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부산시향, 항구 도시에 닻을 올린 정통 악단의 향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1월 7일 9:00 오전

COVER STORY

창단 60주년
부산시립교향악단

항구 도시에 닻 내린
정통 악단의 향기

 

 

 

 

 

 

 

 

 

 

 

 

 

 

부산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최수열)이 올해로 창단 60주년을 맞았다.
이들의 60년은, 분단 이후 척박한 음악적 토양에서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찬란함을 이뤄낸 국내 관현악 역사의 한 축이다.
역사의 파고 앞에, 부산시향은 넓고 풍요로운 항구처럼
그 자리를 지켜왔다. 오는 11월, 부산과 서울에서
이를 기념하는 연주회를 계획 중인 부산시향을 만났다.
총괄 허서현 기자

COLUMN 부산시립교향악단 60년사 _송현민·이준형·한정호
INTERVIEW 상임지휘자·예술감독 최수열 _허서현
TOUR 부산시 음악 생태계 탐방 _장혜선·허서현·임원빈·이의정

 


 

COLUMN

부산시립교향악단 60년사
‘회갑’을 맞으며 발자취를 돌아보다

시대별 주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부산음악계는 부산시향 창단 전부터 창단에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움직임으로 꿈틀거렸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반을 조성한 부산시향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전기에 돌입했다. 국내 교향악단들이 점차 성장기에 접어들었던 이 시기는, 경제 발전으로 인해 청중의 문화적 욕구가 상승하며 교향악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호응이 올라갔다.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아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부산시향은 당면한 현실을 돌파해나갔다. 공립 예술단체의 거버넌스, 지휘자에 예술적 리더십을 부여하는 위계와 절차, 해외 지휘자의 국내 의무 활동 기간, 투어의 효용, 예술가 평정 시스템의 이상과 현실, 전염병과 온-오프라인, 디지털 공연의 병행 등 시대는 바뀌고 있었다.

탄생기 1962~1979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1·4 후퇴와 함께 해군정훈음악대도 부산으로 남하했다. 이러한 군악대들은 부산에서 위문 공연을 선보이곤 했는데, 훗날 부산시향의 초대 지휘자를 맡게 되는 오태균(1922~1995)도 해군정훈음악대에 재직했다. 오태균은 부산 제2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를 나와 1947년 김생려가 이끌던 서울교향악단 바이올린 단원으로 입단했다. 전쟁기에 해군정훈음악대의 일원이 되어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1954년 부산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오태균은 학생을 모아 1955년 10월 부산대 관현악단을 창단했다. 1960년에는 KBS부산방송총국이 부산방송교향악단을 창단했는데, 부산시향 창단 시 부지휘자를 맡을 한병함이 이 악단을 이끌고 있었다.
부산시향의 창단 연주회는 1962년 12월 7일 제일극장에서 있었다. 11월에 정식 창단된 부산시향의 창단 공연이 12월이었던 것은 이듬해인 1963년 부산직할시 승격을 앞둔 처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창단 공연의 프로그램북을 보면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립 대연주회’라는 제목 위로 ‘직할시 승격 기념’이라고 적혀 있다. 독특하게도 성악 단원도 선발했는데 이는 이은숙이 맡았다. 악장을 포함한 42명의 단원 구성이었다.(하단 도표 참조) 1963년에 8회의 정기연주회를 선보였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곡목과 협연진이 독특하다.
정기연주회에 교향곡이나 협주곡이 아닌 성악곡이 많았던 이유는 당시 시민들의 수준과 연주자의 부족으로 추측된다. 기악이 악기라는 물적 토대와 인적 훈련 과정을 가져야 하는 것에 비해, 성악은 사람의 몸만 있으면 된다는 조건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양악 중에서도 성악 전공자와 소비층이 유독 많았다.
하단 도표의 (나)는 부산시향 역사상 최초로 협주곡을 선보인 공연으로 기록된다. 이후 부산시향은 꾸준히 협주곡을 선보이는데, 하나의 정기연주회에 두 곡의 협주곡이 배치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전악장을 협연하는 음악가는 대학과 유학을 마친 전문 연주자가 많았고, 단일 악장만 발췌한 연주는 젊은 신진을 협연자로 기용한 무대였다. 이러한 선곡과 협연자 초빙문화는 1979년까지 이어졌다.

