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최수열, 21세기 마에스트로의 균형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2월 8일 9:00 오전

INSIGHT
지휘자 최수열

21세기 마에스트로의 균형감

지휘자 최수열

동시대에 태어난 작품을 ‘악보’가 아닌, ‘연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박재형

인생을 자전거에 비유한 아이슈타인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는 격언을 남겼다. ‘지휘’라는 자전거에 오른 최수열(1979~)의 관심도 ‘균형 잡기’에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있다.

최수열이 대중에게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서울시향 부지휘자(2014.7~2017.9)가 되면서다. 35세에 서울시향 부지휘자 임용이 그의 ‘첫 직장’이었다. 30대로 대변되는 이 시기는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쓴 시간이었다. 이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부산시향 예술감독(2017.9~)이 됐고, 올해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이름을 올렸다. 부지휘자에서 예술감독으로 직책을 옮기면서 한 악단을 위한 많은 것, 즉 음악 외에 행정까지 결정해야하는 상황도 잦아졌다. 이제는 음악 만들기만큼 책임감의 균형도 잘 잡아야 한다.

잘 올라탄 자전거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40대를 맞은 최수열. 현재 그는 자신만의 밸런싱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선 KCO에 관한 이야기부터 나눠볼까요? 김민 음악감독과 함께 ‘투톱(Two Top)’ 시스템으로 향후2년간 활동할 예정인데요. 글쎄요…. 저는 ‘투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석객원지휘자’ 역할은 기본적으로 감독이라는 직책과는 다릅니다. 단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지요. 물론 악단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의견 내는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겠지만요.

‘체임버 오케스트라’라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비해 참여 연주자가 적기 때문에 코로나 시대에 가장 안정적인 악단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_ 어떤 지휘자들은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소통 방식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단원 개개인의 의견이 끊임없이 리허설에 반영이 되기 때문에 지휘자 역할이 다소 축소된다는 느낌이 들지요. 저는 오히려 그 부분에 끌려요. 긴밀한 음악적 소통이 KCO에서는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이 모태인 KCO가 현대음악 해석에 정평이 난 최수열에게 지휘봉을 맡긴 건 악단 레퍼토리 확장을 기대하는 거겠죠? 적은 인원이 연주하더라도 근·현대 작품은 복잡한 구조로 인해 지휘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근래에 KCO와 작업한 곡들은 주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들이에요.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브람스까지?’라는 의아한 맘이 드는데요! 바로 그 지점이 제가 KCO와 일하게 된 첫 번째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김민 감독님의 목표 중 하나가 악단의 ‘신축성’이거든요. 작은 규모인 2중주부터 낭만주의 심포니까지 커버할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것. 이는 마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나 파보 예르비/도이치 카머 필하모닉처럼 교향곡을 소규모 악단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것과도 연관 있는 점입니다. KCO는 관악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런 작품을 접할 때 아무래도 지휘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고요.

KCO는 창단 56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휘자 체제를 병행합니다. 사실 ‘지휘자가 없이도 잘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정말 잘 하는 악단이지 않을까요? 단원들이 능동적인 음악을 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 지휘자 역량에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제가 포디엄에서 하는 역할로 인해 오히려 KCO 단원들을 수동적이게 만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려고 합니다.

 

최수열은 현대음악 전문가?

 

그동안 현대음악 해석에서 호평을 받아 왔는데요. 동시대 좋은 작품을 ‘악보’가 아닌 ‘연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KCO의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이 인상 깊습니다. 베베른 ‘느린 악장’(1905)과 쇤베르크 ‘정화된 밤’(1899)을 같이 배치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화된 밤’은 현악 오케스트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가진 곡이이에요. 김민 감독님께서 이 곡에 애정이 많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요. 식사하다가 슬쩍 얘기를 꺼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젠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는 전통을 가진 체임버 악단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베베른의 ‘느린 악장’은 ‘정화된 밤’을 메인으로 선정한 직후 김민 감독님이 어울릴 것 같다며 추천해 주었습니다. 두 작곡가 모두 12음기법으로 조성을 무너뜨리며 현대음악의 문을 열었단 점에서 중요해요. 그들이 작곡한, 조성이 아직 남아 있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두 곡의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 시적 감수성에 젖어있는 작품입니다. 이런 곡은 다른 현대음악 해석과 다르게 접근하나요? 오히려 현대음악일수록 지휘자나 연주자들에게는 해석의 자유가 한정적이에요. 대부분의 20세기 작곡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많은 정보를 악보에 기입합니다. 예를 들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었던 ‘알레그로(Allegro)’를 ‘4분음표=메트로놈120’ 속도로 해야 한다고 못 박죠. 스타카토도 음의 길이를 강한 악센트를 넣어 찌그러지게 들리도록 지시하기도 하고요. 현대음악은 생각보다 해석의 자유가 없습니다.

지휘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명확하겠네요. 그렇죠. 이 시대에 멀어진 음악일수록 ‘여지’라는 게 있지요. 최근에 제가 부쩍 하이든이나 슈베르트 교향곡에 흠뻑 빠지게 된 것도 아마 그 여지 때문일지 몰라요.

