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 완벽을 위한 끊임없는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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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월 1일 4:46 오후

©Bonsook Koo

 

 

 

 

 

 

 

 

 

 

 

 

 

 

 

 

 

 

 

티켓을 살 돈이 없어 공연장 바깥 계단에 앉아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을 듣던 학생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베를린 필하모닉이 작품을 위촉·초연하는 작곡가로 우뚝 섰다. 그녀의 곡을 받기 위해 수 년 전부터 작품을 의뢰하는 연주단체와 재단들로 그녀의 몇 년치 스케줄은 꽉 차 있다. 그녀의 음악은 완벽을 추구한다. 2018년 신년호 커버의 주인공은 작곡가 진은숙이다. 동시대 음악을 생산해내는 그녀를 통해 지금의 음악의 최전선을 이해한다

2017년 가을,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은 진은숙의 ‘코로스 코르돈’을 초연했다 ©Bonsook Koo/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베를린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특별히 저에게는 엄청난 영광인데요, 제가 1984년도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내한 공연장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표를 살 돈이 없어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서 연주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30년 이상이 지나, 제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한 연주가 어떤 작곡가에게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보통 이렇게 큰 오케스트라의 투어에서는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사이먼 래틀 경이 베를린 필로 오고 나서, 저와 여러 번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돈독한 음악적인 우정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곡(‘코로스 코르돈’)을 베를린에서 초연했는데요,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훌륭한 연주와 해석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연주도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곡가로서 일하면서 정말 가지기 힘든 영광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진은숙)

“진은숙의 음악세계는 마치 아주 센세이셔널한 보석상자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다양한 소리와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진은숙의 음악은 굉장히 직선적이라는 점도 좋습니다. 연주자들과 성악가들의 최대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함께 일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진은숙의 모든 작품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진은숙의 스승인 리게티의 세계를 누가 이어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진은숙은 이미 충분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잘 해내는 것 같습니다.”(사이먼 래틀)

-2017년 11월 19일,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 중


 

작곡가 진은숙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3월 25일 금호아트홀에서였다. 연주 없이 작곡가 본인의 해설과 녹음 감상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해설감상회였는데, 전석 매진을 넘겨 바닥에 앉기도 했던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진은숙은 서울대학교에서 강석희를 사사하고 1985년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금을 받아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죄르지 리게티로부터 배웠다. 1994년 악보출판사 ‘부지 앤 호크스’사와 계약을 하고, 이후 그녀의 작품은 수년간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되었다. 국내에서는 2004년에 바이올린 협주곡(2001)으로 그로마이어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음악애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작품집이 발매되자 그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 이면에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어린 시절 음악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으며,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유학 시절 슬럼프에 빠졌고, 이후 줄곧 독일에서 살았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10년 넘게 진은숙의 곡이 연주되지 않았다.

고생의 끝에 낙이 찾아왔다. 2001/2002 시즌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을 거쳐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맡았고, 2011년부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오늘의 음악(Music of Today)’ 시리즈를 감독하고 있다. 2014년에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상주작곡가로서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콩쿠르 위주였던 수상 목록도 격상했다. 2004년 그로마이어상을 필두로 2005년 쇤베르크상, 2007년 하이델베르크 여성예술가상, 2010년 피에르공 작곡상, 2012년 호암상, 그리고 2017년 비후리 시벨리우스 상에 이르렀다. 사이먼 래틀이 1999년에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으로 꼽은 이후, 20세기에 보냈던 역경의 시간을 21세기에 보상받는 듯하다.

