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예술’이다

한글날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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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1월 1일 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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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한글은 ‘예술’이다

매년 10월 9일이 되면 한글날을 기념하며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구상에서 국가 고유의 문자를 창제해 반포한 날을 기리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우리 문화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당연히 ‘언어’이다. 말과 글을 가꾸는 일은 우리 문화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한글은 이제 단순한 문자를 넘어서 예술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한글날을 맞아, 백성에 대한 사랑(愛民)을 근간에 두고 창의와 혁신을 구현했던 세종대왕의 업적을 돌아보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작업을 해 온 예술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외국 성악가의 입에서 불린 한국가곡을 감상하는 지면도 마련했다. 기획·진행 장혜선 기자

들여다보다 |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음악 _송지원

만나다 1 |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윤의중 & 작곡가 오병희 _ 장혜선

만나다 2 | 타이포그래퍼 안상수 _장혜선
만나다 3 |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 _임원빈

즐기다 | 외국 성악가의 한국가곡 부르기 _이의정


들여다보다

한글에는 본래 음악이 숨어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음악

‘용비어천가’의 노랫말에 정악 선율과 궁중 무용을 곁들인 국립국악원 ‘세종의 신악-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국립국악원

‘조선왕조실록’의 1443년, 세종 25년 음력 12월 30일 자에 ‘훈민정음’ 창제 관련 기사가 있다.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 글자를 이루게 된다.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성·중성·종성을 모두 갖추었고, 전환하는 것이 무궁한 ‘훈민정음’.

세종은 그로부터 3년 후인 1446년 9월, 지금으로부터 574년 전에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요즘 식의 표현으로 풀어 다시 적어본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잘 통하지 않아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늘 쓰기에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그것이 안타까워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고, 이를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늘 쓰기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바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이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쓰기 편한 글자”라고 세종도 밝혔듯이 이는 현재에도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며, 일부 우리의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민족도 있다. 한글은 소리에 따라 기록하도록 한 소리글자라서 표기가 수월하므로 배우기 쉽고 기록이 편리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지은 최초작, ‘용비어천가’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으로 지은 최초의 작품은 곧 ‘용비어천가’이다. ‘용비어천가’는 1445년(세종27)에 정인지·권제·안지 등이 왕명을 받아 태조의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조선을 건국한 태조, 그리고 태종까지 6대의 사적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지은 노래로서 1447년(세종29)에 전체 125장 10권 5책이라는 방대한 규모로 간행이 되었다. 조종(祖宗)의 덕을 칭송하고, 태조가 나라를 어렵게 세운 공을 후세 왕들이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글을 짓도록 하였고, 이를 조회와 제향에서 연주하도록 하였다.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삼아 만든 음악은 ‘치화평’ ‘취풍형’ ‘여민락’과 같은 음악이다.

‘용비어천가’의 구성은 조선왕조 창업이 마땅하다는 내용으로 된 16장까지의 서사, 왕조 창업이 마땅하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며 설명한 109장까지의 본사, 왕업의 영원한 지속을 위한 경계의 내용을 풀어 놓은 125장까지의 결사로 이루어져 있다.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1443년(세종25) 음력 12월에 훈민정음을 완성한 후, 훈민정음으로 적어 내려간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문학적인 위상이 높은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 ‘용비어천가’를 특별히 주목해야 할 관점이 더 있다. ‘용비어천가’는 기본적으로 태조의 조상과 조종의 덕을 칭송하는 것이지만, 이는 그저 시 작품만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음악작품을 만들기 위한 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인지가 쓴 ‘용비어천가’ 서문에도 명백히 밝혀져 있다. “아송(雅頌)의 유음을 이어 관현(管絃)에 올려 끝없이 전하고자 한다”고 했다. “관현에 올려”라는 말은 음악을 만들어 연주한다는 뜻이다. ‘용비어천가’는 처음부터 공연을 위한 노랫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최초의 작품이며 이는 문학작품을 넘어선, 공연을 위한 노랫말이었다.

‘용비어천가’를 음악으로 만든 ‘작곡가 세종대왕’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직접 음악으로 만들고 이를 악보화했다. 이 내용은 ‘세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임금이 ‘용비어천가’를 관현에 올려 느리고 빠름을 조절하여 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豐亨)·여민락(與民樂) 등 음악을 제작하매, 모두 악보가 있으니, 치화평의 악보는 5권이고, 취풍형과 여민락의 악보는 각각 2권씩이었다.

