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2019 서울형 장애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현장 취재

과정은 켜켜이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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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9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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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사회를 그리는 서울문화재단의 아름다운 여정

‘예술교육’에도 명쾌한 정답이 없는데, ‘장애예술교육’이라니. 심지어 교육대상은 ‘아동’과 ‘청소년’이다. 아직은 마땅한 방법론이 없으리라 짐작했다. 고백하자면, 섣부른 시도가 될까 봐 노파심이 먼저 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이 ‘2019 서울형 장애 아동·청소년 예술교육’을 한다고 발표했을 때 말이다. 올해 서울문화재단은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사회를 그리며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5월에는 문화예술 포럼 ‘같이 잇는 가치’, 지난 11월에는 장애·비장애 예술가 공동창작 워크숍 결과 전시회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를 선보였다. ‘2019 서울형 장애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사업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는 2019년 4월부터 12월까지 장애 아동·청소년 특성을 고려한 예술교육 신규 프로그램 개발 계획을 세웠다. 공모를 통해 매직플레이, 플레이서커스, 트러스트무용단을 선정했고, 세 단체는 사업 기간 동안 각자 고안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장애인….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 그렇기에 이번 사업에 유독 시선이 갔다. 따뜻하지만, 조금은 냉철한 마음으로 세 단체의 아름다운 여정에 동행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장애예술교육을 통한 전문 예술가 양성? 매직플레이 ‘수어! 그림자 예술로 피어나다’ 눅눅한 여름, 8월의 장마철이었다. 여름방학 2주 동안 매직플레이는 열두 번의 수업을 진행했다. 그 현장을 보기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매직플레이 연습실로 향했다. 10여 년 동안 섀도 아트(Shadow Art)를 선보여 온 매직플레이. 이들은 손을 활용하는 핸드 섀도 아트(Hand Shadow Art)와 수어(手語)가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교육대상을 언어·청각장애 청소년으로 정했다. 연습실에는 다정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은 여덟 번째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손을 이용해 다채로운 동물을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실생활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기에, 손으로 그림자를 익히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아이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공연 준비에 몰두했다. A팀과 B팀은 직접 고안한 스토리에 핸드 섀도를 입혔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소년이 모였고, 리더를 맡은 한 학생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이날 참관을 통해 장애예술교육으로 인해 전문 예술가가 양성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매직플레이 여성구 대표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림자 예술에 관심을 보이는 농아 친구들과 더 전문적인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계속 농인과 교류한다면 오히려 그림자 예술이 발전할 가능성도 보였다. 핸드 섀도와 수어의 공통점을 발견한 매직플레이의 혜안은 탁월했다.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될까?

플레이서커스 ‘서커스 미’

플레이서커스의 강승우 대표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 복잡한 생각은 플레이서커스의 방향성을 올곧게 한다. 그는 서커스를 활용한 예술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그동안 비장애인과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커스 예술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교육대상은 발달장애 아동이다. 사실 발달장애는 해당 나이에 이뤄져야 할 발달이 조금 더딘 경우를 일컫는다. 다르게 말하면, 발달장애 아동에게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서커스 프로그램은 두 번을 참관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참여했던 8월의 교육 현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겉도는 아이들이 많았고, 강사들은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애썼다. 강승우 대표는 원래 계획한 교안보다는 아이들 특성에 맞는 새로운 교육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다만 강사들은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조금 늦을 뿐, 반복적인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두 달의 시간이 흘러 10월, 다시금 플레이서커스 연습실을 찾았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 눈에 보였다. 그새 아이들은 연습실 환경에 적응한 모양. 거침없이 매트에서 뒹굴고, 에어리얼 실크에 매달리고, 공 위에 올라타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함께 놀기’ 시작했다. 첫 참관 때 아이들은 각자 놀기에 바빴다. 어느덧 친해진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서커스 오브제들을 즐기며,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곤 했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 장애예술교육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미덕인 듯하다.

 

장애예술의 특수성, 예술성으로 전환?

트러스트무용단 ‘터치 앤 터치’

트러스트무용단은 이번 공모형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 팀 중 가장 노련하다. 이 단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 대상 공연과 교육을 진행해왔다. 2017년에는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케인 앤 무브먼트 무용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그간 발달·지체·지적장애인들과 주로 만나왔기에, 이번 프로그램은 시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삼았다. 강사가 한 명씩 아이들을 전담해 일대일 수업을 지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사와 학생은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관절의 움직임을 익혔고, 동작을 하나씩 쌓아갔다. 강사들은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업을 이끌어갔다. 예컨대 아프리카 풍 음악을 들려주며 원시적인 움직임을 꺼냈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수업을 진행한 트러스트무용단 홍예은 무용수는 “시각장애 아동에게는 춤이 어쩌면 일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수업의 목적은 교육에 의한 춤이 아니라, 본능적인 움직임을 찾는 것. 시각장애 학생들의 상상력은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뭐든지 상상하는 게 익숙한 아이들 아닌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선율에 귀 기울이며 온전한 움직임을 꺼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정을 마치며 아직은 과정 중에 있다. 이번 장애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참관하며 느낀 점이다.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는 교육대상 모집에 있어서 협업이 필요해 보인다. 매직플레이와 트러스트무용단은 교육대상을 모집할 때 난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매직플레이는 농학교에 공문을 보냈고, 트러스트무용단은 맹학교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결국 매직플레이는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트러스트무용단은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둘째는 장애예술교육은 단기보다는 중장기 사업이 적합하다. 학생 모집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단기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아이들과 친해져 이제 뭐 좀 해볼 수 있을 때 프로그램이 마무리 된다”며 세 단체 모두 아쉬움을 전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 역시 강사와 신뢰를 쌓자마자 헤어지게 됐다며 씁쓸해했다. 장애예술교육은 강사와 학생의 두터운 신뢰도가 더욱 중요할 테다. 이번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켜 중장기 사업을 고안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무엇보다 장애예술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심을 둬야 한다. 결과물로 공연을 올리겠다고 계획한 매직플레이와 트러스트무용단은 공연 시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플레이서커스는 이번 프로그램 결과물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수업을 진행하자마자 불가능이란 걸 깨달았다고. 대신 학부모와 함께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공유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모든 과정은 가능성이기도 하다. 최근 동시대 장애예술 담론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장애예술교육에 관한 적합한 방법론을 찾으려는 서울문화재단의 움직임은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뜻깊었다.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움직임이 켜켜이 쌓여 언젠가 매끄러운 길을 낼 테니.

글 장혜선 기자 사진 popcon/잠실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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