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_FRANCE 리옹 오페라 페스티벌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5월 20일 9:00 오전

WORLD HOT_ FRANCE
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리옹 오페라 페스티벌 3.18~4.7
가족의 비밀과 비극

축제 속 빛난 연출, 빛을 받은 숨은 명작

리골레토 © Stofleth

리옹 오페라 페스티벌은 매해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올해는 ‘가족의 비밀’이라는 주제 아래, 베르디 ‘리골레토’, 프란츠 슈레커 ‘도깨비불(Irrelohe)’, 그리고 바흐의 칸타타를 토대로 한 ‘장송의 밤(Trauenacht)’이 공연됐다. 지난 3월 26·27일 리옹 페스티벌 현장을 지면에 전한다.

부녀의 죽음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토대로 한다. 연출가이자 영화제작자인 악셀 라니슈(1983~)는 원작 리골레토 캐릭터를 광대도 곱추도 아닌, 딸을 구하려는 평범한 아버지로 설정했다. 시간과 장소도 현대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이 작품에서 ‘가족의 비밀’은 리골레토와 질다가 부녀지간이라는 것이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을 위해 일하지만, 공작이 딸을 희롱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 끝에 희생된 건 보호하려고 했던 딸 질다다. 그녀는 리골레토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라니슈는 무대에 영상을 병치했다. 이로써 플롯에 또 하나의 겹을 더했다. 영상에는 리골레토 역에 상응하는 위고(배우 헤이코 핀코프스키)가 등장한다. 그는 이따금 무대에도 등장해 리골레토를 분신처럼 따라다닌다.
영상은 수수께끼를 남긴다. 위고는 음반 가게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고,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난다. 곧 여자는 죽는다. 위고의 기억 속에서 아내가 음반 가게 주인과 관계를 가지는 장면이 스친다. 질다는 과연 리골레토의 친딸이 맞을까?
음반 가게 주인은 위고의 딸을 유혹하고, 위고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권총으로 주인을 죽인 후 자살한다. 영상에서는 아버지가 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난다. 원작 무대의 플롯과는 정반대다.
무대의 1막, 연회가 한창인 만토바 공작의 화려한 궁전은 스트립쇼가 진행되는 나이트클럽으로 설정됐다. 근사한 정장 차림의 공작은 여자들을 희롱한다. ‘이 여자든 저 여자든(Questa o quella)’을 부르는 와중에도 공작은 교회 주변에서 본 질다를 정복할 것을 꿈꾼다. 만토바 공작 역의 단골 테너 에네아 스칼라(1979~)는 시원한 음색을 뽐냈다.
질다(소프라노 니나 미나시앙)는 가죽 재킷과 미니스커트 차림의 사춘기 소녀다. 영상 속 위고의 딸과 질다는 서로 똑 닮았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니나 미나시앙은 소프라노 레제로로서, 콜로라투라 레퍼토리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건강한 성대 컨디션과 뛰어난 기교로 질다의 심리 변화를 잘 그려냈다. 공작과의 듀오 ‘사랑은 영혼의 햇살(E il sol dell’anima)’을 통해 순수한 사랑, 자신을 희롱하고 배신한 공작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영혼까지 놀랍게 표현했다.
바리톤 달리보르 예니스(1966~)가 분한 리골레토 역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 캐릭터와 차이를 보였다. 딸이 공작에게 희롱당한 후 부르는 ‘눈물이여, 흘러라!(Piangi, piangi, piangi, scorrer)’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좌절감이 더 강했다. 극도의 고통을 웃음 뒤로 숨긴 채 이 곡을 부르는 광대 리골레토의 딜레마는 희석됐다.