위의 실록 기사에 보이듯 처음에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하여 ‘치화평’ ‘취풍형’ ‘여민락’과 같은 음악을 제작했는데 모두 악보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악보는 곧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이다. 따라서 ‘용비어천가’라는 125장의 장편 서사는 위의 실록 기사에도 보이듯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이라는 세 악곡에 모두 담기게 되었다.

‘여민락’은 ‘용비어천가’의 1, 2, 3, 4, 125장의 한문가사로 만든 음악이며 ‘치화평’은 국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의 악곡이다. 실제 연주는 16장까지와 졸장인 125장까지만 연주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취풍형’도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를 음악으로 구현하여, ‘용비어천가’는 한문가사 일부와 국한문 전체가 모두 음악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해서 만들어진 위의 세 곡은 모두 ‘세종실록악보’에 기록되어 악보가 남아 있으며 이 중에 ‘여민락’은 현재까지 연주되고 있다. ‘여민락’은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을 담은 음악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현재 네 가지 계열의 음악이 파생되어 연주되고 있다.

한글의 자모로 풀어내는 노래, ‘국문뒤풀이’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우리 서민들이 좋아하는 노래인 잡가 속에서도 재치를 발한다. 한글의 자모를 그 순서에 따라 풀어서 노랫말을 만들어 부르는 ‘국문뒤풀이’이다. 그 노랫말 일부에서 국문뒤풀이를 얼마나 재치 있게 풀어내는지 살펴보자.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잊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사잿더니

가갸거겨 가이없는 이내몸이 그지없이도 되었구나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낭군 구관하기가 짝이없구나

나냐너녀 나귀등에 솔질을 하여 송금안장을 지어놓고 팔도강산 유람을 할까

노뇨누뉴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노리로다

다댜더뎌 다닥다닥 붙었던 정이 거짓없이도 떨어를 졌네

도됴두듀 도중에 늙은 몸이 다시 갱소년 어려워라 :

파퍄퍼펴 파요파요 보고파요 임의 홍안이 보고나 파요

포표푸퓨 폭포수 흐르는 물에 풍기나 두둥실 빠졌더면 이꼴 저꼴을 아니나 볼걸

하햐허혀 한양낭군은 내 낭군인데 한장의 편지가 돈절이로구나

호효후휴.

경기잡가의 하나에 속하는 노래, ‘국문뒤풀이’의 일부 노랫말이다. 예전에는 경기명창과 서도명창이 주로 불렀던 인기 있는 노래였고 지금도 한글날이면 국악방송에서 단골로 방송되는 노래이다. 가나다순을 무심하게 따라가도 이토록 진솔한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니, 한글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언어인가. “파퍄퍼펴 파요파요 보고파요, 임의 홍안이 보고나 파요”라고 노래하면서 임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그 재치. ‘ㅎ’을 풀어내면서, ‘그리운 한양낭군에게서 한 장의 편지도 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호휴후휴” 하고 한숨을 쉬는 장면조차 매력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57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반대하던 신하들도 있었다. 그 반대 때문에 한글을 창제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창의적의고 아름다운 한글, 이제는 어떻게 더 멋스럽게 가꾸어 나갈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글 송지원(음악인문연구소장·국악산책(국악방송) 진행자)


만나다 1

훈민정음을 오늘의 감성으로 재해석하기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윤의중 & 작곡가 오병희

지난해 국립합창단은 한글 창제 575돌을 맞아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을 공연했다.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 여러 역사 자료를 참고해 내용을 구성한 작품이다. 1445년 최초의 한글작품인 ‘용비어천가’를 비롯해, ‘월인천강지곡’ ‘종묘제례악’ ‘대취타’ ‘여민락’ 등에서 음악적 소재를 가져와 오늘날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했다. 조선시대 초기 백성의 삶과 그 안에 녹아있는 불교문화, 한글 창제에 영향을 준 외국 문화의 색채 또한 작품 속에 그려냈다. 이외에도 국립합창단은 ‘동방의 빛’ ‘나의 나라’ ‘코리아판타지’ 등 한국형 창작 합창곡 보급에 힘쓰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한국 합창곡 음반 ‘Voices of Solace’를 발매한 뒤, 이어서 ‘아메리칸 솔로이스츠 앙상블과 함께하는 한국가곡의 밤’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미국인 성악가 24명으로 구성된 아메리칸 솔로이스츠 앙상블이 한국가곡을 한국어 가사로 노래하는 무대였다. ‘한국합창’의 정체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국립합창단의 예술감독 윤의중, ‘훈민정음’의 작곡가 오병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윤의중(1963~)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 신시내티 음대에서 본격적인 합창지휘 수업을 받았다. 10년간 창원시립합창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임(2005~2015), 한세대 합창지휘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현재 국립합창단의 제11대 단장으로 부임하고 있다.

