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원년을 맞은 8개국, 양국이 주고 받는 예술의 꽃,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29일 9:00 오전

SPECIAL ISSUE 2
수교국 문화예술 탐방

 

수교 원년을 맞은 8개국
양국이 주고 받는 예술의 꽃

국경은 정치의 산물이지만, 예술은 그 국경을 넘어 국가간의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고 문을 연다. 짧게는 30년부터 60년, 120년까지 우리나라와 신뢰를 쌓아온 수교 기념국들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각 나라의 문화를 만끽하기가 어렵게 된 지금, 이 지면을 통해 수교 원년을 맞은 8개국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김선영(콘텐츠 프로듀서)


벨기에 Belgium

수도 브뤼셀
언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면적 305만ha(세계138위)
인구 1,163만명(세계81위)
GDP 671만달러(세계 25위)

1901년 양국 간 우정·상업·항해 조약에 서명했던 한국과 벨기에는 올해 수교 120주년을 맞았다. 맥주와 초콜릿, 와플로 유명한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 국왕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헌군주제이며,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실시한다. 네덜란드·독일·프랑스·룩셈부르크 등에 둘러싸여 주변국의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기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바이올린을 사랑한 여왕의 나라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1822~1890), 색소폰을 발명한 아돌프 삭스(1814~ 1894),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1820~1881)과 외젠 이자이(1858~ 1931) 모두 대표적인 벨기에 출신 음악가들이다. 한편 바이올린을 좋아한 엘리자베스 왕비는 193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신인 이자이 콩쿠르가 창설되도록 후원했다. 매해 5월 브뤼셀에서 열리는 콩쿠르는 바이올린·피아노·첼로·성악 네 부문이 번갈아 개최된다. 한국인 입상자로는 1976년 강동석(바이올린)이 3위를 차지했으며 그간 50명 이상의 한국인 연주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벨기에 전역에 생중계되는 결승 무대는 국가 행사로서의 콩쿠르 인기를 새삼 느끼게 한다. 한편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플랜더스 페스티벌 역시 벨기에의 주요 문화행사 중 하나. 6월과 12월 사이, 주요 도시에서 클래식 음악·재즈·뮤지컬·영화·무용 등 500여 개 이상의 공연이 펼쳐진다.

 

강력한 현대무용의 도시
모리스 베자르(1927~2007)의 영향으로 모던발레가 전 세계 무용계를 지배하던 시기, 1983년 안무가 아네 테레사 더 케이르스마커르(1960~)는 현대무용단 로사스(Rosas)를 창단했다. 첫 작품으로 선보인 ‘로사스 단츠 로사스’는 벨기에 현대무용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현대무용에 대한 벨기에 정부 지원은 파격적이다. 우수한 현대무용단의 경우 한 해 수십억 원을 지원받다 보니 공연 규모 또한 상당하다. 지원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뤄진다. 공연의 질이 떨어지거나 혹평을 받아 수익이 저조하면 가차 없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벨기에와 우리나라의 무용 교류는 2014년 리에주 극장이 주최하는 현대무용축제 ‘춤의 나라(Pays de Danses)’에 한국이 주빈국 초청을 받으면서 활발해졌다. 당시 무용가 안은미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벨기에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후 2016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이 현지에 소개됐고, 2020년에는 ‘춤의 나라’ 폐막작으로 안은미의 ‘북한춤’이 올랐다.

 

그림의 강국이 되다
세 가지 공용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사람들이지만, 비언어 영역에도 특별한 재능을 키워왔다. 플랑드르 초기 화풍의 선구자 얀 판 에이크(1390~1441), 농민들의 삶을 대변한 페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1525~1569), 인문주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 1640),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까지. 벨기에의 오랜 역사 속에서 ‘회화’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어다. 현대에 이르러 ‘만화’가 하나의 예술 분야로 인정됐다. 1840년에 발행된 잡지 ‘르 샤리바리’에 삽화가 실리면서 최초로 벨기에 만화 역사가 시작됐다. ‘땡땡’과 ‘스머프’ 모두 벨기에에서 탄생했다. 만화에 대한 벨기에의 진심은 수도 브뤼셀 전체를 가로지르는 담벽에 그려놓은 만화 캐릭터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한국-벨기에 수교 120주년 기념 공연

부산국제연극제
6월 중, 부산
지난해 17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연극제. 벨기에와의 인연은 지난 2012년 선보인 ‘병사이야기’로 시작됐다. 스트라빈스키의 선율과 함께 오페라·무용극·인형극을 축약시킨 총체극 형태로, 벨기에와 한국이 공동제작했다. 올해는 벨기에의 여러 공연 작품이 초청될 예정.

