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화제의 신보
THEME RECORD
지금 작곡가를 사로잡는 것
‘자연’을 재료로 쓰다
멜랑콜리 아일랜드
막상스 시렁(작곡·피아노)
Warner Classics 9029646252
눈
한스 아브라함센(작곡)/
욘 스토르고르스(지휘)/
라플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
Dacapo 6220585
시대를 막론하고 ‘자연’은 예술가들에게 위대한 영감이 되어주었다. 계절의 변화무쌍을 표현한 비발디의 ‘사계’,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은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았다. 현대음악에서도 자연을 재료로 활용하는 작곡가들이 있다.
프랑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막상스 시렁(1971~)이 새 음반을 발매했다. 시렁은 전작 ‘아우로라’(Warner Classics)를 통해서 은은한 피아니즘을 바탕으로 서정적인 네오클래식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신보는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났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그 여정에서 만난 바다를 음악화했다. 마지막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밴드 데드 캔 댄스의 히트곡 ‘The Carnival is Over’를 편곡해 들려준다. 피아노와 전자음향의 하모니에는 독특한 신비함이 가득 녹아있다.
덴마크 작곡가 한스 아브라함센(1952~)은 북유럽 특유의 몽환적인 감수성을 작품에 담는다. 그는 특히 ‘눈(雪)’을 소재로 여러 곡을 써왔다. 그동안 ‘눈 댄스’ ‘눈’ ‘눈 풍경’이라는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고,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 ‘눈의 여왕’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번 신보 ‘눈(Schnee)’은 2008년에 발표한 대표작으로, 눈의 정경을 묘사하는 음형이 특징이다.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불규칙한 변화는 자연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혜선
‘탄생과 죽음’의 신비
Circlesong
밥 칠콧(작곡)/
휴스턴 체임버 콰이어/
트레블 콰이어 오브 휴스턴/
로버트 심프슨(지휘) 외
Signum SIGCD703
죽음과 헌정
이신우(작곡)/
제임스 김(첼로)/일리야 라쉬콥스키(피아노)
Sony Classical S80627C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미지의 영역을 인류는 예술에 맡기기로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때로는 숭고하게, 때로는 기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해 왔다.
‘Circlesong’은 인간의 생애 주기를 담은 북미 토착 시를 음악적으로 묘사한 합창곡이다. “영국 합창 음악의 현대 영웅”으로 불리는 밥 칠콧(1955~)의 작품. 탄생부터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삶의 단계를 총 13악장, 7개 부분으로 구성했다. 에너지 넘치는 타악 구간과 절정에 도달하는 합창 구간, 부드러운 독창 구간의 어울림이 조화롭다. 1995년 예술감독 로버트 심프슨에 의해 설립되어 2019년 그래미 어워드 합창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휴스턴 체임버 콰이어가 연주를 맡았다.
인간 내면과 영혼에 대한 탐구하는 작곡가 이신우(1969~)는 이번 신보에서 한 사람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구체화한다. 7악장으로 이루어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죽음과 헌정’은 1866년 대동강변에서 생을 마감한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1839~1866)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다. 영국 웨일스 출신인 그는 선교를 위해 조선 땅을 밟았다가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휘말려 순교한다. 고독했던 그의 죽음과 사랑, 헌신은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로 치열하게 그려진다. 이외에도 독주 첼로를 위한 ‘시편창’ ‘표현’, 첼로와 사운드트랙을 위한 카프레스 3번 ‘짜릿하게 tangy’가 수록됐다.
박서정
‘시’는 다시 음악이 되고
Lovescapes
요안 파르조트(작곡·피아노)/
마틸드 칼데리니(플루트)/
제네비에브 로랑소(바이올린) 외
Alpha 787
튜닝
마틴 서클링(작곡)/
마르타 폰탄알스 시몬스(메조소프라노)/
크리스토퍼 글린(피아노) 외
Delphian DCD34235
시(詩)가 작곡가의 영감이 되어 걸작을 남긴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많다. 시어가 곡의 가사가 되거나, 시에 묘사된 섬세한 장면들이 곡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낭만주의기에 예술가곡의 예시가 전자에 해당하며, 상징주의 시에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작품이 후자에 해당한다. 이 영감의 역사가 현대 시인과 작곡가의 사이에도 이어지는 중.
