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두다멜/LA 필하모닉 내한공연(협연 유자 왕)

절제와 수렴, 두다멜의 새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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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1일 9:00 오전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3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LA 필하모닉 단원들이 앉은 뒤 꽤 시간이 흘렀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유자색 드레스를 입은 유자 왕이 등장했다. 존 애덤스의 신작 피아노 협주곡 ‘Must the devil have all good tunes(나라고 좋은 곡 쓰지 말란 법 없지)’는 반복적인 선율로 이뤄져 있었다. 필립 글래스 같은 노골적인 반복이 아니라 층위를 달리하며 구조를 이루는 3차원적인 반복이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일부러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다. 싱커페이션을 확장한 듯한 박자의 변화에서 재즈적 이디엄이 느껴졌다. 더블베이스가 콜 레뇨로 연주하듯 ‘착’ 소리를 내고 유자 왕의 피아노는 타악기를 연상시키듯 딩동대며 울렸다.

유자 왕의 서정적인 연주에 영감을 받았다는 느린 두 번째 섹션에서 현의 하모닉스가 피아노와 어우러지며 초현대적인 감성을 자아냈다. 오케스트라는 마치 생황 소리처럼 울렸고 영혼을 자극했다. 점점 고조되며 마지막 세 번째 섹션을 생기 넘치게 마무리했다. 초연 곡이라 생소하기도 했고 유자 왕의 협연이 곡 전체의 일부로 녹아든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앙코르 대신 객석에 있던 작곡가 존 애덤스가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하며 이날 공연을 빛내주었다.

두다멜은 말러 1번을 암보로 지휘했다. 현악의 하모닉스가 신비함을 자아냈고, 가깝게 들려온 목관악기 소리가 무대 밖의 먼 트럼펫 소리와 조응했다. LA 필은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오늘 아침 들판을 건너가네’ 선율을 연주했다. 힘차기보다는 자애롭고 부드러움이 강조됐다. 따사로운 봄볕이 객석 위에 내렸다. 이 부분의 스타일은 곡 전체의 해석을 예고하는 힌트였다. 거대하게 부푼 곡이 가속하는 부분에서 두다멜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왠지 조심스러운 접근이었다. 소리를 충분히 내지 않고 아끼는 느낌이었다. 클라이맥스 때 폭발한 뒤 축적된 듯한 에너지가 발산하며 활기를 띠었다. 격정을 절제한 대신 각 성부가 명확히 드러났다. 2악장에서 첼로와 베이스는 상쾌하게 저음을 길어냈다. 강약과 셈여림의 대비가 돋보이고 금관이 시원시원했다. 역동적이기보다는 고요함이 느껴지는 수렴의 양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마르틴 형제’의 선율을 단조로 연주하는 3악장 도입부의 더블베이스는 명확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현악군의 음색이 돋보였다. 역시 여기서도 흐름은 정적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긴 줄기 속에 세부를 덧대는 셈여림의 조절이 두다멜 해석의 기조였다. 절제를 통해 곡의 비경을 그려내려 했던 걸까. 그는 작정한 듯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지금까지를 만회하려는 듯, 아니 지금까지 참았다는 듯 두다멜과 LA 필은 4악장에서 가장 적극적인 접근을 선보였다. 낮은 소리로 이야기되는 세계에 확대경을 들이댄 듯한 부분이 보였다. 춤을 추는 듯 지휘봉을 우아하게 움직이는 두다멜의 모습에서 클라이버와 얀손스의 폼이 스치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호른 주자들이 기립해 눈부신 피날레를 시각적으로 더 확장시켰다. 2008년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와 말러 교향곡 1번, 2015년 LA 필과 말러 6번을 연주했을 때도 두다멜을 상징하는 표현은 ‘에너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절제와 수렴이 돋보였다. 그것은 중견 지휘자로 나아가고 있는 두다멜의 중후한 아이덴티티였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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