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 배우 장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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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8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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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지후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대학로에 뿌리내린 나무들을 한 그루씩 바라봤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인지 아무런 욕심 없이 바람에 몸을 내맡긴 나무가 멋지게 느껴졌다. 맘껏 녹음을 내뿜고 있는 그들이 싱그럽기도 했다. 장지후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노트르담 드 파리’ ‘호프’ ‘킹아더’ 등 몇 년 사이 굵직한 작품에서 시원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유쾌했지만, 많은 것을 돌이켜보게 했다.

얼마 전 ‘킹아더’를 끝냈다. 주군으로 모시는 아더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랜슬롯 역할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처음 대본을 보고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모든 캐릭터가 관객의 공감을 산다면 극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랜슬롯은 아마 연인인 귀네비어의 품에서 죽을 때가 돼서야 관객의 이해를 사지 않았을까 싶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집시들의 우두머리인 클로팽 역할도 인상 깊었다.

그동안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맡아왔던 역할이라 많이 부담됐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당당함이 몸에 배도록 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린 티가 나지 않을까를 고민하진 않았다. 나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집시의 우두머리인 점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선배들이 해석한 클로팽은 에스메랄다를 딸처럼 대했다면, 내가 분석한 클로팽은 그녀와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암컷의 아기 늑대

를 그보다 조금 더 큰 수컷 늑대가 감싸고서 으르렁대는 모습이다. 꼬마 늑대는 사실 무섭지 않다. 이 모습 그대로 자라서 어른이 된 모습을 무대에서 표현하려 했다.

 

‘호프’에서는 원고 K를 연기했다. 의인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많이 헤맸다. 혼자서 연습을 하는 중, 힘든 마음에 대본을 소파로 툭 던졌다. 그 순간 이 종이가 미워 보였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종이를 대체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며 캐릭터를 잡고 있으려고만 했는데, 종이는 그냥 종이였다. 자신의 상황을 종이에 의인화시켜 바라볼 수밖에 없던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종이로서의 색깔을 빼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투영된 K를 연기하려고 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극 ‘에브리바디 원츠 힘 데드’(7월 9일~9월 29일, 드림아트센터 1관)에 도전한다. 장점인 가창력을 버리고 연기로만 무대에 서야 하는데.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동안 뮤지컬을 해오면서 좀 더 작은 단위의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을 짙은 색깔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극 중 등장인물 4인은 모두 악역이다. 본인은 선과 악 어느 쪽에 더 가깝나? 악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무단횡단도 하고 불법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기도 하고.(웃음) 나약한 인간이다 보니 여러 유혹을 선한 자들처럼 뿌리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선한 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누구나 다 욕심이 있지 않나.

최근 욕심을 부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 답을 계속 찾아 나가고 있다. 좋은 연기란 사람의 본체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접근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나은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인간의 형태로 롤 모델을 찾아본 적은 없다.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 나무들은 미련도 욕심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거다.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치열하게 살기 싫더라. 노력은 누구나 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좋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이후는 너무 씁쓸할 것 같다. 아직 살날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웃음) 좀 더 건강한 것들로 만들어진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이 연기하는 인물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장지후만의 색깔을 갖는다면 대단히 유명하지 않아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장지후가 선택한 작품

뮤지컬 ‘애비뉴Q’. 브로드웨이의 악동으로 불리는 로버트 로페즈와 제프 막스 콤비가 제작했다. 퍼펫을 이용한 인형극이나, 19세 관람가다. 인종차별이나 거주 문제와 같은 보다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고 깜찍하게 풀어낸 블랙 코미디극.

글 권하영 기자 사진 알앤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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