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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가 강을 끼고 형성됐다면, 21세기 디지털 사회는 ‘스트리밍’을 끼고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의 발달로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자, 우리는 더 이상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영상과 음악, 텍스트 등을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영향력은 ‘아날로그’한 감성을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에까지 미쳤다. 음원 및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는 인구수가 분명한 증가세에 있는 것이다.
이다지오(IDAGIO)는 클래식 음악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최적화된 결합을 꿈꾸며 탄생했다. 이전까지 오직 클래식 음악만을 위한 스트리밍 플랫폼은 전무했고, 클래식 음악 고유의 구조에 맞게 애플리케이션 환경을 새로이 창조해야만 했다. 2020년 8월, 설립 5주년을 맞은 이다지오의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발명품’에 그 이름을 올렸고, 최근 전세계 2백만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포착하기까지
이다지오의 설립자이자 현 대표인 틸 얀스코비츠(이하 틸)는 수십 년간 클래식 음악계 전반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곧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에 입성했고 독일에서 매년 여름 개최되는 슈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의 마스터클래스를 주관하는 감독으로도 일했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유럽 지사를 설립해 세이지 오자와·앙드레 프레빈·크리스티안 틸레만·이보 포고렐리치 등 거물급의 공연을 관리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전공까지 했다. 열여덟쯤 우연히 크리스티안 치머만을 만나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피아니스트란 걸 깨닫고 그길로 피아노 연주를 접었다. 그때 치머만이 아티스트 매니저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처음 맡은 이들 중 한 명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다.(웃음) 한때 클래식 음악으로 얻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 기자로 글을 쓰기도 했다. 늘 이 음악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기술’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고민의 고민.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티스트 매니저로 활동하던 그는 자신이 맡은 음악가의 음반 목록을 정리하다 문제점을 인식했다. 여러 음반사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반 정보를 상이하게 기입하거나 누락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클래식 음악에 시급한 것은 ‘정보 기술’이었다. 이다지오라는 이름은 정보 기술을 뜻하는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Information Technology)’와 클래식 음악을 쉽게 떠올릴만한 단어인 ‘아다지오(Adagio)’의 합성어다.
“공동설립자인 크리스토퍼 랑게는 ‘독일의 스포티파이’라고 불리는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심파이’를 개발한 바 있다. 그는 심파이의 인터페이스에 클래식 음악을 적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심파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스트리밍 앱은 철저히 가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수와 작곡가 정도의 정보가 기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로부터 시작해 지휘자·독주자·악단 등 필요한 정보가 더 많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의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기존 앱은 원하는 음원을 쉽고 정확하게 찾는 데 어려움을 준다.”
이용자와 아티스트, 모두에게 사랑받기
이다지오의 첫 번째 목표는 ‘편리한 사용 환경 만들기’였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나열해, 이용자의 선택지가 작곡가-작품-연주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연주자를 기준으로 그가 발매하거나 참여했던 음반을 시간 순차로 모두 살펴볼 수도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후행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완전한 데이터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많은 음악학자와 정보 처리사,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협력으로 현재 이십 만개 이상의 앨범 정보가 모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터의 부피는 두터워지고 있다.
“세 번째 목표는 아티스트를 이 플랫폼에 끌어오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자, 관객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다리로 만들고자 한다. 최근 비킹구르 올라프손, 랑랑, 레이 첸 등의 연주자가 여러 음반을 큐레이션해 소개했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큐레이터다. 빈 필, 바비칸 센터, 도이치 그라모폰 등의 협력사도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또 다른 기능들을 추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다지오 라이브’다. 특히 지난 ‘이다지오 라이브’에서 지휘자 이반 피셔는 ‘말러 교향곡 듣는 법’을 주제로 관객과 음악을 듣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것이 관객이 원하는 콘텐츠다.”