도깨비불 © Stofleth

우리는 과거를 벗을 수 있는가
‘도깨비불(Irrelohe)’은 나치에 의해 변종 예술가로 낙인찍힌 작곡가 프란츠 슈레커(1878~1934)의 명작이다. 연출가 다비드 뵈슈(1978~)는 “등장인물들은 영혼 깊이 남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슈레커가 항상 고찰하던 것이다. 작품에서 다루는 섹스와 욕망의 위험을 그는 아름다움 가운데 만개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도깨비불’은 가상의 성(城)이다. 슈레커가 직접 대본을 쓴 이 작품은 성 인근을 배경으로 한다. 을씨년스러운 어느 주막 앞에서 1막이 시작된다. 나이 든 주막 주인 롤라(메조소프라노 리오바 브리운)는 ‘과거에 난 아름다웠고, 날 따라다니는 청년들도 많았네!’를 즐겨 부른다. 그 뒤로 롤라의 아들 페터(바리톤 율리안 올리샤우센)가 보인다.
롤라와 페터의 비밀은 노인이 되어 귀향한 롤라의 과거 약혼자 크리스토발트(테너 미하엘 그니프케)의 등장으로 밝혀진다. 반쯤 미친 그는 복수에 눈이 멀었다. 복수의 대상에 이야기가 집중된다.
그 이야기는 오래전 ‘도깨비불’ 성 백작의 결혼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주에 걸린 성 주인은 신부 앞에서 마을의 젊은 처녀를 강간한다. 롤라였다. 현재 성주인인 하인리히 백작과 페터는 이복형제다. 검게 그을린 숲에서 마을의 신부(베이스 김광순)와 숲지기는 최근 발생한 방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범은 크리스토발트. 그는 롤라를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마을을 떠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페터는 또 다른 문제와 직면한다. 그가 흠모하는 에바(소프라노 암버 브레이드)가 하인리히 백작(테너 토비아스 헤흘러)과 사랑에 빠진 것. 병약한 외모의 하인리히 백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성적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저주를 물려받았다. 무대 연출을 맡은 팔코 해럴드는 하인리히의 주변을 식물들이 죽어가는 거대한 온실로 꾸몄다. 이곳에는 희생된 처녀 귀신들이 갇혀 있다. 창백하고 검은 그늘이 진 큰 눈을 지닌 시종의 모습 또한 기괴한 분위기를 더했다.
하인리히를 찾아온 에바. 둘은 욕망에 불타올라 바닥을 뒹굴며 키스를 나눈다. 자신을 통제하려 발악하던 하인리히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바에게 청혼한다. 이들의 듀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버금갔다. 묘약을 마신 후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순수한 사랑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바그너 추종자인 슈레커는 아리아 대신 쉬지 않는 선율과 풍성한 색감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거대한 음의 은하수를 창조했다. 암버 브레이드의 기량, 토비아스 헤흘러의 예민한 감수성은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렸다. 음악과, 연기, 무대 디테일이 촘촘히 어우러졌다. 바그너 ‘종합예술’의 목표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베르나르트 콘타르스키(1937~)의 지휘는 ‘대위법 천재’ 슈레커의 스코어를 극적이면서 서정적으로, 때로는 풍경을 그리듯 차곡차곡 직조했다.
3막은 연인의 결혼식장. 에바와 하인리히,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성에 갇힌 백작 가문 남자들과 피해자들의 유령도 있다. 광기에 사로잡힌 페터는 에바 목에 칼을 댄다. 이때 크리스토발트와 그의 친구들은 성에 불을 지르고 하인리히는 에바를 구하기 위해 페터를 자기 손으로 죽인다.
에바와 하인리히는 불타는 성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가꿀 미래를 그린다. 이로써 저주는 풀릴까? 그들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리옹 오페라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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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로마 오페라 ‘투란도트’ 3.22~31
억압과 탄압으로 무너진 사회와 희망

현대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오페라 연출 데뷔작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아이 웨이웨이(1957~)가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으며 오페라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공연은 우크라이나 출신 옥사나 리니우(1978~)의 지휘로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열렸다.
젊은 시절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가 연출한 푸치니 오페라에 연기자로 출연한 경험을 회상하며 오페라 데뷔작(어쩌면 마지막 연출작이 될)으로 ‘투란도트’를 선택했다.
웨이웨이는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스크린 속 비디오 아트와 다양한 의상들을 이용하였고, 높낮이가 다른 무대 위 세트는 위에서 보면 세계지도가 드러나는 형태를 띠었다.
또한 지휘대에 선 옥사나 리니우는 최근 그의 조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맞서 해외 음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 이 공연의 의미가 컸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을 개최한 로마 오페라 극장의 대담한 결정이 돋보였고, 그 작전은 성공이었던 것 같다. 모든 공연은 매진되었으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했다.