프랑스 작곡가 요안 바르조트의 신보 ‘Lovescapes(사랑에 관한 묘사)’는 일본의 시코쿠 섬을 배경으로 한 데이비드 테퍼의 시의 연장선에 있다. 데이비드 테퍼의 작품 ‘시코쿠’는 자전거로 섬을 여행하는 은퇴한 시인과 젊은 재즈 가수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르조트는 ‘Sunset’ ‘Heart to Heart’ ‘Lovescapes’ 등의 작품으로 이 여정의 감정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본다. 요안 바르조트의 피아노 연주에 각각 소프라노·바이올린·비올라·플루트가 함께 한다.
마틴 서클링(1981~)의 현악 5중주 ‘Emily’s Elctrical Absence’는 한 곡 안에 시 낭독과 연주가 함께 한다. 총 9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슈베르트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영국 시인 프랜시스 레비스턴(1982~)과 함께한 협업의 결과물로, ‘Emily’s Electrical Absence’의 낭독으로 시작해 ‘The Pursuit of Universal Harmony’를 마지막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허서현
‘음향’을 음악의 언어로
죄로 가득한 밤 외
마르친 블라제비치(작곡)/
카롤리나 미코와이치크(바이올린)/
이보 예디네키(아코디언)/
미로스와프 야체크 블라슈치크(지휘)/
실레지아 필하모닉 외
Dux 1729
Against Nature
피터 아블링거(작곡)/
에릭 드레셔(플루트)
Kairos KAI0015104
바람이 공병(空甁) 끝을 스치니 “웅웅”댄다. 그 소리는 오래전 예술가들의 귀를 간질였고, 바람은 음악과 악기가 되었다. 오늘날의 음악가에게 바람의 소리는 새로운 영감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코디언은 바람통에 바람을 가두고, 리드를 통해 음색을 만들어낸다. 악상은 연주자가 풀어놓는 바람의 양에 따라 달라지기에 바람은 곧 아코디언의 언어가 된다. 폴란드 출신 작곡가 마르친 블라제비치(1953~2021)는 아코디언을 위한 작품을 남겼다. 카롤리나 미코와이치크(바이올린)와 이보 예디네키(아코디언)는 그의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죄로 가득한 밤’을 음반에 담았다. 격렬한 바이올린의 활시위와 아코디언의 풍부한 음색이 충돌하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한편, 블라슈치크/실레지아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도 만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세계 초연 녹음되었다.
플루트는 바람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야만 소리가 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위에 음악이 그려지는 것이다. 플루티스트 에릭 드레셔는 작곡가 페터 아블링거(1959~)와 함께 ‘Against Nature(자연에 대항하여)’를 제목으로 바람의 시원(始原)을 소리를 통해 찾아 떠난다. 음반은 2014년 발매한 수십 대의 플루트를 위한 멀티 트랙 프로젝트 ‘증가한 연구(Augmented Studies)’의 연속이다. 소리의 단상은 거대한 풍경을 그리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며 서사를 이어간다.
임원빈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클라우스 메켈레(지휘)/오슬로 필
Decca 4852256(4CDs)
오슬로 필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핀란드 출신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1996~)를 상임지휘자로 임명해 악단의 부흥에 힘을 실었다. 메켈레는 자국의 작곡가인 시벨리우스(1865~1957) 해석에서 특히나 호평을 받고 있다. 메켈레는 오슬로 필과의 첫 음반으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1~7번)을 택했다. 오슬로 필에서 호른 수석으로 활약하는 김홍박은 함께 호흡을 맞춘 메켈레를 두고 “나이를 잊게 만드는 성숙한 음악가”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다멕 ‘나를 따라와, 당신은 어디에?’
