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건용 & 극작·연출가 조광화, 광주시립오페라단 ‘박하사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8월 9일 9:00 오전

DIALOGUE 작곡가 이건용 & 극작연출가 조광화

 

비극이 아름답게

작곡가 이건용 & 극작·연출가 조광화
서울로 올라온 5·18 민주화운동 기념작, 광주시립오페라단의 ‘박하사탕’ 공연을 앞두고 만난 두 사람

이건용(1947~) 서울대와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오페라·가곡·합창곡 등의 성악과 관현악곡·실내악곡·독주곡 등의 작품을 두루 남겼다. 서울시오페라단 단장(2012~
2017)으로 재직 중 ‘세종 카메라타’를 창단·운영했다.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으로 ‘봄봄’ ‘동승’ 등이 있다.

조광화(1965~) 중앙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단막 ‘장마’(1992)로 등단한 뒤 연극 ‘남자충동’(1997)으로 연출가로 데뷔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1998) ‘백상예술대상’(1998)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작품상’(2008) 등을 수상하였다. 극작·연출한 작품으로 연극 ‘프랑켄슈타인’ ‘파우스트 엔딩’, 뮤지컬 ‘모래시계’ ‘서편제’ 등이 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기찻길에서 절규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1999)이 오페라로 재탄생된다. 1980년 5월 광주에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된 남자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비극 오페라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은 당초 이 작품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2020) 기념작으로 기획했다. 2019년 3월 제작에 돌입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2020년 공연은 콘서트 버전으로 간소하게 치르고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했다. 성악가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유튜브 영상은 2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오는 8월, 2막 6장 전막으로 서울 국립극장에서 정식 초연된다.

 

2020년 콘서트오페라 ‘박하사탕’


왜 ‘박하사탕’을 택했을까

영화 ‘박하사탕’은 거대한 폭력이 한 인간을 어떻게 훼손시키고 파멸시키는지를 다룬다. 주인공은 ‘영호’는 1980년 공수부대에 배치된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찬란할 수 있었던 스무 살 청년의 인생이 왜 망가지게 됐는지 되짚는다.

조광화     “그 시절 공수부대에 끌려가면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말인즉슨, 이건 ‘영호’만의 상처가 아니라 아픈 현대사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상처라는 거죠. 그렇게 볼 때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모두가 당사자인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부채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가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작품 구상 단계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나 강풀의 웹툰 ‘26년’도 원작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이건용     “오페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가 중요했어요. 나에게 오페라는 우선 재밌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 점에서 ‘26년’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재미있고, 무엇보다 참혹하지 않고요. 상쾌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가해자를 정확히 조준해요. “좋아, 뭐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하고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작권 문제가 하도 복잡해서 안 됐어요.”

 

영화를 오페라로 옮기기 위한 고민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뒤 결정된 것은 영화 ‘박하사탕’이었다. 오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첫째, 역순으로 진행되는 시간 구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계속 공간을 옮겨 다니지만, 오페라는 고정된 ‘무대’라는 공간에서 실연된다.

조광화     “시간이 거꾸로 가는 구성에서 오는 힘이 굉장히 크더군요. 원작의 순서를 따르되, 최대한 장면을 압축하여 오페라 대본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둘째, 주인공 ‘영호’에게만 초점을 맞춘 전개 방식. 오페라에서 한 사람만 노래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광화     “주변 인물을 보강했어요. 기념 공연이니까 최대한 많은 캐릭터가 함께하면 좋겠다, 또 주인공 영호가 내내 우울해하는데, 두 시간 넘는 공연에서 관객이 그것만 보기는 힘들잖아요. 이건용 선생님의 음악과 가사가 더해지자 인물들이 생생해 졌습니다.”

이건용     “등장인물이 각각의 음악을 가지게 됐어요. 바그너식으로 얘기하면 ‘유도동기’인데, 쉽게 말해서 각 인물의 테마곡이지요.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인물의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영호: 이래도 인생이 아름답냐? 이래도? 이래도? 인생은 지옥이다. (…) (명숙, 몸부림치다가 차츰 늘어진다. 영호는 정신없이 더 고문을 계속한다.) (…)

강현기: (말한다.) 어이, 김 형사! 괜찮아, 죽지 않았으니까. 잘 했어.

 

셋째, 잔혹한 현실을 작품으로 재현할 때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할 것인가. 이번 작품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해 현장감을 높이는 한편, 아리아에 ‘똥’ ‘우웩’ ‘미친놈’ 등 비속어와 욕설도 과감하게 사용한다.