작년에 국립합창단은 한글날을 기념해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을 공연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모티브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윤의중 2020년 초기 기획 단계에서 탁계석 음악평론가가 한글날을 기념해 창작품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후 오병희 작곡가가 한글을 소재로 하자는 의견을 냈어요. BTS나 ‘오징어게임’과 같은 다양한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국립합창단도 ‘합창을 근간으로 한 K-클래식 시대’라는 비전을 앞세워 여러 창작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훈민정음’을 비롯해 ‘나의 나라’ ‘코리아판타지’ 또한 이러한 의도가 반영되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공연은 올해 5월에 재공연 했어요. 초연 이후 아쉬운 점들을 보완했을 것 같은데요.

윤의중 ‘대취타’ 장면에 한국의 전통악기인 나발, 이외에도 대금, 소금, 태평소, 피리 등 여러 국악기를 추가해 훈민정음의 성격에 걸맞은 우리나라 정서를 음악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보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연기자를 투입했고요.

‘훈민정음’은 여러 악장의 창작 칸타타로, 14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칸타타는 어떠한 기준으로 구성된 건지요?

오병희 ‘훈민정음’은 3부로 구성되며 1부는 한글을 창제하게 된 배경, 2부는 위대한 한글의 창제 과정, 3부는 한글 반포와 우수성 등을 이야기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참고해 극과 음악이 구성되었는데요. 역사 자료를 활용하는 경우 창작에서 문제가 될 여지들을 고증 과정으로 잘 짚고 가야 하는 게 관건일 것 같아요.

오병희 조선 초기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본 덕분에 작품 전체에 세종의 애민(愛民)사상이 녹아들도록 만드는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세종 5년(1423)에 ‘굶주린 백성들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비롯해 글을 몰라 부당한 처우를 받았던 백성들의 고통, 소헌왕후의 노래에 한(恨)이 서릴 수밖에 없는 가문의 이야기, 반대의 상소를 올린 학자들과의 격렬한 마찰 등 세종실록 및 역사서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가사와 선율을 만드는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약 10여 년의 기간은 그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됐는데요.

오병희 불교와 함께 유입된 인도의 산스크리트문자, 몽골의 파스파문자 등이 훈민정음의 기원설로 논의되고 있으나 고증된 것은 아니기에 당시의 외국어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많은 고민을 했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이국적인 색채만을 사용하여 비밀 프로젝트 과정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병희(1970~) 한양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제25회 창악회 작곡 콩쿠르에서 우수상, 제34회 서울음악제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칸타타 ‘동방의 빛’ ‘광야의 노래’ ‘부활’ 등이 있으며 400편이 넘는 종교 및 세속합창곡 작곡했다.

한글을 다루는 공연을 만들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 공연을 계기로 새롭게 알게 된 한글의 위대함이 있나요?

오병희 제가 새로 알게 된 것은, 인도의 고어 산스크리트어에 우리말 중 한자가 아닌 순수어, 우리말 토속 사투리가 많다는 점, 한글을 공식 문자로 도입하려는 국가들이 있다는 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고, 한글은 정보통신 시대에 최적화된 문자라는 점 등입니다. 한글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세종대왕이 살아 ‘훈민정음’ 공연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요?

윤의중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역사적인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합창극을 통해 매년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노력에 있어서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병희 오늘날 국민들이 지치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 시국은 ‘어린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던 조선 초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종대왕께서는 ‘백성이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1부의 ‘탄식’의 가사에 공감하시며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 10월에는 ‘한국의 사계-추억의 한국가곡’을 선보입니다. 한국가곡에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사가 잘 녹아있죠.