당신의 기분을 이해하는 음악을 찾아줍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무드 휠’ 기능을 추가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맞춤 곡을 추천해주어 듣고만 있으면 다양한 작품, 양질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특정 감정을 북돋는 곡을 선정하는 것은 컴퓨터 알고리즘의 역할인지 궁금해졌다. 틸은 이에 대해 단호한 답을 꺼내놓았다.
“‘무드 휠’ 역시 사람의 손을 거친다. 유튜브의 콘텐츠 추천이 ‘조회수’를 기반으로 하는 것과는 큰 차이다. 작품의 내용을 사람이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무드 휠’의 1차 작업이다. 알고리즘은 이를 기반으로 작품을 골라내거나, 추천된 곡을 이용자가 얼마나 듣는지 등을 분석하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기술은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기술은 더 나은 듣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는 가치관은 ‘이다지오 랩(IDAGIO Labs)’를 통해서도 실현된다. 이다지오가 실험하고 있는 기능들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웹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작품에 대한 여러 리코딩을 직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예컨대, 번스타인과 뉴욕 필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재생하고 4분이 지나는 시점에 자동으로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연주가 이어지는 식이다. 기술로 의미 있는 ‘듣기’ 경험을 이끌어낸 예다. 한편, 기술은 아티스트에게도 보다 폭넓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술이 아티스트에게 가져온 것들
“20~30년 전에는 방송사·언론사·음반사 등만 콘텐츠를 생산했다. 오랫동안 아티스트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연주자에게 ‘노(No)’라는 답이 떨어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R.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녹음하겠다는 젊은 지휘자의 포부가 ‘그건 음악감독이나 돼야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음반사의 거절로 꺾여버렸고,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다뤄보겠다는 한 피아니스트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는 레퍼토리’라는 답을 듣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 이런 제재를 허물었다. 누구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아티스트가 진짜 원하는 음반을 제작하고, 이다지오를 통해 발매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아티스트의 장기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선 활동에 대한 적절한 수익 분배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음원 수익 분배는 기존 스트리밍 앱의 고질적 문제다. 대다수 앱의 경우, 이용자가 어떤 곡을 들었는지 상관없이, 재생 횟수를 기준으로 수익을 나누는 ‘비례배분제’를 따른다. 앱에 등록된 모든 음원을 스트리밍 횟수가 많은 순서대로 줄을 세워 그 비중에 따라 전체 이용자의 구독료를 배분한다. 사실상 이용자가 듣지 않은 음악에도 구독료가 흘러가는 시스템이다.
한편, 유튜브 뮤직의 경우 한 곡을 재생한 지 45초가 지나면 1회 재생된 것으로 계산한다. 이용자가 3분짜리 가요를 들었는지, 40분짜리 말러의 교향곡 중 한 악장을 들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 심지어 한 곡에 참여한 아티스트가 몇 명인지도 적용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불공정이 발생한다.
“이다지오는 ‘이용자별 재생 시간’을 기준으로 수익을 분배한다. 내가 빈 필의 100분짜리 한 음반을 30분 동안 들었을 때, 그달 구독료의 30%가 이 음반에 속하는 식이다. 음악이 재생된 만큼의 값을 아티스트에게 돌려주는 방법이다. 우리가 이런 수익 배분 방식을 도입해 처음 계약을 맺은 곳은 빈 필이었다. 이후 빈 필이 언론에 ‘이다지오는 가장 공정한 스트리밍 앱’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우리의 오랜 고민과 노력을 보상해주는 듯했다. 이 한 문장이 바로 우리가 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다지오는 고유의 데이터 모델을 개발해 음반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음반사 카탈로그에 누락된 정보까지 직접 찾아 채워 넣는다. 모든 음반에 대해 같은 작업을 진행해, 음반 제작에 공이 있는 모든 이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넓고 깊은 메타 데이터도 갖게 됐다. 앱 이용자에게는 풍부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거뒀다.
