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ST ARTIST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예술가라면 잠든 세상을 깨워야 한다!
리사이틀로는 첫 내한. 세상을 향한 그 실행과 실천
이고르 레비트(1987~)의 삶의 궤적을 좇다 보면 20세기 중반 사회적 예술운동을 주도했던 덴마크 출신 작가 아스거 욘(1917~1973)이 떠오른다. 그는 작품 ‘전쟁의 환상’에서 탐욕스러운 돼지를 그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인한 인간의 추악함과 자본주의 폐단을 표현하는가 하면, 구겐하임 재단이 그를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이사장 해리 구겐하임에게 전보를 보내 “그 돈 가지고 지옥에나 가라!”라고 공개적으로 상을 거절하며 미술계 자본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레비트 역시 예술가로서 갖는 자세와 사상은 아스거 욘과 같다. 대부분 예술가가 예술의 역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할 때 ‘시민·유럽인·피아니스트’라는 단순한 키워드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 내리고, 불의라고 생각되는 일에 적극적이고 분명한 목소리로 음악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오직 예술가로서의 책임이다!
그의 이 같은 성향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 공연은 2017년 BBC 프롬스의 개막공연에서였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EU의 공식 국가인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사전 상의 없이 앙코르로 연주한 것이다.
한편 펜데믹 기간 공연의 부재가 음악의 부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관객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SNS를 통해 그의 집에서 3개월간 단 3일만 빼고 총 53회에 거쳐 연주를 생중계했다. 그는 “거실에는 약 230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라며 “사람들을 위해 연주했기에 실제 공연과 다르지 않았다”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현재, 우리의 일상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어떤 것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여전한 코로나에 둘러싸여 있고 계속되는 불확실성 속에 모든 연주가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정부에 의해 동요하는 러시아 음악가들을 향해 “음악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말아야 한다. 예술을 모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11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안고 내한한다. 레비트는 2019년에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Sony)을 발매하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았던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베토벤 음악제,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사이클 연주를 마쳤다. 하마마쓰 피아노 콩쿠르(2004),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2005) 등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무대에 데뷔한 그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했다. 2019년부터는 모교인 하노버 음대에서 재직 중이다. “인생의 절반을 베토벤에게 몰두했다”는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독일에서 보냈다. 하노버 음대를 졸업하며 여러 스승도 만났을 텐데, 당신의 연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누구였는가? 당신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거쳐 간 모든 선생님과 공부했던 시간은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그들 모두 필수적인 존재로 내 음악 속에 남아있다.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은 시민이기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나.
‘책임감’이 유일한 이유이다. 이 세상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해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에, 관객이 당신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음악만을 감상하길 바라는가?
무대에 올라가면 나와 내 음악만 있다. 무대 위에서는 오직 음악만이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또 음악만으로 솔직할 수 있다. 관객 중 누군가는 내 음악과 사회적 의견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이고, 반면 누군가는 나의 음악만 들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2017년 키릴 페트렌코/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내한 이후 5년 만의 방문이다. 첫 솔로 리사이틀을 여는데, 소감이 어떠한가.
드디어 다시 한국에 가게 되었다. 2017년 당시 내가 기억하는 한국 관객은 정말 열정적이었다. 이번 서울과 대구 공연도 아주 기대가 된다.
이번 리사이틀을 베토벤 소나타들로 채웠다. 당신에게 베토벤은 어떤 존재인가?
베토벤은 정말 나의 예술적 존재(Artistic being)이고, 나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토벤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큰 의미가 있는 작곡가이다. 불과 3년 전에 소나타 전곡을 담은 음반이 발매되었고, 첫 베토벤 음반은 거의 10년 전에 발매되었다. 다시 돌아보면 인생의 절반을 베토벤에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나만의 베토벤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가고 있었고, 지금도, 그리고 여전히 가고 있다.
최근 당신이 여러 나라에서 선보이고 있는 프레드 허쉬(1955~)나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편곡 졸탄 코치스)를 이번 내한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베토벤 음악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공연의 선곡 기준은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 연주할 때 즐거움(Joy)을 주는 작품들이다. 관객도 물론 좋아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곡들이다.
베토벤이 지루할 때도 있는가?
그렇다. 가끔 피로해질 때쯤이면 조금 거리를 두고 쉬기도 한다.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일종의 루틴이 되는 것보다는 쉼을 갖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메탈리카의 ‘Nothing Else Matter’를 담은 음원이 나왔다. 다른 장르의 음악도 즐기는 편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중음악도 즐겨 듣는다. 대중음악과 함께 자라기도 했고, 그들만이 가진 음악적 언어를 즐기는 편이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과 앨범을 발매하고 있는데,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연주자로서, 음악가로서 당신의 목표도 묻고 싶다.
새 앨범을 낸 지 얼마 안 되어서 현재로서는 정확한 계획이 없다. 한동안 숨을 고르고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생길 것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빈체로
이고르 레비트(1987~)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했다. 하마마쓰 피아노 콩쿠르(2004),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2005) 등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오며 ‘뉴욕타임스’지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현재 모교인 하노버 음대에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이고르 레비트 피아노 독주회
11월 1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1월 16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8번 ‘비창’, 21번 ‘발트슈타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