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커셔니스트 콜린 커리와 서울시향 연주회

내면의 먼 북소리, 그의 두드림과 공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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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6일 12:37 오전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누구나 몸속에 심장이라는 타악기를 지니고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한 원초적인 악기인 타악기는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스코틀랜드 출신 퍼커셔니스트 콜린 커리가 내한해 8월 30일에는 서울시향과 협연을, 9월 2일에는 서울시향 타악 단원들과 실내악 공연을 선보였다. 낯선 악기들과 그 울림이 자아낸 주술적인 분위기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지친 일상 속에 음악을 들을 여유와 흥미를 잃어가던 사람들에게 자극과 각성을 줄 수 있는 음악회였다.

 

외계를 연상케 하는 신선한 연주


8월 30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는 지휘자 마르크 알브레히트와 서울시향 단원들이 있었다. 갑자기 객석 중간에서 신비한 소리를 내며 콜린 커리가 무대로 걸어 내려왔다. 마이클 도허티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UFO’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1악장 ‘여행음악’이었다. 거품기 모양의 타악기인 워터폰을 활로 그으며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문답은 외계인의 교신처럼 신비했다. 붉은 기계식 사이렌과 관현악 총주가 이어졌다. 로스웰 사건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2악장 ‘정체불명의’에서 커리는 무대 오른쪽의 철금과 마림바가 있는 곳으로 옮겨, 양손에 스틱을 두 개씩 쥐고 격렬한 연주를 선보였다. 3악장 ‘비행하는’은 1947년 레이니어산에서 목격된 UFO를 다뤘다. 활로 비브라폰과 심벌을 켜며 몽환적인 소리를 내다가 격렬하게 변모했다. 비브라폰을 오보에가 이어받아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했고, 금관이 종종 포효하며 영화음악 같은 총주를 선보였다. 마크트리의 찰랑이는 소리가 신비로운 느낌을 냈다. 4악장 ‘???’에는 그야말로 음악과 상관없을 것 같은 타악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불 들어오는 로봇이나 삑삑이는 키치적이었다. 광선검과 레이저총 소리는 예전 소풍날 장난감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5악장 ‘물체’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등장한 네바다주의 비밀군사기지를 다뤘다. 여기서 커리는 가장 역동적으로 탐탐과 심벌을 연주했다. 라틴 리듬을 연상케 했고, 록이나 재즈 라이브 콘서트에서의 드럼 솔로 같은 장면이 콘서트홀에서 재현됐다. 커리는 처음에 들고 나왔던 워터폰을 활로 그어 UFO 소리를 내며 수미쌍관의 곡을 마쳤다.
커리는 앙코르로 드럼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자유분방하고 현란한 연주 가운데서도 일정한 질서를 부여해가는 연주였다. 앙코르를 마친 커리는 앞줄에 앉아있던 어린 관객에게 드럼 스틱을 선사했다. 아이에겐 평생 못 잊을 추억이 될 듯하다.
휴식시간 뒤 마르크 알브레히트의 발랄한 지휘 속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가 시작됐다. ‘영웅’에서 중음역대가 두터웠다. 각 주제가 명쾌하게 제 소리를 내면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우렁찬 트롬본 소리가 뇌리에 남았다. ‘영웅의 적들’은 맹렬했고, 목관과 금관의 엄습하는 소리에는 약간의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영웅의 반려자’에서 웨인 린의 바이올린 솔로가 이어졌다. 빈의 분위기를 재현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들었던 서울시향의 악장 솔로가 있는 다른 곡들보다 안정감 있는 연주였다. 이후 무대 밖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리며 ‘전장의 영웅’이 시작됐다. 알브레히트의 다이내믹한 지휘로 금빛 환희와 흥분의 극치에 도달했다. ‘영웅의 업적’에서는 ‘돈키호테’‘돈 후안’등 R. 슈트라우스 다른 작품들의 단면이 지나갔다. 현악 합주가 정치했다. ‘영웅의 은퇴와 완성’에서는 저음역의 관악기들이 어두운 광채를 발하며, 바이올린 솔로와 호른의 어우러짐이 고급스러웠다.

 

음악 감상 의욕을 북돋우는 자극제


9월 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는 타악기들로 가득했다. 콜린 커리를 비롯해 에드워드 최·김문홍·김미연·이언 브런스킬 등 다섯 명의 연주자가 나왔다. 스티브 라이히의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은 윷가락이나 목탁 같은 클라베스를 두드리며 시작했다. 미니멀한 작품이었다. 나무의 반복된 울림이 왠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쾌적하게 다가왔다. 리듬 하나를 더하거나 빼는 것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음악의 모습이 절묘했다. 부여된 질서에 따르는 모습이 다 같이 긴 줄 줄넘기에 참여하고 있는 듯했다. 눈의 초점을 몽롱하게 뜨면 야외의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긴 시간동안 청중은 일종의 트랜스 상태가 됐다.
이후 콜린 커리가 혼자 나와 탐탐과 봉고드럼을 격렬하게 연주하며 페르 뇌고르의 ‘불 위의 물’을 시작했다. 톱처럼 생긴 심벌을 두드리고 간헐적으로 큰북과 심벌즈를 연주했다. 스틱을 바꿔서 저음을 강화시키니 드럼 소리는 더 뭉근해졌다. 마크트리를 훑고 나서 비브라폰을 흔들고 나무 소리 내는 탐탐을 치다가 공을 치며 연주를 끝맺었다.
커리는 이어서 마림바 솔로곡인 호소카와 토시오의 ‘회상’을 연주했다. 일본 궁중음악 가가쿠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대상의 이미지보다는 무의식의 흐름을 의도했다고 하는데, 커리가 저음부를 연주하니 바다 멀리의 풍경, 거대한 대양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롤프 발린의 ‘스톤 웨이브’는 콜린 커리·에드워드 최·스콧 버다인 등 세 명이 나무와 북, 금속을 두드리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펄스와 시퀀스는 반복되며 주술적으로 다가왔다.


크로노스 4중주단의 ‘WTC/911’앨범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라이히의 ‘말렛 4중주’는 커리와 스콧 버다인·김문홍·김미연이 연주했다. 두 대의 비브라폰과 두 대의 마림바 구성으로, 저음역에서 기본 리듬이 깔리며 그 위에서 고음역의 연주가 중첩됐다. 김미연과 커리가 반복적인 주선율을 담당했다. 2악장에서 기존 리듬이 사라지고 몽환적인 주선율만 남더니 3악장에서는 다시 주 리듬과 선율로 돌입했다.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해석이었다.
존 케이지 ‘두 번째 구성’에서 커리는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앉아 단속적인 연주와 함께 지휘하는 포즈를 취했다. 에드워드 최·스콧 버다인·김문홍이 다양하고 이색적인 타악기들을 가지고 예측불가의 한 판의 굿 같은 무대를 연출했다. 이후 연주된 라이히의 ‘드러밍’은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곡이었다. 라이히는 가나에 가서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음악적 체험을 하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인 타악기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커리와 에드워드 최, 김미연, 이어 브런스킬이 차례로 등장하여 봉고 드럼을 연주했다. 똑같은 리듬을 치기 시작해 조금씩 변화를 주다가 톱니바퀴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양상으로 변모했다.
타악기만을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건 색다른 체험이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머리가 핑핑 돌고 귀가 얼얼했다. 조금 걷다 보니 여러 가지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입맛 살려주는 매콤한 음식처럼, 이번 커리의 공연은 음악 감상 의욕을 북돋우는 자극제였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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