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8월 9일 9:00 오전

“EDITORS’S NOTE 기자 공연수첩”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그가 들었던 소리

6월 22일~7월 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파스칼 키냐르(원작)/황정은(각색)/오경택(연출)/이진욱(작곡)/김종석(무대)/석재원(프로듀서)/정동환(시미언 역)·김소진(내레이터 역)·이경미(로즈먼드 역)/
김인애(피아노)·이현정(첼로)·양미현(플루트)·명다솜(바이올린) 외

 

 

 

 

 

 

 

 

 

 

 

 

 

 

 

 

 

 

 

연극의 출발점은 희곡이지만,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1948~)의 희곡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2017)의 출발점은 소리였다. 언어학자와 음악가의 핏줄을 모두 이어받은 키냐르는 자신이 즐겨 연주하는 작품을 쓴 무명 음악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로 시미언 피즈 체니(1818~1890)에 대해.

성직자이자 음악학자였던 그는 사제관 정원으로 날아든 새소리를 연구하고 기보하는 데 20년의 세월을 몰두했다. 당대에 체니는 ‘새소리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괴짜 취급을 면치 못했다. 희곡 속 묘사에 의하면 음악학자들은 “자연 그대로의 멜로디를 인간 음계의 임의적 기보에 억지로 편입시켰다”, 생태학자들은 “새를 새장에 가두었다”며 힐난했다. 그러나 그에게 작곡은 딸을 출산하다 먼저 떠난 아내를 기억하는 행위였다.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들리는 소리를 악보에 옮김으로써, 아내에 관한 일부라도 영원히 간직하려 했다. 작가 키냐르는 바로 이 점에 매료되었고, 아내이자 어머니의 죽음으로 서로의 존재가 상처가 된 부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소리에 대한 희곡이니, 연극 또한 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음악적 묘사에 탁월한 키냐르의 문체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말로써 형용된 소리를 실제로 구현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예컨대 “새들의 노래에는 천국의 무엇이 있다”라는 대사로 찬미한 새의 노랫소리 같은 것들. 더구나 이번 공연은 프랑스에서 열린 낭독극을 제외하면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의 세계초연이었다. “체니의 ‘야생 숲의 노트’를 최대한 활용해달라”는 원작자의 특별주문이 더해졌다.

‘야생 숲의 노트(Wood Notes Wild)’(1893)는 시미언 피즈 체니가 일평생 남긴 유일한 악보집이다. 총 261쪽에 달하는 악보를 펼치면 파랑새·지빠귀·멧종다리·박새 등 온갖 새의 노랫소리가 오선지 위에서 음계를 이룬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사물에도 음악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체니는 정원에 놓인 양동이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까지 악보에 담았다. 오늘날 음악의 범주에서 자연·인공적인 소리를 녹음한 ‘사운드스케이프’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안에서는 드보르자크(현악 4중주 12번)와 라벨(‘거울’), 메시앙(‘새들의 카탈로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연극에서 소리는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었다. 작곡가 이진욱(음악감독)은 ‘야생 숲의 노트’, 메시앙의 ‘검은 티티새’ 등을 재해석한 음악으로 배경음악과 음향효과라는 두 가지 역할을 빈틈없이 채웠다. 극 중 인물의 정서에 따라 편성이 바뀌었고, 무대 위 4중주단(피아노·플루트·바이올린·첼로)이 라이브로 연주했다. 플루티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는 새소리를 연주하며 쪼르르 체니를 뒤따라가는 연기도 펼쳐 보였다. 모든 출연 배우가 피아노를 배워 직접 연주하여 몰입감을 더했다. 이외에 60여 대의 스피커를 통해 새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를 원근감 있게 들려줌으로써 관객이 마치 체니의 사제관 정원 한가운데 앉아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푸치니의 광활한 상상력

7월 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니콜라 베를로파(연출)/피에트로 리초(지휘)/아우렐리오 콜롬보(무대)/카린 바바잔얀·이윤정(미니)/마르코 베르티·국윤종(딕 존슨·라메레즈)/양준모·최기돈(잭 랜스)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연기됐던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 국내 초연이 마침내 성사됐다. ‘서부의 아가씨’가 난곡으로 분류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주역을 맡은 성악가들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에 까다롭기 때문이다. 무대에 여성은 여주인공 한 명만 등장하고,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이어서 많은 연주자가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흔하게 올라가는 작품이 아니어서 이번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서부의 아가씨’는 귀한 국내 초연이었다.

