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오는 시간,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3월 7일 9:00 오전

MEMORY & TALK

그녀가 오는 시간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3월은 ‘객석’이 세상에 나온 시간.

내한을 앞두고 ‘객석’에 담긴 그녀의 추억을 꺼내보고,

앞둔 공연의 이야기를 나눠보다

1984년에 창간된 ‘객석’은 1990년대 매호 앞쪽에 윤이상(1917~ 1995), 백건우(1946~), 김영욱(1947~), 정경화(1948~), 정명훈(1953~), 강동석(1954~) 등의 소식을 부지런히 전했다. ‘한국’의 국명과 국위는 그들의 이름을 통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김지연(1970~)은 이러한 세대와 흐름에 젊음을 더했다. 더 정확하게는 ‘젊은’보다는 ‘어린’이라는 수식어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곤 했다. 2022년 3월, 그녀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본지의 기사들을 들춰보았다. 1991년 NHK 심포니와의 내한 협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뤄진 그녀의 기사는 16종. 1992년, 2004년, 2008년에는 본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커버스토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금년 나이 21살. 김지연은 콜럼비아 매니지먼트(ICM) 소속 아티스트로 활약한다. 현재 이곳에는 요요 마·임마누엘 액스·주빈 메타·미도리·뉴욕 필하모닉·세인트 루이스 오케스트라·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등이 속해 있다.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아티스트 산실일 곳이다. (…) 쾌활하고 낙천적인, 어떻게 보면 소녀다운 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김지연을 ‘객석’ 커버에 등장시키는 모험을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생각했다.”(객석 1992년 11월)

그녀가 혜성처럼 등장했던 1990년대에 국내 음악계는 해외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성장하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여행 자유화는 한국을 전 세계로 개방하는 데에 지렛대가 됐다. 이념에 갇혀 있는 ‘철의 장막’이 걷히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플레트뇨프/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등 사회주의권 음악가들의 전설을 확인하는 내한 공연도 이어졌다. 1992년 플루티스트 윤혜리(서울대 교수)가 제네바 콩쿠르 3위 소식을 전했고, 안 트리오가 파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는가 하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이 터를 다졌고, 장영주가 첫 앨범을 발매했다. 1991년, NHK 심포니와 내한하여 멘델스존 협주곡을 협연한 김지연도 그 신호탄 중 하나였다. 섬광은 강렬했다.

“김지연은 ‘스타 탄생’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했다. 그가 청중들을 사로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우선 강렬한 힘이었다. (…) 이제 겨우 스무 살에 불과한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정경화 이래, 우리에게 새로운 놀라움을 안겨줬다. (…) 이젠 일본에 미도리가 있다면 우리에겐 김지연이 있는 것이다.”(객석 1991년 9월)

 1992년 11월

 2004년 9월

 2008년 5월

예원학교 재학 중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유학 간 김지연은 도로시 딜레이 교수 문하에 들어간다. 그런 그녀가 현지서 본색을 드러낸 것은 1984년, 주빈 메타/뉴욕 필과 비외탕 협주곡을 협연하면서부터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14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소름 끼치는 연주”라며 스타탄생을 알렸다. 3백60명과 경쟁한 무대였고, 미국으로 간지 1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1990년대에 클래식 음악이 음반과 인쇄 매체를 넘어 방송을 적극적으로 타면서부터는 김지연 특유의 인터뷰와 공연 장면들이 대중에게로 퍼져나갔다. 상큼한 무대 매너와 발랄한 연주는 많은 팬을 낳았다. 더불어 2009년 영화배우 김혜수, 발레리나 임혜경과 함께 휘슬러코리아의 광고 모델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 바이올린의 계보에서 ‘무르익은 역사’의 대변자인 김영욱, 정경화, 김남윤, 강동석에 이어 김지연은 ‘젊은 역사’를 대변하는 음악가다. 3월 내한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오전 8시 30분 줌(ZOOM)으로 김지연이 입장했다. 방금 전 지휘자 더글러스 보이드(1959~), 노스 캐롤라니아 심포니와 함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리허설을 마친 상태였다.

 

몇 년 만의 내한인가?

