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용선생 경기소리판’ 유작모음 vs 정가악회 풍류 III ‘가곡’

민요와 가곡의 특별한 국악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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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6일 12:46 오전

평론가·칼럼니스트 추천 테마 음반

 

 

릴테이프에서 가져온 ‘창부타령’과 DSD 데이터로 담아낸 ‘전통가곡’

‘특별하다’는 말은 곧 ‘다르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국악음반에서 일반적인 음반과 다른 음반을 특별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국악음반에서 특별하다는 말은 ‘명반’으로 연결된다. 서양음악에서 명반을 논할 때는 연주력, 녹음기술, 디자인과 해설서 등을 들지만 전통국악 쪽에는 연주력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음질이나 디자인 등은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최초의 국악음반, SACD 음반, 명인의 유일한 음반 등 국악음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고려하여 명반의 범주에 포함하곤 한다. 여기에 특별한 음반, 명반 2장을 소개한다.

 

천하를 진동시킨 전태용 명창의 ‘창부타령’
이런 말이 있다. “경기소리는 ‘창부타령’, 서도소리는 ‘수심가’, 남도소리는 ‘육자배기’ 몇 소절만 들어보면 그 소리꾼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창부타령’은 경기소리의 대표적인 곡으로 경기소리꾼이 음반을 출반할 때 꼭 포함하는 민요이다. ‘창부타령’은 서울굿의 창부거리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가 소리꾼들에 의해 통속민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창부타령’에 관해서는 국악 애호가들 사이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이 음반을 듣지 않고 ‘창부타령’을 논하지 마라” 이 음반에 수록된 ‘창부타령’은 무대에서 부르는 정형화된 ‘창부타령’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가 약주 한 잔을 걸치고 부르는, 이따금 가사도 얼무버리는 ‘창부타령’이지만, 전태용 명창의 즉흥성 강한 매력에 빠지면 다른 ‘창부타령’은 멋이 없어 들을 수가 없다. 생전에 방송을 통하여 전 명창의 소리가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일부 귀명창이나 주변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소리를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돌아가신 후에야 명창의 진가가 드러나 그의 소리예술성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음반에는 ‘창부타령’ 7곡 외에 ‘노랫가락’ 4곡, ‘청춘가’ 2곡, ‘뱃노래’, ‘사발가’와 ‘경기시나위’, ‘경기도살풀이’등 총 17곡이 수록되어 있다. 1번 트랙의 ‘창부타령’은 지갑성 명인의 1971년도 회갑연에서 녹음한 음원인데, 장구를 명인이 직접 잡았다. 지갑성 명인의 추임새도 명연이다. 12·13·14·15트랙의 ‘노랫가락’ ‘청춘가’ ‘사발가’ ‘창부타령’은 김점석 선생의 1973년 생일잔치에서 부른 노래들이다. ‘경기시나위’(1987년)와 ‘경기도살풀이’(1988)에서는 명인이 징을 담당하고 있다. 음반 해설서에 실린 이보형·최종민·이자균·노재명의 글들은 전태용 명창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전태용 명창(1922~1991)은 경기도 옹진군 영종면 출신으로 소리뿐만 아니라 해금과 피리의 대가이기도 했다. 전 명창은 굿판에서 아버지의 소리를 배워 독특한 자기만의 소리세계를 완성하였으며, 해금과 피리는 전상현 명인을 사사하였다. 오랫동안 KBS방송국 전속국악단 소속으로 악사로 활동했다.
이 음반의 백미는 7곡의 ‘창부타령’이다. 창부타령이 7곡이나 수록돼 있지만, 그가 부른 ‘창부타령’은 단 한 번도 같거나 비슷하지 않았다. 일반 소리꾼이 부르는 정형화된 민요창이 아니고 판소리와 같이 복잡한 시김새와 부침새를 읽어나가면 소리를 높이 들고 나가기도 하고 깊이 숙이기도 하면서 그 변주가 어찌나 절묘한지 누구도 그 흉내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여기 담긴 ‘창부타령’은 각각의 스타일이 달라 전부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많은 경기소리꾼들이 전태용 명창의 스타일로 노래하려고 시도하지만, 아직 그 멋에 가까이 도달할 소리꾼은 없는 것 같다. 명실공히 최고의 ‘창부타령’이다.

 