1962 초대 지휘자 오태균

부산시향 창립 대연주회(12.07 제일극장)

1972 2대 상임지휘자 한병함

1972 부산 최초의 목관 5중주단 결성

1973 부산시민회관 전경

 

 

 

 

 

악단으로서의 구색은 갖췄지만,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었던 관계로 부산시향은 1973년 부산시민회관에 터를 잡기 전까지 부산의 영화상영관을 전전하며 정기연주회를 선보였다. 어느 특정 단체가 전국 순회를 할 때면 부산을 빼놓지 않았는데 이때도 부산시향은 함께 했다. 예를 들어 1963년 부산을 찾은 불란서 발레단 공연은 물론 1966년에 부산을 찾은 창작오페라 ‘춘향전’(현제명 작곡)의 반주를 맡기도 했다. 1966년에는 전속 어린이합창단을 창단했다. 6월부터 단원을 모집했고 7월 24일 제34회 정기연주회(왕자극장)로 ‘시향전속 어린이 합창단 창립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을 비롯한 경남의 음악 발전을 이끌어가던 부산시향은 1970년 언론을 통해 대대적인 비판을 받는다. 부산음악계는 문제점을 파악 후 객원지휘자 초청 비율 상승 필요와 운영위원회 재구성과 활성화, 특정 음악가에 의한 폐쇄화 방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선곡,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단결 등의 대안을 언론(부산일보 7월 9일)을 통해 내놓았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상임지휘자 오태균의 활동도 위축됐다. 부산시향은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맞은 1970년 12월 18일 동주여상(현 동주여고) 강당에서 베토벤의 ‘에그몬트’와 ‘코리올란’의 서곡, 교향곡 2·5번을 오태균의 지휘로 선보였는데 이 공연은 오태균이 상임지휘자로서 지휘한 마지막 공연으로 기록된다.
지휘자 공석 시대에는 부지휘자 한병함과 객원지휘자들이 지휘를 맡았다. 더불어 공연책자(프로그램북)의 판형이 바뀌어 면수가 크게 늘었고, 곡목 해설도 상세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1972년은 부산시향 창단 10주년이 되는 해다. 부지휘자로 활약하던 한병함(1931~2012)은 그해 1월 11일에 제2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1979년 2월까지 약 7년에 걸쳐 활동한다. 한병함은 해군 군악학교에서 플루트를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학교 교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해군 군악대가 부산으로 오면서 한병함도 함께 움직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부산 음악계에 정착한 음악가다.
1973년 부산시향의 큰 변화는 2월의 후원회 발족과 10월의 부산시민회관 개관이다. 특히 시민회관은 부산시향에 새로운 터전과 환경을 제공했고, 공연 시설과 사정이 열악했던 부산에 최초의 대규모 공연 시설로 화제를 모았다. 시향은 이후 모든 정기연주회를 부산시민회관에서 선보였다.
한병함이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시기는 대형 합창음악이 많이 올랐다. 1972년 12월 베토벤의 ‘합창’을 선보였던 시향은 1973년 12월에도 교향악단과 합창이 함께 하는 헨델 ‘메시아’ 연주회로 화제를 낳는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산의 오라토리오나 합창 등 합창단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1975년 부산음악계와 언론(부산일보 5월 8일)을 통해 시향의 문제점이 또다시 도출되었다. 이번에는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과 불신임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연유였는지 오태균 재직기(1962~1971)보다 불어난 객원지휘자 초청 비중은 “리더십이 약하다” “객원지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등의 비판을 낳는 실마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던 중 12월에 지휘자와 전단원 해촉되었고, 재위촉을 통해 다음을 모색하기로 했다.
1976년 1월, 부산시는 한병함을 상임지휘자로 재위촉했고, 단원 재위촉을 위한 심사가 진행됐다. 진통의 시간을 보낸 시향은 100번째 정기연주회를 맞은 1976년 7월 30일(시민회관)에 베토벤 ‘합창’을 선보였다. 1977년에는 메시앙(1908~1992)의 관현악을 위한 4개의 명상곡 ‘승천’을 초연하며 현대음악에도 도전했다. 한병함 이후 1979년부터 시향은 이기홍을 제3대 상임지휘자로 맞이했다. 오태균과 한병함이 각각 재직했던 1960~70년대에 전국의 시립교향악단은 서울(1948년 창단), 대구(1964년 창단), 인천(1966년 창단), 광주(1969년 창단), 청주(1973년 창단)뿐이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 교향악단 역사의 초석과도 같은 ‘최초’였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훗날 한국 교향악단 역사에서 인지해야 할 ‘최초’의 사례가 되었는데, 부산시향의 시작과 존재는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성장기 1980~1999

