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또 실내악으로, 다양한 표정을 들려줄 그의 선율
첼리스트 린 해럴이 일 년 5개월 만에 다시 서울을 찾는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는 그는 미국 첼로계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다. 1961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데뷔를 치른 그는 줄리아드에서 레너드 로즈를 사사하며 거장 첼리스트의 계보를 잇는 출발선에 섰다. 이후 지휘자 조지 셀에게 발탁되어 18세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 입단, 1964년부터 7년간 첼로 수석으로 활동했다. 당시 부지휘자였던 제임스 러바인과는 평생의 우정을 나누며 함께 연주하는 음악적 친구가 됐다.
음반 시장이 활황이던 1970~1990년대, 해럴은 중견 연주자로서 숱한 활약을 남겼다. 1975년 에이버리 피셔상의 첫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으며 명실상부 미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각광받았다. 동시에 그는 솔리스트로서만이 아닌 동료 연주자들과의 실내악 연주를 통해 그 명성을 더해갔다. 특히 아시케나지와 펄먼과의 피아노 트리오 활동이 유명한데, 1982년에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A단조로, 1988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전집으로 각각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이매뉴얼 액스, 나이절 케네디, 안네 조피 무터, 키리 테 카나와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반경을 넓혀나갔다.
몇 년 전 그의 이름이 회자된 것은 조금 색다른 이유에서였다. 2012년 이른바 ‘델타항공 마일리지 사건’으로 해럴은 화제의 중심이 됐다. 첼로는 부피가 커 기내 반입을 위해 별도의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첼로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마일리지 적립을 델타항공이 거부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해럴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비슷한 문제를 겪은 이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문제제기를 진행했다. 델타항공은 해럴과 그의 ‘첼로’를 마일리지 멤버십 시스템에서 탈퇴시켰고, 해럴 역시 델타항공 불매운동을 펼치며 맞불을 놓았다. 일련의 일들은 악기 등 수화물의 기내 반입을 위한 항공권에 대한 마일리지 제도에 대한 재조명의 계기가 됐다.
그는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일에도 애정을 쏟았다. 라이스 대학 셰퍼드 음악원 교수를 역임하는 동안 서울시향 첼로 수석인 주연선이 그를 사사한 바 있다. 이상 엔더스 또한 ‘린 해럴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뛰어난 스승이자 전설적인 첼리스트 레너드 로즈의 제자였던 해럴은, 이제 그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이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일흔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노장’이라는 단어를 수식하기가 왠지 무안하다. 이번 내한으로 서울시향과 다시 만나는 그는 오케스트라 협연과 함께 서울시향 단원들과 실내악 무대를 가진다. 웨인 린 부악장과 임가진 제2바이올린 수석, 강윤지 비올라 제2수석, 주연선 첼로 수석이 해럴과 함께 슈베르트 현악 5중주를 선보인다. 다음은 해럴과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
2015년 내한 당시 엘리아후 인발/서울시향과 함께 연주한 바 있는데, 소감이 어땠는지?
그날 엘가 첼로 협주곡을 협연했다.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테크닉에 깊이 감명받았다. 인발과의 이번 무대는 또 하나 놀라운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엘가 협주곡만큼이나 널리 사랑받는 레퍼토리인데,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드보르자크 협주곡이 첼로 문헌 중 가장 뛰어나다는 대중의 의견에 나 역시 동의한다. 따뜻한 감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기교적이기도 하며, 거대한 낭만 교향곡 스타일의 반짝이는 작품이다.
오케스트라 협연 다음 날엔 서울시향 단원들과 현악 5중주 무대를 가진다. 많은 해외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 협연 혹은 독주만 하고 가곤 하는데, 실내악 공연을 따로 마련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알다시피 내 커리어는 무수히 많은 실내악 경험으로 채워졌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음악을 여러 음악가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즐기는 실내악의 매력이다.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케스트라 단원 개개인의 기량은 극적으로 높아져왔다. 슈베르트의 후기작 중 하나인 현악 5중주 C장조 D956을 서울시향 단원들과 연주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아스펜 음악제와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 여름 음악 축제는 당신의 커리어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러한 축제들에 꾸준히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여름 음악 페스티벌에서 연주 관객과 친밀하게 음악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심지어 멋진 야외에서 말이다!
존경하는 첼리스트는?
파블로 카살스. 첼로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첼리스트로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었나? 다른 직업을 꿈꿔본 적은 없는지?
열두 살 이후 내가 첼리스트, 더 나아가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살아왔다. 이제는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그는 아내와 함께 ‘하트비트재단’을 만들어 빈곤계층 아동을 지원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스승이었던 레너드 로즈에게서 받은 가르침 중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레너드 로즈는 그야말로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에게 첼로를 배우면서 발전한 놀라운 시간들에 대해 요요 마와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요요 마와 내가 로즈에게 물려받은 가장 귀중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뿌리 깊은 순수한 진실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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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후 인발/서울시향 연주회(협연 린 해럴)
1월 13·1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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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 1: 린 해럴과 함께하는
슈베르트 현악 5중주
1월 15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베토벤 현악 4중주 4번, 슈베르트 현악 5중주 C장조 D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