아이 웨이웨이 © Gao Yuan

얼룩진 사회의 단상
웨이웨이는 푸치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에서 더 나가 넓은 세계를 선보였다. 과거에 써진 오페라 속에도 동시대를 모두 담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큰 계단과 무너져 내리는 벽 몇 개를 제외하고, 무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독창자와 합창단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동선을 그렸고, 움직임이 있었다면, 마임뿐이었다.
무대 후면의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과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배경 일부가 무대 위 사람들과 겹쳤다. 시각적인 풍부함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었으나 다소 지나쳐 보였다. 전쟁·폭력·폭동·질병으로 얼룩진 사회의 단상이 영상으로 끊임없이 쏟아졌다. 끝없는 도시, 고층 빌딩, 거리와 지하철에 들어찬 군중, 미로와 같은 고속도로 교차로, 코로나 환자가 들끓는 병원의 의사와 환자… 무엇보다 홍콩에서 일어났던 시위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진압 등 영상을 통해 현대 중국의 비윤리성을 말하며, 도시 속 군중은 오페라 속 베이징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작품 속 호위병은 현실의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만큼 잔인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세계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억압하거나 파괴하는 모습의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작품 속 상징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억압을 상징하는 CCTV 카메라, 수갑, 금으로 도금된 사슬(정권이 자유를 억압하지만, 경제적 복지로 보상하기 때문에 금색을 사용했다) 등이 등장했고, 1막에서 사용된 노란색, 파란색 조명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상징성을 띠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함을 보여준 것이다. 2막 2악장 합창에서 ‘만년 우리 황제’ ‘빛, 천하의 왕’을 부르고 난 뒤 환호하는 합창들이 팔을 들고 중지를 내미는 연출은 웨이웨이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억압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3막에서는 주로 난민들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며 이 시대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무대에 사용된 의상도 의미가 있었다. 큰 개구리를 등에 업고 등장한 칼라프, 한 가운데를 기이하게 깎은 머리 모양의 류, 한지 재질의 하얀 의상으로 큰 나방의 형상을 띈 투란도트, 12지신의 탈을 쓴 연기자들이 출연했다. 그 외 나라별 상황에 맞는 의상, 동서양, 고대 신화와 현대를 아우르는 의상 등 똑같은 의상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음악보다 보이는 이미지에 비중을 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의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번 연출은 무대 의상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마음으로 이뤄낸 사랑
검은색 수트에 파란색과 노란색 벨트를 입은 지휘자 리니우는 음악 대부분에서 그다지 동화적이지 않은 해석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리니우의 해석은 조금은 공격적이지만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출신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는 강력한 고음과 좋은 발음을 들려준 투란도트였다. 그러나 다소 단조롭고 성악적으로 고된 역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표현이 조금 아쉬웠지만, 유연하게 연약함·당혹감·의심·두려움의 순간을 표현하며 인간적인 감정을 잘 느끼게 했다. 미국 출신 테너 미카엘 파비아노의 칼라프 역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서정적인 프레이징, 정확한 호흡, 천천히 소리를 풀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고음을 마치 고음이 아닌 듯이 다룬 그의 테크닉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날 밤의 승리자는 류 역의 이탈리아 출신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도토였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류 역을 해냈다. 강한 음악적 해석을 보여주던 리니우의 지휘 또한 도토의 아리아에서는 달콤하며 부드럽게 음악을 이끌어 주었다. 서정적이고 순수한 맑은 목소리, 감미로운 고음, 극적인 피아니시모까지 이 모든 것은 마지막 그녀의 죽음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자살인지 아닌지 뚜렷하지 않은 연출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녀의 단호하지만 유연한 소리와 연기로 잘 살려냈다. 지휘자 로베르토 가비아니가 이끄는 합창단은 복잡한 무대 상황과 다양한 위치에서 노래해야 했지만, 그들의 하모니와 극을 끌고 가고 연결하는 음악적인 모든 면이 훌륭했다.
공연이 막을 내린 후 과연 오페라를 보러 온 것인지, 2시간이 넘는 설치 미술을 보러 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오페라를 압도하는 웨이웨이의 작품에 확실히 힘이 있었다.
그날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이 시대의 폭력·독재·희생·죽음으로 구성된 모든 비극적인 이야기를 정확히 반영하는 한편, 함께 힘을 모아 끊임없이 문화·정치·사회·전염병·언론과 같은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승리할 준비가 되었노라 부르짖는 듯했다. 이번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치명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도 사랑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끝맺음을 했듯이 말이다.
글 이실비아(성악가·이탈리아 통신원) 사진 로마 오페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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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파리 오페라 ‘신데렐라’ 3.29~4.28
사랑이라는 마법

