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자 시대의 아리아’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8월 31일 9:00 오전

전자 시대의 아리아 외
음악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

첼리스트 카잘스 –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편 | 김병화 역
22,000원 | 한길사

“예술가라고 해서 인권이라는 것의 의미가 일반 사람들보다 덜 중요할까요?” 제1·2차 세계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낸 첼리스트 카잘스(1876~1973)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카잘스가 구술한 내용을 작가 앨버트 칸이 엮었다. 카잘스는 ‘첼로 연주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재발견하고 혁신적인 첼로 운지법을 개발한 첼로계의 거장이다. 근현대사에 충격을 안겨준 세 차례의 전쟁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동의 가치를 바로 보고,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알았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맥락과 깊이는 문자 이상의 무게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런 순간, 이런 클래식

김수연 저
16,000원 | 가디언

클래식 음악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을 더욱 아름답고 빛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좋을지 모르는 초심자를 위한 책이다. 30여 년간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온 저자는 음악이 필요한 순간 ‘찰떡같이’ 어울리는 곡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산책할 때 듣기 좋은 음악으로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을 추천한다. 왜 이 곡을 들으면 더 활기차고 기분이 좋아지는지, 슈베르트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 곡을 만들었는지 등 작품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들려준다. 수록된 96곡의 음악과 96개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듣고 읽다 보면 매 순간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다채로운지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문화와 판소리

서종문 저
10,000원 | 경북대학교출판부

고등학생 정도면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판소리를 설명한 책이다. 판소리는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에 뿌리박고 자라 온 공연예술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전통 소리판은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선 감수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저자는 현재도 자주 공연되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의 사설을 중심으로 판소리의 특성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보다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레코드판을 선택해서 해설과 논평을 곁들였다. 저자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석사를 졸업했으며, 대표논저로 ‘판소리 사설 연구’(1984) ‘판소리의 역사적 이해’(2006) 외 논문 다수가 있다.

공공 공연장의 길

허난영 저
18,000원 | 씽크스마트

우리나라에 공공 공연장은 1000곳이 넘는다. 저자인 허난영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전략팀장은 현장에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공공 공연장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저자는 ‘공공 공연장 법적 지위전환이 지니는 의미’와 ‘공공 공연장 문화자본의 속성과 추구해야 할 정의’에 대하여 연구했고 그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2018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개관 프로그래밍과 브랜드 전략을 수행하며 ‘공간’이 부여하는 의미를 발견한 저자는 코로나19로 공연예술계가 급변하는 지금이 공공 공연장이 본질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공공 공연장이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전자시대의 아리아

신종원 저
14,000원 | 문학과지성사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신종원(1992~)의 첫 소설집이다. 당선작 ‘전자 시대의 아리아’가 표제작으로 실렸다. 기억을 형성하고 역사를 구축하는 소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음악적 질서. 저자는 총 8편의 단편에서 이를 기민하게 포착하여 세밀하게 기획된 서사 안에 녹여내고 스스로 강력한 지휘자가 되어 정돈된 리듬으로 풀어낸다. 소설 안에서 음악은 ‘수학적 속삭임’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신호를 보내오는 장치’로, ‘수백 곡의 교회 아리아 가운데 한 소절과 정확하게 맞물린 음성 파형’으로 등치된다. 이는 “음악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끊임없는 사유 속 자문자답처럼도 느껴진다.

<책 속의 문장, 저자의 해설>

이 둥글고 단조로운 세계 자체가 어떤 작곡가의 음악이라면, 아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절대적인 시점이 하나 있고, 이 천재 작곡가의 변덕스러운 약물 사용법에 따라서, 마침내 네가 특정한 표지 또는 전조처럼 세상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98쪽)
“음악에 대한 저의 관점이 가장 적극적으로 노출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음악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 음악을 구성하는 기표일지도 모릅니다. 각자에게 부과된 역할은 또한 운명으로도 옮겨 쓸 수 있겠죠. 다 카포나 페르마타처럼요.”

이따금 어떤 사운드들은 너무나도 불경한 나머지 하늘이 정해놓은 수명을 어겨버린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저절로 중단되지 않는다. 위대한 걸작들은 그들을 태어나게 한 손보다, 정신보다 오래 살아남아 우주와 대등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233쪽)
“음악사 전부를 통틀어 영원히 불멸하는 이름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손에서 만들어진 푸가들을 떠올려 보세요!”

이따금 당신이 부는 휘파람 소리. 성부가 하나뿐인 그 노래는 일면 쓸쓸하고 외로운 구석이 있다. 어느 아이돌 그룹의 유행가 멜로디를 흉내 내는 걸까. 기억도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모놀로그 또는 아리아와 같은. (70쪽)
“위 단락에서 화자는 “기억도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이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말이 담기는 그릇이니, 제가 충분히 예민하게 들을 수만 있다면 기억에도 목소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바라고 있습니다.”