대구국제재즈페스티벌
8월 21~22일, 대구
2008년 시작된 페스티벌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외 뮤지션들 모두 사전녹화 공연을 통해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났다. 올해는 주빈국으로 선정된 벨기에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마주할 수 있기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10~11월 중, 서울
지난해에는 ‘폭력’을 테마로 열렸다.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1986년 벨기에에서 창단된 울티마 베즈의 ‘덫의 도시’다. 2021년 만나게 될 다른 벨기에 무용 작품 또한 기대를 모은다.

벨기에 재즈 그룹 Crossbones Trombones & Volpe 내한공연
11월 중, 서울
트롬본 그룹 Crossbones Trombones와 신예 재즈 그룹 Volpe가 특별 합동 콘서트를 선보인다. 이 공연은 2021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지원사업으로 선정됐다.

브뤼셀 필하모닉 내한공연
12월 3일, 예술의전당
브뤼셀 필은 2015/16 시즌부터 스테판 드네브가 음악감독을 맡아, 동시대 작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내한에는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협연, 레퍼토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벨기에 리에주 극단 & 한국 국립극단 합동 공연
2021년 12월 중, 리에주
2022년 4월 중, 서울 수교 120주년을 위해 양국의 대표 극단이 지난 2019년부터 협업했다. 먼저 리에주에선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오른다. 벨기에 출신의 셀마 알루이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고, 한국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에 올리는 ‘스트레인지 뷰티(가제)’는 새로운 공동창작 작품으로 배요섭이 연출을 맡았다.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수도 캔버라
언어 영어
면적 7억 7,412만ha(세계6위)
인구 2,578만명(세계55위)
GDP 1조 3,926억 8,058만달러(세계14위)

‘세계에서 제일 작은 대륙’으로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 1788년 이래로 영국 식민지였다가 1901년 연방으로 발족됐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다. 다민족·다문화를 지향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예술 분야는 오랫동안 유럽 전통에 기초해왔고, 부분적으로는 환경·역사·원주민의 문화에서 영향을 끼쳤다.

 

시드니 이색 오페라 즐기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 랜드마크. 덴마크 건축가 이외른 우촌(1918~2008)이 벗긴 오렌지 껍질을 뒤집어 놓은 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독특한 외관이 특징이다. 시드니항에 작은 섬처럼 떠 있는 팝업 오페라하우스 ‘한다 오페라’는 색다른 야외 공연장이다. 도시의 고층 건물이 자아내는 야경을 배경으로 수백 개의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에 맞춰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화려한 불꽃놀이는 덤으로 즐길 수 있어 클래식 음악이 낯선 이들에게도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
1977년에 시작된 시드니 페스티벌은 클래식 음악·무용·연극·서커스 등 다장르 예술을 망라한다. 약 100여 개의 프로그램이 한 달간 시드니 곳곳에서 열린다. 현재 극작가 웨슬리 에녹이 총감독을 맡고 있다. 매해 7월 전후로 개최되는 비비드 시드니는 230만 명 이상이 찾는 대규모 축제이다. ‘빛·음악·아이디어’를 기본 테마로 하며, 23일의 기간 중 저녁마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변신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부터 복합예술센터인 캐리지워크(Carriageworks)에 이르는 다양한 장소에서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이 열린다. 누구나 마음껏 춤을 누리도록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하버 브리지에서 가까운 월시 베이. 이곳은 원주민 신화를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이는 방가라 댄스 컴퍼니를 비롯해 시드니 극단, 시드니 댄스 컴퍼니(SDC) 등 여러 예술단체의 본거지이다. 그중 SDC는 1976년부터 31년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무용가 그램 머피가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그램 머피는 지난 2015년 유니버설발레단 ‘그램머피의 지젤’을 초연해 국내 관객에게 인지도를 얻었다.

