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홍진호

섞일수록 짙어지는 선율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9일 11:27 오후

INTERVIEW

혹시나 방황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건 기우였다.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과 균형감각으로 줄타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위태롭기보다는, 신이 나 보였다

 

무엇이 그토록 ‘그것’을 힘들게 만들까에 대한 고민을 해 온 지 여러 달. ‘그것’이라 함은 클래식 음악 분야 역시 경계를 허물고 다른 장르와 함께 호흡하는 것. 이것이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 찬성했으나, 알 수 없는 벽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에 먹먹했다. 첼리스트 홍진호를 만나고서 어느 정도의 답답함이 해소됐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점차 경계를 허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확신과, 보다 높은 연령층의 사람들도 이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의외성을 깨달으며, 그가 참여하고 있는 밴드명 호피폴라(Hoppipolla)가 떠올랐다. ‘물웅덩이에 뛰어들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섞여드는 물웅덩이들처럼, 음악 역시 장르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한 명 두 명, ‘객석’ 지면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꽤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밴드의 첼리스트로 녹아들기까지

홍진호는 지난 4월부터 방영한 JTBC ‘슈퍼밴드’에서 밴드 호피폴라로 우승을 차지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밴드’를 만들겠다는 취지처럼 드럼과 베이스 대신,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가 포함된 밴드가 탄생했다. 그가 ‘슈퍼밴드’에 참여하게 된 건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슈퍼밴드’의 참가요건에서 ‘클래식 연주자’를 발견했고, 어쩌면 자신에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1·2라운드에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런데 우승을 했다. 직후에는 흥분한 상태였지만, 점차 클래식 음악을 더는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겁도 났다.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와 밴드 일원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하게 된 데는 우승 이후 개최했던 리사이틀의 영향이 컸다.”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첼로 리사이틀의 표는 매진됐다. 홍진호는 걱정이 앞섰다. 많은 관객이 ‘슈퍼밴드’ 안에서 보여줬던 무대를 기대하고 올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리사이틀의 레퍼토리는 정통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였다. 놀랍게도 많은 관객이 음악을 경청했다. “팬분들이 써주셨던 편지 중에 ‘슈퍼밴드에서의 홍진호 씨도 멋있지만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서의 첼리스트 홍진호 씨도 계속 보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말을 듣고서 중심을 잡게 됐다. 고르게 균형을 잡아가며 활동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지난 11월 3일 첼로 리사이틀에서는 브람스 전곡이라는 용기를 내봤다. 다행히 이번에도 반응이 괜찮았다.(웃음)”

호피폴라는 11월 중순 ‘어바웃 타임’이라는 첫 신보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신곡 역시 첼로 독주가 포함돼 있으나, ‘슈퍼밴드’에서 보여줬던 음악보다는 밴드적인 색채가 강하게 묻어있다. 향후 밴드적인 성향이 더욱 짙어진다면 홍진호 또한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해 온 호피폴라의 색깔이 유지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밴드 내 첼리스트로서 독립된 악기의 색채는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란 점이다. 클래식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처음에는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멤버들과 곡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내 소리를 발전시켜야지 팀에게도 좋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결국 어느 활동에 방점을 찍게 될 거냐는 질문에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첼리스트니까 클래식 음악을 하지 않을까 라고는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왜냐면 두 가지 일이 모두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로부터 배우는 점 또한 많다. 이전에는 작곡가들이 써놓은 곡에 내 해석을 덧붙여 연주하는 것 자체가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용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해 보니, 일단 이 친구들은 악보가 없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도 강점을 띤다. 나 또한 이번 브람스 전곡 리사이틀에서 판타지를 구현하는 것을 적극 활용했다. ‘사랑이 없으면 음악은 공허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브람스였기에 전체적인 테마를 ‘사랑’으로 가져갔다. 앙코르곡으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려줬더니 관객이 내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돌아가시더라. 두 가지 활동을 병행하는 데서 오는 시너지 효과를 현명하게 활용해나가고 싶다.”

 

색다른 첼리스트로 서기까지

‘슈퍼밴드’에는 홍진호 외에도 여러 명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출연했다. 국내에서도 방송과 유튜브 채널의 활약에 힘입어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이는 클래식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진호는 오늘날 국내 음악계가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 음악뿐 아니라 미술이나 인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내용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종합예술이 부상하고 있다. 충성심 있는 팬층을 가진 동시에 수요가 한정된 클래식 음악에도 융합의 흐름이 적용되는 것 같다. 점차 대중은 만능인을 원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젊은 음악가들이 크로스오버 음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대중에게 적극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클래식 음악가가 대중음악의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홍진호의 부모님 역시 처음 ‘슈퍼밴드’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격하게 반대했다. 놀라웠던 것은 ‘슈퍼밴드’의 고차 라운드에 진출하면 할수록 주변 교수님들께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는 점이었다.

“너무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방법을 몰랐던 거라고도 말씀하시더라. ‘슈퍼밴드’ 도전 이전에도 기존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한 적이 한 번 있다. 초대권 문화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기에 귀국 독주회를 제외하고 그 이후 리사이틀에서부터는 100% 구매 티켓으로 연주회를 개최했다. 젊음의 패기라고 좋지 않게 보실 수도 있는데, 다행히 많은 분께서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사실 ‘슈퍼밴드’에 왜 나왔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어서 클래식 연주자로서 살아남으려는 계획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첼로 소리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고, 좀 더 거창하게는 내 소리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였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다.”

홍진호는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느낀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사전 정보를 알고서 예술작품을 관람했을 때,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당대 예술가들이 ‘내 작품을 관람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을까, 돌이켜보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다. 그저 음악을 듣고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감동을 원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그저 마음을 열고 그의 첼로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그의 음악 장르가 클래식 음악이건, 크로스오버 음악이건, 밴드 음악이건, 결국 진심을 울리는 감동은 필연 존재할 테니 말이다.

 

권하영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 79)

 

슈퍼밴드 첼리스트 홍진호·피아니스트 이나우

‘엔니오 모리꼬네를 위하여’

12월 14일 오후 3·8시 롯데콘서트홀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영화 ‘시네마 천국’ 중 ‘토토와 알프레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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