이자벨 파우스트(바이올린)/
막달레나 코제나(메조소프라노)/
피터 룬델·사이먼 래틀(지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BR Klassik 900638
체코 출신의 온드레이 아다멕(1979~)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수록된 ‘나를 따라와’는 세 악장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선율은 중세시대의 호케트 기법처럼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나뉘는데, 마치 개별 인간과 군중을 음악으로 비유한 듯하다. 메조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당신은 어디에?’는 단조로운 시침 소리부터 압도적인 오케스트라 합주에 이르기까지 약 35분간 변화무상한 소리의 향연을 보여준다.
베토벤 ‘피델리오’
리스 다비드센(레오노레)/토비아스 크라처(연출)/
안토니오 파파노(지휘)/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외
Opus Arte OA1334D(DVD), OABD7288D(Blu-ray)
2020년 3월,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코로나로 폐쇄되기 직전에 촬영한 실황 무대. 소프라노 리스 다비드센(1987~)이 남장하여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다비드센은 2015년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짧은 시간에 가장 유망한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떠올랐다. 성공의 비결은 큰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이다. 독일의 젊은 오페라 연출가 토비아스 크라처(1980~)는 전위적인 실험성 대신 관객의 눈길을 끄는 흥미진진한 무대를 선보였다.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연습 시연 & 다큐멘터리
미구엘 옥타브(연출)/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학생들 외
Bel Air Classiques BAC295(2DVDs)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는 1713년 창설, 가장 오래된 무용학교이자 파리 오페라 발레의 단원 95%를 배출한다. 첫 DVD에는 발레 학교의 주요 연습을 담았다. 등급·지도교수 등도 표시되어 있으며, 클래식 발레뿐 아니라 현대·민속 무용, 마임과 음악 클래스까지 배우는 수업 현장을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DVD에는 다큐멘터리가 담겨, 오전의 일반 교육과 오후의 무용 연습, 교사와의 관계, 파리 오페라 발레의 에투알을 꿈꾸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다.
피리, 고려가요와 정대업을 만나다
진윤경(피리)
프로덕션 고금 GGC20090
무형문화재 피리 정악과 대취타 이수자 진윤경의 여섯 번째 음반이다. 늘 창의적 음반을 발매해온 그가 이번에는 ‘정대업’을 조명한다. 수백 년간 형태가 변화한 ‘정대업’은 고려가요 선율 바탕이지만 박과 선율 프레이즈의 관점에서는 많이 달라졌다. 그 전통성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장르로, 그는 이 지점을 음악적 해석의 자유로 삼았다. 박의 위치와 가사의 배치는 선율 프레이즈로 나누고, 표현법은 피리에서 구전 전승된 방식을 차용했다.
쇼트 필름
황진아(작곡·거문고)/
지민아(노래)/이시문(기타) 외
미러볼뮤직 MBMC2025
거문고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에 루핑기법을 더해 사운드의 확장을 꾀했다. 거문고 독주곡 ‘새벽’ ‘Short film’ 외에도 거문고·보컬·기타·퍼커션·합창이 함께한 ‘속마음’ 등 총 7곡이 수록됐다. 황진아는 연주뿐 아니라 전곡의 작곡·편곡·프로듀싱에 참여하여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낸다. 황진아는 “이 음반에는 일곱 개의 음악과 음악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이야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슈베르티아데
하워드 아만(지휘)/바이에른 방송합창단/
크리스티나 란트슈마허(소프라노) 외
BR Klassik 900528
바이에른 방송합창단은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말러·브람스 등 대곡의 합을 맞춘 세계 정상의 합창단이다. 우리가 잘 모르던 슈베르트(1797~1828)의 합창 세계로 안내하는 음반으로, 곤도라의 뱃사공 D809, 세레나데 D920, 자연의 신 D757, 무반주 아카펠라(D825), 그리움 D656은 물론 종교적 심성이 담긴 ‘미리암의 승리의 노래’ D942 등 10곡이 수록되었다. 1870년산 에라르 피아노가 당대의 음악적 실감을 높인다.
