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가 노래한 슈만, 글에 담긴 슈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3월 21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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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로가 노래한 슈만, 글에 담긴 슈만

 

 

                                                            음반 ‘시인의 사랑’

박유신(첼로)/플로리안 울리히(피아노)

슈만 ‘시인의 사랑’, 첼로·피아노를 위한 5개의 민요풍 소품,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 외

박유신 음반발매 기념 리사이틀

박유신(첼로)/일리야 라쉬콥스키(피아노)

3월 19일 오후 5시 부산문화회관 챔버홀
2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첼로로 노래한, 시인의 사랑

‘시인의 사랑’은 노래로 태어난 음악이다. 가사가 있다. 가사는 음악의 분위기를 음표의 흐름과 대변하는 언어다. 그렇기에 가사가 탈구된 노래는 음악적 완전성이나 자체 완결성이 부족하다. 반쪽의 음악일 뿐이다. 하지만 박유신(1990~)이 첼로로 노래하는 ‘시인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의 첼로는 없어진 가사를 아쉬워하지도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사가 없어진 흔적 위에서 그녀는 섬세히 듣지 못했던 사랑의 선율들을 도드라지게 한다. 가사에서 벗어난 ‘시인의 사랑’ 선율은 우리가 몰랐던 ‘슈만적 선’으로 뻗어나간다.

박유신은 첼로를 위해 태어나지도 않은 ‘시인의 사랑’에 왜 빠져든 것일까. 음악가들이 작곡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보이는 몇 종류의 행동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작곡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보이는 몇 종류의 행동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작곡가의 음악을 자신의 악기로 편곡하고 각색하는 경우다. 박유신도 그러했다. 하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악기가 첼로라는 풍문이 있지만, 인성(人聲)을 위해 태어난 음악을 악기라는 소리의 기계로 ‘노래’하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첼로가 ‘노래’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시인의 사랑’을 첼로로 연주한 선례나 음반을 찾기보다 “목소리가 구사하는 발음이 있듯, 악기에도 발음이 있다고 생각하며 노래는 물론 슈만 가곡 전문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자문을 구하며 자신만의 ‘시인의 사랑’을 더듬고 다듬어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테너를 위한 높은 음자리표를 첼로의 낮은음자리표로 바꿔가며 슈만과의 사랑을 지속했다. 피아니스트와의 교감도 상당히 중요했다. 녹음을 함께 한 플로리안 울리히(1974~)가 건반으로 영롱한 물방울을 떨구는 듯하다. 그는 유럽에서 인정받는 슈만 스페셜리스트다. “플로리안은 ‘성악가와 함께 할  때 들리지 않는 부분들이 첼로로 연주할 때 들린다’며 신기해했어요. 피아니스트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노래들의 처음을 열고 끝을 맺는 역할을 하는 것이 피아노이고, 곡과 곡을 연결하는 소리의 이음새 역할도 피아노가 하거든요.”

슈만 5개의 민요풍 소품을 연주하는 박유신은 각 곡을 흥미롭게 연주해 나간다. 제1곡은 ‘유머를 가지고’라는 지시어를 따라 걷는다. 발걸음마다 명쾌한 마디 구조를 드러낸다. 느린 제2곡에선 자장가풍의 첫머리로 음악적 심장의 박동을 편안하게 몰아간다. 슬라브적인 우수가 스며든 제3곡에선 민요의 소박함이, 제4곡은 뜻 모를 결연함이 돋보인다. 넓은 음역의 진폭대를 유연하게 오가는 제5곡에선 피날레의 단호함이 선명하다. 첼로로 노래한 ‘시인의 사랑’이 보여준 감상적 증후군 때문인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1862)도 ‘노래’처럼 다가온다. 마치 독일어 가사와 함께 태어난 노래라고 인식하며 듣게 된다. 가사가 사라진 흔적과 표지석을 더듬으며 시어(詩語)를 상상하게 하고(시인의 사랑), 가사 없이 태어난 음악에서 노랫말을 상상해보게 하는 것(5개의 민요풍 소품·브람스 소나타 1번)은 박유신이 이 음반에 불어넣은 음악적 주술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노래는 슈만의 ‘헌정’으로 끝맺는다.