 

장애, 또 하나의 예술언어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예술지원 중 눈에 띄는 것은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s)’로 대변되는 ‘장애예술 지원’이다. 장애를 또 하나의 예술 언어이자, 확장된 표현 수단으로 인지하며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다. 이를 위해 호주예술위원회는 2014년부터 ‘장애인 실천계획’을 통해 별도기금을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쳤다. 아트 액세스 빅토리아(AAV)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장애예술인 활동 기관이다. 멜버른이 자리한 빅토리아주에 1974년 설립되어 시각·공연·영상·다원예술을 아우른다. 매년 30명 이상의 장애 예술가와 교류하며 예술 분야 취업에 대한 장벽을 체계적으로 해소해왔다.


그리스 Greece

수도 아테네
언어 그리스어
면적 1,319만㏊(세계95위)
인구 1,037만명(세계86위)
GDP 2,098억 5,276만달러(세계51위)

서양문명의 발상지, 민주주의 종주국, 고대철학의 원조국으로 잘 알려진 그리스. 한편으론 ‘유럽의 한반도’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모가 많다. 일례로 그리스 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아 자녀교육을 위해 재산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고, 대개의 서유럽 국가와는 달리 자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유구한 문명과 역사의 시련 속에서도 국가 정체성을 지켜온 자부심이 한국과 비슷하다.

 

그리스인의 희로애락이 담긴 레베티코
그리스는 ‘반도’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인한 외세의 침입이 상당했다. 안으로는 독재로 인한 고통도 있었다. 오랜 세월 저항으로 점철된 그리스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민중음악이 ‘레베티코(Rebetiko)’이다. 1922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인해 그리스 외곽에 난민들이 정착한다. 이들에게 레베티코는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다. 구전만이 유일한 전승 방법인 레베티코는 2017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바다가 품은 ‘기적 같은 목소리’
그리스 크레타 섬 태생인 나나 무스쿠리(1934~)는 히트곡 ‘사랑의 기쁨’ ‘Over and Over’로 2008년 공식 은퇴 전까지 4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그녀를 두고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또한 ‘기적 같은 목소리’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칼라스(1923~1977) 역시 그리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937년 부모의 이혼으로 그리스로 거처를 옮겼다. 15세에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화려하고 굴곡진 인생을 이어가다가 53세에 파리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녀는 고향 앞바다인 에게해에 뿌려졌다.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는 1977년 세상을 떠난 ‘오페라의 성녀’를 기리며 시작됐다.

 

모든 공연예술의 근원지
고대 그리스의 중심 아테네, 그 위의 노른자는 ‘높은 언덕 위 도시국가’ 아크로폴리스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요새로 활용된 이곳은 신전 등의 여러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장소적 의미가 격상됐다. 1987년 유네스코는 아크로폴리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치는 곳은 160년에 지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다. 1955년 보수공사를 거친 후 아테네 에피다우로스 페스티벌의 주 무대가 됐다. 지금도 여름마다 공연이 열리며,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해 조수미, 정명훈도 이 무대에 섰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크로폴리스 남쪽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돌로 지은 최초의 극장으로, 아테네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 대회 ‘디오니시아’가 열리던 곳이다. 원형극장 뒤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은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건네는 카타르시스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따라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그리스 대표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우리에겐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져 있다. 카잔차키스를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크레타 섬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소박한 규모의 기념 박물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실제 모델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부터 대본까지 만나볼 수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한 카잔차키스 무덤가의 묘비문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 나는 자유다’라고 적혀 있다.


