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 만돌린, 얼마나 알고 있나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8월 9일 9:00 오전

“MEET THE ARTIST 12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⑫ _ 마지막 회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

만돌린,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음악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실력을 갖춘 비르투오소들이 그 악기의 전반적인 연주 수준과 지명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 작곡가들은 특정 연주자에 매료되어 그 악기를 위한 명곡들을 쏟아내곤 했고, 심지어 연주와 작곡을 겸하며 레퍼토리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음악가들도 있었다. 피아노로 치면 리스트와 쇼팽, 바이올린은 파가니니, 플루트는 테오발드 뵘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적인 깊이는 물론이고 이전보다 향상된 기교를 요구하는 곡들이 계속해서 더 좋은 연주자들을 만들고, 그들이 작곡가에게 다시 영감을 주며, 덤으로 그 악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까지 모여 커다란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비 아비탈(1978~)은 만돌린이라는 악기의 역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만돌린계의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와 바로크 시대에 많은 이가 취미로 즐겼다는 이 악기는 이스라엘 출신 아비탈에 의해 클래식 음악계에서 독주 악기로 더 많은 빛을 보게 되었고, 작곡가들도 앞다투어 그에게 만돌린 곡을 헌정하기 시작했다. 그가 초연한 만돌린 곡만 해도 100여 곡이며, 아비탈은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을 누비며 만돌린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마침 베를린 자택에 머물던 그는 인터뷰 중 만돌린은 물론이고 집 안에 있는 수많은 기타와 그리스의 전통 현악기인 부주키 등을 보여주며 연주와 비교 설명까지 곁들여주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만돌린 전도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말이지 일생에 한 번쯤 아비탈이 선사하는 만돌린 공연을 직관해봐야 하지 않을까.(영상 인터뷰는 QR코드 참조)

최나경과 온라인으로 대화 나누는 아비 아비탈

 

 

 

 

 

 

 

 

 

웹사이트를 보니 벌써 올해 하반기 공연 일정이 빡빡하다! 그렇다.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던 공연들이 대부분인데, 정말이지 일주일 사이에 공연 일정이 0개에서 100개로 늘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쉬고 나서 다시 대대적인 투어를 시작하려니 제법 낯설다. 그래도 공연이 파도처럼 몰려오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지난달 제니퍼 히그던(1962~)의 만돌린 협주곡을 초연하는 공연에 초대해 주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가봐서 아쉬웠다. 퓰리처상의 수상자이기도 하고 커티스 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있는 히그던도 재스민(최나경)을 잘 안다고 해서 세상이 참 좁다고 생각했다. 만돌린이라는 악기가 더 알려지기 위해 인지도 있는 작곡가들이 곡을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협주곡을 써 달라고 8년이나 졸랐다.(웃음) 사실 ‘만돌린’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작곡가들이 즉시 영감을 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몇 년 전 필라델피아에 갔을 때 그녀를 직접 만나 연주를 들려주었다. 만돌린에 대한 고정관념 따위는 다 버리고 들어보라고 했고,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드디어 협주곡을 써줄 것을 약속했다.

초연 작업 외에도, 방대한 양의 편곡을 직접 하는 것을 보며 동질감을 많이 느끼곤 한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대사다! 바이올린곡을 플루트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며 나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편곡할 때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그것이 만돌린에 정말로 어울리는 곡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매우 잘 알려진 곡을 편곡해서 연주할 때는 전연 새롭게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아비 아비탈 공식 홈페이지

아비 아비탈 인스타그램

최나경 인터뷰 유튜브 영상

 

 

 

 

 

 

 

 

 

 

 

 

 

 

 

 

친절한 아비탈이 들려주는 만돌린 특강

자, 이제 한국 팬들을 위해 당신에게 항상 던져지는 단골 질문부터 해 보자. 어떻게 만돌린을 시작하게 되었나? 정말이지 평생 해 본 인터뷰 중에 이 질문이 없었던 적이 없다! 부모님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으셨지만, 이웃집 형의 만돌린 연주에 반한 나에게 만돌린을 사 주셨다. 줄을 튕기면 바로 소리가 나는 게 그야말로 마법 같다고 생각했다.

만돌린이라는 악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 설명을 부탁한다. 우선 더 친근한 악기인 기타는 6개의 줄이 있는 한편, 만돌린에는 8개의 줄이 있고, 그 음역은 바이올린과 같다. 반주와 멜로디를 동시에 칠 수 있는 기타와 달리 만돌린은 플루트처럼 선율 악기이다.

그렇다면 편곡을 할 때 기타곡보다는 바이올린곡이 더 수월하겠다. 물론이다! 바이올린과 음역과 조현법이 같기 때문에 만돌린에 적합한 곡이 많다. 지판을 짚는 왼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이올린과 운지법이 완전히 똑같다. 다만 우리는 활이 없으니 음을 길게 지속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면 조금 곤란한 점이 있다.

4개의 줄이 두 개씩 있는 것인데, 그 이유나 장점이 있는지? 하나를 쳤을 때보다 두 개를 같이 쳤을 때의 음색이 더 좋다. 장점이 있다면 줄 하나가 끊어져도 남은 줄로 계속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음색은 달라진다.

