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날아가 버린 새’ & ‘배우는 사람’

국가폭력의 피해자들, 그 이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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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월 6일 2:12 오후

REVIEW

 


‘날아가 버린 새’ ©김솔(보통사진관)

연말을 마감하며 이곳저곳에서 ‘2019 올해의 공연 베스트’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의 공연’ 선정 단체마다 10월부터 12월에 걸쳐 마감 시기가 다르고, 올해 화제작은 주로 하반기에 몰려 있어서 선정작마다 다소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공통적으로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가 꼽혔다.

가장 마지막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이 발표되었다. 또 한 편의 화제작이 선정되었다. 극단 돌파구의 ‘날아가 버린 새’(장지혜 작, 전인철 연출)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2016년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공연 대상작이었으나 블랙리스트 사태로 공연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올해 다시 전인철 연출가에 의해 공연이 시도되면서 검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지난 10월 국립극단은 장지혜 작가에게 뒤늦게나마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11월 극단 돌파구에 의해 ‘날아가 버린 새’가 드디어 관객에게 공개되었다. 단 5일간의 짧은 공연 기간이었지만 첫날부터 매진이었다.

12월에 올라간 또 한 편의 공연을 기억하고 싶다.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가을 페스티벌 마지막 작품 ‘배우는 사람’(고주영 기획, 신재 연출)이 그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극단 노란리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인 배우 이미경과 김성실이 출연했다. ‘날아가 버린 새’와 ‘배우는 사람’, 두 작품 모두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그 이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아가 버린 새’

‘나라가’ 버린 새를 연극인들이 품어서 날게 하다

‘날아가 버린 새’는 장지혜 작가의 데뷔작이다. 4년 전에 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며 작가는 단 한 글자도 수정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공연팀은 이 공연의 제목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나라가 버린 새’라고 말한다. ‘나라가 버린 새’, 곧 ‘국가가 버린 새’를 연극인들이 품어서 다시 날게 했다. 공연팀은 말한다. 이 작품은 “버려진 것이 아니라 지켜진 것”이라고. 프로그램북에는 뒤늦게 국립극단 측으로부터 이 작품에 대한 검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사과문을 받아내기까지 어렵고도 긴 과정에 대한 기록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때로 어떤 작품은 스스로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완성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이 그렇다.

공연이 시작되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누군가 일어선다. 한쪽에는 본드통과 소주병이 늘어서 있다. 이제 막 본드를 부은 봉지를 흡입하고 취한 채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두 친구, 용식이와 강호다. 용식이는 본드 환각 속에서 누군가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대가 독특하다.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의 좁고 긴 무대를 그대로 활용했다. 다른 공연에선 공간을 반으로 잘라 무대와 객석으로 쓰거나 양면 무대로 활용하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22미터의 긴 극장 구조를 그대로 무대로 활용했다. 검고 긴 무대의 파격은 지난 시간 ‘블랙리스트’의 검은 기억에 대한 단호한 답변을 보여주는 듯했다.

10대 청소년 용식이는 2년 전 집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아빠를 찾는 빚쟁이들의 전화가 걸려 와도 매일매일 꼬박꼬박 전화를 받는다. 이 집을 떠나지도 못한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 박미리는 열아홉에 임신을 하고 스물에 용식이를 낳았다. 엄마는 어린 용식에게 말했다. “너 빨리 커서 엄마 좀 구해주라.” 용식이는 일찍 어른이 되었다. 용식이는 편의점 알바를 해서 돈을 벌지만, 아빠는 용식이에게 용돈을 받아 소주를 사 먹는다. 용식이 역할은 김민하 배우가 맡아 스스로의 성장통을 묵묵히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없는 아빠 역할은 안병식 배우가 맡아 아들보다 더 철없는 아빠 역할을 능청스럽게 끌고 간다. 엄마는 이런 말도 했다. “너도 니 아빠처럼 살 거면 나 떠날 거야.” 그리고 엄마는 떠났다. 매일 술만 먹는 아빠나, 본드를 하는 용식이나 답이 없는 삶 들이다.

그런데 강호의 여자친구 예리가 임신을 한다. 용식이는 자기가 알바를 한 돈까지 주면서 강호와 예리에게 낙태를 강요한다. 공연에서 예리(윤미경 분)는 엄마 역할과 함께 일인이역을 맡고 있다. 용식이 강호(변효준 분)와 예리에게 집요하게 낙태를 권했던 것은 곧 과거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살아 있잖아”라는 말로 낙태를 거절하는 아이들. “그게 사는 거야?” 반문하는 용식이의 질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답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용식이는 드디어 마음속에서 엄마를 떠나보낸다.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풍선을 날려 보내고, 객석에 앉은 엄마에게 “이제 엄마 그만하고 박미리로 살아”라고 말한다. 용식은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고 홀로 서있는 모습으로 마지막에 관객 앞에 선다. 관객도 함께 검은 비닐봉지 풍선을 날려 보내며, 비로소 블랙리스트의 길고 오랜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느끼게 한다. 고통 속에 예술가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다.

 

‘배우는 사람’

배우가 아니면서 배우인, 연극이면서 연극이 아닌, 경계를 넘는 공연

‘배우는 사람’ ©박태양(보통사진관)

‘배우는 사람’도 단 5일 공연이다. 혜화동1번지 페스티벌의 다른 공연들이 보통 일주일 공연인 것에 비해서도 공연 기간이 짧다. 일반인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연의 제작 과정도 일반 공연과 다르다. 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 고주영이 극단 제로셋(0set) 프로젝트의 신재 연출가에게 세월호 유가족인 두 명의 어머니와 작업을 제안하면서 공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마민지 영상감독이 공연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는 역할로 합류했다. 일반인 배우가 당사자의 이야기로 무대에 서는 공연이다. 배우가 아니면서 배우이고, 연극이면서 연극이 아닌, 경계를 넘는 공연이다. ‘영만 어머니’ 이미경과 ‘동혁 어머니’ 김성실 배우가 세월호 이후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직접 들려준다. 매일매일의 공연이 두 어머니의 즉흥극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배우는 사람’ ©박태양(보통사진관)

전체적인 구성은 있다. 영만 어머니에게는 노래강사 강습을 받으면서 ‘엘프’ 반주기도 조작하고 관객들에게 율동도 가르쳐주면서 노래강사의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관객들은 예비 노래강사 영만 어머니와 함께 패티 김의 ‘그대 없이는 못살아’의 노래와 율동을 완성한다. 동혁 어머니는 유튜브를 개설해서 관객과 함께 하나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한다. 동혁 어머니는 ‘졸싸맘’이라는 닉네임으로 실제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공연과 유뷰브 영상 속에서 ‘졸싸맘’은 새엄마였기에 오히려 중심을 잡고 남편과 남은 아이들을 지키며 버틸 수 있었다는 이야기, 내가 겪었던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졸싸맘’이 노트북을 바라보며 유튜브 구성안의 빈칸을 채울 때마다 관객들의 마음속의 빈칸도 함께 채워졌다. 세월호는 허구 속에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었다.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돌파구·연극연습 프로젝트&제로셋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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