 


정교함 | 음색 | 세계성

진은숙의 악보 스케치이렇게 두 세기에 걸친 진은숙의 음악을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진은숙의 음악을 특정 범주로 구분 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음악극에 가까운 작품들도 있고, 현대적인 기법과 화려한 음색으로 가득한 작품들도 있다. 전통에 맞닿아있기도 하고,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혼재하는 혼합양식 스타일을 보이기도 하며, 실험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는 작품들도 있다. 또한 음악학자 한노 에를러가 “‘새로운 복잡성’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연상시킨다”고 할 정도로 극도로 복잡하기도 하고, 반면에 몇 개의 성부가 투명하게 보이는 작품도 있다. 음악적 유머로 가득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압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스타일과 분위기는 작곡 시기와 그다지 상관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작곡 양식이 시기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이쯤 되면 그녀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음악을 만드는 ‘음악적 자유자’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 있다. 건축물과 같이 조직적으로 설계되어 조각과 같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것이다. 진은숙은 자신의 음악을 ‘유동하는 소리 조각(彫刻)’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음악학자 마르틴 데믈러는 ‘꿈의 건축과 소리 조각’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녀는 이러한 조직적인 설계와 정교한 제련을 할 수 있는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김나희 작가는 진은숙의 인터뷰 기사에 ‘극도로 정교하며 언제나 새로운’이라는 제목을 붙이며, ‘정교함의 극한’이라는 피아니스트 플로랑 보파르의 표현과 ‘단 한 음도 낭비되지 않고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공들여진 음악’이라는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의 평을 언급했다. 에를러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서 진은숙의 작품들은 음향 건축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진은숙의 음악을 꿰뚫는 또 다른 특징은 ‘음색’이다. 에를러가 ‘진은숙의 음악은 음색음악이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음색은 그녀의 기반이자 음악적 모국어이다. 이것은 공간을 채우는 빛에 대한 깊은 관심과도 연결되어있다. 진은숙이 사용하는 음향의 팔레트는 원색적이며, 이들이 화려하게 자체발광하도록 아낌없이 사용한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나는 성격과 표현이 한껏 채색된 음악, 자유롭게 유동하고 유연한, 그리고 종종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음악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진은숙은 말한다.

또 하나의 특징을 덧붙일 수 있는 단어는 ‘세계성’이다. ‘세계성’이란 지역적 특색보다는 절대적인 음악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학자 폴 그리피스는 진은숙의 음악에 대해 ‘특별한 문화적 함의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바로 이것이 그녀가 갖는 장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와는 달리, 그녀에게 ‘세계성’이라는 말은 세계 여러 곳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이의 활용을 뜻하기도 한다. 진은숙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해 발리의 가믈란 음악의 음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이에 대해 2002년 5월 13일 서울대 특강에서 ‘전통음악을 가져다 써도 내 음악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외에도 특히 혼합양식을 갖는 작품들에서 여러 문화권의 음악이 들리곤 한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진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음악관과 구체적인 작품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2시간 가까이 나누었던 통화를 통해, ‘2018년을 사는 작곡가 진은숙’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았다.


치밀함 | 완벽주의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와 소프라노 마리솔 몽탈보의 노래로 초연된 ‘사이렌의 침묵’ ⓒ통영국제음악제

 

 

 

 

 

 

 

 

 

 

 

 

2017년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수상을 축하한다. 시벨리우스상과 예전에 받은 그로마이어상 등에서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거장이 된 후에 그 상을 받았다. 당신처럼 40~50대에 이러한 상을 받은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러한 상을 받을 때마다 다른 훌륭한 수상자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내 나이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작곡가들은 이러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서로 얘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도 내 작품을 알리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든가 하는 성격이 아니고. 작곡을 하기 위해 긴 기간 외부와의 접촉을 끊기도 하고, 연주회에 참석하더라도 로비에 나가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을 주시니 감사하다.

당신의 작품에 대한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치밀한 구조’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음악’ 등 완벽성이 많이 언급된다. 2012년 4월 이희경 박사와의 대담에서는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 시절에 용감하게도 위촉을 거절한 이유가 ‘정말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좋은 곡을 만든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이러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가?

