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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의 위탁운영으로 지난 6월 일곱 번째 재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 그 굽이진 이야기
삼일로창고극장이 돌아왔다.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반복되는 재정난으로 숱한 개·폐관을 반복하며 위태롭게 버텨온 삼일로창고극장의 재개관 소식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설레고 있다. 명동성당 뒷편, 비좁은 아레나 무대 주변에 빙 둘러앉아 연극을 보며 명동 데이트를 즐겼던 1970년대 젊은이들은 희끗해진 머리칼을 넘기며 젊은 날을 추억하고, 한국 소극장 연극의 부흥을 책 속의 역사로만 배워온 젊은 연극인들은 그 현장을 눈앞에서 만나게 된다.
빨간 피터의 실험은 계속된다
40년이 넘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에 등장하는 몇몇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출가 방태수(1945~)와 故이원경(1916~2010), 배우 故추송웅(1941~1985)이 그러하다.
방태수와 극단 에저또는 지금의 공간(서울 중구 저동1가 20-6)을 극장으로 처음 사용한 이들이다. 극장으로 쓰기엔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단원들이 직접 곡괭이로 수개월간 지하를 파 내려갔다고. 1년간의 공사 끝에 1975년 5월 27일 문을 연 ‘에저또소극장’에서 방태수와 극단 에저또는 마임을 비롯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수 선보였다.
그러나 에저또소극장은 운영난을 겪으며 1년 만에 문을 닫고, 연극을 활용한 심리치료에 관심이 많았던 정신과 의사 故유석진 박사가 사재를 털어 극장을 매입해 ‘삼일로창고극장’이라 이름짓고 연출가 이원경에게 운영을 맡겼다. PD 시스템을 도입하고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를 양성하며 창작극 발굴에 힘쓰는 등, 당시 극장 운영방침은 대단히 선구적이었다.
1977년 8월 20일 초연한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은 과거 삼일로창고극장의 대표작이었다. 배우 추송웅이 자신의 연극인생 15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카프카의 단편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1917)을 각색해 제작·기획·연출·연기 등 전 과정을 혼자 맡은 1인극이었다. 주인공인 원숭이 ‘피터’를 연기하기 위해 추송웅은 3개월 동안 창경원을 오가며 침팬지의 생태와 특징을 관찰하며 원숭이와 자신을 동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초연 당시 4개월 만에 6만 명의 관객을 동원, 8년간 482회 공연으로 1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만난 ‘빨간 피터의 고백’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재개관을 장식하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으리라.
6월과 7월에 걸쳐 4주간의 주말에 공연된 재개관 기념 공연 ‘빨간 피터들’ 시리즈는 ‘빨간 피터의 고백’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ing_낯선 자’(출연 하준호, 연출 신유청) ‘K의 낭독회’(출연 강말금, 연출 김수희) ‘관통시팔’(출연·연출 김보람) ‘러시아판소리-어느학술원에의보고’(출연 최용진, 연출 적극) 등 4편의 1인극이 올랐다.
소극장의 실험성에 공공성이 더해질 때
2018년 현재 삼일로창고극장이 가지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첫째, 운영 방식에서는 민·관 거버넌스 모델을 지향하며 유연하고 개방적인 운영을 꾀한다. 재개관을 준비하며 꾸려진 1기 운영위원회는 박지선(프로듀서그룹 도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오성화(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우연(남산예술센터 극장장, 당연직), 이경성(크리에이티브 VaQi 연출), 전윤환(혜화동1번지 극장장), 정진세(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으로, 모두 1970년 이후 출생이다. 1970년대 소극장 붐을 현역에서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실험적인 연극이 젊은 연극인들을 주축으로 부흥한 것처럼 이들이 보여줄 신선함에 기대가 모인다.
둘째, 프로그래밍 면에서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적 정체성인 ‘실험’에 주력한다. 현재 가장 강력한 중견 연출가 중 한 명인 한태숙 역시 1977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데뷔했던 것처럼, 미래를 장식할 낯선 신인과 작은 극단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을 예정. 동시대 연극과 다양한 장르 간 결합에 주력해 온 남산예술센터의 노하우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기대된다. 공연뿐 아니라 토론과 발표, 전시 등 다양한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연극계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자 한다.
1960년대에 지어진 가정집을 개조한 극장이라는 물리적 한계도 있다. 당초 2017년 9월로 예정된 재개관이 반년 넘게 연기된 것도, 리모델링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공간을 보존하면서 현재에 맞게 활용하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삼일로창고극장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데는 이처럼 건물의 역사성과 거기서 이뤄진 아방가르드 연극의 역사성이 공존한다. 과거-현재-미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공성과 실험성 등 삼일로창고극장은 다양한 교차점 위에 놓여 있다. 2020년까지 3년의 위탁운영 기간, 삼일로창고극장의 열쇠를 건네받은 서울문화재단 앞에는 환영만큼이나 많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글 이정은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기념전시 ‘이연극의 제목은 없습니다’
6월 22일~9월 22일 삼일로창고극장 갤러리
화~금요일 오후 1~6시, 공연이 있을 시 공연시작 전까지(주말포함) 관람 가능
졸업논문 기획프로그램 ‘퍼포논문’
8월 17~19일 ‘노래의 마음’
8월 24~26일 ‘더 리얼’
좌담 ‘창고포럼’
8월 20일 ‘연극연구자 혹은 연극관련 대학원생이 예술 하는 방법’
10월 29일 ‘공공에 의한 예술+행정은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삼일로창고극장 개·폐관 역사
1975년 연출가 방태수와 극단 에저또의 단원들이 직접 무대를 파고 건물을 보수하여 ‘에저또 소극장’(이후 ‘에저또 창고극장’으로 변경)으로 개관
1976년 정신과 의사 故 유석진이 극장을 인수, 연출가 故 이원경이 운영을 맡으며 ‘삼일로창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개관
1983년 배우 故 추송웅이 인수 ‘떼아뜨르 추 삼일로’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개관
1986년 극단 로얄씨어터(대표 윤여성)가 인수, 극장명을 다시 ‘삼일로창고극장’으로 변경하고 기존의 아레나 무대를 프로시니엄 무대로 개조해 네 번째 개관
1990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 김치공장과 인쇄소 등으로 사용
1998년 극단 창작마을(대표 김대현)이 인수해 ‘명동창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번째 개관
2004년 연출가 정대경이 인수, ‘삼일로창고극장’으로 운영
2013년 서울시, ‘삼일로 창고극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
2015년 폐관
2017년 서울시, 10년간 장기임대계약 체결 및 서울문화재단에 운영 위탁
2018년 6월 22일 ‘삼일로창고극장’의 이름으로 재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