2018년 이후 내한이다. 당시에도 10년 만의 내한이었다.

팬데믹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집순이’의 기쁨은 잠시 뿐이더라. 3개월이 지나니 답답했다. 음악가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데… 음악가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연주하는 게 답답하지 않은가.

턱 받침대에 밀려 마스크가 올라와 매번 눈을 덮는다. 그래도 연주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리사이틀 이야기로 가보자. R. 슈트라우스 소나타 Op.18, 브람스 소나타 3번, 그리고 라벨 ‘치간’을 선보인다.

선곡의 자유로움이 리사이틀만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든든한 파트너가 있어야 하고.

이번에는 조재혁과 함께 한다.

늘 ‘준비된 피아니스트’이자, 나를 ‘자극하는 피아니스트’이다. 슈트라우스 소나타도 마음에 두었는데, 그의 제안이 먼저 와서 기뻤다. 고교 시절에 처음 연주한 곡이다.

그때의 기억이 많이 나겠다.

소나타지만 1·3악장이 협주곡처럼 큰 스케일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2악장이 엄청 로맨틱하다. 연인 간에 속삭이는 귓속말 같다고나 할까. 슈트라우스가 한 여인을 엄청 사랑할 때 쓴 곡이었고, 이 곡을 처음 연주하던 나도 사춘기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도 있었으니 마음에 확 와 닿지 않았겠나.(웃음)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곡 중 3번을 고른 이유는?

1번이 진중하고, 2번이 경쾌하다면, 3번은 정열 그 자체이다. 3곡 중에 가장 훌륭한 곡이라 생각한다. 4개의 악장이라 다양한 색도 담겼고, 피로에 지친 브람스가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었기에 자연으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영감도 곳곳에 녹아 있다.

곡마다 얽힌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라벨의 ‘치간’이 그렇지 않을까.

무슨 사연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도로시 딜레이 교수 클래스에서의 일이다. 내가 유학 왔을 적에 미도리 고토(1971~)도 같은 클래스였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미국에선 이미 빅 스타였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레슨 받는데 그녀가 도로시 교수 앞에서 연주한 곡이 ‘치간’이었다. 완벽한 연주였다! 그래서 ‘미도리의 치간’을 들은 도로시 교수 앞에 ‘김지연의 치간’을 꺼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처음 연주하는 곡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떨린다. 이번에도 우황청심원 먹고 연주해야겠다.(웃음)

비발디 ‘사계’와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를 교차하여 연주하는 공연도 예정 중이다. 2000년대 이후, 클래식 음악가들이 피아졸라의 음악을 즐겨 연주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의 ‘사계’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도전곡이자 필수곡이 된 것 같다.

강효 교수가 이끄는 세종솔로이스츠와 케네디센터에서 함께 연주하며 알게 된 곡이다. 당시 기돈 크레머의 음반(Nonesuch)도 이 곡에 빠져들게 하는 데 한몫했다. 피아졸라 특유의 음색과 음악에 대한 정열! 슬픔을 표현할 때에도 그의 음악에는 어떤 정직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자신의 감정과 아이디어에 확신을 갖고 쓴 음악이라 생각한다. 연주하고 나면 통쾌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인터뷰에 응하는 기분으로는 연주회에 당일에 연주하면서 춤을 출지도 모르겠다. 비발디와 피아졸라가 함께 할 때의 시너지는?

관악기가 없이 현악 주자들만 함께 하니 펜데믹 상황에선 ‘안전’하다는 것, 관객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곡을 한 무대에서 만나고, 연주자에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한다.

연주할 때, 다른 음악가와 교감하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리사이틀, 실내악, 협연 모두 사람이 함께 하는 예술이다. 반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뒤에 있지만, 그가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무대에서 나의 감정과 컨디션이 달라진다. 나는 파트너십이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본인을 불편하게 하는 음악가도 있는지.

미국에서의 여러 페스티벌은 다양하고 유명한 음악가를 만날 수 있는 장이다. 하지만 유명세가 높아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내게는 늘 불편한 음악가다. 그런 점에서 조재혁은 ‘걱정 없는 음악가’다.

조재혁과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가 보다.