실제로 나의 그러한 면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곡을 하나 쓰더라도 문제 삼을 것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서 쓰다 보니 너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예전에 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 목록에서 빼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을 계속 쓰고 있는데도 시간이 지나도 내 작품의 수는 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주의는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어서 내가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없다. 그 덕택에 작품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에 여러 수상작들을 작품목록에서 철회했다. 가우데아무스 작곡 콩쿠르 1등상을 받은 3대의 첼로를 위한 ‘스펙트라(Spektra)’(1985)와 도쿄도 50주년 기념 콩쿠르 1등상을 받은 관현악곡 ‘산티카 에카테라(Santica Ekatela)’(1993) 등이 그렇다.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상작이라고 해도 지금 보기에 부족해 보이니까. ‘부지 앤 호크스’와 처음 출판 계약을 할 때, 내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위에 언급된 작품들이나 ‘게슈탈튼’(1984)과 같은 초기의 곡들을 달라고 계속 요청을 해왔다. 그런데 난 끝까지 내놓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 연주하겠다고 악보를 달라고 해도 절대 줄 수 없다.

‘스펙트라’는 음반으로 제작되어 판매됐다. 나도 그 음반을 갖고 있다.

내 의견도 구하지 않고 음반을 만들었다. 속상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갖고 있는 음반은 절대로 다른 분들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


실험 | 전자음악 | 빛

바이올린과 전자음악을 위한 ‘더블 바인드?’의 연주 장면

 

 

 

 

 

 

 

 

 

 

작품들을 살펴보면 연출된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트로이의 여인들’(1986/1990), ‘말의 유희(Akrostichon-Wortspiel)’(1991/1993),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1998), ‘더블 바인드?(Double Bind?)’(2006/2007), ‘사이렌의 침묵’(2014) 등의 작품들은 연극적인 요소가 다분히 보인다.

특별히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가사가 있게 되면 글이 갖고 있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진행하도록 쓰게 된. 솔직히 이런 경우 작곡하기가 수월하다. 극을 통해 작곡의 어려움을 승화한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전자음악을 위한 ‘더블 바인드?’와 타악기와 전자음악을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가사 없이 연주자의 퍼포먼스만을 요구하지 않나?

‘더블 바인드?’는 바이올린에 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애증을 표현한 것이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일상의 모습을 음악적으로 그렸다. 가사가 없기는 하지만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이 두 작품은 당신의 다른 작품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된다.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오선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일종의 음악극이자 음악적 실험으로 보인다. 당신에게 음악적 실험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실험을 반대하지 않는다. 음악은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음악은 음악적 실험뿐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타일로도 구현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을 위한 실험은 반대한다. 예컨대, 어떤 현대음악제에서 소를 무대에 올려서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아방가르드 음악들을 보면 20세기 중반 다름슈타트의 연속일 뿐이다. 더 이상 ‘아방가르드’라고 부를 수가 없다. 난 그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생각했고, 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말한 두 곡은 모두 전자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영원에의 길(Gradus ad Infinitum)’(1989/1990) 이후 꾸준히 전자음악을 활용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20대 후반 시절 베를린 공대에서 전자음악을 깊이 연구했다. 그 때 이런 저런 많은 실험들을 해봤다.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로 누구나 전자음악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쉬워졌지만, 오히려 제약은 더 많아졌다. 과거에는 내가 상상하는 음색을 다양하게 만들어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프로파일 내에서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전자음악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았다. 우연적인 요소도 있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그럼 당분간 전자음악을 활용한 작품을 쓸 계획은 없나?