오페라 원전 그대로의 해석을 마주할 때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은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푸치니 오페라 중 비교적 현대사회를 담고 있어서 연출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니콜라 베를로파(1981~)는 2018년 국립오페라단 ‘코지 판 투테’를 21세기 감각으로 색다르게 변용해 화제를 모았다. 18세기 나폴리 배경의 이야기를 1950년대 할리우드를 연상시키는 시공간으로 옮겨왔고, 단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로 속도감을 높였다. 반면 이번 ‘서부의 아가씨’는 원전 그대로의 해석을 중요시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시골을 그대로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었고, 지휘자 피에트로 리초(1973~)도 푸치니가 악보에 밝혀 놓은 걸 분명하게 지시했다. 덕분에 푸치니의 상상력을 온전히 즐기는 시간이었다.

푸치니는 이 작품을 1910년에 완성했다. 미국에서 극작가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연극 ‘황금 시대 서부의 아가씨’를 보고 매료된 푸치니는 바로 이 오페라 작업에 들어갔다. 미국 서부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이었기에 푸치니는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상상력을 죄다 악보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서부의 아가씨’ 오케스트레이션은 관악기 음색이 보다 풍부하면서도 인물들의 짙은 정서까지 세심히 담아 서정적이다. 코리안심포니는 리초의 지휘 아래 푸치니 악보에 담긴 모든 음표를 완벽히 구현했다. 코리안심포니 단원 한 명 한 명의 기량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주역을 맡은 이윤정(미니 역), 국윤종(딕 존슨 역), 최기돈(잭 랜스 역)은 옛 미국 서부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들로 완벽히 분했다. 극중 미니는 ‘강인한 여성’보다는 ‘섬세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윤정의 부드러운 연기 덕인지 그녀가 딕 존슨에게 느끼는 열망은 대책 없이 빠져든 사랑보다는 모성애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덕분에 미니는 더 현숙한 여인으로 그려진 듯하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

 

강효정 바로크 첼로 독주회

바로크 음악의 원형을 찾아

7월 4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

 

강효정은 쾰른 음대에서 바로크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전공하고 알테 무지크 서울을 창단해(2009) 바로크 음악의 전통을 한국에서 이어오고 있다. 강효정은 1부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BWV1007, 2번 BWV1008을 연이어 연주하고 우리에겐 드라마 ‘하얀거탑’의 OST로 친숙한 김수진(1971~)의 첼로 독주곡 ‘들풀과 바람의 땅’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에서는 가브리엘리(1659~1690)의 리체르카레 1·3번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BWV1009를 연주했다. 그는 바닥에 엔드핀(첼로를 지탱하는 지지대)으로 첼로를 기대지 않고 바닥에서 첼로를 떼어 무릎 사이에 고정해 끌어안는 듯이 연주했다.

그래서 소리는 악기가 아닌 연주자로부터 나온 것처럼 보였다. 이렇듯 악기와 몸이 한몸이 되었지만, 사실 바로크 악기는 잘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강효정은 무대에서 길길이 날뛰는 첼로의 음색과 사투를 벌이는 듯 했다. 사투 속에서 움튼 음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저절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무대에서 대기 중으로, 다시 대기에서 무대로. 그 자유로움 속에서 바로크 음악은 만들어졌다.