캐슬린 김이 대모 요정으로 오른 클레망 연출의 화제작

©Monika Rittershaus

파리 오페라가 쥘 마스네의 ‘신데렐라’를 제작 초연했다. 연출가 마리암 클레망(1974~), 지휘자 카를로 리치(1960~)가 프로덕션을 이끈 한편, 한국의 소프라노 캐슬린 김이 대모 요정으로 분해 갈채를 받았다. 9년 전 마리암 클레망은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헨젤과 그레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에 간 적도, 버려진 적도 없었다. 밤마다 그들을 찾아오는 괴물은 아이들을 성희롱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클레망은 “‘신데렐라’의 시작은 동화 같지만, 갈수록 심리적 요소들이 강해진다”고 언급했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무대는 ‘공항’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하다. 4개월의 작업 끝에 ‘신데렐라’에 걸맞은 무대 장치가 고안됐다. 축전적인 서주에 이어 막이 오르면, 길이 10미터 높이 9미터, 그리고 깊이 5미터에 이르는 증기 기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양쪽으로는 캡슐이 설치돼 있다.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앞치마를 두른 신데렐라(메조소프라노 타라 에로트)가 등장한다. 그녀 뒤로는 이복 자매 도로시(메조소프라노 마리옹 르베)와 노에미(소프라노 샤를로트 보네), 그리고 소파에 앉은 신데렐라의 아버지 판돌프(바리톤 리오넬 로트)가 보인다. 기계를 운용하는 직원들은 ‘결정은 당신이 아니라 그녀가!’를 노래한다. ‘그녀’는 고약한 계모 마담 알티에르(메조소프라노 다니엘라 바르셀로나)다.
계모는 찌푸린 얼굴로 등장해 판돌프의 고양이를 왼쪽 캡슐에 넣는다. 기계의 정체를 모르는 청중은 ‘불쌍한 고양이!’하고 아찔함을 느낄 터지만, 오른쪽 캡슐 문으로는 분홍색 드레스의 인형이 등장한다. 계모는 두 친딸 도로시와 노에미도 캡슐에 넣는다. 둘은 화려한 공주로 변해 나온다. 이 기계는 공주를 만들어내는 ‘드림 머신’인 것이다. 동화적 요소에 모던함이 결합한 부분이다.
계모와 두 딸은 왕궁 무도장으로 향한다. 홀로 남은 신데렐라는 ‘나는 화덕 앞에 남았다’며 울먹인다. ‘신데렐라’는 재에 그을린 소녀라는 뜻을 지닌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신데렐라는 기계 파이프 안에서 잠을 이룬다. 아일랜드 출신 메조소프라노 타라 에로트(1986~)는 르네 플레밍을 연상케 하는 벨벳 같은 소릿결로 자신의 신세를 노래했다.

