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진솔·최수열·지중배

젊은 지휘자들의 여름이 선사한 한 여름밤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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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9월 2일 9:12 오전

REVIEW

 

“나이 60이 되어야 지휘를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휘자 정명훈의 말이다. 아직 60세가 안 된 지휘자들을 모두 ‘젊은 지휘자’로 보기는 곤란하겠지만 진솔(32), 최수열(40), 지중배(37)라면 우리 시대의 ‘젊은 지휘자’로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계의 비수기인 8월에 이 세 지휘자가 각각 포디움에 올랐다. 열정적이었던 이들의 무대로 안내한다.

 

진솔/말러리안 오케스트라

8월 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진솔/말러리안 오케스트라

말러리안은 2016년 발족한 민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오디션으로 선발하며 클래식 음악 전문 연주단체 아르티제가 운영한다. 이름대로 말러 교향곡을 연주해 왔다. 10번 1악장, 5번, 1번에 이어 이날 교향곡 6번은 네 번째 무대였다.

1악장 출발은 좋았다. 트럼펫이 제 소리를 냈다. 현과 금관 사이에 보폭이 달라 거리가 느껴졌다. 제2주제는 불안했으나 안정을 찾았다. 진솔은 큰 동작으로 지휘했다. 갈수록 힘이 붙고 총주의 음량이 커졌다. 소방울 소리 뒤엔 일사불란함이 보였다. 곡상이 점차 묵직하고 뭉근해졌다. 가끔씩 카오스 상태가 되더니 마무리는 근사했다.

진솔은 교향곡 6번의 2악장으로 스케르초와 안단테 중 안단테를 골랐다. 현악이 아름답게 결을 이뤘다. 플루트를 비롯한 목관들이 불안하다가 저역이 감싸는 듯한 총주 이후 안정을 되찾았다. 하모닉스로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오보에, 플루트가 이어지는 부분은 빼어났다. 이어 산더미같은 고뇌가 오케스트라 속에서 쏟아지는 듯했다. 뭉클하면서도 극적으로 거대해졌다. 마치막 피치카토도 산뜻했다.

3악장 스케르초는 격렬하게 질주하는 부분에서 손발이 안 맞았다. 좀더 끈적하게 달라붙는 앙상블이 요구됐다. 진솔은 변덕스럽고 복잡한 부분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금관악기군의 기량은 나무랄 데 없었다. 타이밍과 박자감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빼어난 연주가 가능할 뻔했다. 트롬본과 튜바가 우르릉댔고 클라리넷의 클레츠머풍 연주가 구성졌다.

조율 후 4악장에 들어갈 때 진솔의 단발머리가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관악기가 코랄같은 분위기를 연주했고 총주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뚜렷한 표현이 돋보이다가 박자를 놓치기도 했다. 금관은 시원시원했다.

해머를 내리치고 울부짖는 오케스트라는 카오스에 빠졌다. 조종이 울리는 듯하다가 평화로운 세계가 도래했다. 뜨거워지고 커지고 빨라졌다. 때로는 황량하고 이따금 비옥한 상처 입은 세계는 비정하게 다가왔다. 하프와 바이올린이 아름답게 울렸다. 진솔이 넘기던 총보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였다. 불길한 최후의 일격으로 곡을 마쳤다. 전쟁 같은 연주 뒤 지휘자 진솔의 개성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다음 무대에서는 그녀의 타협하지 않는 독단과 편견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수열/부산시향(협연 조진주)

8월 13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최수열/부산시향

최수열이 지휘하는 부산시향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림스키 코르사코프 ‘셰헤라자데’ 단 두 곡만을 연주했다. 빨간바지와 셔츠에 흰색 재킷을 걸친 파격적인 의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두 색의 대비만큼이나 선명한 연주를 펼쳤다. 어려운 부분을 쉬워보이게 하는 게 가장 어렵다 했던가. 비르투오시티가 두드러진 이 곡에서 조진주의 연주는 쉬워보였다. 격렬하게 끝을 맺었음에도 1악장 뒤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2악장에서 조진주의 섬세한 고음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볼륨이 너무 컸다. 중간 이후 피아니시모로 고요하게 가져가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현의 밀도와 장력을 높이며 고조된 긴장을 표현했다. 3악장은 절도 있는 연주였다. 피치카토도 강렬했다. 홀의 특성 때문인지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들렸다. 날렵하면서도 에지(edge) 있는 바이올린의 쾌연이었다. 반면 반주를 맡은 부산시향은 상대적으로 둔중해보였다. 마지막 부분의 쾌속 질주는 꿉꿉한 열대야를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2부 림스키 코르사코프 ‘셰헤라자데’ 1곡 ‘바다와 신밧드의 배’에서 악장의 바이올린과 하프가 주고받는 부분이 좋았다. 현악군도 청신했지만 목관이 받아 연주할 때는 약간씩 온도차가 났다. 총주에서 현과 관이 따로 놀았다. 템포도 목관이 이어받을 때 급해졌다.