아, 각각 따로 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두 줄을 같이 치는 것이었다니! 그렇다. 두 줄이 너무나 가깝게 붙어 있어서 한 줄만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너무나 흥미롭다. 만돌린의 역사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 만돌린은 당시 유행했던 악기인 류트의 소프라노 버전이었다고 보면 된다. 모든 악기가 그렇듯 만돌린도 계속해서 변형되었는데, 17세기가 되어서야 이탈리아에서 그 완성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18세기에 가장 크게 유행했다. 이탈리아 안에서도 베네치아 만돌린(비발디가 사용했던 6개의 더블 스트링이 있는 만돌린), 네오폴리탄 만돌린(현재까지 남아있고 가장 많이 쓰이는 만돌린), 밀란 만돌린, 크레모나 만돌린이 있었는데 각각의 악기 모양과 튜닝이 달랐다.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던 만돌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악기를 시작하고 어떤 곡을 연주하기까지 수월한 편이라, 많은 사람이 취미로 만돌린을 연주했다. 성량은 믿을 수 없이 작아서 콘서트홀이나 길거리에서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귀족들의 살롱음악회에서 주로 등장했다. 당시 귀부인들이 쓰던 만돌린을 보면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보기에 아름답긴 하지만 소리의 울림을 끔찍하게 방해한다. 만돌린은 귀족들의 취미 악기로 인식이 되는 바람에 진지한 클래식 음악의 악기로 각광을 받거나 발전하지 못했다.

 

만돌린의 새로운 주법

다시금 만돌린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당신은 전에 없던 주법도 많이 개발했을 듯한데. 사실 내 오른손 주법은 만돌린 전문가들이 본다면 꽤 부자연스럽다. 나의 첫 스승은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러시아 유학 후 돌아와 직업을 찾던 중 어느 학교에서 만돌린 교사를 찾고 있던 터라, 그 김에 만돌린을 독학으로 터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가 터득한 방식으로 만돌린을 배웠다. 23세 때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야 그것이 정석에 맞지 않는 주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두었다.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수 있나? (기타의 피크처럼 보이는 플렉트럼을 들고 오른손 주법을 보여주며) 솔직히 말하자면 ‘정석’보다 더 쉽고 더 효과적인 주법이다. 첫 스승의 무지가 결국 더 나은 만돌린 주법을 개발한 셈이다. 게다가 당시 그 도시에 다른 만돌린 주자도 없었고 만돌린 악보를 구할 수 있는 인터넷도 없다 보니, 만돌린 곡 대신에 그가 알고 있던 수많은 바이올린곡을 배웠다. 기존의 만돌린 연주 테크닉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좋은 훈련을 한 셈이다.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만돌린 전공자에게 배웠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미 이스라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연주 커리어도 쌓았지만, 만돌린이라는 악기의 고향에 가서 제대로 악기를 익히고 싶었다. 만돌린 교수님의 정석 주법은 당시 내가 하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지만, 모든 것을 흡수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나의 연주는 이제까지의 가르침을 다시 나만의 테크닉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만돌린 전공이 있는 음악학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한 미국에는 아직 없는 것 같다. 물론 이탈리아에 몇 군데가 있고, 독일 쾰른 근처의 음대에도 만돌린 전공이 있고, 이스라엘에는 내가 나온 학교에서 아직도 같은 분이 만돌린 전공자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신기하게도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만돌린을 취미로 가르치고 있어서, 그로 인한 아마추어들이 엄청 많다. 도쿄에 만돌린 오케스트라가 100개가 넘을 정도다. 이전에 한국에 공연하러 갔을 때도 만돌린 애호가들이 많이 구경 와서 기뻤다.

만돌린 애호가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심지어 알래스카에 공연을 갔을 때에도 아마추어 만돌린 연주자가 많이 왔다. 만돌린 애호가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있다. 하지만 애호가의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메인 클래식 음악계에 이 악기를 소개하고 싶었고, 그걸 이루고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 만돌린을 잘 아는 사람들도 좋지만, 이 악기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보람과 희열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 공연에서 만나길

공연이 많이 취소된 팬데믹 기간에 생긴 취미생활이 있는지?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었다! 먼저 대답해 달라. 보다시피 음악인들을 인터뷰하고 글과 영상을 만들었다. 이제 일 년이 지나 당신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다시 연주활동에 집중할 시간이다. 인터뷰 영상들을 흥미롭게 봤다. 나는 다른 악기들을 시도해보고 여러 나라의 전통음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익히게 되었다(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를 가져와 그 스케일이 특이하다며 즉석 연주를 해보였다). 그리고 집에 있는 드럼도 많이 쳤는데, 그건 너무 못해서 절대로 못 들려줄 거 같다(웃음)!

한국에 있는 ‘객석’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2016년 한국에 공연 갔을 때 정말이지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곧 다음 내한공연이 성사되어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글 최나경(플루티스트)

 

팬데믹으로 무대를 잃어버린 음악가들과 화상으로 만나며, 무대 뒤의 음악과 예술 이야기를 나누어온 최나경의 ‘MEET THE ARTIST’ 연재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손열음·조성진(피아노), 힐러리 한(바이올린), 안드레아스 오텐잠머(클라리넷), 루이 랑그레(지휘) 등을 만나왔는데, 이 인터뷰들은 월간객석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간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주신 플루티스트 최나경 님에게 본지는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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