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10월 23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김정욱들’은 극단 차이무의 신작이다. 2009년 법정 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로 2015년 89일간 굴뚝 농성을 이어간 김정욱과 그를 인터뷰한 한겨레 기자 이재훈의 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출가 민복기는 “‘우리’ 밖으로 밀려난 이 시대의 김정욱들”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연극을 만든 과정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공연 또한 그동안 보아온 차이무 연극과도 달랐고, 현 대학로 연극과도 달랐다. 어찌 보면 1980년대 ‘칠수와 만수’ ‘한씨연대기’의 극단 연우무대 공연을 다시 보는 듯한 감회마저 들었다.
무대는 단순했다. 70m 위 굴뚝 농성 현장을 상징하는 철근 구조물이 무대 가운데 높이 설치되어 있다. 천장 조명 기구 가까이까지 이르는 위태로운 높이다. 무대 앞쪽에는 극 중 인터뷰 장소를 나타내는 벤치 하나가 놓여 있다. 반사광 처리를 한 무대 바닥에는 마치 깊은 바다처럼 물결무늬 빛이 일렁거렸다. 굴뚝에서 내려오는 사다리는 깊은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벤치의 기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다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광장 한가운데 벤치의 기둥이 되었다. 세월호 이후 수많은 영상과 기억이 그 물결과 함께 일렁거렸고, 어느 날 갑자기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공연의 핵심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두 명의 배우가 굴뚝 위로 올라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무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두 명의 배우는 89일과 101일 동안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 농성을 이어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김정욱과 정책기획실장 이창근이다. 공연은 김정욱을 인터뷰하는 장소인 덕수궁 연못 옆 벤치, 정동 서울시청 별관 앞 벤치, 잔치국수집, 서소문로 커피숍 등으로 옮겨가며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8명의 배우 모두 김정욱을 연기한다. 김정욱을 상징하는 작업 조끼를 입으면 남녀 불문하고 모든 배우가 김정욱이 된다. 8명의 배우가 김정욱이라는 하나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는 단단한 연결 고리가 공연의 미학적 통일감을 이룬다. 8명의 김정욱은 정리 해고 이후 6년 동안 김정욱의 삶을 덤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김정욱들을 통해 2009년 정리해고 이후 2015년 굴뚝 농성 해제에 이르는 6년 동안의 파업 과정과 쌍용차 사태로 기억되는 단편적인 사실들이 하나로 꿰어지며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의 통찰에 이르게 한다. IMF가 왔고, 회사가 쓰러졌고, 노동자들이 해고당했고, 가정과 지역사회가 해체되었다. 이는 IMF 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긴 그림자이자 우리의 실제 삶이기도 했다. 극단 차이무와 함께 대학로 연극의 오랜 저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배우들이 객석에서 함께 연극을 진행하며 현장성을 만들어내고, 감상의 순간을 비껴가는 희극적 활력을 이끌어내는 극단 차이무가 그간 쌓아온 내공도 한몫 단단히 한다.
극작술의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투쟁을 하기 위해 굴뚝 위로 올라간 행위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래로 내려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김정욱 개인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좌절과 무기력함의 순간이지만 공연을 따라가면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굴뚝 위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변화된 한 인간으로, 비극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땅으로 내려온 한 인간의 몰락의 이야기, 바로 그 부분이었다. 굴뚝 위의 이창근(송재룡 분)은 굴뚝을 내려가는 김정욱(류성훈 분)에게 말한다. “나는 너다.”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신문기자 재훈(오용 분) 또한 작업 조끼를 입으며 김정욱이 되고 등장인물 모두와 관객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