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액트리스 원 : 국민로봇배우 1호’ & ‘철가방 추적작전’

파워 오프 디스토피아 혹은 검은 짜장면 연극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5월 1일 9:00 오전

REVIEW

‘액트리스 원 : 국민로봇배우 1호’(이하 ‘액트리스 원’)가 공연되는 극장은 신촌극장이다. 신촌극장은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 앞 철길과 나란히 뻗어있는 하숙촌 골목길에 위치해 있다. 객석수 총 20석의 작은 극장이다. 하숙촌 옥탑방을 극장으로 개조했다. 공연은 2029년 연극이 소멸해가는 시기에 나타난 연기하는 로봇, 액트리스 원(Actress-1)의 이야기다. 대학로에서 멀리 벗어난 공간에서 올라가는 한국연극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다. 디스토피아는 미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동네에 임대아파트를 경계로 담을 쌓고 길을 막는 곳도 있다.

‘철가방 추적작전’은 학교 가방 대신 중국집 철가방을 드는 학생들을 찾아 나선 교사 봉순자의 이야기다. ‘액트리스 원’은 정진새 작ㆍ연출 공연이고, ‘철가방 추적작전’은 김윤영 소설원작을 박찬규 극작가가 각색하고 신명민 연출가가 함께 하는 공연이다. 젊은 연극인들이 바라보는 지금 현재, 10년 후 우리 현실은 디스토피아이다.

‘액트리스 원 : 국민로봇배우 1호’, 한국연극의 ‘파워 온’ 혹은 ‘파워 오프’

‘액트리스 원 : 국민로봇배우 1호’ ©원멜리에

‘액트리스 원’은 성수연 배우의 일인극이다. 2029년,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정부의 지원 중단과 업계의 저질 경쟁, 태생적으로 가난한 장르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연극은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수많은 극단들이 사라졌고, 대학로는 관광지로 변했고, 국립극단 폐지가 심각하게 검토되고 있다. 우연히 오디션 장에서 액트리스 원을 보게 된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로봇배우가 한국연극을 부활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직감했다.

액트리스 원은 배우 성수연의 간병로봇이었다. 배우 성수연 선생은 “20세기 여자배우로 시작하여 21세기 국민배우”로 살다간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그녀가 은퇴하기 전까지 한국연극은 살아있었다. 배우 성수연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간병로봇에게 자신이 연기했던 인물들을 보여주고 학습시켰다. 간단한 모방과 학습 기능만 탑재되었던 간병로봇은, 반복되는 모방과 학습을 통해 원본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연기하는 로봇, 액트리스 원의 탄생기이다.

극중 ‘배우 성수연 선생’은 이 공연에 등장하고 있는 성수연 배우 자신이다. 그리고 액트리스 원, 국립극단 예술감독, 액트리스 원이 연기하는 극중극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리어왕’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그리고 ‘로봇’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명명한 카렐 차페크의 SF희곡 ‘로봇 R.U.R’ 등을 일인다역으로 연기한다. 액트리스 원은 비록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로봇이기 때문에 성별 정체성과 상관없이 리어왕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움직임이 제한된 로봇이기에 화술연기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배우 성수연’에 대한 성수연 배우 자신에 의한 의도적으로 과장된 패러디 연기, 기계적인 연기의 대명사인 일명 ‘로봇연기’, 연출가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연기를 통해 오히려 연출가들의 오류를 교정하게 되었다는 상황 등 로봇배우의 출현 이후 예상되는 여러 상황들을 재치 있게 패러디하고 있다.

공연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해설자의 설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성수연 배우는 장면전환 때마다 한쪽 눈을 깜박이는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로봇의 내면(?)을 표현하는 신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보다 연기를 잘하는 로봇으로 인간 배우에게 질시와 혐오를 받는 장면 또한 표정 없는 눈 깜박임을 통해 비애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극중 커튼콜 장면에서 로봇청소기 위에 얹혀진 채 전달된 꽃다발 장면은, 로봇배우와 로봇청소기가 결국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묘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로봇배우와 로봇청소기와 블루투스 스피커, 무대 위에 이미 인간은 없다. 폐기된 후 더 이상 원상 복구되지 않은 액트리스 원의 묘비명은 ‘햄릿’의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Power on or power off, that is the question.” 대학로에서 멀리 떨어진 옥탑방 작은 무대 위에서 한국연극의 디스토피아를 씁쓸한 웃음 속에서 지켜보게 한다.

 

‘철가방 추적작전’, 철가방과 검은 짜장면

‘철가방 추적작전’

‘철가방 추적작전’은 “강남의 외딴섬, 또는 강남의 음지로 불리는 수서의 임대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산인문극장 2019 ‘아파트’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올라가고 있다. 공연은 수서의 임대아파트와 민간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가 배경이다. 중학교 3학년 교사 봉순자는 무단결석 2일째인 정훈이를 찾아 교내 공공근로, 인근 아파트 단지 불법주차단속 할머니 등 정보원을 동원해 정훈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봉 선생은 인근 지역 중국집들이 학교 아이들을 철가방으로 주로 충원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졸업생 철구를 탐문 조사한다. 철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하고 철가방을 들고 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자퇴나 퇴학이 불가능하고, 당장 돈이 필요한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자퇴하고 최저시급 언저리의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봉 선생은 “기승전-대학”을 외치는 기성세대이지만, 철구는 중졸이나 중퇴나 밖에 나오면 다 마찬가지니 “너무 걱정 말라”고 어른스럽게 장담한다.

공연은 봉 선생이 정훈이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수서와 답십리 등 서울 곳곳의 영구임대아파트, 시영아파트, 뉴타운을 갈라놓고 길을 막아놓은 담장들을 마주치게 한다. 간신히 찾아낸 정훈의 집 앞에는 부서진 이젤과 그림들이 놓여 있다. 우연히 마주친 정훈 아버지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기도드리기만을 청할 뿐이고, “기승전-대학”을 외쳤던 봉 선생은 기도 속에서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한다.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정훈의 그림에 대한 꿈은 계속 좌절된다. 정훈이 알바를 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벽화는 누군가에 의해 “꺼져버려”라는 낙서와 함께 짓뭉개진다. 벽화를 훼손한 사람은 벽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뉴타운 아이였다. 작품의 결말은 정훈의 무단결석 2달째, 철가방을 든 정훈을 찾아온 봉 선생이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다 먹는 장면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 무력한 기도와 대비되는 검은 짜장면 장면이 압권이었다. 신명민 연출가의 정확하게 박자를 지켜나가는 속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무거운 이야기 가운데 숨구멍을 벌려주면서 웃음 속에서 공연을 바라보게 하는 강지은의 희극적 연기의 힘이 돋보였다. 희극은 지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준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두산아트센터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