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다가오는 봄, 대학로 일대에는 10편의 연극이 꽃핀다. 제40회 서울연극제는 4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아르코예술극장·동양예술극장·SH아트홀 등 대학로 인근 주요 공연장을 채울 예정이다. 초연과 재연, 창작극과 번역극 등의 구분 없이 선정된 10편의 작품은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또한 지난 4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연습실·극장 로비·카페 등의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프린지: 제15회 성루창작공간연극축제’와 관객 참여형 희곡낭독체험인 ‘시민과 함께하는 희곡 읽기’ 등의 행사를 함께 진행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꾀한 제40회 서울연극제는 어떤 작품들로 채워질까?
연극, 질문을 던지다
몽씨어터의 ‘데모크라시’는 우리 민족의 과제인 통일과 이 시대의 과제인 민주주의에 주목한다. 정적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서독의 수상 빌리 브란트와 그의 보좌관으로 가장한 동독 간첩 귄터 기욤. 각자의 신념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두 남자와 이들을 둘러싸고 분열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주의의 복잡한 민낯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극단 바바서커스의 ‘댓글부대’는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인터넷 사이트에서 악의적인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던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사건을 그린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정치·경제·언론 등 각계각층의 욕망이 한데 뭉친 여론 조작의 풍경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의 허와 실을 더욱 깊이 들여다본다.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졌던 난투를 무대에서 시각화하여 충격의 잔상을 더욱 짙게 남길 것이다.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은 극단 사개탐사의 ‘어떤 접경지역에서는’도 기대를 모은다. 8개월 뒤 남북통일이 된다는 가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통일의 소식이 어떤 지역에는 분열을 조장하는 씨앗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렸다. 빈부격차와 접경지역 난개발, 대기업의 개입 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골 깊은 응어리는 덮어놓고 화목한 남북관계를 가장했던 것은 아닌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한다. 작품을 통해 ‘한층 가까이 다가온 통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회와 여성 사이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작품도 기다리고 있다. 극단 신세계의 창작극 ‘공주(孔主)들’은 국가와 사회, 가족과 타인을 위해 ‘나’를 지워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전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고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할 자리를 마련한다. 제목의 한자 뜻을 풀이하면 ‘구멍의 주인’들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구멍‘으로 표현된 세 개의 출입구 중 하나를 택해 극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통해 구멍 나야만 했던 자신의 일부를 돌아볼 수 있게 한 점이 흥미롭다. 영국 국립극장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연극 100편 가운데 한 작품으로 전 세계 무대에 꾸준히 올라왔던 마틴 셔먼 작 ‘벤트(BENT)’는 극단 ETS의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던 독일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파격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리며 인권·사랑·인간성의 회복을 염원한다.
연극, 위로를 건네다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관객을 위로하는 작품들은 이번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갖은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중국의 한 인력거꾼의 이야기를 다룬 라오서의 소설 ‘낙타상자’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연출로 선보일 이 작품은 부조리한 하층민의 삶을 비관하기만 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있다. 삶에서 추락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불행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고자 움직인다. 제8회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연출상·연기상 등을 휩쓸었던 고선웅이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포섭한 ‘집에 사는 몬스터’는 한 소녀의 불우한 현실을 극작가 겸 연출가인 데이비드 그레이그 특유의 따뜻한 유머로 그려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무대를 둘러싸는 4면 객석의 회전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무대로 시선을 던질 수 있는데, 이는 주인공인 소녀의 인생을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창작집단 LAS의 ‘대한민국 난투극’은 한국에서 일어난 실화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친구들에게 강해 보이고 싶어 돈을 주고 가상 난투극을 모의하려는 고등학생 민국과 단돈 5만원에 그 난투극에 동참하는 30대 청년 대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작품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아남아야만 하는 청년들의 현실이 녹아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무대연출로 기대감을 모으는 작품 ‘중첩’도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선택한 한 남자가, 총구를 떠난 총알이 뇌를 관통하기 직전의 짧은 시간동안 겪게 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풀어낸다.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허황되고 과장된 에피소드들은 현실과 비현실, 상징과 은유, 이미지와 판타지를 뒤섞어 놓은 듯 관객에게 흥미롭게 다가간다. 상상력을 무대 미학으로 구현해 연극의 매력도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 퓰리처상 수상작가 도널드 마굴리스 원작 ‘단편소설집’은 ‘상실과 자아 찾기’에 관한 오랜 탐구가 응집된 작품이다. 지금껏 수직적 관계로 여겨져 왔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새롭게 해석해 눈길을 끈다. 자신이 이뤄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스승과 기성세대를 넘어서 성공하기 위해 심적 고통을 감내하는 제자 사이의 팽팽하고도 섬세한 줄다리기를 그렸다. 스승과 제자 역할에는 각각 2017년 올해의 연극인상을 받은 전국향과 영화 ‘더 킹’으로 청룡영화상·대종상영화제·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김소진이 분한다. 글 박찬미 사진 서울연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