돌림노래는 카논의 일종이지만 카논에는 코다가 있다.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는 구조다. (…) 마지막 남은 세이렌은 모든 노래를 끝내려는 사람으로 이 땅에 왔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카논 음악의 마지막 성부가 되려고. (…) 나는 파괴적인 음향신호이다. 마지막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이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279쪽)
“인용한 부분은 ‘작은 코다’의 한 문단입니다. 저는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는데, 해당 지면에 위와 비슷한 뉘앙스의 수상소감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마지막 세이렌이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일종의 ‘코다 찍기’가 저의 글쓰기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빛의 밝기만으로 서열을 나눌 수 있다면, 모든 조명을 독점하고 있는 엘가야말로 전부이다. 장소가 가장 앞세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정보가 바로 그 악기인 셈이다. 게다가 엘가를 둘러싼 외관 장식과 전시용 시설들은 노인과의 권력 차를 끊임없이 확인시키지 않는가.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모든 꾸밈새들이 단지 부장품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171쪽)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둘입니다. 어느 나이 많은 스트라디바리 악기와 심혈관계 질환으로 죽어가는 노인.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존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향해 가며 서로의 기억과 영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장면으로, 결국 모든 흐름이 음악적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두와 함께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INTERVIEW
소설가 신종원

음악이 글쓰기의 원료로 처음 인식된 때는 언제입니까?
음악과 문학을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 된 시기는 비슷합니다. 아마도 중학생 시절로 기억하는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음악과 문학이 조합된 글쓰기는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음악을 문학 안으로 끌어들인 소설이 ‘밴시의 푸가’(2020)인데요. 이 소설을 쓰기 직전에 읽었던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프란츠, 2017)와 김태용의 연작 소설집 ‘음악 이전의 책’(문학실험실, 2018)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책을 읽으면서 음악과 문학이 처음부터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들었고, 이런 상상력으로 음악과 소설을 엮기 시작했습니다.
신종원의 세계에서 소설과 음악은 어떤 관계로 엮입니까?
‘전자 시대의 아리아’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들을 백 년 만에 다시 되살리기 위해 기획된 소설입니다. 저는 작곡법에 따라 악보 용지 위에 차마 옮겨 적을 수 없는 노이즈와 잔향들을 일부러 전시하고 노출시킵니다. 음악은 저에게 질서처럼 감각됩니다. 악보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작곡가에 의해 선택받은 음향학적 기표들입니다. 이 조그만 상징물들은 다섯 개의 수평선과 네 개의 공백 집합 안에 가만히 웅크린 채, 특정한 청각적 신호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악보 바깥에서 우리가 듣는 소리는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자연스럽게 음악은 음향의 최소화를 목적으로 둘 수밖에 없는 것이죠. 거꾸로 소설은 음향의 최대화를 나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매체입니다. 그러니까 소설은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음향학적 잔해들을 다시 듣는 장소이자 장치입니다. 버려지는 음향들이 존재하는 한 이들을 올바로 듣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소설로 만들며 ‘유실되고 만 소리’가 있지 않나요?
소설 안에 비어 있는 음향학적 공백들을 또 다른 소리로 채우는 몫은 온전히 독자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화자와 청자, 작가와 독자, 작곡가와 관객이 하나의 장소, 하나의 마디, 하나의 음향에서 동시에 공명하며 가장 조화로운 하모닉으로 공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에도 음악을 소재로 구상한 작품이 있나요?
10월에 출간 예정인 두 번째 소설집(자음과모음)에 ‘아나톨리아의 눈’이라는 소설이 수록될 예정인데요. 이 소설은 십면체 주사위를 굴려 나온 무작위 값으로 이야기들을 진행해야 합니다. 첫 번째 나온 값이 ‘2’였고, 그래서 쇼팽의 녹턴 2번을 주제로 썼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느 폴란드인 음악가가 어떤 이유로 존 필드에 의해 다시 발굴된 녹턴을 스물한 개나 이어 쓰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녹턴으로 밤을 닫았네요.
보통 소재와 자료는 어디서 얻나요?
운이 좋게도 클래식 음악의 기악과 전자음악 작곡을 전공한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재학 중에는 기초 화성학 수업을 몰래 도강하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음향학 서적을 뒤적이기도 하고요. 유튜브에서도 크게 도움받고 있습니다.
음악 감상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과 전자음악을 골고루 듣습니다. 자주 즐겨듣는 곡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바흐입니다. 유튜브에서 막심 벤게로프가 공연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꼭 들어 보세요. 한편, 글을 쓸 때는 전자음악을 듣는 편인데 앰비언트를 선호합니다. 이쪽은 주로 사운드클라우드를 이용해 듣고 있어요. 공연도 한두 번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무척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다시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음악을 위한 소설을 쓸 건가요?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지면으로 저를 처음 알게 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제 이름인 ‘종원’은 쇠북 종(鐘)에 근원 원(原)으로 조부께서 지어 주셨는데요. “종울림” 또는 “종소리의 기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앞으로도 최초의 음향, 가장 처음의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글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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