윤의중 우리 삶의 정서가 은유적으로 녹아든 가사가 한국가곡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곡은 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어감이나 운율이 그대로 내포되어 있어, 가곡을 부를 때 한 폭의 그림 같은 다양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국립합창단은 최근에 예술 한류 확산 프로젝트 일환으로 ‘Voices of Solace’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윤의중 앨범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아름다운 합창음악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이를 기념하며 미국 성악가들이 한국가곡을 부르는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윤의중 노래 속에 함축된 한국적인 소재나 감정들이 외국인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반면에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 외국어로는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디테일한 감정선 등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도 사실이고요.

다른 나라의 합창곡들을 한국어 가사로 번역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계시죠.

국립합창단
‘훈민정음’

국립합창단 ‘훈민정음’

윤의중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자연스럽게 가사를 바꾸는 것이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따라 그 곡이 담고 있는 표현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국립합창단이 계획하고 있는 한글을 위한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윤의중 내년이면 국립합창단이 창단 5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앞으로도 우리의 언어로 된 민요와 가곡, 창작곡들을 꾸준하게 소개하여 합창음악의 대중화에도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합창단

국립합창단 ‘나의 나라’

국립합창단 ‘코리아판타지’

국립합창단 ‘새야새야’ 뮤직비디오
(오병희 작곡/윤의중 지휘)

 

 

 

 

 

 


만나다 2

독특한 한글꼴로 예술을 만들다

타이포그래퍼 안상수

안상수(1952~)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일했고,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의 날개(교장)이다. 문학계간지 ‘자음과 모음’을 디자인했고, 사진일기 ‘원 아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수 100인’으로 선정됐다.

파주출판도시를 걷다 보면 디자이너들이 세운 배움터,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이하 파티)이 나온다. 이곳의 날개(교장)인 안상수는 한글에 대한 애정이 깊다. ‘디자인’을 ‘멋지음’, ‘교장’을 ‘날개’, ‘학생’을 ‘배우미’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그의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1985년에 네모틀을 탈피한 글꼴 ‘안상수체’를 발표한 것이다. 한글은 개발 당시부터 한자와 함께 쓰이다 보니 정사각형 모양의 형태로 쓰였다. 한글 창제 원리에 근거해 만든 현신적인 안상수체는 탈네모틀을 한 글꼴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파주에 위치한 날개집(교장실)에서 안상수와 만났다. 약차를 따라준 그는 종종 훈민정음을 인용하며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날개.파티’ 전을 개최하셨습니다. 전시 1부에서 소개한 작품 ‘홀려라’는 안상수의 디자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상수를 ‘홀리게’ 한 ‘한글’의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요?

한글과 계속 열애 중입니다. 연애란 홀려야 하는 거잖아요. 보통 나의 연인이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 콕 짚어 대답하긴 어려울걸요? 세포로 통하는 은밀함이 있는 거죠. 저는 한글에서 거대한 은밀함을 느껴요. 그걸 딱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문자의 근본 속성은 사회·문화의 기본이 된다고 여러 번 얘기하셨죠.

말은 우리 생각에 영향을 미쳐요. 다음절 우리말은 단음절 중국어와 다르죠. 그 말을 적는 한글과 한자,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차이점은 확실히 다를 거예요. 한글은 소리글자라서 무엇이라도 쉬이 적어내니까 외래어를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글자지요. 열린 글자는 열린 사회를 만들 거예요. 또 우리말은 경어가 발달해 있잖아요. 영어와 다른 사회적 장점이 있을 겁니다. 우리말은 섬세해요. ‘푸르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와 같은 표현을 보세요. 여운이 다르죠. 감각적입니다.

디자인 자체가 해외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글을 디자인하면서 애국심이 생기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에 애정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글꼴을 멋지으면서 다른 나라 글자들의 아름다움이나 귀한 존재 가치도 인식하게 됐어요.