내게 전자음악은 필요하면 사용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하나의 악기다. 현재는 전자음악을 하지는 않지만, 향후 내 관심사가 다시 전자음악에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앞부분에서 화려한 색상의 비닐을 상자에서 꺼내 풀어 흩트려 놓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신이 태초의 인간에게 빛을 주는 장면을 연상했다. ‘칼라(Kalá)’(2000/2001)는 스칸디나비아 여행 중 보았던 ‘정적인 빛’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고, 관현악곡 ‘로카나(Rocaná)’(2008)라는 제목 ‘빛의 방’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로카나’는 빛을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색채감 넘치는 화려한 음색이 빛과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수정과 같은 빛깔, 금속과 같은 강렬한 반짝임, 그리고 비단결 같은 은은한 반사광 등을 좋아한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빛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사용하는 음색은 빛에 대한 이러한 기호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6년 8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서울시향의 연주로 있었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2016)의 초연을 봤다.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반짝이는 음색의 유희보다는 진지함과 종교적인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듣고 분위기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별히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가사의 내용이 철학적이고 진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다. 내 음악의 스타일이 바뀐 것은 아니다.


가사 | 언어유희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2015년 영국 바비컨센터 공연 장면 ⓒMark Allan

 

 

 

 

 

 

 

 

 

 

작품에 언어유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말의 유희’ ‘스내그스 앤 스널스(snagS&Snarls)’(2004),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Cantatrix Sopranica)’(2005) 등 언어유희를 사용한 작품에는 의미가 없는 가사를 쓰기도 했는데.

언어유희는 음악적 양식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의미가 있는 가사라도 그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청중이 음악보다 가사에 집중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펜데레츠키도 ‘누가수난곡’에서 왜 라틴어 가사를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음악에 집중하라고.

그래서 그러한 작품들은, 2010년 5월 파트리크 한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단어나 텍스트가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인가. 그런데 앞에서 가사가 있으면 가사가 가진 감정을 따라 진행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감성과 이성 사이에 저울질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가?

감성이냐 이성이냐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이 감성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피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크세나키스처럼 이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음악을 향유하고 느끼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 통합된, 보다 높은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4/2007)는 원작 자체가 언어유희로 가득한 작품이라 매우 적절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 원작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내게 잘 맞았다. 작곡하는 과정도 매우 즐거웠다.

‘부지 앤 호크스’에서 2015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당신은 모든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관심의 총화로 보인다.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는 그 전초적인 작품이고.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그동안 알고 있던 다양한 음악을 많이 넣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들이 등장한다. 바로크 음악과 같은 부분도 있고.

 


나의 이야기 | 다양한 관심

‘사이렌의 침묵’은 2014년 여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초연됐다. 초연 무대를 마친 뒤 사이먼 래틀(왼쪽)과 소프라노 바바라 해니건(오른쪽)과 함께 인사하는 진은숙(가운데) ⓒLucerne Festival/Priska Ketterer

 

 

 

 

 

 

 

 

 

 

 

 

성악 작품들은 소프라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뿐만 아니라 ‘트로이의 여인들’, ‘말의 유희’, ‘칼라’, ‘스내그스 앤 스널스’,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 ‘사이렌의 침묵’ 등이 그렇다. 혹시 여성에 대한 어떠한 철학이 반영된 것인가?

특별히 여성에 대한 철학을 가지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다. 곡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한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얻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자신의 꿈 이야기처럼 구성했는데, 이것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성향이나 파트리크 한과의 인터뷰에서 ‘단지 나 자신의 길을 가고 싶었다’고 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신의 음악은 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4년 후인 2014년 김나희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에 만연한 인간군상이 흥미롭다’고 말한 부분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작곡가는 외로움이 필요한 직업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작곡을 하면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오랫동안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의 사회성은 다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겪은 일들로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인권, 그리고 그 복합적인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주제로 오페라를 만들 계획이다.

오페라라면 ‘거울 속의 앨리스’를 준비하고 있지 않나?

그 오페라는 연기된 상태다. 언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도 앨리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수그러든 상태다.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반영됐다고 들었다. 이러한 다방면의 관심이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

인지과학과 물리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책들을 많이 읽다. 여기에서 얻는 지식들은 음악으로 이동한다. 최근에는 양자역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나는 이것이 인간 사회에도 오롯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인간 사회를 물리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해를 앞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오페라로 표현할 생각이다.


