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2월 8일 9:00 오전

FOCUS ON

 

비워진 도시, 채우는 음악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스

지붕 위로, 텅 빈 박물관으로. 청중을 되찾기 위한 파리지앵의 모험기

팬데믹이 선언된 지난해 3월, 이탈리아에서 촬영된 영상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봉쇄령으로 집에 갇힌 사람들이 테라스에 나와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때론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존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흐르던 ‘음악’ 때문이다.

이 장면은 프랑스 파리에도 전해졌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스도 힘을 얻었다. 이내 첼로를 들고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집 옥상. 뒤로 에펠탑이 보이는 탁 트인 지붕 위에 자리 잡고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이 노래가 그 누구에게든 가닿길 염원하며.

4세에 제 몸집만 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파리 태생의 카미유 토마스(1988~)는 십 대에 베를린으로 이주해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진학했고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대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이후 지휘자 파보 예르비·미코 프랑크·켄트 나가노 등과 함께하는 무대에 초청받고, 2017년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과 전속계약을 맺는 등 탄탄대로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베를린 필하모니를 포함한 여러 데뷔 공연이 전부 취소됐다. 팬데믹은 그에게서 무대를, 청중을 앗아갔다. 그렇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청중을 되찾기 위한 그의 모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팬데믹 이후 많은 음악가가 집에서 연주하는 영상을 찍어 공유하고 있지만, ‘지붕’ 위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지붕 위로 자주 올라간다.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는 것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는데, 테라스에 나와 노래하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큰 영감을 주었다.

텅 빈 파리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곳에서 촬영한 연주 영상들은 최근 유튜브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박물관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찾아주는 이 없고, 일상은 적막했다. 그래서 내 음악과 박물관이 만나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집 근처 장식미술박물관(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첫 시도를 했다.

구체적인 작업기가 궁금하다. 아주 간단했다. 따로 마련된 예산이 없어 직접 발품을 팔았다. 박물관 관계자에 연락해 촬영 허가를 구했고, 비디오그래퍼인 친구 한 명을 섭외했다. 보통 이런 장소에서 촬영하려면 어마어마한 대관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의의에 공감해준 박물관은 감사하게도 어떤 대가도 없이 날 환영해줬다. 공간의 적막을 깰 음악이 찾아온 게 반가웠나보다.

두 사람이 모든 걸 진행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기 위해 영상을 맡은 마르틴 미라벨이 혼자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야 했고, 난 수십 번을 연주했다.(웃음) 덕분에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다. 장식미술박물관에서의 첫 영상은 10월에 공개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번째 도시봉쇄령이 내려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시봉쇄령이 프로젝트를 지속시킨 하나의 요소인 건가? 이후 국립 자연사 박물관, 베르사유궁 등 유서 깊은 공간에서 제작을 이어갔는데. 봉쇄령이 내려지면 미술관이나 콘서트홀 등이 먼저 문을 닫는다. 이런 문화공간은 ‘필수적’이지 않다는 이유다. 동의할 수 없었다. 예술을 통한 치유가 필요한 시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처칠은 예술작품을 교외로 옮겨두고 런던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을 닫았다. 1940년 전후로 내셔널 갤러리만이 남아 있던 작품들로 단기 전시를 개최했다. 밤새 떨어지는 폭탄에 건물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지만, 줄을 잇는 관람객 행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한 힘을 이곳에서 얻어갔다. ‘뮤지엄 프로젝트’를 계속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 시점이다.

 

 

 

 

아랍 세계 연구소 ©Martin Mirabel

 

 

 

 

 

 

 

 

 ‘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카미유 토마스 ©Edouard Brane

 

 

 

 

 

 

파리의 절반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절반을 향해.

카미유가 박물관에서 연주한 작품들은 지난해 6월 DG에서 발매한 ‘보이스 오브 호프(Voice of Hope)’의 수록곡이다. 지휘자 스테판 데네브와 브뤼셀 필하모닉이 함께한 이 음반은 최초로 유니세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발매됐다. 어린 청중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카미유는 “오래전부터 염원해온 일”이라고 했다.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 초청 받아 가면서도, 짬을 내 그 지역 학교에서 조촐한 연주회를 열던 그였다.

음반에 실린 곡들은 라벨 ‘2개의 히브리 멜로디’ 중 ‘카디시’, 파질 세이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 브루흐 ‘콜 니드라이’,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존 윌리엄스 ‘쉰들러 리스트’ 등이다. 특정 종교나 문화를 뛰어넘는 화합의 이상을 그리는 작품이 다수다. 음반에는 ‘모든 청중’을 향한 카미유의 애정이 집약돼 있다.

‘보이스 오브 호프’의 시작에 불을 지핀 것은 파질 세이(1970~)의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그는 작곡가보다는 피아니스트로 더 익숙한데. 그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은 무려 작품번호 73번이다.(웃음) 파리와 터키에서 계속되는 테러에 예술로써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작곡됐다. 2018년 파리에서 내가 세계 초연했다. 그날 바로 녹음을 결심했다. 초연곡인데도 청중이 깊게 감명받는 걸 목격했다. 더욱이, 모두가 경험한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는 곡은 드물다. 상처를 용기 내 마주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용기와 위로를 얻는 시간이다. ‘희망(Hope)’의 상징 같았다.