‘인스턴트 커뮤니티’ ©정해인

‘장단 DNA x 안상수 홀림’ © 국립극장

글자 관련 작업 중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제안으로 아리따 글꼴을 멋지었는데, 이게 브랜드 이름(아리따움)까지 됐어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 중에는 네이버 마루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간 선보였던 ‘안상수체’ ‘이상체’ ‘마노체’ ‘미르체’와 순수 한글 디지털 글꼴인 ‘마루 부리’의 형태는 미학적으로 다르게 느껴집니다.당시 한글꼴에 대해 고민하던 지점과 지금의 고민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글꼴은 기술의 영향을 받아요. 구텐베르크가 그 예죠. 우리나라는 IT 강국입니다. 컴퓨터의 확산 발전이 한글 글꼴 르네상스를 촉발했어요. 마루 프로젝트는 탈네모꼴 안체와 궤가 달라요. 네모틀 글꼴 설계지요. 한글 주류 글꼴의 차원을 올려 놓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의 미감과 미래 한글 사용자의 취향을 잇는 화면용 부리 글꼴을 멋짓는 프로젝트에요.

지금은 한글꼴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명조나 고딕만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글꼴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예컨대 자음과 모음의 비례를 파괴한 글꼴, 한글의 전통적인 미감을 파괴하는 글꼴을 보면 속상하진 않으신가요?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 글꼴들이 디자인되고 실험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봐요. 어떤 글꼴이 지금은 어색하지만 10년 후에는 그게 더 돋보일 수도 있지요. 지금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기엔 어려워요. 거슬리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더라고요. 좋은 것이 살아남게 되어 있어요. 저는 거부감보다는 가능성을 보는 편입니다.

2018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음악가 원일과 함께 ‘장단 DNA x 안상수 홀림’에서 비주얼 디렉터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참말로 즐거웠습니다. 무대디자인 작업도 재밌었고요. 처음 제안받을 때는 토크쇼 형식이었는데요, 직접 출연하는 것이 어색해서 원고는 제가 쓰고 그 글을 AI 기계음으로 재현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어요. 음악가와 협업은 신선했습니다.

앞으로 또 공연 작업에서 안상수의 작업물을 마주할 일이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현대무용과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파티’에서도 한 학기 동안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하는 춤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안무가들의 지도로 함께 기획하고, 동작을 만들고 실제무대 공연까지 했어요. 아마추어 수준이긴 하지만 배우미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새로웠어요.

‘파티’는 어느덧 1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설립 3년 차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바우하우스 전시회가 열렸어요. 그 전시 기획자인 바우하우스재단 큐레이터 토어스텐 블루메가 파티를 전시에 끌어들였어요. ‘파티’ 교실을 고스란히 미술관으로 옮겼어요. 그러니 수업도 미술관에서 했지요. 공간과 수업이 바우하우스 전시의 일부가 되었던 거죠. 한글의 영감을 시각화한 ‘바우야! 놀자’ 워크숍 결과물로 실험 퍼포먼스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그가 “‘파티’는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 바우하우스”라고 글에 썼어요. 그 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큰 전시도 하고, 국내외에서 과분한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 10년은 새로운 모험과 도약을 해야겠지요. 저는 ‘배우미들과 스승들이 주도적으로 함께 배곳을 멋지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대전환 시대의 창의적인 감각으로요.

세종대왕은 어떤 사람 같아요? 그는 ‘큰 디자이너’입니다. 또 공부에 신들린 사람이었고, 르네상스인이라고 생각해요. 음악가이기도 하고… 음악도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정치라고 생각했고요. 음악은 성-음-악인데, 훈민정음은 성-음-글자로 태어났지요. 그래서 새 글자가 ‘칠조(七調)를 갖추어있어 노래 음악을 적으면 율려를 극히 조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글자와 음악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백성들이 쉬이 쓰는 글자 훈민정음,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음악 ‘여민락’…

세종대왕이 살아서 이 글자체들을 본다면 어떠한 이야기를 해줄 것 같나요?

제가 ‘안체’를 멋짓고 나서 ‘세종이 이런 글자꼴을 멋짓고 싶어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대 세종이라면 아마 한글을 탈네모틀 글꼴로 만들었을 거예요.

글 장혜선 기자 사진 PaTI·국립극장

한글 캠페인 : 마루 프로젝트
네이버는 2018년도부터는 안상수 디렉터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 한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아 ‘마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루’는 한글 글꼴의 현대적 원형을 잇는 줄기라는 의미에서 지은 명칭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한 ‘인스턴트 커뮤니티’
2022년 6월 28일
파주 명필름아트센터 공연장

 

 

 

 

 

 

 

 

 

 

 


만나다 3

흥미로운 ‘한글, 즉흥연주’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

전송이(1984~)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에서 클래식 음악작곡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바젤 음대와 버클리 음대에서 조지 가르존, 타이거 오코시 등을 사사했다. 현재 젊은 음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롤렉스 아츠 이니시에이티브에 선정되어 다이엔 리브스에게 사사받고 있다.