마법의 시작
그녀가 잠든 후, 기계는 이상한 빛에 휩싸이더니 전기 스파이크를 일으킨다. 곧 오른쪽 캡슐 문이 열리고, 날개 달린 여섯 요정과 대모 요정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데렐라를 잠에서 깨우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시킨다. 잠에서 깬 그녀는 반짝이는 유리 구두를 신고 ‘나도 왕궁 무도장에 간다’며 기뻐한다.
2막은 왕궁이다. 왕자는 술만 들이붓는다. 시종과 의사, 행정 직원들은 그의 건강을 우려해 그를 쫓아다닌다. 시종들은 그에게 억지로 바지와 상의를 입히고, 부츠를 신긴다. 왕자는 사실 여자다. 남성과의 관계를 거쳐야만 신분 상승할 수 있었던 여성들의 삶을 비꼬는 셈이다.
드디어 찬란한 조명 아래 왕궁과 정원이 펼쳐진다. 파리 그랑 팔레를 모델로 한 왕궁은 유리 돔으로 덮였고, 그 아래 거대한 초록 야자수가 서 있다. 왕자는 여전히 술만 마시고, 똑같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은 그를 유혹한다.
신데렐라는 왕궁에 도착해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다른 귀족 여성들에 비해 신데렐라는 좀 ‘빅사이즈’다. 춤도 출 줄 몰라 민망함에 부채만 흔든다. 그러다 소파에 앉은 왕자 곁으로 다가간다. 수려한 춤곡이 연주되는 사이, 신데렐라와 왕자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코르셋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왕자에게 가슴이 조인다는 제스처를 보인다. 왕자는 그녀의 드레스를 벗겨 준다. 발도 아프다니, 왕자는 구두를 벗기고 자신의 빨간 운동화를 신긴다. 그리고 야자나무 아래 숨겨 놓은 샴페인을 함께 마시며 키스를 나눈다. 주정뱅이 왕자와 가식 없는 신데렐라는 곧 사랑에 빠진다. 샘이 난 하객들은 광경을 못 본 척 등을 돌린다. 자정이 되자, 그녀는 황급히 떠난다. 유리 구두 한쪽은 성에 남긴 채.

©Monika Rittershaus

©Monika Rittershaus

©Monika Rittershaus

 

 

 

 

 

 

유리구두 없이도
3막, 신데렐라는 집에 홀로 남아 있다. ‘구두 한쪽을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온 내 신세!’하며 그녀는 다시 울먹인다. 계모와 언니들은 웬 우스운 여자가 분위기를 깼다고 투덜댄다. 절망한 그녀는 왕자의 사랑마저 의심하며 집을 나간다. 숲속에서 왕자와 신데렐라는 서로를 찾는다. 마침내 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품은 참나무 아래서 사랑을 맹세한다. 멀리서 지켜보던 대모 요정은 눈물을 훔친다.
4막, 신데렐라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판돌프는 얼어붙은 강가에서 그녀를 구한 과정을 이야기한다. 신데렐라는 ‘요정, 왕자와의 만남이 모두 꿈이었나?’하고 생각한다. 이때 왕과 시종들이 구두를 들고 등장한다. 신데렐라가 사라져 병을 얻은 왕자는 간이침대에 실려 나온다. 한 무리의 여자들은 구두를 신어보곤 자기 사이즈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왕자가 절망 끝에 다다랐을 때, 요정은 기계 위 남루한 차림의 신데렐라를 가리킨다.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대모 요정은 두 연인에게 반짝이는 운동화를 선물한다. 왕자는 빨간 운동화를, 신데렐라는 은색의 운동화를 신고 성대한 커튼콜에 임한다. 유리구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것 없이도 두 연인은 서로를 알아보았으니.
한편, 대모 요정(캐슬린 김)은 ‘신데렐라’의 동화적 요소를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캐릭터고, 음악 비중으로나 극의 전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그너의 음악적 영향력이 다분한 이 작품에서, 대모 요정의 음악만은 마스네의 전형을 띤다. 캐슬린 김은 현기증 나는 고음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연기를 펼쳐냈다. “대모 요정은 사랑이 마법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피력한 그녀는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글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파리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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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제15회 프랑스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4.3~10
프랑스 현대음악의 오늘