부산시향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았다. 다만 그 시작은 평탄하지 않았다. 악단의 내부 불화로 1981년 5월의 145회 정기연주회가 무단으로 취소되면서 부산직할시가 악단을 전격적으로 해체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4대 상임지휘자 박종혁(1942~1996)이 악단 재창단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고 취임했다. 그는 악단의 질적 내실화를 목표로 잡고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단원들의 평균 연령은 46세에서 29세로 낮아졌으며, 악단은 해체 5개월 만인 1981년 11월에 재출범했다.
1980년대 중반, 80여 명의 정단원과 안정적인 3관 편성을 갖추는 등 악단 규모도 커졌고, 운영도 정상 궤도에 접어들었다. 차츰 전국적인 활동도 펼치기 시작했는데, 국립극장 대극장(1983년 11월), 세종문화회관(1984년 12월) 공연 이후 여러 차례 서울 공연을 개최했고 1985년에는 10회 대한민국음악제(현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다. 전국 순회공연, 광주시향과의 정기적인 교환 연주회도 성사되었다. 1986년, 재창단 5주년 기념으로 브람스 교향곡 4번(지휘 박종혁)을 상업용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서울의 두 악단(KBS교향악단·서울시향)과 비교되며 ‘한국 3대 교향악단의 하나라고 불러야 할 수준 높은 교향악단’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 1988년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음악제에서는 ‘중앙 교향악단의 연주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음악을 마음으로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라는 예외적인 찬사를 받았다.

1984 세종문화회관공연(12.8) 이후 여러 차례 서울 공연을 개최했다.

1984 세종문화회관공연(12.8) 이후 여러 차례 서울 공연을 개최했다.

1991 제252회 정기연주회(12.13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1993 6대 상임지휘자 블라디미르 킨

1993 7대 상임지휘자 반초 차브다르스키

 

 

 

 

 

 

