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LIGHT 라메르에릴 섬과 바다,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8월 12일 5:31 오후

섬과 바다, 그리고 예술 

이종송_Mountain in Motion-Concerto 320x160cm,흙벽화기법에 천연안료, 2020

라메르에릴 제15회 정기연주회

동해와 독도 사랑. 8월엔 광복의 기쁨을 담는다

이 땅의 산천은 예술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한반도를 세우는 산맥에 웅대해진 마음은, 삼면의 바다 앞에서 고요히 너울거린다. 라메르에릴의 예술가들은 외딴 섬 독도와 동해를 부르고, 그린다. ‘라 메르 에 릴’의 뜻은 프랑스어로 ‘바다와 섬’.

라메르에릴은 독도사랑문화예술인회라는 이름으로 2012년 발족한 비영리공익법인이다. 음악가·화가·무용가·연출가 등 문화예술인과 학자 100여 명이 “예술로 동해와 독도를 널리 알리자”며 뜻을 모았다. 이들은 매년 독도를 방문해 영감을 얻고, 동해와 독도에 관한 성악곡·기악곡·현대무용·시·그림·영상을 발표한다. 라메르에릴이 설립된 2012년은 영토 분쟁으로 인한 한·일 외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던 때였다. 일본 정부는 최초로 자국 신문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구글’ 사이트의 지도 서비스에서 독도의 한국 주소가 삭제돼 우리 외교통상부가 시정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국제법 전문가이자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한 라메르에릴 이사장 이함준은 그 해답을 문화예술에서 구했다. “예술로서 세계인들이 동해와 독도를 우리의 바다와 섬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음악과 예술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영속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함준 이사장은 외교관으로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며 국제관계에서 문화예술의 영향력, 즉 소프트 파워를 체감했다. 오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만국공통어인 음악으로 세계인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작곡가 임준희·이영조,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 화가 서용선·김지원, 시인 최정란·최정례, 안무가 이혜경 등 각 분야의 걸출한 예술인들이 취지에 공감하고 기꺼이 함께했다.

올해로 설립 8년 차를 맞는 라메르에릴은 2013년 8월 20일에 첫 정기연주회(제주 돌문화공원 내 오백장군 갤러리) 이후 국내외를 무대로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2회 이상 정기공연을 개최했고, ‘독도오감도’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 ‘독도미학’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종합예술단체로서 전시회·음악회·학술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통섭적인 예술 활동을 선보이는 중이다. 2016년부터는 해외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널리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 싱가포르·시드니·홍콩·프라하·파리 등지에서 총 10여 회 공연했다. 해외에서는 외교 갈등을 문화예술로 풀어가는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오는 8월 16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75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공연을 갖는다. 라메르에릴이 위촉한 창작곡 임준희의 ‘독도 오감도’(2017), 이영조의 소프라노와 현악앙상블을 위한 ‘환희’(세계초연)와 클래식 음악 애호가를 위한 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골고루 연주된다. 임준희의 ‘독도오감도’는 생황·가야금·비올라 등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조화롭게 배합된 곡으로, 해외공연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엔 현악 앙상블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해 선보인다. 이영조의 ‘환희’는 광복절 75주년 기념작이다. 광복을 맞이하는 민족의 기쁨을 소프라노와 현악을 균형감 있게 쌓아 올린 3악장의 곡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노래에는 소프라노 이명주가 함께 한다. 이번 공연은 10여 명의 서양 현악기 주자와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생황 연주자 김효영이 함께 올라 풍성하게 꾸밀 예정이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라메르에릴

 

2019년 정기연주회

2019년 독도탐방

 


INTERVIEW

라메르에릴 이사장 이함준 한국 문화를 앞장서 알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97년 영국 런던에서 근무할 때 현지에서 대규모 한국 문화 행사를 주관했다. 영화 ‘기생충’(2019)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K팝의 선전 등 문화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지금과 달리,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다. 행사에는 사물놀이 같은 국악 단체 외에도 성악가 조수미, 금호 현악 4중주단을 비롯한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가 공연했다. 대영미술관 내 한국관 개설을 기념하며, 한국 현대미술 전시회도 열었다. 앞으로 문화예술로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

그렇다면 독도 및 영토분쟁을 주제로 활동하는 이유는.

국제법 중에서도 해양법이 내 전문분야다. 섬에 관한 분쟁을 주로 다룬다. 자세히 알면 알수록 아주 복잡하고 머리 아픈 문제다. 반면 음악으로, 미술로 이 문제를 치환하면 아무것도 모르고도 감상할 수 있다. 관객이 그저 “독도라는 섬에 관한 음악회,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아주 좋더라”라고 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클래식 음악을 ‘주 무기’로 쓰고, 국악기를 더했다.

일부 대중가요 외에 동해와 독도를 음악으로 알리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순수음악으로 독도를 이야기하면 더 호소력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국악기를 사용하면, 5000년 역사의 문화를 직접 보여 주고 들려줄 수 있겠더라. 국악 연주자의 연주복은 한복이지 않나. 직접 시도해보니 국악기와 양악기의 하모니가 굉장히 감동적이다.

예술가들은 창작의 영감을 받기 위해 독도를 직접 방문한다고.

독도에 가면 이렇게 외떨어진 곳에 우리 섬이 있구나 싶어 뭉클하고 감격스럽다. 현장에서 받는 감동은 사진으로 볼 때와 차원이 다르다. 특히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은 더욱 그렇고. 거의 매년 예술가들과 함께 독도를 가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한 번은 독도에서 머무는 중에 날씨가 갑자기 나빠진 적이 있다. 배가 뜨지 못해 20여 명이 독도 서도에 있는 피난처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보통 방문객은 동도로만 입도할 수 있다. 덕분에(?) 서도에서 동도를 바라보는 구도의 그림이 탄생했다.

‘독도 수호’라는 목적이 예술의 순수성을 해치지는 않을까.

러시아 통치 시기(1809~1917) 핀란드 국민에게 독립에의 의지와 희망을 주었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1899)는 한 세기 넘도록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예술가에게도 나라가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국가에 기여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정부가 직접 하면 선전이 되지만, 우리는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민간단체다. 예술 활동의 범주가 독도와 동해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공연처럼 우리가 위촉한 창작곡과 클래식 음악 작품을 같이 연주하기도 하고, 독도가 아닌 다른 한국의 명소를 그린 풍경화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함준(1953~)은 고려대와 런던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외교관으로 캐나다·인도네시아·핀란드·영국·필리핀·탄자니아 등에서 근무했으며, 제30대 국립외교원장(2008~2010)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협상학회 특별고문, 국제해양법학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2013년부터 비영리공익법인 라메르에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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