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에 북받친 목소리로)
차디찬 그대의 작은 손,
내가 녹여줄게요.
찾아본들 뭐하겠소? 어두워서 별 수 없소.
다행히 오늘밤엔 달이 밝게,
가까이서 우리를 비추고 있소.
잠깐만요, 아가씨.
간단하게 말하리다.
내가 누군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들어주겠소?
(미미는 말없이 있다. 로돌포는 미미의 손을 놓는다. 미미는 뒷걸음치다 의자가 있다는 걸 알고 기뻐하며 쓰러지듯 의자에 몸을 던진다.)
내가 누구냐고요?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시인이오.
무얼 하냐고요? 시를 쓰지요.
어떻게 사냐고요? 그냥 살아요.
나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귀족처럼 행복하게
사랑의 시와 찬가를 맘껏 쓰며 살아간다오.
꿈과 환상,
그리고 근사한 상상의 성을 가진
마음만은 백만장자라오.
이따금 내 금고는
보석들을 몽땅 도둑맞는다오.
그걸 훔친 두 도둑은 바로 아름다운 두 눈이죠.
당신이 온 순간 그 도둑들도 들어왔소.
내가 늘 품고 있던 꿈들,
내 아름다운 꿈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오.
그 꿈들을 잃었다 해도 상관없어요.
그곳엔 달콤한 희망이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나에 대해 알았으니
당신이 말할 차례예요. 당신은 누군가요?
말해주겠소?
푸치니 ‘라 보엠’ 중 ‘그대의 찬 손’
젊은이, 그중에서도 예술 하는 젊은이들의 역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푸치니 ‘라 보엠’(1896)의 보엠(Bohème)은 보헤미안을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으로, 사회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예술가를 뜻한다. 다만, ‘라 보엠’에 등장하는 보헤미안들은 말이 예술가이지 아직 사회에서 인정이나 환대를 받지는 못하는 아마추어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특별한 영웅도, 악역도 아닌 평범한 청년들의 사랑과 예술혼을 가로막는 것은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일 뿐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예술가’ 혹은 ‘고통받는 예술가’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 속 이야기는 오페라를 넘어 뮤지컬 ‘렌트’와 영화 ‘물랑루즈’에 이르기까지 현대 대중문화의 여타 장르로 확장됐다.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울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슬픔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사는’ 시인 로돌포가 사랑에 빠진 여성 미미의 차가운 손을 녹여주겠다며 부르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에서는 청춘들의 치기 어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사랑과 시에서만큼은 낭비벽을 과시하는 로돌포의 도도한 풍채가 느껴진다. 이들이 불과 몇 시간 전 처음 만난 사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청춘이 지닌 사랑의 온도는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첫 스킨십에 긴장한 듯 좀처럼 운을 떼지 못하는 느낌으로 A♭을 반복하며 시작하는 이 곡의 도입부는 전형적인 아리아의 방식은 아니다. 레치타티보처럼 시작하여 이내 큰 음폭의 진동을 통해 테너의 목소리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푸치니는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에서도 이러한 구성을 다시 활용했다. 높은음으로 한껏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 로돌포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하며 조용히 아리아를 마무리한다. 현악의 약음 속에 플루트·클라리넷·하프가 주인공의 들뜬 기분을 묘사하듯 천상으로 올라가는 악구를 연주하며 종결된다. 관습적으로 강하게 종결하는 영웅적 아리아의 진부함을 현명하게 피했다.
글 권하영 기자
*풍월당 오페라 총서 ‘라 보엠’(201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