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탄생 40주년- 변화하는 사물놀이, 나아가는 젊은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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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두드림은 만국 공통의 언어였다. 타악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악기를 통해 우리 전통 장단의 멋과 맛을 살린 사물놀이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 콘텐츠, 다양한 연주단체를 만들어내는 기반과 기폭제가 되었다. 오직 장단의 힘으로 국경과 종교를 뛰어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음악의 한 장르로 거듭났고, 이런 사물놀이의 거침없는 행보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귀감과 영감이 되었다.

한 단체명으로 존재하던 사물놀이가 광의의 예술 장르로 확장되자 음악계의 흐름이 타악으로 향했고, 90년대 대학의 전통음악 교과과정에서도 자연스레 타악의 비중이 높아졌다. 타악을 전공하거나 전통 연희에 뜻을 둔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존의 사물놀이와의 차별화된 개성 넘치는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전통 연희의 현대적 해석에 방점을 찍으며 외국의 장단과 악기, 공연 형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전통 음악의 새천년을 여는 전문공연단체로 거듭났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창작타악그룹 푸리(1993)와 공명(1997)이 있다. 사물놀이의 흥과 신명을 보고 자란 젊은 음악가들은 익숙해진 새로움 위에 또 다른 새로움을 덧입히며 사물놀이와 다른 음악적 방향을 모색했다. 사물놀이 이후, 타악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동시대 젊은이들의 두 번째 소리 여정이 시작된 셈이다.

국립국악고 선후배 사이인 원일, 장재효, 민영치, 김웅식 등 네 명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모여 결성한 푸리는 동서양의 선율악기와 타악기를 모두 수용한 퓨전 및 창작 국악을 발표하며 국내외, 특히 일본 청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공명은 음악을 위해 대나무로 직접 악기를 제작하고, 공연마다 30여 가지의 악기를 다루며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타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진 신비한 음악으로 귀를 사로잡은 공명의 소리에 대한 실험적 시도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크게 인정받고 있다. 2008년엔 세계 최대의 음악 박람회인 워맥스(WOMAX)에 한국 음악가 최초로 참가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뮤직 그룹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새로운 전통을 향한 도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담하고 방대해져,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예인이 저마다의 음악으로 세상을 두드리고 있다. 전통 사물놀이의 신명 나는 리듬을 당시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공연 양식에 접목했던 타악 퍼포먼스 ‘난타’의 기획을 돕고, 해외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며 세계 위로 우뚝 선 비보이에게 전통 연희에서 비롯된 춤 동작을 전수했던 사물놀이는 어떨까?

사물놀이의 큰 물줄기를 이어나가는 한울림 예술단의 김덕수 감독은 40돌을 맞은 지난 2월 22일, 음악적 도약과 발전을 위해 ‘사물놀이 4.0 시대’를 선언하고 세계사물놀이협회를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앞을 내다보아야 했다. 위기에서 얻은 동력으로 전통에 올라타 미래로 향했던 사물놀이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사물놀이를 다음 시대로 이끌 한울림 예술단의 예인 4인을 통해 ‘2세대 사물놀이’가 걸어갈 길을 미리 엿보았다.

 


비를 몰고 오는 소리, 홍윤기 단장

1989년 처음 김덕수 선생님 문하에 들어와 30년째 사물놀이와 함께하고 있다. 선생님 때에도,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대를 앞서 진화해야만 한다. 국내에선 교육의 단절로 어려서는 사물놀이를 접하기 어렵고, 서양 음악을 중심으로 배우다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야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친해지기 어려울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건, 퓨전 국악이나 창작 국악으로 접할 땐 거부감 없이 즐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말로 대화할 때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것처럼 사물놀이의 기본 장단과 울림 속에는 분명 가슴을 뛰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공감이 형성돼 있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사회적 참여와 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내거는 요즘 젊은이들과 뜻이 통하는 바가 많아 자주 만날 수만 있다면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교류하고, 발전하고, 결국 하나로 어우러지듯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 만큼, 우리는 ‘과학 기술’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놓였다. 시대가 요구하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통해 사물놀이가 탄생했듯, 다가오는 시대가 요구하는 점을 예측하고 수용한 융합형 퍼포먼스를 시도 중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정신’이므로, 본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근본을 잃지 않는다면 앞으로 40년을 더 나아가는 동력이 될 거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창작 국악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음악가 홍윤기만의 정체성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건 홍윤기로부터 만들어진 음악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고민 중에 있다. 언젠가 꼭 도전해보리라.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송동운