그는 이번에 연주한 바흐의 첼로 모음곡 3곡과 중국의 시인 두보(712~770)의 시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았다. 공연은 두보의 시를 먼저 감상한 뒤 연주를 이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그는 두 작품을 아우르는 제목도 선정했는데, 두보의 시 ‘봄밤 내리는 비에 기뻐서(春夜喜雨)’와 모음곡 1번을 ‘봄을 맞이하는 편안함’으로, ‘사람이 무섭다(畏人)’와 모음곡 2번을 ‘슬픔과 휴식’으로, ‘소나무 네그루(四松)’와 모음곡 3번을 ‘영웅적 희망’으로 엮었다. 공연은 연주자가 이해한 바흐와 두보의 시적 감수성 사이를 오갔다. 그 덕분에 관객은 두 가지 방법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연주자가 이끄는 감상대로 쉽게 따라가거나, 시의 감상과 음악의 감상을 개별적으로 하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삐걱거림과 어수선함은 바로크 음악의 미덕이다. CD의 매끄러운 소리가 아닌, LP의 모닥불 튀는 소리를 사랑하는 부류처럼 기자는 바로크 음악의 어수선함이 좋다. 조율이 덜 된 듯한(실제로 모던악기가 바로크악기와 합주할 때 440Hz에서 반음 낮춘 415Hz로 조율한다), 정돈된 음정이 아닌, 날 것의 소리가 바로크 음악이다.

시원(始原)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바로크 음악은 현에 압력을 주기보다 스치듯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비브라토가 주는 인위적인 풍부함을 지양하고 악기 내부의 공명을 더욱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브라토를 하지 않는 활시위에서는 바람의 소리가 난다. 강효정의 연주는 그러한 면에서 바로크 음악의 원형을 잘 보여준 연주였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알테 무지크 서울

강효정(바로크 첼로)

 

 

 

 

 

 

 

 

 

 

 

 

 

 

 

 

 

KBS교향악단 실내악 바흐의 세 가지 선물

새로운 바흐를 듣는 이유

7월 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1989년 4월의 어느 날 밤,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바흐의 현악 3중주가 울려 퍼졌다. 바흐는 현악 3중주를 쓰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인 건반 음악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1954~)가 편곡해, 비올리스트 제라르 꼬스(1948~), 첼리스트 다비트 게링가스(1946~)와 함께 선보인 것이었다. 이날 밤을 기록한 ‘뉴욕 타임스’지에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후기가 실렸다. “‘현악 3중주 편곡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왜?’라는 질문을 품고 다가갈 수 있을 만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흘렀지만, 그 한 글자 ‘왜?’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7월 16일 진행된 KBS교향악단의 세 번째 실내악 시리즈로, 이 작품이 선택됐다. 세 연주자(바이올린 반선경, 비올라 진덕, 첼로 윤여훈)는 왜 이 곡을 택했으며 이 무대로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공연엔 ‘바흐의 세 가지 선물-질서, 균형 그리고 조화’라는 부제가 달렸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가 ‘음악적 삼위일체’를 이루며 선사하게 될 세 개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었다.

그 목표를 ‘연주’로 이루어 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세 개, 때때로 네 개 성부를 나누어 맡는 세 연주자 사이에서 보다 민첩한 앙상블이 이뤄졌다면, 질서 있는 대위법의 묘미를 훨씬 진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리라. 하나 된 호흡을 추구하기보다 특정 악기가 전면에 나서려는 순간도 종종 포착돼 균형감에 있어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군더더기가 적잖은 비브라토는 ‘맥시멀리스트’라는 말로도 연주를 수식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오늘의 무대는 ‘춤’이라는,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요소를 이 시대 청중에 상기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활을 든 연주자들은 가보트, 코렌테, 지그 등 이 곡이 지닌 춤의 리듬을 눈으로도 확인시켜 주었다. 현악 3중주 편성이기에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던 성격이다. 시트코베츠키는 ‘파격’이란 수식이 따르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바탕으로 현악 3중주 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무대에 오른 세 연주자에 의해 이 곡은 다시금 조명됐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한 줄기를 타고 이어지는 이러한 시도들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한다. 이제 또 다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궁금해진다. 누군가 ‘왜’ 피아노가 아닌 편곡 버전을 듣느냐 묻는다면,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청자의 기대가, 치열한 고민 끝에 이뤄지는 설득력 있는 연주로 화답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KBS교향악단

반선경(바이올린), 진덕(비올라), 윤여훈(첼로)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