스트리밍 시장은 성장세, 한국은 잠재적 파트너
이다지오는 상기 과정을 통해 모은 음원과 정보들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버전을 2019년 출시했다. 그 대신 듣고 싶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제한되고,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만 이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사실 이다지오뿐만 아니라 스포티파이 등 여타 스트리밍 앱에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튼실한 유료 구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포티파이와 그 규모를 비교해볼 때, 이다지오의 무료 서비스 정책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앱을 시도해보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그 무엇이든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려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언젠가 앱의 가치를 알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지불을 결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다지오는 독일 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이용자가 있는 곳은 미국이다. 현지의 정식 출시가 2018년이었고, 이 땅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레드오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결과다. 2위는 독일, 3위는 영국이다. 조만간 이다지오는 한국어 버전도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을 주목하면서 잠재적 파트너를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확실히 성장세에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통계사 골드만 작스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세계 3억 인구가 오디오 스트리밍을 유료로 구독하고 있었고, 2030년에는 10억에 달하리라 전망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다지오는 결국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그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유튜브·넷플릭스·아마존이다. 경쟁력 있는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창출하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이다지오
이다지오 사용법
➊ 애플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서 ‘이다지오(IDAGIO)’를 영문으로 검색해 앱을 다운로드한다. 앱의 첫 창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혹은 여타 이메일 주소로 회원가입한다. 비밀번호까지 설정하면 완료. (가입한 계정으로 웹에서도 로그인할 수 있다.)
➋ 이제 이다지오가 이용자를 알아가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입문자(New to classical), 아마추어(Basic knowledge), 전문가(Experienced listener) 중 선택하고, 다음 질문에서는 선호하는 작곡가를 최소 3명 선택한다. 추후 음악 추천에 당신의 답변이 활용될 것이다.
➌ 다음 창에서는 무료 서비스(CONTINUE FREE)와 유료 결제(TRY PREMIUM), 두 가지 선택지가 등장한다. 무료 서비스로도 이다지오만의 풍성한 콘텐츠를 즐겨볼 수 있지만 특정 작품을 고를 이용자의 선택권은 제한되고,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임의 재생(PLAY RADIO & SHUFFLE)만 가능하다.
➍ ‘이다지오 프리미엄+’ 의 한 달 구독료는 한화 9,500원. 결제를 한 순간부터 이다지오의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선택해 감상할 수 있다.
➎ 이다지오에 입성한 당신을 반기는 페이지는 ‘발견하기(Discover)’다. 스크롤을 내리면 최신 발매 음반부터 여러 음악학자와 음악가, 악단들이 큐레이팅한 추천 음반, 언론사 호평을 받은 음반, 이다지오 단독 발매 음반들까지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7월 18일 밤, 필자는 ‘당신의 하루를 위한 음악’ 추천 콘텐츠 중 “집중을 위한 음악(Stay focused)”을 택했고, 엘가의 목관 5중주를 위한 간주곡, 무소륵스키의 피아노를 위한 ‘명상’, 글리에르의 하프를 위한 즉흥곡 등을 감상했다.
➏ ‘탐색하기(Browse)’ 페이지에서는 원하는 작품을 검색할 수 있다. 검색바 아래에서는 작곡가·악단·연주자·지휘자·악기·장르·시기별로 정리된 음악 목록도 살펴볼 수 있다.
➐ ‘무드 휠’은 ‘기운 찬’ ‘평온한’ ‘멜랑콜리한’ 등 특정 분위기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추천 받는 기능이다. 음악학자들의 섬세한 선곡으로 다양한 작품, 양질의 연주를 쉽게 감상할 수 있다.
➑ 유료 이용자는 자신만의 음반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 곡별·음반별·아티스트별로 나누어 저장할 수 있어 편리하다. 컬렉션에 넣을 음반이 고민된다면, 우선 작품을 검색해 여러 버전을 한 번에 비교해 들어본 후 선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