오를레앙에서 한국인 입상자 한지호를 만나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땅,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피아노 콩쿠르가 열렸다. 1900년 이후 작곡된 작품들로만 겨루는 특별한 위상의 이 콩쿠르는, 1989년 피아니스트 프랑수아즈 티나(1934~)가 설립한 뒤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올해는 14개국 26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총상금은 120,000유로(한화 약 1억 6,000만 원)이다.
“올해의 콩쿠르 키워드는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와 ‘필리프 마누리(1952~)’입니다. 오를레앙에 머물렀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서거 100주기를 기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직접 ‘프루스트의 살롱’이라는 주제로 본선 경연곡 리스트를 선정했어요. 작곡가 필리프 마누리는 올해의 심사위원장이자 콩쿠르 지정곡의 작곡가로도 위촉돼 의미가 있죠.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인 그와 영감을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예술감독 이자벨라 바질로타가 말했다.
올해 심사위원은 마누리를 비롯해 부소니 콩쿠르 예술감독·국제콩쿠르연맹 의장인 페테르 파울 카인라트, 도쿄음대 교수이자 작곡가·피아니스트인 이치로 노다이라 등 7명이다. 심사위원장 마누리는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젊은 음악가들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듣는 것이다. 내게 훌륭한 연주자는 작품을 완벽하게 숙달한 사람이 아니라 청중과 작곡가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이번에 연주된 마누리의 작품은 준결선을 위한 두 에튀드 ‘연결망(Rèseuax)’, ‘불균형(Dégèlements)’과 결선곡인 피아노 협주곡 ‘도쿄 파사칼리아’. 마누리는 ‘도쿄 파사칼리아’에 대해 “같은 구조를 조금씩 변형하면서 반복하는 파사칼리아의 구성을 따르면서, 피아니스트가 한 음을 연주하면 오케스트라에서 그에 상응하는 반향이 나오는 독주와 협주의 복합체다. 때문에 한 음이라도 틀리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정확도가 요구된다.”라고 설명했다. 1990년 이 작품을 초연했던 노다이라는 연주의 핵심으로 “리듬의 정확성”과 “솔로이면서 앙상블의 일원으로도 기능하는 ‘동시적 역할’”을 꼽았다.
7일 준결선은 진출자 7명의 리사이틀(각 60분)로 이뤄졌다. 프로그램은 자유 구성이되 한 곡 이상 특별상과 관련된 작곡가의 작품을 포함해야 한다. 특별상은 앙리 뒤티외(1916~2013), 알베르 루셀(1869~1937) 등 기라성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재단에서 후원해 제정됐다. 그 가운데 진은숙의 후원으로 제정된 ‘윤이상 상’도 있다. 유일한 한국인 진출자 한지호(1992~)는 구조감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끌었다.

필리프 마누리

왼쪽부터 결선에 오른 로렌조 술레즈(프랑스), 한지호(한국), 치사토 다니구치(일본)

 

 

 

 

 

 

 

 

삼인삼색, 개성이 뚜렷했던 결선
10일 결선에는 한지호(한국), 치사토 다니구치(일본), 로렌조 술레즈(프랑스)가 올랐다. 쥘리앵 르로이/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도쿄 파사칼리아’를 공통으로 협연한 뒤, 독주로 1915~1930년 사이 작곡된 작품 두 곡을 선정, 연주했다.
첫 순서였던 한지호는 독주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와 아르보 패르트의 ‘퓌르 알리나’를 선택했다. 뛰어난 건반 장악력으로 잘 알려진 만큼, 건조한 피아노 컨디션을 뚫고 나오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소수의 음으로 작곡된 ‘퓌르 알리나’는 독특한 여운을 남겼다.
치사토 다니구치는 음 하나하나에 생기가 있었다. ‘도쿄 파사칼리아’에서는 중심음 리듬이 불안해 구조적으로 흔들렸지만, 독주는 훌륭했다. 쇤베르크 연주 후 현장에서 만난 한 기자는 그녀의 음감 조절 능력을 두고 “그녀의 베베른 연주가 궁금해진다”고 평했다.
로렌조 술레즈는 차분하게 파야의 ‘판타지아 배티카’(1919), 메시앙 ‘아기 예수를 향한 20가지 시선’ 중 5번을 연주했다. 그의 섬세한 메시앙 해석은 이미 준결선에서도 드러난 터였다. ‘도쿄 파사칼리아’에서는 타고난 리듬감이 돋보였으며 세 사람 중 가장 여유 있게 앙상블에 녹아들었다.
우승은 로렌조 술레즈에게 돌아갔다. 술레즈는 에디슨 데니조프 특별상과 인기상인 청중상·오를레앙 음악원 학생상도 수상했다(그는 2012년 제네바 콩쿠르에서도 우승 및 특별상을 휩쓴 바 있다). 2위와 앙리 디튀외 상을 수상한 치사토에게는 디튀외 자택에서 한 달 동안 머물 수 있는 영예가 주어졌다. 한지호는 3위와 윤이상 상을 수상했다.
마누리는 “각자의 개성이 아주 뚜렷했던 결선이었다”며 “한지호는 힘 있고 단단한 연주가 장점이지만 조금 더 본인의 색깔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다니구치는 음색이 다양하나 리듬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술레즈는 이미 자신의 스타일이 구축된 연주자다. 미래의 현대음악 연주자로서 가능성이 보여 그를 우승자로 선정했다.”라고 ‘객석’에 직접 심사평을 전했다. 3인은 다음날 파리의 테아트르 드 부프에서 수상자 연주회를 가졌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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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콩쿠르 입상 후 한지호와 나눈 대화