브람스 소나타 3번도 피아니스트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곡이고, ‘치간’은 피아노 연주가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바이올린 외에 본인을 매료시키는 악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첼로와 피아노.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좋아한다. 눈 감고 들으면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진다.

어떤 악기를 사용하나?

프란체스코 루게리(1628~1698)가 1669년에 제작한 것이다. 루게리는 현 바이올린의 형태를 잡은 안드레아 아마티의 손자이고, 스트라디바리와 함께 니콜로 아마티 문하에 있었다. 1991년쯤부터 사용했으니 이제 막 서른 살을 넘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는다면?

NHK 심포니와 함께 한국에서 선보인 공연(1991)이다. 7번의 커튼콜을 받으며 눈물이 나고 감사했다. 한국을 떠나 8년 동안의 고생과 추억이 머릿속에 스쳤다.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 연주회를 꼽을 줄 알았는데. 그 에피소드도 참 유명하다.

1993년, 미국을 빛낼 음악가로 초청 받은 자리였다. 아이작 스턴도 와 있었다. 연주할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라갔다. 그런데 대통령 단상이 너무 커서 그 뒤에서 연주하며 내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단상을 좀 치워달라고 하니, 갑자기 일어선 이가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사전에 없던 시나리오라 경호팀은 난리가 났지 뭔가. 그 이후의 기사가 더 재밌었다.

무슨 기사였나?

미국 ‘더블유’ 잡지였는데, ‘미국의 대통령을 움직인 사람!’이었다.(웃음)

하이틴 스타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최근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경화, 강동석, 김영욱, 김남윤(1949~) 등의 선배들이 토양을 잘 닦아주셨다. 그래서 내가 그 바통을 잘 이어받을 수 있었고, 이제 나도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전통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 나의 다음 세대는 더 좋아진 환경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인이 정말 자랑스럽다. 무엇을 했다 하면 최고로 잘 하는 것 같다.

리허설 직후였지만, 화면 속 김지연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고백하면 내가 1990년대에 가장 좋아한 두 스타가 가요계에는 강수지였고, 클래식계에는 김지연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느린 아다지오의 음악들이 더 좋아졌다”는 그녀지만, 팬들의 기억에는 ‘소녀 김지연’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객석 2008년 5월)을 옮겨본다.

참으로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잠도 없다. 보통은 4시간을 자고 정말로 많이 자는 게 6시간이다. 대신 낮잠을 아주 깊게 잔다. 이번 포토세션 때도 메이크업 받으면서 자고, 머리 하면서 졸았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서 아무 말도 안 하면 무조건 잔다. 그렇게 잠깐 졸고 나서 뭘 하든 200퍼센트의 열정을 쏟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우리 오빠가 186센티미터, 언니가 170… 원래부터 키가 큰 집안이다. 근데 나는 이렇다. 초등학교 때도 엄마가 늘 방문 열고 하시는 말씀이 “지연아, 넌 언제 자니. 잠 좀 자라!”였으니까. 숙제를 하나 하더라도 학교에서 제일 잘해야 했기에 잠잘 틈이 없었다. 욕심이 대단했다. ”

어린이가 그렇게 억척스럽게 하루를 보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운명이지 싶다. 예전에 어느 학생이 자기 취미라면서 손금·발금을 봐준 적이 있다. 내 발금을 보더니 “세상에, 이런 발금이 진짜 있었다니!”하고 놀라더라. 발금이 하나도 없이 매끈하다며, 평생 바쁘게 사는 사람 발금이라고 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PERFORMANCE INFORMATION ||||||||||||||||||||||||||||||||||||||||||||||||||||||||||||||||||||||||||||||||||||
김지연&클래시칸 앙상블 ‘8INGT SEASONS’

3월 5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비발디 ‘사계’,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교차 연주)

트리오 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3월 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조재혁(피아노)·김지연(바이올린)·송영훈(첼로) 클라라 슈만 현악 3중주 Op.17, 슈만 현악 3중주 1번 Op.63 외

김지연&조재혁 듀오 리사이틀

3월 1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R.슈트라우스 소나타 Op.18, 브람스 소나타 3번, 라벨 ‘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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