이 작품은 당신에게 헌정됐다. 작곡가의 뮤즈가 되는 경험은 어떠했나? 새로운 음악의 탄생에 참여하는 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파질 세이와 작품의 주제는 물론, 형식에 대해서도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 악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원고를 보내줬다. 위대한 작품이 메신저를 통해 오가는 현상도 재밌었다.(웃음) 그는 연주상의 불편함은 없는지 물었지만, 고칠 부분이 거의 없었다. 이미 첼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자연스러웠다.

이외에 라벨·브루흐·글루크·드보르자크·존 윌리엄스 등 다양한 시대와 정서의 작품을 음반에 엮었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는 유대교 옛 성가 선율을 변주시킨 환상곡으로, 나치 시대엔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2개의 히브리어로 된 노래’ 중 ‘카디시’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라벨이 유대교 예배 문구를 소재로 작곡했다.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 음악으로 다리를 놓았다는 점에서 음반이 추구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화합의 이상을 들려주는 작품들을 선정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과 드보르자크(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베르사유궁과 글루크(정령들의 춤), 장식미술박물관과 도니체티(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음악을 엮었다. 공간에 따라 각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뮤지엄 프로젝트’에서는 음악과 공간, 심지어 의상도 연결돼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음악 교사였던 글루크(1714~1787)는 베르사유궁을 자주 찾았다. 그의 영혼에 대한 오마주로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정령들의 춤’을 택했다. 가장 최근에는 아랍 세계 연구소(Institut du Monde Arabe)에서 라벨의 ‘카디시’를 연주했다.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종교·문화적 갈등을 향한 내 대답이다. 드레스는 아랍 의복에서 자주 쓰이는 시원한 푸른색으로 골랐다. 여러 방법으로 아랍 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했다.

음악이 화합의 장을 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엿보인다. 누구나 이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난 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의 연주 여행 중 한 특수학교를 방문해 공연했다.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들의 공감 능력에 내가 큰 감명을 받았다. DG의 콘서트 시리즈 ‘옐로우 라운지’도 클럽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콘서트홀에서와는 다른 관객을 만날 수 있다. 테크노 음악의 성지라고 불리는 베를린의 클럽에서도 청중은 높은 몰입도를 보여주었다. 배경과 취향의 간극에서도 음악은 항상 제 역할을 다했다.

 

 

 

 

보이스 오브 호프

카미유 토마스(첼로)/ 스테판 데네브(지휘)/브뤼셀 필하모닉 Deutsche Grammophon 4838564 라벨 ‘2개의 히브리 멜로디’ 중 ‘카디시’, 파질 세이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 존 윌리엄스 ‘쉰들러 리스트’ 외

 

 

 

 

 

생상스·오펜바흐

카미유 토마스(첼로)/ 알렉상드르 블로흐(지휘)/ 릴 국립 오케스트라 Deutsche Grammophon 4797520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op.16b,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외

 

 

 

 

 

 

 

국립 자연사 박물관 ©JC Domenech/Museum National d’Historie Naturelle

 

 

 

 

 

 

그럼에도, 예술은 영원하다

카미유는 2017년 DG 데뷔 음반에 첼로 협주곡 1번과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등 생상스의 주요 첼로 작품을 담았다. 프랑스 음악 유산이 그의 정체성의 큰 일부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선택이었다. 2021년은 생상스(1835~1921)의 서거 100주년을 맞는 해다. 올해가 그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다.

당신에게 생상스는 어떤 작곡가인가? ‘동물의 사육제’ 때문인지, 생상스의 음악은 ‘학구적’이지 않다는 오해가 있다. 그는 탄탄한 형식을 중요시했다. “바흐와 모차르트가 위대한 이유는 표현을 위해 형식을 희생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고전의 형식미에 경도된 모습도 보였다. 그는 프랑스적인 구조를 구축해 그 뒤에 스스로를 감춰뒀다. 그러다가도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짧지만 굉장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패시지를 등장시켰다. 생상스의 고유한 어법이라고 본다.

생상스 서거 100주년과 관련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 아르테(Arte)에서 방영 예정인 생상스 관련 다큐멘터리에 참여한다. 또,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운 곡인데, 실연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연주로 생상스에게 경의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밖에 새로운 한 해를 채울 계획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1월에 베를린 필하모니에서의 연주가 있었는데 며칠 앞두고 취소됐다. 지난 9개월간 이런 상황이 계속됐다. 여전히 한 치 앞을 알기 어렵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일본과 홍콩에서의 일정을 고대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청중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계속 지붕 위를, 텅 빈 박물관을 찾을 예정인가. 리코딩하면서도, 지붕 위나 텅 빈 박물관에서 연주하면서도 늘 눈앞에 관객이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당분간은 프로젝트를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을 이어가야겠지. 한편으론 문화공간의 의미를 깨달아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특히, 베르사유궁은 내게 하나의 상징이 됐다. 수 세기 전에 지어진 건물이 전쟁이나 팬데믹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마치 ‘예술은 영원하다’고 선포하는 것 같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리우 코토프

 

 

도니체티 ‘남몰래 흘리는 눈물’

 

 

 

글루크 ‘정령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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