사물놀이, 나아가 한국 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꿈꾸며 한울림에 닿았다. 나는 김덕수 선생님과 사물놀이가 보여준 우리 장단 중심의 월드뮤직을 들으며 자란 세대이다. 1978년 이후 사물놀이의 행보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실로 큰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걸어갈 앞으로의 40년도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란다. 중학생 때 김덕수 선생님 공연을 보고 크게 전율한 진주 출신의 소년은 자라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 ‘삼천포 12차 농악’을 이수했고, 국악예고를 거쳐 한예종 전통연희과에서 수학했다. 이러한 배움은 전통을 그대로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변화를 입힐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당에서 함께함이 자연스러웠던 과거와 달리, 이젠 마음먹고 발걸음을 옮겨 공연장에서 즐기게 되었다. 지구촌 한 마당 시대가 오자, 세계인이 그 마당으로 나와 사물놀이의 신명에 감탄하고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통하는 건, 우리 것이라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좋은 것’ ‘통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예술의 한 장르로서 사물놀이를 대해주었으면 한다. 지금 같이 외국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은 세상에 ‘너희 문화는 어떤 거야?’라고 말한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건가? 나는 당당히, ‘사물놀이!’라고 답할 것을 권한다.

 


구름을 부르는 소리, 안병진

사람들의 열띤 반응이야말로 사물놀이를 살게 하고, 발전하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사물놀이가 무대로 들어온 이후, 대형극장을 겪은 대중이 공연장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 사물놀이는 가만히 앉아서 보다가 가는 공연이 아니라, 청자와 연주자가 함께 즐기고 감정을 교류하는 예술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던지는 울림에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초등학생 때 처음 사물놀이를 접한 뒤, 완전히 마음을 사로잡혔다. ‘김덕수 선생님과 언젠가 꼭 함께 연주 하고 싶다’는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국악예고와 한예종 전통연희과를 졸업했고, 한울림 예술단에 입단했다. ‘어릴 때’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졌었고, ‘자주’ 보게 되며 사물놀이는 자연스레 내 삶 속으로 녹아들었다. 어릴 때부터 접할 수 있도록 교육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은 막연한 주장이 아님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더 많은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사물놀이를 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국내외 무대에서 연주할 것이고, 무대 밖에서도 워크숍이나 캠프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사물놀이의 신명, 지난 40년간 이 땅에서, 또 이 땅 너머에서 울려 퍼진 신명으로 더 많은 이들과 어우러지고 싶다.

 


지천을 울리는 천둥의 소리, 문상준

13살에 처음 사물놀이를 접한 이후, 사물놀이를 배우겠다며 홀로 집을 떠나 좋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나 20년째 함께하고 있다. 김덕수 선생님의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 그분의 관점을 배워보려 열심히 뒤따르는 중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발휘된 최선의 기지로 태어난 것이 사물놀이 아니던가. 사물놀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그 의미를 되새길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사물이 무대로 올라옴과 동시에 예술적 역량과 위치 또한 함께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물놀이를 비롯해 국악 전반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연주자,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면 속이 상한다. 전통 악기를 다루며 전통 음악을 갈고 닦는 예인들이 마땅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언젠가 나 역시도 존재감도 없이 공연해야 했던 어떤 날, 편견에 부딪혔던 어느 날을 딛고 연주다운 연주, 음악다운 음악을 통해 사물을 연주하는 예술가로 거듭나고 싶다. 그래서 사물이 돋보이는 음악, 사물이 중심이 된 음악을 꾸준히 선보일 생각이다.

한울림 예술단에 들어와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사물놀이’적이고 ‘사물놀이’다운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었다. 이는 사물놀이가 지닌 음악적 자유로움, 수용과 포용을 기반으로 하는 넓은 음악세계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가능성, 다채로움을 뜻한다. 문화는 선택에 의해 소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애초에 선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물놀이도, 국악도 점점 매체에서 보기 어려워진다. 선택지 밖에서 선택을 끌어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계속 두드릴 것이다. 가슴을 울리고 영혼을 두드리는 이 훌륭한 예술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고 싶다. 그 계기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와 교육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사랑받는 것. 사물놀이가 지향해야 하고, 꿈꿔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정원 기자 사진 한울림 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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