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FOCUS_2
16년 만의 내한, 현대발레사가 궁금하면 NDT를 보라
현대발레사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단체가 있다. (발레 역사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도 러시아도 아닌) 네덜란드에 있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다. 1959년 헤이그에서 설립된 이후 60년간 세계적인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으니 NDT의 레퍼토리만 살펴보아도 현대발레사는 마스터한 셈이다.
현대발레의 선봉에 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낭만발레·고전발레 시대를 지나면서 거대해지고 정형화된 발레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아 신고전주의발레가 되었다. 안무에 있어서 ‘혁신’과 ‘파격’을 모토로 했고, 음악·미술 등 타 장르와의 공동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를 현대발레사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신고전주의발레를 이끌었던 러시아의 발레 뤼스 이후에 딱히 구심점이 된 ‘하나의’ 단체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뉴욕 시티 발레나 파리 오페라 발레, 볼쇼이 발레처럼 대형 발레단의 경우 고전발레 레퍼토리와 현대발레 신작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있다. 한편 모리스 베자르의 20세기 발레단, 마츠 에크의 쿨베리 발레 등의 현대발레단은 행정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예술감독 개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따라서 각각의 발레단을 떼어내어 살펴볼 경우, 현대발레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NDT는 ‘선구적인’ 현대발레 레퍼토리만을 꾸준히 지향해왔고, 그 결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봉에 서있다’는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다.
심리극의 귀재가 남긴 놀라운 업적
NDT의 첫 예술감독은 한스 반 마넨과 벤야민 하카비가 공동으로 맡았다. 이들은 수석안무가로도 활동하면서 ‘고전발레로부터의 탈피’라는 설립 방향을 세웠다. 현대무용이 지향하는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발레단으로서는 최초로 단원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기도 했다.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테틀리 안무의 ‘달에 홀린 피에로’ ‘카르미나 부라나’, 반 마넨의 ‘대 푸가’ 등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NDT가 지금의 세계적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체코 출신의 무용수 이르지 킬리안이 1977년 부임하면서 발레단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무용수로 활동할 때부터 안무력을 인정받았던 킬리안은 부임 당시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발레단의 구조부터 바꾸는 놀라운 행정력을 발휘했다. 발레단을 셋으로 나눈 것인데 원조 발레단을 NDT 1로 하고, 프로페셔널이 되기엔 아직 조금 미흡한 어린 나이(17세부터 22세까지)의 유망주를 모아 NDT 2를 설립했으며, 이후 급성장하는 단체를 지켜보면서 은퇴를 앞둔 베테랑 무용수를 대상으로 NDT 3을 만들었다.
이런 구조는 무엇보다 작품성을 강조한 소품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매우 적합했다. 창의적인 젊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할 수 있게 되었고, 발레계에서는 보기 드문 원숙미 넘치는 작품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무대에 나가는 것이 구조적으로도 매우 용이하게 되었다. 창작과 유통이 자유로운 구조로 되어 있으니 NDT에 몸담았던 24년 동안 킬리안 자신도 백여 편의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세계적 안무가의 작품을 레퍼토리로 쉽게 흡수했다. 예술감독을 지낸 한스 반 마넨을 상임안무가로 다시 초대했으며, 윌리엄 포사이드·마츠 에크·모리스 베자르·나초 두아토·크리스토퍼 부르스·오하드 나하린 등이 NDT와 신작을 발표했다. 킬리안의 후배 양성 노력은 커다란 결실을 남겼으며, 단원들에게 안무적 소양을 자극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폴 라이트풋(현 NDT 예술감독), 리오넬 리쉬·파트릭 델크르와 등의 신인 안무가를 발굴했고, 무용수의 국적 또한 다양해졌다. 많은 안무가들과 작업하다 보니 다방면의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 개성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킬리안이 이처럼 놀라운 행정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의 명성은 무엇보다 킬리안 작품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킬리안은 날렵하고 정확한 발레기술을 잃지 않으면서 감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이다. “가장 인간적인 동작이 감동적”이라는 지론에 따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풍부한 음악성과 예리한 연극성을 모두 담아냈다. 70년대 대표작으로 ‘시편 교향곡’ ‘낯선 땅으로의 회귀’ ‘신포니에타’ 등이 있으며, ‘거룩한 밤’ ‘결혼’ ‘어린이와 마법’ ‘침묵의 절규’ ‘마음의 심연’ 등을 통해 80년대 더욱 화려해진 움직임 언어를 보여주었다. 이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가구야 공주’ ‘부드러운 거짓말들’을 안무하는 등 대형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도 했지만, NDT 3과 함께 한 ‘시간이 채워질 때’ ‘생일’ 등은 소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감동으로 킬리안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민속무용뿐 아니라 동양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킬리안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감정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섬세한 움직임으로 발현하는 그의 천재성을 확인할 때마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담는 ‘심리극의 귀재’라는 생각이 든다.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와 섬세한 발레 기교로 채워지는 연출은 킬리안의 장기이자, 현대발레의 최고의 매력이다.
16년 만에 NDT 1을 만나볼 기회
NDT 1의 내한공연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 예술의전당 기획초청공연으로 첫 인연을 맺은 후, 2002년에 이어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NDT 1 외에도 NDT 2, NDT 3의 내한 공연 때마다 예술계에는 혁신이라는 반향을 남겼고, 일반 관객에게는 춤으로 보여줄 수 있는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 주도적 역할을 하는 메인 단체로서 NDT 1이 이번 공연에서 보여줄 작품은 예술고문 솔 레옹과 예술감독 폴 라이트풋이 공동 작업한 ‘더없이 안전한(Safe as Houses, 2001)’ ‘스톱 모션(Stop Motion, 2014)’, 그리고 NDT의 협력안무가이자 슈투트가르트 발레 상주안무가인 마르코 괴케의 신작이다. 신작은 아직 제목도 미정인 데다 9월 네덜란드 세계초연을 마친 후 곧바로 소개될 예정이라 더욱 기대된다. NDT의 역사를 통해 현대발레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킬리안 이후 NDT를 대표할 만한 안무가는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동시대성으로 시대적 예술성을 반영할 것인지 그 현주소를 확인하길 바란다.
글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예술의전당
네델란드 댄스 시어터 I 내한 공연
10월 19~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더없이 안전한’ ‘스톱 모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