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우리 것이 새로움을 입을 때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9월 2일 9:23 오전

REVIEW

 

6월 18일~8월 25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는 발칙한 상상이 가득하다. 배경은 조선 시대지만 음악적 특성은 힙합이나 랩,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스타일로 구성돼 있다. 춤사위도 마찬가지다. 흔들흔들 노래하고 덩실덩실 어깨춤 추지만, 그 사이사이 엮여있는 몸놀림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흥겹고 박진감 넘치는 그 모양새다. 덕분에 무대는 과거와 현재의 뒤섞임이 별스러운 즐거움으로 완성된다. 마치 요즘 자주 시도되는 실험들,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주인공이 셜록 홈스처럼 의문의 사건을 조사하는 영화 ‘조선 명탐정’ 시리즈라든지, 왕권을 둘러싼 계략과 음모를 서양 매체에서 인기를 누리는 좀비 이야기와 뒤섞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처럼, 뮤지컬 무대가 시공을 초월하며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혹은 오히려 그들을 겨냥한 이색 시대극이라는 묘한 정체성을 지니게 했다.

기성세대가 즐기는 사극 소재이면서도 고루하지 않은 템포와 재미를 적절히 담아낸다. 남몰래 모여 시조를 즐기는 저잣거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클럽처럼 그려지고, 혼잣말로 시조를 읊는 주인공 단의 모습은 힙합 싱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TV 역사 드라마에서 흔한 임금과 사대 가문들의 대립과 암투는 코미디 같은 설정과 전개로 오히려 관객의 흥을 돋운다.

극적 재미는 여러 장치와 배려로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흥이나 끼, 허세를 표현하는 ‘스웨그’는 ‘수애구(壽愛口)’로 바뀌어 목숨 걸고 시조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조선시조자랑대회의 사회자는 ‘국민 MC’ 대신 ‘국민 엄씨’ 남성이 마이크 아닌 조롱박을 들고 진행한다. 힙합이나 랩이 나올 때 청중들이 외치는 후렴구도 “오예오”라는 소리로 등장한다. 피식거리며 웃다가 “오호라!”하며 무릎 치게 만드는 반전과 배려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파격적인 작품의 성격만큼이나 무대를 꾸미는 배우들의 면면도 신선하다. 주인공 단으로 등장하는 이휘종·양희준과 아이돌 출신인 준은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같은 매력을 보여준다. 반면, 사대부 홍국 역의 최민철이나 십주/자모 역의 이경수는 중견 뮤지컬 배우 특유의 안정적인 무대로 균형감을 더한다. 무엇보다 홍국의 딸 진 역으로 등장하는 김수하와의 만남은 즐겁다. 영미권에서 ‘미스 사이공’의 히로인이었던 그녀의 성량을 소극장 무대에서 즐기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호사로운 체험이다.

제작은 홍광호·윤공주·김선영 등이 소속된 PL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조승우의 전 소속사 대표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송혜선 대표가 프로듀서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작품의 파격과 실험에 일조하고 있는 인상이다. 소극장 무대에 스타급 배우를 세우기 힘든 요즘 공연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에 이토록 안정적인 배우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도 PL이라 가능한 이 작품의 강점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비교적 젊은 제작진 역시 이 작품이 지닌 도전적인 이미지에 잘 반영돼 있다.

관객들과 함께 “오예오”를 외치는 모습은 특히 신명 난다. 기념품 부채를 판다면 펼치고 흔들며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우리 가락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충격적인 파격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젊은 감각이 버무려진 전통에 큰 웃음과 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소극장 무대를 통한 새로운 실험이라는 점은 박수받을 일이다. 벌써 앙코르 무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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