1976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멜 토메(1925~1999)는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에게 물었다. “사람들에게 재즈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죠?”라는 질문에 피츠제럴드는 ‘스캣’으로 답했다. 스캣과 같이 목소리를 포함한 각 악기 간의 대화가 재즈라는 것이다. 스캣은 비밥과 스윙 재즈에서 보컬리스트가 ‘두’ ‘밥’ ‘바이야’ ‘달리야 두답’ ‘두든두’과 같이 짧은 음절로 부르는 즉흥의 노래다. 리드미컬함과 엑센트가 주는 생동감이 중요하기에 리듬을 강조하고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음절들이 선택된다.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는 기타리스트 김정식,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한글에 대한 실험을 재즈의 스캣으로 마쳤다. ‘두’와 ‘밥’으로 불리던 스캣을 ‘기역’ ‘니은’으로 바꿔 노래한 음반 ‘한글, 즉흥연주’를 발매한 것이다.

김정식은 “이번 음반에서 스캣은 전통음악의 ‘소리’ 개념에 가깝다”라며 “한글의 자음이 가진 고유의 울림을 현대적 화성 위에 펼쳐 보이고, 그 현상을 느끼고 전달하려고 한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함께 한 전송이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에서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했지만, 재즈 세계에 매력을 느끼고 스위스 바젤 음대에서 재즈 보컬을 전공하고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를 마쳤다. 2018년 오디션을 통해 소수의 음악가를 선발하고, 재즈 거장들과의 협업과 음반 제작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포커스이어’에 한국인 최초로 선발되어 그곳에서 지금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았다.

전송이는 단순히 보컬이라는 영역을 넘어 ‘스캣’을 통해 목소리가 작품을 구성하는 세 가지 악기 중 하나로 생각하며 작업해오고 있다. 김정식은 우연히 버클리 음대에서 전송이의 연주 영상을 보았고, 조윤성의 추천으로 세 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전송이와 나눈 일문일답.

지난 8월, 한국에서 음반 발매를 기념해 투어를 마쳤습니다. 대중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일반적인 이야기 형식의 가사가 아닌 문맥상 의미가 없는 단어들의 나열이라는 점이 짧지만 특별함을 주었고, 그것이 가사가 없는 멜로디를 허밍으로 부르는 것보다 오히려 관심을 더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다다다’와 ‘스쿠두비두’ 같이 외래어의 짧은 음절로 스캣을 했을 때와 ‘기역’ ‘니은’과 같이 두 음절의 한글로 스캣을 할 때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즉흥 연주할 때 입에서 나오는 단어와 발음들은 입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발음입니다. 그 소리를 내기위한 가장 편안한 발음인 것이죠. 하지만 ‘기역’ ‘니은’ 등의 한글로 노래할 때는 그것이 가사처럼 여겨지기에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올 때의 가장 정확한 발음과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입 모양이 먼저 주어지고 가장 적합한 소리를 입 안에서 만들게 되므로 음높이와 속도 및 프레이징의 편리에 따른 음절들의 자연스러운 구사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름과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불편하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을 통해서 한글의 소리가 가진 특이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선 아리랑’ ‘파도 일렁이다(Pado, Il Lung I Da)’와 같이 전송이 씨의 음악적 뿌리가 속한 한국의 정취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한글 스캣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재즈라는 미국의 음악을 하는 저로서는 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글 발음은 당연히 가장 편하게 저의 입에서 나오는 발음들이고, 그것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는 것은 편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음악 스타일이 발음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음이 먼저 선택되니 재즈라는 특정 카테고리로부터 저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이 살아 이 음반을 들었다면?

생각만 해도 재밌네요. 좋아하시지 않았을까요? ‘여민락’ 정신으로 백성이 알기 쉽게 한글을 만드셨으니 이를 소재로 민중이 음악까지 만들어낸다면 그분의 정신에 딱 맞는 일이네요!

조윤성·전송이·김정식

전송이에게 ‘재즈’와 ‘스캣’은 무엇인가?