네덜란드 Netherlands

수도 암스테르담
언어 네덜란드어
면적 415만ha(세계 132위)
인구 1,717만명(세계 70위)
GDP 9,090억 7,039만달러(세계 17위)

네덜란드 언론사 NRC는 ‘문화의 나라’로서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자국 예술가·예술기관 100명(곳)을 매년 선정해 ‘NRC Cultuur top 100’이라는 타이틀로 발표한다. 선정은 네덜란드의 문화 협력 센터 ‘Dutch Culture’에 쌓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매해 상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단골들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황금빛 벨벳 오케스트라를 품다
아름다운 음향을 갖춘 공연장 콘세르트헤바우가 먼저 지어지고, 이후 상주 오케스트라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이하 RCO)가 들어섰다. RCO는 암스테르담에서 매해 80여 개의 연주, 40여 회의 해외 투어를 소화한다. 교육에도 큰 비중을 두는데, 2003년부터 콘세르트헤바우 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2019년에는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출범했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는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데(7·8월 제외), 오케스트라의 공개 리허설부터 신예 아티스트의 실내악까지 다양하다. 주 4회(월·수·금·일) 공연이 없는 시간대에는 극장 가이드 유료 투어도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지휘자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얍 판 츠베덴(1960~)은 18세에 RCO 최연소 악장에 취임해 20년간 자리를 지켰다. 이후 지휘자로 전향해 35세에 네덜란드 심포니 상임지휘자가 됐고, 약 10년 후 오페라 ‘나비부인’으로 네덜란드 국립극장에 데뷔한다. 이후 2008년 댈러스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2012년부터 그가 이끈 홍콩 필은 2019년 ‘그라모폰’ 선정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올랐다. 2018년부터 츠베덴은 뉴욕 필도 함께 이끌고 있다. 2019년 루체른 페스티벌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929~) 역시 말이 필요 없는 네덜란드 출신 대표 지휘자. 고음악 지휘자 겸 하프시코디스트 톤 코프만(1944~)도 네덜란드 태생이다.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암스테르담 바로크 합창단을 창단해 초기 바로크 레퍼토리를 구축하며 명성을 쌓았다.

네덜란드 연극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
연출가 이보 반 호브(1958~)는 벨기에 출신이지만, 오랜 세월 극단 토닐그룹 암스테르담과 함께 했다. 이 극단은 암스테르담 시립극장과 2018년 합병되어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ITA)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이보 반 호브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LG아트센터 기획 시리즈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 2012년 ‘오프닝 나이트’를 시작으로 2017년 ‘파운틴헤드’, 2019년 ‘로마 비극’을 선보였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NT Live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소개된 바 있다.

확실한 지원과 체계 속에 성장한 무용
1959년 헤이그에서 설립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는 체코 출신의 안무가 킬리안(1947~)과 같은 혁신적인 예술감독과 함께 현대발레의 선봉에 서있다. 최고 전성기를 누리는 무용수로 꾸려진 NDTⅠ, 프로페셔널을 앞둔 17~22세 유망주가 모인 NDTⅡ, 불혹을 넘긴 베테랑 무용수로 구성된 NDTⅢ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매력의 작품을 선보인다. 암스테르담 발레단과 네덜란드 발레단이 합병하며 1961년 시작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DNB)은 80여 명의 단원이 연간 100회가량의 공연을 소화한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한 김지영도 이곳 출신이다. 2011년 입단한 권세현은 2016년에 수석으로 승급해 주목을 받았다.


포르투갈 Portugal

수도 리스본
언어 포르투갈어
면적 922만ha(세계110위)
인구 1,016만명(세계89위)
GDP 2,376억 8,607만달러(세계48위)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포르투갈의 시작은 대항해시대 식민지에서부터 비롯됐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기구인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가 됐고, 현재 교육·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돈독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중이다.

