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8월 10·1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SF작가 듀나의 논리에 따르면, 갈라는 포르노와 유사하다. “독자가 추구하는 욕망이나 쾌락이 너무 쉽게 제공”되고 “엑기스들만 따로 떼어내 져서 감상” 된다는 점 때문이다. 맥락 없이 나열함을 지적하는 말이건만, 발레 갈라에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절정에 이른 순간-화려한 결혼식이든, 오붓한 침실이든-을 나열하니까 실제로 수위가 높아지기 쉽다.
갈라는 또한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처음 간 맥줏집에서 샘플러를 주문하듯, 갈라를 통해 발레라는 세계를 요모조모 맛볼 수 있다. 포르노와 입문서의 속성을 모두 가졌으니, 갈라는 본디 모순적이다. 8월 10·11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르 프리미에 갈라’는 갈라의 모순과 매력을 한데 드러냈다.
‘르 프리미에 갈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가 예술감독으로 꾸린 신생 갈라다. 다섯 커플이 두 작품씩 출연하고, 예술감독이 출연하는 작품 하나가 중간에 삽입되었다. ‘샘플러’치곤 단출하지만 파리 오페라 발레의 에투알을 포함하여 출연진이 단단했다. 특히 공연 1주일 전까지 세 명이 교체되는 난항을 겪었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갈채 받을 만하다.
오드릭 베자르·아망딘 알비숑(파리 오페라 발레)은 지극히 프랑스적인 ‘프루스트’와 ‘르 파르크’로 관객을 홀렸다. 단단한 기본기와 신뢰 쌓인 파트너링을 바탕으로 온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내맡기는 남녀를 숨죽이고 엿보았다.
타티아나 멜닉(헝가리 국립발레)·브루클린 맥(ABT 객원무용수)의 ‘탈리스만’은 정교한 여성 무용수와 역동적인 남성 무용수가 만날 때의 시너지를 폭발했다. 맥이 강한 모멘텀으로 회전시킬 때 휘말리지 않고 중심축을 단단히 내리꽂는 멜닉, 탱탱볼처럼 자기 머리 높이까지 튕겨 오르는 맥을 보는 쾌감이 짜릿했다.
이상은·크리스티안 바우흐(드레스덴 발레)은 안정된 파트너십으로 세련된 컨템퍼러리 발레를 보여줬다. 포사이스의 ‘뉴 스위트’와 에르난데스의 ‘오라켈’이라는 개성이 강한 레퍼토리를 서늘하고 여유롭게 춤춘 이들은, 발레가 동화적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감수성을 담은 어른의 예술로 진화했음을 설득시켰다.
최영규(네덜란드 국립발레)와 박세은(파리 오페라 발레)은 공연 열흘 전 급조된 커플임에도 내공을 드러냈다. 동작이 끝나도 호흡을 툭 떨어뜨리지 않는 박세은의 춤은 여전히 지적이지만 다소 힘에 부쳤다. 이유림(헝가리 국립발레)·윤별(체코 부르노 국립발레)은 성실한 훈련으로 다져진 패기가 드러냈지만 파트너링이 미흡하고 동작의 선이 단조로웠다.
무대에선 콩쿠르 단골 레퍼토리와 심각하고 관능적인 컨템퍼러리 발레가 뒤섞이고, 객석에선 발레머리를 틀어 올린 어린이와 마니아 관객이 뒤섞였다. 이것이 갈라의 모순이자 매력이건만, 안타까웠다. 주최 측은 작품 사이사이에 해설 내레이션을 삽입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출연진이 피날레를 추는 등 관객 친화적으로 접근했지만, 정작 이 갈라의 강점은 발레에 있어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보여줬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작품과 발레단의 색깔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로 가득한데, 충분히 부각되지 않으니 음미하기 어려웠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트러플 요리를 먹는 안타까움 말이다. 최근 발레 갈라가 번성하는 만큼 고민해 볼 문제다.
글 정옥희(무용 칼럼니스트·성균관대 무용학과 초빙교수) 사진 쿠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