이건용     “아니, 영화보다는 훨씬 순화했잖아요. 이 정도면 연극, 뮤지컬에서는 약과 아니에요?”

조광화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해요. 너무 날것 그대로면 객석에서 불편해해요. 정말 오페라에서 욕하는 건 저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요?”

이건용     “오페라가 현실과 유리되면 안 되죠.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면서, 그야말로 가장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초연 한 번 보죠, 뭐. 그리고 또 고치죠.”

 

광주시립오페라단
5·18 민주화운동 기념 공연
오페라 ‘박하사탕’
8월 27·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이창동(원작)/이건용(예술감독·작곡)/조광화(재창작·연출)/이소영(제작감독)/윤호근(지휘)/김인재(합창지휘)/오케스트라 디 피니/광주시립합창단·노이 오페라 코러스/윤병길·국윤종(김영호)/최병혁·나건용(강현기)/윤상아·김순영(윤순임)/정주희·김샤론(박명숙) 외

 

 

 

 

 

 

 

 

 

 

 

 

 

 

 

 

 

 

 

 

 

죽어가는 사람은 노래할 수 있을까

오페라에서 대본과 음악은 상호 의존적이다. 조광화가 대본 초안을 넘기면, 이건용이 오페라적인 노랫말과 구성으로 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오페라 ‘박하사탕’이 차츰 형상을 갖췄다.

조광화     “명숙은 영화에는 없는 캐릭터에요. 과거 총상을 입은 영호를 치료해주지만, 시위를 하다가 영호에게 고문당해요. 그런 명숙의 테마곡은 ‘삶은 아름다워’예요. 영화 속 고문당하는 학생의 수첩에 적힌 글을 차용한 대사인데, 선생님께서 아예 노래로 만들어주셨어요.”

 

저들이 원하는 건 /우리의 좌절 / 우리의 절망 / 우리의 복종이기에 / 나는 외칩니다, 여러분께 / 삶은 아름다워 / 삶은 아름다워라 / 수많은 바람에 꺾인 / 늙은 소나무를 보아라 / 날카로운 모래를 삼켜 / 상처난 조개를 보아라

 

조광화     “노래가 참 아름다워요. 역사의 비극이고 아픈 이야기인데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 행복해해도 되나 그런 아이러니가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음악의 힘으로 비극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 패배감이 아닌, 비극을 이겨낸 승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건용     “음악은요, 콕 찍어서 고발을 못 해요. 그러나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음악이 최고죠. 사실 명숙이라는 캐릭터를 처음엔 난 참 이해를 못 했어요. 무조건 삶은 아름답다고 억지 주장하는 격이잖아요? 그런데 그 억지가 아니었으면 광주민주화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낸 그 힘이야말로 위대하다고 나는 증언하고 싶은 거예요. 삶의 힘을 노래하는 오페라로요.”


그 시절을 기억하겠다는 화답가

이건용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생명의 힘을 확인해주는 원천”이고, 조광화에게는 “덮어두고 또 덮어두어서 응어리진 민족의 한(恨)”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작품 연구를 위해 찾은 곳은 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공원묘지.

조광화     “묘비 명패만 봐도 몸과 마음 자세가 바로 달라지더라고요. 다른 것 할 거 없이, 이분들 성함만 나열해도 그 자체로 힘이 생길 것 같았어요.”

이건용     “이름에는 하나의 존재가 가진 무게와 역사가 압축되어 있어요. 우리는 너무 쉽게 ‘500명의 희생자’하고 마는데, 그 이름을 일일이 불러보세요. 실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죠.”

2장을 여는 ‘망월동의 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다. ‘묘비들’ 역할의 합창단은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합창한다. 독창을 하기도 하는데, 가사 내용은 묘비 뒷면에 쓰인 사연에서 발췌했다. 등장인물들은 어그러진 삶을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한다. ‘박하사탕’은 누군가의 이름을 길이길이 부르는 오페라다.

조광화     “캐릭터의 이름을 자꾸 불러주면 관객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겨서 유리하기도 하고요, 영호와 첫사랑 ‘순임’ 사이에 그렇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싶었어요.”

이건용     “이름을 불렀을 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객석에 있을 수 있잖아요, 특히 광주에서는요. 그건 의미 있는 일이죠.”

이건용의 말을 들으니 오페라 ‘박하사탕’은 그날, 그 사건에 대한 40여 년 만의 화답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는지 물었다.

이건용     “그저 재밌게 봐주세요. 아름다운 장면,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 심지어 웃긴 장면도 있어요. 1980년 5월 광주로 저희가 모셔드릴 테니까요.”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광주시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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