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자의 춤-샤이닝 라이트’

춤을 풀어내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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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4일 9:00 오전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월 4·5일 서울남산국악당

서울남산국악당이 2019년 입춘과 설날을 맞아 2월 4·5일에 올린 특별공연이었다. 서울남산국악당이 새해맞이로 기획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춤계 원로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 중인 김매자(창무예술원 이사장)의 단독무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1부 김매자의 ‘샤이닝 라이트(Shining Light)’, 2부 음악그룹 나무의 ‘유산가(遊山歌)’와 ‘바람의 여행자’, 3부 김매자의 ‘일무(日舞)’였다. 음악그룹 나무의 이아람(대금·작곡), 황민왕(아쟁·타악), 여성룡(구음·타악)은 2부의 연주뿐만이 아니라, 김매자의 춤을 일으키는 반주도 도맡았다.

‘샤이닝 라이트’는 2010년 일본 헤이조 천도 1300년 축전 행사에 초청되어 백제 음악의 거장 미마지를 추모하는 공연에서 ‘광(Light: 光)’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했던 작품이다. 흰색 계통으로 다소 격식을 차리기 위해 쾌자를 갖추고 늘 그렇듯 느린 움직임으로 춤이 시작되었다. 한 팔을 앞으로 뻗으며 몇 걸음 나왔다가 그 팔을 곧바로 위로 반듯하게 끌어올렸다가 뒷걸음으로 감아 돌더니 옆걸음으로 가서 다시 몸과 팔을 평면으로 벌려놓는다. 곡선과 직선이 자연스럽게 접합되며 춤의 뿌리와 현대적 이미지들, 포용과 단호함이 공존한다. 쾌자를 벗은 후에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팔을 들어 올려 온몸으로 기운을 받아내다가 땅을 짚고, 손목과 팔뚝을 분절하듯 팔사위를 끊어내고, 이윽고 기분 좋게 머리를 흔들고 사방에 빛을 뿌려댔다.

‘일무(日舞)’는 25분 분량의 단독 작품으로, 2000년 창무회가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던 ‘하늘의 눈’(3장 구성)에서 3장에 배치되기도 했다. 김매자는 쪽 머리에 테가 작은 검은 갓을 쓰고 앞으로 여민 검은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치마 아래의 바지는 황금색이었다. 호흡을 끌어올려 곡선과 직선을 묘하게 교차시키며 춤추다가, 무릎의 굴신을 탄력적으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이때 어깨와 팔은 무릎의 굴신을 받아 응답하며 움직임을 그려냈다. 굴신과 함께 부드럽게 살랑거림은 영락없는 우리 춤의 장단감(感)이다. 이렇게 노니며 긴장과 이완을 쥐락펴락하는 행간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만 가지 인상(印象)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치마의 끝자락을 양손으로 잡고 팔을 벌려서 흔들흔들 판을 휘젓더니 치마를 뒤집어썼다. 황금색 덩어리가 등장했고, 다시 꿈틀대고 생동하기 시작했다. 음악그룹 나무의 반주는 절정으로 치달았고, 뜨거워진 김매자는 흐트러짐 없이 혼신을 쏟아냈다.

특히 김매자는 춤을 정면으로 발산했다. 몸통을 객석 중앙으로 향하고 관객과의 긴장을 유지하며 기운이 뻗어 나갔다. 세월과 함께 굵어진 몸과 숨김없는 표정이 기운의 밀도를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그날 공연에서 필자는 춤을 풀어내는 김매자의 정신을 보았다. 독무였고, 춤을 보조할 무대장치도 없었으며, 추상적인 주제의 춤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객을 설득할 것인가,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그것은 무대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샤이닝 라이트’와 ‘일무(日舞)’를 지키는 정신이라고 보았다. 춤을 풀어내는 과정·계기·상상·구조 무엇이든 자기 안에 굳건하지 못하다면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관객의 긴 박수가 이어졌다. 진력(盡力)을 다한 김매자의 춤에서 관객들은 수많은 상념(想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 김영희(전통춤 연구가) 사진 서울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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