스캣은 보컬 이상의 악기로서 다른 악기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여러 즉흥연주 방식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리고 재즈는 그 모든 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큰 틀이고요. 저에게 재즈는 스캣뿐 아니라 훨씬 넓은 음악적 영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음악의 시나위가 즉흥연주이듯, 각 나라의 전통음악에는 즉흥연주가 존재하는데요, 그러한 점이 재즈가 다른 다양한 문화의 음악들을 섞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글을 활용한 그다음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한글 스캣은 김정식 씨의 아이디어로 시도된 것이었어요.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으니 앞으로 있을 앨범에 반드시 넣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글 임원빈 기자 사진 플러스히치


‘한글, 즉흥연주’
전송이(보컬)/김정식(기타·프로듀싱)/
조윤성(피아노)
꾼엔터테인먼트아트앤컬쳐
‘한글 No.1’ ‘한글 No.2’
‘즉흥연주 No.1’ Part. 1 외

 

 


즐기다

바로 듣는 한국어 가사의 감동

외국 성악가의 한국가곡 부르기

역사 속 여러 오페라의 아리아·가곡·합창곡 등 성악곡의 가사는 당연히 다양한 유럽 국가의 언어이다. 아무리 그 작품과 가사를 잘 알고 있어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는 머릿속에서 한 단계를 더 지나 들려온다. 성악곡은 국경을 넘어 음악 그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나, 가사의 내용이 이해됐을 때 그 선율과 음악이 더욱 다가오곤 한다.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성악가들은 방문하는 나라의 언어로 된 음악을 관객에게 선물한다. 외국 성악가의 입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한국어 가사를 통해 아름다운 한국가곡을 감상해보자. 글 이의정 기자

르네 파페 ‘시간에 기대어’

바리톤 고성현(1962~)의 목소리로 유명한 작곡가 최진의 ‘시간에 기대어’는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가 오래돼 조금 변했을지라도, 여전히 연인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가곡이다. 2017년 12월 첫 내한공연을 펼친 독일 출신의 베이스 르네 파페(1964~)가 앙코르로 부른 영상이 남아있다. 독어로 도입부를 부르면서 음악은 여느 가곡처럼 다가오는데, 후렴부터 들려오는 한국어 가사는 모국어로 직접 듣는 가곡이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느끼게 한다. 언어가 전환되는 ‘난 기억하오’ 부분은 오직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율의 순간이다.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운 금강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운 금강산’ 스페인 출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1941~)는 1991년과 2018년의 내한 공연에서 작곡가 최영섭(1929~)의 ‘그리운 금강산’을 선보였다. ‘발음은 용서해 달라’라는 시작의 운이 무색하게 또렷한 한국어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자, 1991년 당시 청중도 감탄의 소리를 냈다. 2018년 일곱 번째 내한 때는 “한국가곡의 선율은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이런 노래를 가진 나라는 흔치 않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방문국에 대한 그의 존경은 당시 공연을 위해 차려입은 진녹색 한복에서도 곱게 퍼져 나온다.

아이다 가리풀리나 ‘그리운 금강산’

2014년 6월에 내한한 러시아의 소프라노 아이다 가리풀리나(1987~)도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관객을 두루 바라보며 음악에 맞춰 팔을 젓는 그의 제스처는 내한을 위해 작품과 가사를 완벽하게 외운 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모든 가사를 부드럽게 이어 부르는 그의 창법 때문에 가사가 명확하게 들려오지는 않으나, 외국 성악가를 통한 ‘금강산’이란 단어는 여전히 정겨움을 안겨준다. 가리풀리나는 이 공연에서 화려한 한복과 함께 ‘밀양 아리랑’을 부르기도 하였다.

 

호세 카레라스 ‘사랑으로’

그룹 해바라기의 멤버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이주호(1956~)의 ‘사랑으로’를 스페인 출신 테너 호세 카레라스(1946~)의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다. 2001년 호세 카레라스는 다양한 국가의 18개 노래를 음반(Warner Classics 68573857982)으로 발매하였는데, 여기에 ‘사랑으로’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가곡은 아니지만, 진한 호소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카레라스의 ‘사랑으로’는 원곡과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카레라스의 음악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다는 감동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아이다 가리풀리나

르네 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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