그러나 교향악단 안팎의 여러 가지 불협화음이 모두 해결되지는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과 외지 출신 단원 사이의 내부 갈등이었다. 결국 1988년 6월에는 일부 단원들이 지휘자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6월 24일에 열린 214회 정기연주회 중 인터미션에 부산지역 음악 전공 대학생들의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휘자 박종혁은 즉시 사표를 제출했다. 악단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박종혁은 부산시향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자 중 한 명이라고 할 만하다.
지휘자 공석으로 인한 비상상황은 외국인 지휘자의 영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지휘자로는 단원 화합을 이루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동구권이 자유화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영입할 수 있는 외국인 음악가의 폭이 이전보다 크게 넓어졌다. 그 결과 마크 고렌슈타인(1946~)이 5대 상임지휘자로 선정되었다. 소련(현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인 고렌슈타인은 강압적인 태도와 혹독한 리허설로 단원의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에 부산시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전반적인 연주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1990년 5월 29일 서울 연주회(예술의전당) 때는 ‘부산시향은 예전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자기 모습을 갖춘, 활짝 핀 꽃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라는 표현(본지 1990년 7월호)이 나올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991년 부산시가 시립예술단 설치조례 개정안을 통해서 예술감독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면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예술 감독제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과는 별개로 재임용 오디션 등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고렌슈타인은 1991년 12월을 끝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비록 2년의 짧은 임기였지만, 고렌슈타인이 악단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연주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1992년, 부산시향은 상임지휘자가 없는 가운데 창단 30주년을 맞으며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미국에서 활동하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복수와 김필주를 새로운 제1악장과 제2악장으로 영입했다. 또한 국내외 여러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중 단원들이 지지한 블라디미르 킨이 1993년 6대 상임지휘자로 선임되었다. 소련 출신인 킨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휘자로, 당시 단원들은 그를 온화하고 귀족적인 신사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킨은 안타깝게도 6월 3일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악단은 후임자를 놓고 고심하던 중 278회 정기연주회에서 호평받은 반초 차브다르스키를 1993년 7대 상임지휘자로 영입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출신인 반초 차브다르스키(1930~2001)는 여러 악단을 거친 노련한 지휘자였다. 그는 1994년 285회 정기연주회에서 정식으로 취임했고 1995년까지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서른 번이 넘는 연주회를 통해서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특별 연주회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섯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차브다르스키는 원만한 성격으로 단원들과 사이가 좋았지만, 한편으로 악단에 대한 애정은 다소 부족했다고 평가하는 단원도 있다.
부산시향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내부적인 진통을 극복하고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조례 개정으로 단원이 늘어나면서 드디어 4관 편성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1994년에는 부산시향 역사상 최초로 불가리아 출신의 외국인 단원인 호른 연주자 이반 네델체프를 영입하는 등 금관 파트 보강이 이루어졌고, 또 서울지역 중견 연주자들이 잇따라 입단하기도 했다. 정기연주회가 부쩍 늘어났고 청중도 꾸준히 증가했다. 국제적인 인지도를 갖춘 독주자들이 협연자로 등장했으며, 1995년 2월 24일 정기연주회 300회를 돌파했다.
1996년, 곽승(1941~)이 8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곽승은 당시 텍사스 오스틴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1970년대 말부터 국내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지휘해서 익숙한 음악가였다. 1996년 신년음악회에서 부산에 첫 모습을 보인 곽승은 고렌슈타인에 비교될 만큼 카리스마로 악단을 이끌었다. 곽승은 고전부터 20세기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프로코피예프 ‘알렉산드르 넵스키’ 한국 초연 등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긍정적인 반응은 부산지역은 물론 중앙 언론 비평에서도 드러난다. 1997년 교향악축제에서는 ‘스탠더드 레퍼토리 일색으로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교향악축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라는 예외적인 찬사(“신선한 감동 준 부산시향”, 중앙일보 1997년 4월 15일)를 받았다. 또한 1997년, 창단 35년 만에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미국 주요 도시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으로부터 ‘기품 있고 세련된 연주’라는 호평을 받았다.
1998년, 재계약이 이루어지면서 ‘곽승 2기 시대’가 열렸지만, 이보다 약간 앞선 1997년 말, IMF 사태는 부산시향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부산광역시의 문화예산이 두 차례에 걸쳐 삭감되었고, 환율급등으로 외국인 협연이 취소되었으며 1998년 말 부산시향 정원은 115명에서 9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부산시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내실을 다지는 해’로 설정하고서 단원들이 협연자로 나서는가 하면 다양한 실내악 연주로 활동을 다각화했다.
부산시향은 1990년대를 거치며 드디어 창단 이래 계속 붙어 다녔던 ‘지방 악단’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외국인 지휘자들과 곽승을 거치며 고전과 낭만시대에 집중되었던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가 확장되었고, 연주력도 본 궤도에 올랐다. 핵심은 시민들의 의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 꾸준한 예술적, 행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민들의 지지는 상대적으로 다소 미흡했다. 이는 경제,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 인프라 등 사회 전반을 폭넓게 아우르는 문제이며, 우리나라의 모든 교향악단이 직면한 고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1980년대 후반부터 악단의 성장과 소득 수준의 변화, 문화 의식이 맞물리면서 청중이 꾸준히 늘어났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성공적인 1990년대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대를 향했다.
글 이준형(음악 칼럼니스트)