파두, 삶의 숙명을 노래하다
포르투갈의 ‘소리 예술’은 언어의 장벽마저 뛰어넘어 전 세계 많은 이들을 사로잡아왔다. ‘운명’ ‘숙명’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한 ‘파두(Fado)’. 망망대해에 일생을 걸었던 이들의 애수가 담긴 이 노래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가치를 인정받았다. 여기에는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1920~1999)의 공이 크다. 리스본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재단’은 그녀의 생가이자 박물관으로서 일생을 대변하고 있다. 리스본에 왔다면 파두 공연을 한 번쯤 봐야 한다. 바이루 알투와 알파마 지역에 몰려있는 파두하우스는 레스토랑을 겸한다. 저녁에 방문하면 1~3회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가면 같은 그의 이름, 페소아
‘파두’의 가사에는 포르투갈의 시가 쓰이곤 했다. 그 가운데에는 포르투갈 대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가 있다. 단 한 권의 시집을 내놓았던 그는 세상을 떠난 후 3만 장의 원고가 발견되면서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작가가 됐다. 페소아는 자신의 존재를 다양하게 구분하여 각기 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시·소설·희곡·평론 등 여러 부문에 걸쳐 120여 명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의 자랑,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
페소아의 시작과 끝이었던 도시 리스본은 ‘모차르트 스페셜 리스트’로 잘 알려진 마리아 주앙 피르스(1944~)의 고향이기도 하다. 1970년 브뤼셀 베토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그녀는 다채로운 음반을 내놓았다. 2018년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던 그녀의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한 것은 지난해 온라인으로 펼쳐진 도이치 그라모폰의 ‘월드 피아노데이 버추얼 페스티벌’. 포르투갈 동쪽, 녹음이 우거진 시골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 벨가이스 센터(Belgais Center)가 그녀가 연주한 곳이다. 피르스가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해 1999년에 세운 공간이다. 자국 언론의 비판을 피해 브라질로 떠났던 피르스가 6년 전 포르투갈로 돌아와 벨가이스 프로젝트를 재건하고 있다.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매력
JTBC ‘비긴 어게인2’를 본 사람이라면 리스본과 함께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것이다. 대서양과 이어지는 도우르강 하구에 위치해 오래전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한 이곳은 ‘포르투갈’이라는 국가명에 기초가 된 도시다. 포르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을 꼽자면 단연 ‘음악의 집’이라는 의미의 카사 다 무지카이다.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 렘 콜하스(1944~)가 참여해 2005년 개관했다. 공연 특성에 따라 다각도로 움직이는 반사판, 섬세한 음향 설비를 비롯해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바꾼 독특한 건축미가 눈을 사로잡는다. 한편 포르투에서 포르투갈 남자를 만나 결혼한 조앤 K. 롤링은 이곳에서 ‘해리포터’를 써 내려갔다. 덕분에 그녀가 글을 집필하던 카페 마제스틱, 움직이는 계단의 영감을 얻은 렐루 서점은 포르투의 필수 방문코스로 손꼽힌다.

발트 3국

발트해 연안에 자리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다. 세 나라는 언어·문화적으로 한데 묶을 만한 공통점이 거의 없다. ‘발트 3국’이라는 표현도 공식 명칭이 아닌 한국·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이다.. 보통 유럽에서는 ‘발트해 연안국가’로 불린다. 강대국의 침략이 끊이지 않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발트 3국이 고유문화를 지켜낸 점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발트 3국, 노래에 진심을 담다
발트 3국의 대표적인 문화로 손꼽히는 ‘대합창제’는 제정 러시아 시절, 에스토니아인으로서의 긍지를 북돋고 독립국가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던 것에서 비롯됐다. 1869년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시작된 것이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로 퍼져나갔다. 현재 각 나라 별로 4~5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행사명은 각기 다르지만 ‘노래(와 춤의) 잔치’이라는 의미는 동일하다. 유네스코는 2008년 발트 지역 국가들의 ‘노래와 춤의 축전(祝典)’으로 묶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중 대표격인 에스토니아의 ‘라울루피두(Laulupidu)’는 지난 2019년 150주년을 맞았다. ‘라울루피두’ 시즌이 되면 에스토니아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수도 탈린으로 이동한다. 해마다 2만여 명의 합창단과 1만여 명의 무용단이 참여한다. 그 장관을 보려는 7만여 명의 관객까지 최소 10만 여명이 대합창제를 위해 모이는 셈이다. 이는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의 약 12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 각 지역마다 까다롭게 열리는 최종 오디션을 통과해 합창단원이 된 이들은 공연 참가를 위해 사업도 잠시 접어두고 라울루피두에 매진한다. 이때가 아니더라도 합창에 대한 에스토니아인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에스토니아 Estonia
수도 탈린
언어 에스토니아어
면적 453만ha(세계130위)
인구 132만명(세계155위)
GDP 313억 8,694만달러(세계96위)