관가정에서 담아낸 정가악회의 풍류
시조, 가사와 더불어 정가에 속하는 가곡 음반이다. 가곡은 한국 고유의 정행시인 시조를 노랫말로 하는 성악곡으로,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단소, 장구 등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아정한 노래이다. 선비들이 풍류방에 모여 노래와 기악을 즐기곤 하였을 때 이 풍류방의 음악문화를 대표했던 것이 줄풍류와 이 가곡이다. 남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가곡의 역사에 여창가곡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무렵이다. 여창은 남창과는 달리 ‘속소리’라는 가성을 가미해 속소리와 겉소리를 절묘하게 오가며 여성만의 섬세하고 맑은 음색을 살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곡은 ‘봉선화’ ‘가고파’ 같은 한국가곡과 구별하기 위해 전통가곡이라 일컫는다.
이 음반에는 여창가곡 9곡, ‘우조 이수대엽’ ‘우조 두거’ ‘우락’ ‘반엽’ ‘계면조 두거’ ‘평롱’ ‘계락’ ‘편수대엽’ ‘태평가’가 실려 있다. 음계에 따라 앞의 세 곡은 우조, 뒤의 다섯 곡은 계면조로 분류되며 가운데의 ‘반엽’은 우조에서 계면조로 변하므로 ‘반우반계’라 한다. 매우 느린 ‘우조 이수대엽’에서 시작하여 차츰 빨라져서 촘촘히 엮는 ‘편수대엽’에 이르고, 마지막 ‘태평가’에서 느린 속도로 돌아와 마친다.
김윤서 가객이 정가악회 대표인 거문고 천재현, 가야금 김현채, 대금 김현수, 피리 이향희, 해금 이승희, 단소 방초롱, 장구 김예슬의 반주로 노래하고 있다. 음반은 제작사의 아이콘인 실제 사진을 표지에 부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해설서에는 설명·사진·가사가 영어번역과 함께 잘 수록되어 있다.
정가악회는 2000년에 창단되어 가곡과 줄풍류 등의 전통음악과 깊이 있는 창작음악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악실내악단이다. 비디오·연극·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접 예술 장르와의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창작극으로 국악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단체이다. 2007년에 1집 정가악회 풍류 ‘송소고택 줄풍류’, 2009년에 2집 ‘정념’에 이어 3번째 음반이다. 현재는 5집 ‘현대한국음악 알리오’(2015년)까지 출반되어 있다. 젊은 국악인으로 줄풍류와 가곡을 제일 잘 연주하는 첫 번째 단체로 국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음반은 최고음질의 하이브리드 SACD로 제작되었고, 녹음은 스튜디오가 아닌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보물 442호 관가정 한옥에서 이루어졌다.

 

사랑 위에 세워진 위대한 명반
음반이란 음반 제작사가 기획해서 출반하거나, 연주자가 자기의 음반을 출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태용선생 경기소리판’은 전태용 명창의 ‘창부타령’을 좋아했던 한 애호가가 전 명창의 따님인 전숙희 명창과 함께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던, 주로 릴테이프에 담긴 ‘창부타령’ 등을 모아 유작모음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한 음반이다. 정식으로 음반을 출반하기 위해 녹음한 음악이 아니고 회갑잔치에서, 생일잔치에서, 사석에서 개인이 녹음한 음원들을 3년에 걸쳐 모은 것이다. 멀리는 1965년부터 1987년까지의 녹음으로 음질 상으로 아주 불균형하고 열악한 것을 복원 작업을 거쳐 출반했다. 수집한 모든 음원을 수록하다보니 ‘창부타령’이 7곡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곡을 7곡이나 수록한다는 것은 어느 음반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최고의 ‘창부타령’이다.
음악은 옛것이지만, 그것을 담는 매체는 새로운 것일수록 좋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매체는 수요와 비용적인 측면에서 국악을 담기는 어려운 일로 여겨졌다. 2010년에 과감하게 국악음반 제작에 순수녹음 방식과 최고음질의 음악기록 방식인 DSD(Direct Streaming Digital) 데이터로 국악음반을 제작하는 회사가 등장하였다. 악당이반의 순수녹음은 녹음 시에 이퀄라이저, 이펙트 같은 기계장치는 물론이고 녹음 이후에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어떠한 음의 변조나 오버더빙 같은 행위는 가하지 않는 원음 그대로를 담은 방식이다. 녹음도 스튜디오가 아니 자연 속의 한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야외에서의 녹음은 스튜디오 녹음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DSD 데이터로 담아낸 SACD는 일반 CD 플레이어에서도 재생 가능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5.1채널 이상의 멀티채널 재생도 가능한 최고품질의 음반이다. 국악에도 이런 음반이 있다는 꿈같은 사실이다. 이 방식에 의한 음반이 정가악회 풍류 III ‘가곡’이다.

 

명반은 우리의 자긍심
필자는 국악 애호가이다. 사실 국악음반 소개할 때 명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명반이라 일청을 권하는 말로, 구해서 감상하라는 말인데 음악이란 감상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이 달라 조심스럽다. 그러나 필자가 최고의 명반을 소개할 때 항상 덧붙이는 문구가 있다. ‘이 음반을 구입하시고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필자가 환불해드립니다’이다. ‘전태용선생 경기소리판‘ 음반은 여기에 해당한다.
SACD를 추천하는 것은 더 조심스럽다. 가격이 고가인 데다가 SACD 재생기를 가진 분으로 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가악회 풍류 III ‘가곡’ 음반은 최고의 음질과 연주로 그래미상 후보로 접수되어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리음악 해외보급사업의 일환으로 해외에 보급되었다. 우리음악을 알리고 싶은 외국인에게 선물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첫 번째 음반이며, 우리도 이런 품질의 음반을 가지고 있다고 자긍심을 느끼는 자랑스러운 음반이다. SACD 재생기를 가진 분이라면 일청을 강권한다.

 

이달의 추천 음반
❶ 창부타령으로 천하를 진동시킨 ‘전태용선생 경기소리판’ 유작모음
녹음 : 1965~1987년
예술기획 탑 / TOPCD-031/ 2000년 출반

❷ 정가악회 풍류 III ‘가곡’
녹음 : 2010년 10월 1일
악당이반 / ADSACD-610 / 2011년 출반

 

글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이 세상에서 국악CD 음반(www.gugakcd.kr)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이다. 10년 넘게 국악FM방송에서 ‘정창관의 음반에 담긴 소리향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을 재발굴하여 국내에 CD로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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