2곡 ‘칼렌데르 왕자의 이야기’ 도입부에서 금관악기가 밭은소리를 냈지만, 매끄럽게 진행된 편이었다. 여기서는 목관이 적극적이었고, 피날레에서 일사불란한 앙상블이 돋보였다.

3곡 ‘젊은 왕자와 공주’는 아홉 대의 더블베이스가 만들어내는 저역을 중심으로 짙게 우러난 앙상블이 일품이었다. 플루트의 활약이 발군이었고 끝부분은 액센트를 두어 아기자기하게 표현했다. 강렬하게 휘몰아친 금관을 현악군이 벨벳처럼 덮었다.

4곡 ‘바그다드의 축제-바다’에서 악장의 더블스톱 연주가 훌륭했다. 박력과 다이내믹이 네 곡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박진감 넘쳤고 긴장이 최고조였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를 때는 대양의 범선이 떠올랐다. 서울시향 부지휘자 시절 연주로 익숙한 최수열의 모습에 자연스러움이 더해졌다. 관록을 쌓아가는 지휘자와 함께 변해갈 부산시향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지중배/코리아쿱오케스트라

8월 15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중배/ 코리아쿱오케스트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온 청중들로 콘서트홀 로비는 북적였다. 기업의 이름을 내걸고 클래식 음악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성에 찍힌 방점이 보인 음악회였다. 앞선 두 공연에 비해 교육/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방송인 한석준의 해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지식의 전달자로서가 아니라 청중들과 같은 눈높이로 클래식 음악을 보고 있다는 솔직함으로 파고들었다.

지중배는 유럽에서 오페라와 콘서트를 이끌었고, 코리아쿱오케스트라 역시 매년 90회 정도의 공연을 하는 풍부한 경험이 장점이었다. 오케스트라 자체의 기량 면에서도 코리아쿱이 셋 중에 으뜸이었다.

1부는 오페라 ‘마술피리’ 하이라이트였다. ‘마술피리 서곡’은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지중배의 맨손 지휘는 다이내믹했다. 바리톤 김종표가 나와 파파게노의 아리아 ‘나는 새잡이’를 노래했다. 무겁지 않은 가벼운 해석이었다. 테너 김승직은 타미노의 아리아 ‘이 초상화는 너무나 아름다워’를 노래했다. 풍부한 미성이 호소력 있었다. 김종표의 파파게노와 함께 소프라노 윤상아가 파미나로 분해 부른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에게는’은 상큼한 고음이 돋보였다. 소프라노 이지영의 ‘밤의 여왕 아리아’는 안개에 싸인 듯한 목소리였지만 충실하게 소화해냈다. 김종표는 ‘소녀나 귀여운 아내를’에 이어 이번에는 파파게나로 분한 윤상아와 ‘파 파 파’를 노래했다. 귀엽고 익살맞은 장면에 청중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2부는 광복절에 걸맞게 조국을 사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다. 시벨리우스 ‘카렐리아 모음곡’은 장엄한 간주곡, 노래하는 듯한 발라드, 발걸음 가벼운 행진곡의 특징을 잘 살렸다. 베르디 ‘나부코 서곡’은 오페라 지휘자다운 박력을 잘 살렸고 시벨리우스 ‘핀란디아’는 금관의 어두운 블렌딩과 저역현의 연주가 돋보였다. 지중배는 작은 체구에도 드라마틱하고 스케일 큰 음악을 만들어냈다. 앞서 언급했듯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강조된 연주회임을 감안하더라도 전곡을 암보로 극적인 굽이를 살려 지휘한 지중배가 눈에 띄었다. 앞으로 활약을 기대해본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아르티제·부산시향·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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