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통찰 10년 만의 내한, 동화 ‘피노키오’ 속 상상력이 무대 위로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현대무용가 야스민 바르디몽은 그동안 예리한 통찰력, 혁신적인 감각, 타 분야와의 융복합으로 무장한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이번에 내한하는 ‘피노키오’는 동화를 원작으로 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감각적인 작품이면서도 그 내면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민한 고찰까지 담아낸다는 점에서 야스민 바르디몽‘표(標)’ 무용극을 실제화하고 있다.
최근의 춤 경향으로서 컨템퍼러리 댄스
요즘 현대무용을 보면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창조적인 영감과 표현을 중요시하는 최근 예술의 흐름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발레가 시기에 따라 낭만발레, 고전발레, 현대발레로 나뉘듯 현대무용 역시 모던 댄스나 포스트모던 댄스 또는 컨템퍼러리 댄스로 구분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무용계의 주도적인 창작 경향이라고 한다면 컨템퍼러리 댄스를 들 수 있다. 말 그대로 동시대의 창작 춤을 지칭하는 컨템퍼러리 댄스는 198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컨템퍼러리 댄스가 빠르게 세계 무용계에서 주도적인 창작 경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독특하면서도 포용적인 예술적 특질이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여러 분야를 넘나들거나 아우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무용에다가 힙합·민속춤·아크로바틱·무예 같은 움직임을 섞거나 무용에다가 연극·영상·인형극·서커스 등 타 영역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컨템퍼러리 댄스가 널리 퍼져감에 따라, 서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유의미하고 혁신적인 작업을 펼치는 무용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무용가들은 두드러진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스라엘 무용가들의 강점이라 하면, 세계화의 조건인 보편성과 독자성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창작에 있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지정학적 위치가 크게 작용할 텐데 위로는 유럽, 옆으로는 아시아, 아래로는 아프리카라는 세 대륙과 인접해 있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흡수하는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세련된 안무 및 연출 기법, 아시아의 섬세하고 풍부한 춤 감성, 아프리카의 본능적인 몸짓과 리듬감이 이스라엘 무용가들의 창조적인 영감과 표현을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원천인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 주목할 만한 내한 공연 두 개가 모두 이스라엘 출신의 무용가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와 키부츠 컨템퍼러리 댄스컴퍼니의 ‘피난처’가 그것이다.
야스민 바르디몽이 세계에서 인정받기까지
1971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야스민 바르디몽(Jasmin Vardimon)은 불과 스물일곱이었던 1998년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무용단을 만들어 창작 활동을 본격화했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예리한 관찰, 날카로운 본능과 도발적인 대담함, 아름답고 섬세한 춤, 통찰력 있는 유머, 매력적인 드라마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그녀의 예술 세계는 영국 무용계와 공연예술계에서 찬사를 이끌어냈다. 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무용 전용 극장인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에서 2006년부터 10년 넘게 협력 예술가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야스민 바르디몽의 위상을 증명한다.
2014년에는 영국 예술위원회 특별상을 받는 영예까지 얻었다. 주요 레퍼토리로는 이번에 선보일 ‘피노키오’를 비롯해 ‘메두사’ ‘메이즈(Maze)’ ‘파크(Park)’ ‘프리덤(Freedom)’ ‘7734’ ‘예스터데이(Yesterday)’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초청으로 ‘예스터데이’를 선보였는데, 인간 신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강렬한 움직임, 인간 본연의 감성을 자극하는 휴머니티, 현대사회의 모순성을 꿰뚫는 유머로써 강렬한 인상을 준 바 있다.
10년 만에 내한하는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는 2016년 영국 켄트 인터내셔널 패밀리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을 당시 ‘독창적인 안무, 신체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상상력’(더 스테이지)이라든가 ‘심플하되 정교하고, 냉혹하면서도 마법 같은 작품’(더 타임스) 혹은 ‘새로운 차원으로 만들어낸 즐거움 가득한 무용극’(가디언) 같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움직임과 시청각 효과로 구현되는 동화적 상상력
‘피노키오’는 2016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래로 프랑스·스페인·노르웨이 등을 순회하면서 찬사를 받은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다. LG아트센터의 초청으로 오는 5월 18·19일 국내 초연되는 ‘피노키오’는 너무도 잘 알려진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에 근간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한 무용극이다. 사실, 야스민 바르디몽이 처음에 ‘피노키오’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전문가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인간관계나 사회 부조리를 예리하게 찌르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해오던 그녀였고, 유명하다 못해 보편적으로 읽히는 동화를 작품화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스민 바르디몽은 “어린 관객들에게도 적합한 작품을 창작해 보기로 했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모든 작품은 매번 새로운 방향과 접근이 있었다. ‘피노키오’ 역시 나의 새로운 모험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무용은 발레나 한국무용에 비해 난해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야스민 바르디몽은 현대무용이 예술적이면서도 충분히 대중적 수용력을 갖출 수 있음을 ‘피노키오’를 통해 확인시킨다. 동화를 원작으로 한 무용극 ‘피노키오’는 기발한 상상력을 담은 움직임에다가 마리오네트·아크로바틱·그림자놀이·마술을 융해하는가 하면 장치와 소품·조명·의상·음향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많은 요소를 총체적으로 망라하여 예술성과 대중적 수용력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특히 무대는 하나의 거대한 마리오네트 극장으로 변모하는데, 이는 드라마투르그이자 공동 세트디자이너인 가이 바 아모츠(Guy Bar Amotz)와의 협업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잘 훈련된 무용수들은 마리오네트처럼 줄에 연결되어 갑자기 공중에 솟구치기도 하고 떠 있기도 한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는 상황은 공중에 매달린 배 모양의 그네가 크게 흔들거리면서 그려진다. 피노키오가 거짓말할 때 길어지는 코는 검은 옷의 출연진이 손들을 한 줄로 쭉 연결함으로써 표현된다. 또한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 인형을 만드는 모습은 그림자로 처리된다. 이런 식으로 장면마다 다채로운 신체 움직임과 시청각 효과를 통해 구현되는 동화적 상상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피노키오’의 성과는 근래 들어 영국의 예술가들이 신체극·영상·애니메이션·인형극·그림자놀이·아크로바틱·마술 등 여러 방면에서 창조성을 분출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과 역량을 갖춘 예술가들이 풍부한 인적 자산을 이루면서 영국의 공연예술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공연예술계가 영국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용에 끌어들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이렇듯 ‘피노키오’는 독창적인 미장센을 통해 시청각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야스민 바르디몽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잘 알려진 동화에 대한 매체적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민한 고찰까지 담아낸 것이다.
사실, 카를로 콜로디가 1883년에 발표한 ‘피노키오의 모험’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교육적인 소설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단지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그치지는 않는다. 19세기 후반에 소작농들의 자녀가 교육을 받게 됨으로써, 당나귀처럼 단순 노동력으로 치부된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소년과 참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야스민 바르디몽은 이러한 함축적인 내용을 캐치하여 자신의 무용극에 심어놓았다. 피노키오가 나무로 만든 마리오네트에서 당나귀로 변할 위기를 거쳐 마침내 소년으로서 생명력을 얻는 과정에서, 그녀 특유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역력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는 지극히 컨템퍼러리 댄스적이다. 무용예술에다가 다양한 분야를 끌어들여 통섭을 꾀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작품을 통해 하나의 분명한 답을 주기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갈래로 사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에서 어떤 이는 빛나는 독창성으로 무장한 감각적인 미장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이는 그 속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 lg아트센터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 ‘피노키오’ 5월 18·19일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