서울시향 | 현대음악가로서의 또 다른 소임

(주: 인터뷰를 가진 당시 서울시향 상주작곡가 재직 중이었음을 밝힙니다.)

©Priska Ketterer

 

 

 

 

 

 

 

 

 

 

 

 

 

 

 

 

 

 

 

 

 

서울시향 마스터클래스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혹시 이외에 다른 경로로 레슨을 받는 제자들이 있나?

서울시향 마스터클래스가 유일하다. 외국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배우고 싶으면 무조건 서울시향의 마스터클래스로 들어와야 한다.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 벌써 마스터클래스를 한지가 10년이 넘었다. 배출한 제자들도 많다. 그 중에는 10년이 넘은 지금도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도 있어서 매우 보람이 있다.

서울시향 마스터클래스 출신인 신동훈이 2017년 파누프니크 스킴에서 10분 길이의 곡을 위촉받았다. 이전에도 최종 여섯 명에 오른 한국인 두 명이 있었는데, 최고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나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맡기 시작한 것이 2006년이니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 서울시향이 한 번도 당신의 작품을 세계 초연한 적이 없다는 것은 좀 의아하다.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세계 초연했지만, 그건 상임작곡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롯데문화재단의 위촉이었다.

그 점 때문에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서울시향과는 처음부터 ‘아르스 노바 음악감독’으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계약 자체에 신곡을 쓰는 것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상임작곡가의 역할에는 관현악단을 위해 작곡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주회 프로그램을 짜고, 연주자를 섭외하고, 교육을 하는 등 여러 역할을 맡는다. 서울시향이 정한 상임작곡가의 역할도 이런 것이다. LA 필하모닉도 비슷한데, 서울시향이 이를 모델로 한 것이다. LA 필하모닉의 이전 상임작곡가인 스티븐 스터키도 작곡보다는 이러한 활동에 주력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역할도 점점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지금 서울시향은 상임지휘자와 대표가 모두 공석인데, 예산은 부족하고 서울시향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야 할 책임자가 없다.

두 공석이 적합한 인물로 신속히 채워지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기획 자문도 맡고 있어서 역할이 더없이 무거워졌다.

자문으로서의 나의 비전은 서울시향이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고, 더 나아가서 미래에 국제적 오케스트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폭넓고 참신하며 수준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그를 위해 많은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서울시향이 지난 수년간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내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야한다고 생각했다.

자문을 2016년 10월부터 맡았으니 2018년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소임의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서울시향으로부터 듣게 될 새로운 음악에 큰 기대를 품고 있다. 프로그래밍에는 어떠한 원칙이 있나?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 나는 전체 프로그램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곡가가 하나의 작품을 작곡하듯이, 프로그래밍도 일종의 작곡이자 예술 활동이다. 이를 통해 음악회를 더욱 감동을 주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나도 몇 음악 단체의 프로그래밍에 참여하고 있는데, 아르스 노바 시리즈의 프로그램북 크레딧에 적혀있는 ‘아티스트 프로그래밍’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내 프로그램에 당신의 작품을 넣고 싶어도 적당한 규모의 실내악 작품이 없어 할 수 없었다. 혹시 중·소규모의 실내악 앙상블이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작곡할 계획은 없는지?

내 작품들이 대부분 규모가 큰 편이다. 나도 이제 소규모 앙상블 작품을 쓸 생각을 갖고 있다. 우선 안네 조피 무터와 최예은을 위한 바이올린 2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외에도 갖고 있는 작곡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나?

새로운 오페라가 2022/2023 시즌에 초연될 예정다. 그 전에 LA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사이먼 래틀이 새로 맡은 런던 심포니로부터 받은 위촉작을 먼저 초연해야 한다. 무터를 위한 곡과 몇 개의 작은 작품들도 구상하고 있어서 2023년까지 일정이 빽빽하게 차 있다.

완벽주의로 빚어진 작품들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기대하겠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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