2016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음악과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5년 뒤 프랑스의 현대음악 콩쿠르에서 당신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그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클로드 르두(1960~)의 ‘나비의 꿈’을 초연한 것이 계기였다. 부담은 컸지만, 음악적으로 굉장히 새로워진 느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모르는 음악을 발견해 나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레퍼토리를 창의적으로 넓히려 노력해 왔고, 현대음악을 더욱 깊게 보고 배우기 위해 오를레앙 콩쿠르에 참여했다.
볼프강 림의 작품을 중심에 놓고 대칭 구조로 구성한 준결선 프로그램이 굉장히 짜임새 있었다.
요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선처럼 흘러가는 것일까, 원처럼 순환하는 것일까? 그러한 고민 속에 ‘라인 앤 서클(Line and Circle)’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레퍼토리들은 선으로 출발해 원으로 끝난다. 겹치는 음이 없이 한 음으로만 연주되는, 악보조차 한 줄인, 엘리엇 카터의 ‘연이어 일어나는(Caténaires)’(2006)으로 시작해 스크랴빈 소나타 9번 ‘검은 미사’(1913), 마누리의 ‘불균형(Dégèlements)’, 볼프강 림의 피아노 소품 5번(1975), 마누리 ‘연결망(Rèseuax)’, 윤이상 ‘간주곡 A’, 스크랴빈 소나타 7번 ‘하얀 미사’(1911)를 거쳐 원을 상징하는 죄르지 리게티의 연습곡 5번 ‘무지개’(1985)에 이른다. 최대한 현대음악의 다양한 사조를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었다. 청중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콩쿠르는 경쟁이지만 연주이기도 하니까.
난해하기로 소문난 마누리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뤄본 소감은.
불규칙성이 논리를 지배한다. 감정적이거나 선율적으로 따라가는 것 없이, 불특정한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신기하게도 방향이 있다. 악보에선 ‘어떻게 이렇게 맞지 않게 썼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실제로 연주해 보면 어떠한 큰 세계가 펼쳐지면서 내가 모르는 곳이 있구나, 겸손해진다. ‘도쿄 파사칼리아’는 본선 진출자로 결정된 2월에야 악보를 받을 수 있었다.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에튀드보다는 선율적이었지만, 박자를 세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사실 이 곡 때문에 콩쿠르 참가를 망설였다. 그런데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연주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그 격려에 용기를 얻어서 도전했다.
‘페트루슈카’에서 ‘퓌르 알리나’로 이어지는 결선 프로그램은 꽤나 퍼포먼스적이었다. ‘퓌르 알리나’는 결선곡이라는 기대감과는 거리가 있을 법도 한데.
‘페트루슈카’와 같은 화려한 러시아 곡을 칠 때면 언제나 열광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 시끄러운 음표 뒤에 슬픔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청중이 각자의 ‘페트루슈카’를 느낄 여운을 마련해 주고 싶어 다음 곡으로 ‘퓌르 알리나’를 선택했다. 몇 음으로 아주 천천히 연주되는 ‘퓌르 알리나’는 아르보 패르트가 냉전 속에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친구 부부와 그 딸을 보며 쓴 곡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 특히 휴머니즘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지금을 위해서 말이다.
오랫동안 독일에 살고 있다. 프랑스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해 볼 생각은 있는지.
프랑스는 확실히 현대음악의 나라인 것 같다. 볼프강 림의 작품만 보아도 C로 시작해 C로 끝나고, 종결구가 다가오면 그것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그에 비해 프랑스 작품들은 떠다니는 느낌이다. 불규칙성의 규칙성이랄까. 언어적인 습관에서도 비롯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 흥미롭다. 이곳에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10시만 되면 잠드는 타입인데,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을 너무 늦게까지 먹더라.(웃음)

한지호(1992~) 독일 에센폴크방 예술대,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2위, ARD 콩쿠르 1위 없는 3위·청중상·현대음악특별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4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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