녹음장소는 독일 하노버의 콩글레스 홀(Hannover Congress Centrum)이다. 최진 음향감독은 “도이치 그라모폰이 하노버에 위치했던 시절에 녹음 공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이라며, 그 자신도 “가장 선호하는 홀”이라고 한다.

 

슈만, 내면의 풍경          

 

미셸 슈나이더 저 ┃ 김남주 역(2014) 그책

 

 

 슈만의 내면 풍경과 헤세의 슈만 

음반을 들으며 ‘슈만, 내면의 풍경’과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함께 읽었다. 각 책의 저자인 미셀 슈나이더(1944~)와 헤세(1877~1962)는 음악에 해박한 작가들이다.

말(가사)이 있는 음악은 책 속의 말을 방해하지만, ‘말’이 빠져나간 슈만의 음악이 슈나이더의 문장에 녹아들고 엉겨 붙으며, 행간에 보이지 않던 의미의 맥락을 가시화한다. 묘한 경험이다. ‘슈만, 내면의 풍경’을 펼쳐 다음 문장을 읽을 때 첼로가 부른 ‘시인의 사랑’이 문장 사이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로베르트는 자기 책상에서 종이와 펜, 잉크와 씨름하여 종일을 보냈다. 그는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고, 길지 않은 몇 마디를 적었다. 그런 다음 다시 귀를 기울였다. (···) 슈만의 시간은 거칠고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은, 아이의 시간이다. 고도로 건축적인 베토벤의 시간과 대조적이다. 그것은 방향성을 지닌 화살이나 가능성을 품은 전망이 아니라 오고 감이 얽히고설킨 그물망이다.”

슈나이더의 문제는 난해하다. 하지만 전작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도 그렇고 역설과 역설을 병치하고 대비시켜 자칫 말장난의 끝장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의 단락 사이로, 읽으면서 함께 듣는 음악을 흘리면, 난해하던 문장들이 묘하게 꿈틀거린다. 그 문장들은 이야기 전달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음악을 문자화한 몸부림과도 같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소설가로 잘 알려진 헤세의 음악 편력기다. 두터운 책이지만, 여러 노래로 구성된 ‘시인의 사랑’처럼 헤세가 감상한 여러 음악에 대한 감상문으로 엮여있다. (박유신이 연주한 ‘5개의 민요풍 소품’을 들으며) ‘슈만의 음악을 들으며’장을 펴본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끊임없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꾸준하지도 짓누르지도 무겁지도 일정하지도 않다. 껑충거리는, 유희하는, 돌풍 같은, 버릇없는, 부단히 놀라게 하며 시작되고 다시 사라져버리는 윙윙거림이다. 모래와 나뭇잎의 앙증맞은 소용돌이 춤을 보는 기분이다. 화창한 날의 바람, 근사한 방랑 벗이며 놀이친구다. 활기차고 아이디어 넘치며 신나게 수다 떨다가, 때로 달리거나 춤추고 싶어했다가 하는, 우아함과 청춘으로 가득한 이 음악 속에서는 팔랑거리고 나부끼며 나풀거리고 한들한들하며 춤추고 폴짝거린다.”

고음악과 오르간, 소나타와 교향곡, 모차르트와 쇼팽, 성악가와 바이올린 등을 소재로 한 31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대부분 헤세가 그러모은 음악 지식을 줄기 삼아, 음악에 대한 느낌의 꽃을 피우는 구조다. 하지만 유독 슈만의 음악에 대해서는 이론적 지식을 허용치 않고, 느낌과 감정과 감각의 시어로 일관한다. 그래서 슈만의 음악을 말할 때, 그는 서사를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아닌, 낭만에 취한 시인이 된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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