 제도권으로 흡수된 상태이고, 재구성과 해체의 공연들 또한 이미 실험극의 야생성을 잃고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은 텍스트와 서사 중심의 극이 다시 대중과 만나고 있는 현장이다.
사진 극단 송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