명작인데도 여러 이유로 연주 무대에서 외면받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서곡으로 올리기에는 길고, 교향곡보다는 짧은 15~20분 정도 길이의 대규모 관현악곡들이 제법 많아요. 또 길이는 적당하나 편성이 다소 소박하기에 프로 오케스트라들이 꺼리는 작품들도 있고요. 저는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미쳐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무대에서 활발히 연주되지 않는 작품들을 하나의 테마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게 저에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파보 예르비/도이치 카머 필이 펼치는 작업들을 보면 체임버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는 듯해요. 슈만의 교향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이 완벽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말러 등 많은 작곡가들이 나름의 편곡 버전을 남겼습니다. 저도 슈만의 교향곡을 오케스트라로 개운하게 연주한 기억이 없는데요. 고민해 본 결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연주했을 때 제대로 된 슈만의 교향곡이 완성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파보 예르비의 도이치 카머 필이 실제로 그 프로젝트를 했고요. 국내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슈만의 교향곡에 집중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 같습니다.

 

최수열은 프로그래밍 전문가!

 

지난해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부산시향에도 큰 타격이 있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올해 정기연주회는 어떠한 기조로 프로그래밍했나요? 1년간 변경·취소·연기에 관한 전문가가 되었답니다.(웃음) 2021년에도 결국 일반적인 심포니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베팅을 했습니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의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췄어요. ‘올해의 예술가’ 제도를 처음으로 시도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작곡가 김택수를 선정했고 그와 함께 한 해 동안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사이클을 끝낸 부산시향이 라벨 사이클을 이어가는 해이기도 하고요. 2022년까지 진행될 라벨 사이클이 기대됩니다. ‘최수열의 라벨론’을 들려주세요. 음악 전공을 결정한 계기가 악기 소리의 매력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악기를 잘 다루는 작곡가, 즉 오케스트레이션에 능한 작곡가들에게 관심이 갑니다. R. 슈트라우스는 관현악법의 천재였고, 라벨은 관현악법을 신기(神技)에 가깝게 사용하는 마술사입니다.

올해 부산시향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에는 재밌는 공연명이 붙었네요. ‘선후배(3.12)’ ‘프랑스식 뉘앙스(7.16)’ ‘스키(10.14)’ ‘모차이콥(11.4)’ 등….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신 거예요? 다양한 접근인데요. ‘선후배’같은 경우는 서양음악사의 선후배일 수 있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는 음악회입니다. ‘프랑스식 뉘앙스’는 올 프렌치 레퍼토리를 프랑스 객원지휘자가 연주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낸 거고. ‘스키’에서는 무소륵‘스키’와 차이콥‘스키’를 연주하고, ‘모차이콥’에서 ‘모차’르트와 차‘이콥’스키를 연주해요. 단순한 말장난 느낌으로 즉흥적으로 붙여 본 거랍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향 부지휘자와 지방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중 하나를 고른다면?”이라는 질문에 “상임지휘자”라는 답변을 하셨어요. 지방의 낙오된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올리고 싶다는 비전도 여러 번 밝히셨는데요. 2017년부터 부산시향과 함께 해오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고 자평(自評) 하나요? 1962년에 창단된 부산시향은 내년이면 60주년이 되는 악단이라 단원들의 자부심과 소속감이 강합니다. 누구보다 이 도시를 사랑하고, 실제로 부산 시민 4년 차인 저는 아직 부산시향에서 할 일이 많아요.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레퍼토리를 보유한, 특색 있는 사운드를 지닌 오케스트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난 30대는 참 아슬아슬했을 것 같아요. 40대에 가장 큰 음악적 이상은? 30대? 단 한 번도 연주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40대?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고 싶다! 이상입니다.

글 장혜선 기자

 

 

최수열의 2021년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 (협연 에스더 유)

2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베른 ‘느린 악장’, 쇤베르크 ‘정화된 밤’ 외

 

부산시향(협연 김덕우·정재윤)

3월 12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브람스 2중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5번

 

서울시향(협연 임선혜)

3월 25·26일 롯데콘서트홀

엘가 ‘세레나데’, 브리튼 ‘일뤼미나시옹’ 외

 

부산시향(협연 임윤찬)

3월 3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김택수 ‘짠!!’ 외

 

부산시향(협연 임윤찬)

4월 2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김택수 ‘짠!!’ 외

 

부산시향(협연 김태형)

4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김택수 ‘짠!!’ 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협연 송지원·심준호)

4월 24일 아트센터인천

브람스 2중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3번

 

코리안심포니(협연 조진주)

5월 7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과천시향

5월 20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베를리오즈 ‘로만 카니발’ ‘환상교향곡’

 

부산시향(협연 김한)

5월 27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하콜라 클라리넷 협주곡,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부천필(협연 심준호)

6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윤이상 ‘예악’, 엘가 첼로 협주곡 외

 

인천시향(협연 손민수)

6월 26일 아트센터인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슈만 교향곡 2번

 

부산시향(협연 김수연·문태국)

8월 16일 롯데콘서트홀

브람스 2중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2번

 

경기필(협연 신창용)

8월 21일 아트센터인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외

 

부산시향

9월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윤이상 ‘예악’, 베토벤 교향곡 9번

 

부산시향(협연 조진주)

10월 14·15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스트라빈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외

 

인천시향(협연 앙성원)

10월 23일 아트센터 인천

엘가 첼로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4번

 

국립국악관현악단

11월 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김택수 신작 외

 

과천시향(협연 조진주)

11월 27일 과천시민회관

드뷔시 ‘바다’ 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협연 양인모·송영훈·박종해)

12월 11일 아트센터인천

베토벤 3중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1번

 

부산시향(협연 최희연)

12월 16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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