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빗장이 풀리다 책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2월 14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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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 good

예술을 담은 책 | 글 임원빈 기자

 

예술의 빗장이 풀리다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박종호 저

16,000원 ┃ 풍월당

한 언어를 처음 배우는 이에게 그 언어의 발음을 제대로 익히는 일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에게 언어의 발음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듣는가?’일 것이다. 책은 음악의 감상법부터 음악이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는지 소개하고, 우리 사회에 잘못 뿌리내린 클래식 음악 문화도 되돌아본다. 저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오랜 시간 음악 감상의 정도를 탐색해왔다. 그의 발걸음은 음반과 책, 강연 등으로 클래식 음악을 깊이 탐구하는 공간인 풍월당 설립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클래식 음악의 문화적 가치와 교양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저술과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클래식 한잔 할까요?

 

 

 

 

 

 

이현모 저

17,800원 ┃ 다울림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쁨은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함께 음미할 때 더욱 커진다. 아직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독자는 공식처럼 외우는 작품 번호와 작품의 구성은 잠깐 내려놓자. 먼저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먼저 만나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책은 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듯,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과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고, 교향곡 1번을 발표하고 혹평으로 좌절을 맛본 말러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음악가들은 당신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가 된다. ‘나 혼자 음악회’ ‘클래식 사용설명서’ 등을 발간한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책에 소개된 작품은 책 속에 소개된 사이트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 저

17,500원 ┃ 도서출판 등

플레터에 LP를 올리고 틀어진 톤암의 무게 추를 조절한다. 회전하는 LP판 위로 조심히 카트리지(음원을 읽는 바늘이 있는 장치)를 올리니 “지지지직”소리와 함께 먹먹히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과정은 마치 음악회를 가기 위해 옷을 갖추어 입고 나서는 이의 설렘과 같다. 요즘에는 이러한 음악을 만지는 과정의 매력을 아는 MZ세대도 늘고 있는 것 같다. 책은 LP로 즐기는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한편, 음악을 기록하기 위해 발전해온 음반의 역사를 소개한다. 초기 음반의 형태인 SP(스탠더드 플레잉)는 4분밖에 기록되지 않아 30여 분이 넘는 교향곡을 담기 위해 4장의 음반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예술과 노동, 다시보기

 

 

 

 

 

 

신현진·최인이·정윤희·이광석·고동연·안진국 저

27,000원 ┃ 마음의숲

예술은 노동인가? 이 오래된 질문은 200년 전 낭만주의 미학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11년 영화감독 최고은이 가난 속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 등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의 노동권과 사회권 신장을 위한 행동이 촉발했다.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책은 사회학 교수(최인이)·작가(정윤희)·미술비평가(고동연) 등으로 구성된 6인이 나눈 논의를 한데 모은 포럼이다. 책에서는 그동안 치러진 뜨거운 논의의 의미를 돌아보고, 4차 산업혁명·메타버스 등으로 급변하는 경제·사회·기술적 상황이 예술과 노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어떤 방향을 가져올지를 짚어본다.

 

시대를 기록하는 일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율리우스 베르거 저 ┃ 나성인 역

14,000원 ┃ 풍월당

동시대를 바라보는 율리우스 베르거의 시선은 깊고 멀리 뻗는다. 작곡가 빌헬름 킬마이어(1927~2017)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1931~) 등의 작품을 초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레오나르도 레오(1694~1744), 루이지 보케리니(1743~1805)의 첼로 작품들을 발굴해 잊힌 명작들을 음원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 때문일까 그의 이름 앞에는 첼로의 ‘개척자’ ‘예언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는 사진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책에는 ‘이슬방울’을 주제로 그가 직접 촬영한 여러 편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음악과 이슬의 ‘곧 사라질 아름다움’이라는 유사성 때문일까, 그의 글에서 음악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저자는 장애를 가진 누나 무쉬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과 지인들과 만남이 기록되했을 뿐만 아니라, 만남 이후에 찾아오는 수많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책 속으로

#74쪽 #음악의 이정표를 따라

하나하나의 음표는 해석자의 영혼을 본 떠 가진 채 ‘여행할’ 권리를 가진다. 이 교환 불가능한 소리의 표식은 유일무이하다. 마치 각각의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걸작의 훌륭한 해석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모든 시도는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해석자는 커다란 진실성과 겸손함으로 작곡가의 작품 그 본질을 규명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82쪽 #음악적 교감의 경계를 허물고

바로 이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저 멀리서 공연장을 가로지르며 나풀나풀 날아다니다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슈만 협주곡에서 특히 아름다운 중음주법 대목에서는 아예 첼로 위에 앉는 것이었다. 얼마나 곱고 다정한 순간이었는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동시에 집중력을 잃으며 어쩌지 걱정도 되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첼로 위에서 음악의 진동을 온 몸으로 느꼈을 그 하얀 나비는 악장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날아올라 홀의 넓게 열린 공간을 향했다. 더 높이, 더 멀리, 하얀 점이 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아가 버렸다. 협주곡이 끝나고 환호를 보내던 그 날의 청중들은 연주의 한 가운데서 나비와 내가 가진 은밀한 만남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169쪽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이가 들면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언젠가 우리가 자유롭게 넘나들게 될 저 경계 너머의 영역을 말이다. 나이가 들면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산이 지닌 비밀이 계시가 된다고 할까. 빛이 거하는 산을 오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는 여정에서 우리를 보살피시는 섭리를 경험한다. 우리의 발걸음은 과거를 반추하거나 앞날을 내다보는 시선에 따라가야 할 바를 찾는다. 만물에 깃든 하나 됨이 점점 커진다.

#105쪽 #누나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호엔슈방가우에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딜링엔에서의 최후의 시간. 이 때의 무쉬는 이미 지혜로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아픔과 고통 자체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에게 더 중요했다. 그것은 무쉬가 우리 주 하느님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했다. 무쉬는 십자가를 들고, 품에 안았다. 임종의 날 무쉬는 나와 현정에게 말했다. “우리 뭐할까? 같이 카페에 갈까?” 밖으로 예배당이 보이는 탁 트인 카페에 앉았지만, 무쉬는 코코아를 마시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뭘 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다시 방으로 올라온 무쉬는 지갑을 제자리에 놓으려고 애썼고, 나는 임종 두 시간 전에도 한 번 더 누나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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