하인리히·카를 바에르만 클라리넷곡집
다리오 지갈레스(클라리넷)/
파우스토 퀸타바(피아노)
Brilliant Classics 96449
하인리히 바에르만(1784~1847)과 카를 바에르만(1811~1885)은 클라리넷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부자(父子)다. 뮌헨 궁정악단에서 활약하며 클라리넷 연주와 교육에 힘쓴 하인리히의 ‘주제와 변주곡’ Op.12-1·Op.29·Op.12-3이 담겼다. 카를이 작곡한 디베르티멘토 Op.47과 화려한 환상곡 Op.52는 아버지의 노력에 더욱더 화려한 꽃을 피운다(대부분 초연 녹음). 부자의 작품을 녹음한 지갈레스와 퀸타바가 1집(Brilliant Classics 95785)에 이어 내놓은 2집이다.
로시니 현악 소나타
프란체스코 마나라·다니엘레 파스콜레티(바이올린)/
마시모 폴리도리(첼로)/
프란체스코 시라구사(더블베이스)
Brilliant Classics 95092(2CDs)
오페라의 제왕 로시니(1792~1868)가 현악기에 불어넣은 솜씨를 만날 수 있다. 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가 함께 하는 소나타 1~6번, 실연으로 자주 오르는 첼로·더블베이스 듀오가 담겼다. 소나타는 10여 명 규모로 연주되곤 하는데, 음반에선 단 4명이 연주하여 실내악적 감도와 독주적 완성도를 높였다. ‘노래’가 아닌 ‘현’으로 태어난 로시니 특유의 선율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부르며 흥얼거리게 된다. 연주와 녹음의 질 모두 수준급이다.
아르보 패르트 기악·합창
베냐민 허드슨(바이올린)/제로엔 판 빈·유겐
크루즈(피아노)/르 누보 무지케(고음악앙상블)/
다니엘 저스틴(오르간)/울스터 오케스트라/
헝가리 국립오페라단 외
Brilliant Classics 96389(9CDs)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조용한 박자, 또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라고 말하는 아르보 패르트(1935~)의 음악은 종교와 미니멀리즘이 공존한다. 1995~2014년에 녹음·발매된 패르트의 음반을 9장 CD로 모은 박스물이다. 1CD는 바이올린·첼로·피아노 실내악, 2CD는 관현악과 교향곡, 3CD는 현악이나 관악 체임버 앙상블, 4~7CD는 종교음악, 8~9CD는 피아노 독주곡이다. 해설지(27쪽/영문)에 각 CD 해설이 담겼다.
바흐 부자의 마니피카트
한스 크리스토프 라덴만(지휘)/
게힝어 칸토라이, 미리암 퓌싱어(소프라노)/
패트릭 그랄(테너) 외
Accentus Music ACC30563
‘마니피카트’는 예수 잉태를 천사에게 전해 들은 마리아가 부른 찬가로, 성서(누가복음) 일부를 가사로 한다. 바흐와 그의 아들 C.P.E 바흐(1714~1788)는 각각 ‘마니피카트’ BWV243과 Wq215을 작곡했고, 오늘날 부자의 음악은 나란히 비교되곤 한다. 독일음악의 토대를 닦은 작곡가에 능통한 라덴만의 지휘 아래 두 곡이 한 무대에 오른다. 예수의 잉태 소식 앞에 아버지는 차분하고 경건하게, 아들은 기쁘고 신나게 그 음악을 전개한다.
비발디&타르티니
마우로 토르토렐리(바이올린)
Brilliant Classics 96491
비발디 ‘사계’와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을 무반주 독주로 한다면 어떨까? 이탈리아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인 마우로 토르토렐리는 최초로 두 곡을 무반주로 편곡하여 녹음했다. 이를 위해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색과 대위법에 따른 다양한 소리를 수없이 시뮬레이션했고, 일명 버르토크 피치카토, 헨리크 쉐링식의 입체적인 보잉을 사용하여 바이올린만으로 입체감과 다성의 세계를 연출한다. 새롭게 써넣은 카덴차가 새로운 ‘사계’와 ‘악마의 트릴’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