발트 3국 중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는 에스토니아. 그중에서도 수도 탈린은 러시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로, 핀란드 헬싱키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페리로 접근할 수 있는 위치이다. 탈린은 13세기 독일 기사단의 십자군 원정대가 성을 세우면서 형성됐다.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중심지로 성당을 비롯한 화려한 공공건물과 독일 상인들이 지은 길드 건물이 잘 보존되어 지금도 중세 분위기를 자아낸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해 탈린 뮤직 위크는 12회를 맞이했다. 일주일간 탈린 시의 다양한 공연장에서 약 100여 개의 음악밴드가 선보이는 전 장르의 음악 축제 및 포럼이 개최된다. 합살루는 대도시이면서도 아늑한 분위기 덕에 에스토니아에서도 낭만적인 도시로 꼽힌다. 차이콥스키가 여름휴가차 다녀갔기에 차이콥스키가 석양을 감상하던 자리가 남아있다.

라트비아 Latvia
수도 리가
언어 라트비아어
면적 645만ha(세계124위)
인구 186만명(세계150위)
GDP 341억 1,720달러(세계95위)

수도 리가는 ‘발트 해의 진주’라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13~15세기에 중·동부 유럽과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리가의 초기의 건물들은 대부분 화재나 전쟁으로 파괴됐다. 하지만 중세의 중심지로서의 도시 구조가 과거의 번영을 증언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선 아르누보 양식 건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리가의 역사 지구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리가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은 근대 유럽을 대표하는 건축가 미하일 아이젠슈타인(1867~ 1921)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가는 바그너가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1836년 11월 여배우와 결혼해 리가로 이사한 바그너는 지역 오페라단의 음악감독 맡았다. 하지만 그 사이 엄청난 빚을 지어서 결국 1939년 배를 타고 리가를 떠난다. 영국으로 향하던 중 여러 차례 폭풍우를 마주했던 여정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영감이 됐다. 우리에게 러시아 노래로 알려진 ‘백만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출신의 작곡가 라이몬즈 폴스(1936~)의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에서 비롯됐다. 마리냐는 라트비아 신화의 여신이며, 가사는 강대국에 운명이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고난을 암시한 내용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백만송이 장미’와는 전혀 다르다.

리투아니아 Lithuania
수도 빌니우스
언어 리투아니아
면적 652만ha(세계123위)
인구 268만명(세계141위)
GDP 542억 1,931만달러(세계80위)

중세 시절, 북쪽으로는 발트해, 남쪽으로는 흑해에 이르는 거대한 나라를 건설했던 리투아니아. 그 화려했던 역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 빌뉴스의 역사지구에 한데 담겨있다. 고딕 건물이 주를 이루는 발트해 연안의 다른 국가에 비해 빌뉴스에는 바로크식 건물이 눈에 띈다. 침략과 화재로 일부 파괴됐지만 500년에 걸친 중세 도시의 면모는 지금도 빛나고 있다. 여행자들은 빌뉴스 외에 ‘리투아니아 현대사의 성지’로 불리는 샤울례이를 찾곤 한다. 이문열의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도입부에도 등장하는 ‘십자가의 언덕’ 때문이다. 작은 언덕 위 크고 작은 십자가가 촘촘하게 박혀있는 이곳의 풍경은 가히 이색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개인에게 뜻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언덕에 십자가를 세워 기념한다. 리투아니아에서 십자가는 예로부터 여행자의 안전을 빌거나 방향을 표시하는 우리나라 장승같은 역할을 해왔다. 한편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리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 파네베지스는 리투아니아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불린다. 리투아니아 연극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유오자스 밀티니스(1907~1994)가 설립한 극단과 그의 이름을 딴 극장이 있다. 1986년 설립되어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무대화하는 파네베지스 유랑인형극장도 이 도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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