 


 

확립기 2000~2022

2000년 부산시향은 정기회원 확충과 팬클럽 조직 논의를 본격화했다. ‘향토인 출신의 부산의 연주인 시리즈’를 지속했고 볼쇼이극장 출신 트럼피터 드미트리 로카렌코프를 영입하면서 ‘용병식’ 관악 보강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1년에 곽승은 윤이상의 ‘화염에 휩싸인 천사’로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를 노크했다. 곽승이 객원 지휘로 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를 지휘하자, “부산시향에 집중하라”는 지역의 반발 보도가 있었으나 부산시향은 “지휘자들의 객원 지휘는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곽승은 로시니·스트라빈스키·차이콥스키의 연주 성과를 연이은 2002년 정기 연주회로 과시했고 5월 중국계 피아니스트 공샹동 협연으로 베이징·상하이·청두를 투어했다. 부산아시안게임 성공 기원을 명분으로 공연이 열렸고 2대 한병함·3대 이기홍 지휘자들의 홈커밍 공연이 있었다.
2003년 11월, 지방 악단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구·대전·전주 지방 투어에 나섰다. 단원들은 오디션과 상임지휘자 거취를 다루는 운영 위원회를 열었고 곽승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2004년, 부산시향 단원들은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곽승의 빈번한 객원 지휘 스케줄도 투표로 비토했으나 연주회는 예정대로 올라갔다. 차기 상임지휘자 후보가 언론에 공개됐고, 10월 부마항쟁 25주년 기념식에는 부산시향 실내악단이 참가했다.

다음 해인 2005년 부산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로 들떴고 1월 알렉산더 아니시모프를 새 상임지휘자로 임명했다. 지휘자의 본거지인 유럽무대 활동을 보장했지만 지역 언론은 부산 체류 기간 부족을 꼬집으며 부지휘자 영입을 권했다.
2006년 3월 아시니모프는 부산에 장기 체류하면서 세 차례 정기 연주회를 했고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도 참여했다. 부산시향과 창원시향이 부산방송(PSB)의 광역방송 출범을 기념해 조인트 공연을 가졌고, 부지휘자로 이동신을 임명했다. 다음 해에도 아시니모프는 교향악축제에 섰고, 바그너 관현악 세트를 선보이며 음악계 시선을 끌었다. 20대에 중국국립교향악단 감독에 오른 리 신차오가 그해 9월 데뷔했다. 10월, 교향악단 운영위에선 과반수의 단원이 아니시모프의 통솔력을 비판하는 투표 결과를 냈다.
2008년 신년 음악회는 오스트리아 지휘자 크리스티안 슐츠가 맡았다. 10월에는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에 참가해 아니시모프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1월 정기연주회는 리 신차오가 ‘영웅의 생애’로 차기 상임지휘자 능력을 검증했다. 그리고 2009년, 신년 벽두에 리 신차오의 신임 상임지휘자 임명 소식이 전해졌다. 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그는 그동안 정기 연주회 규격에서 소외됐던 현대 음악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리 신차오는 R. 슈트라우스와 콘서트 오페라로 자신만의 장점을 부산시향에 이식했다.
리 신차오는 말러 교향곡 5번으로 2010년 교향악축제를 향했고 연말에는 일본 규슈 심포니 단원을 규합해 말러 ‘부활’을 지휘하면서 한·일 교류에 새 물꼬를 텄다. 부산시향은 베토벤과 브람스에 집중하는 프로젝트 ‘BBB’(Beethoven&Brahms in Busan)를 시행했다. 리 신차오는 왈츠 중심의 신년 음악회 판도를 변혁해, 소리꾼 장사익을 부르면서 2011년 부산시향만의 새해 무대를 시도했다. 2013년 말까지 상임지휘자 계약을 연장했고, 지휘자는 6월 말러 교향곡 4번으로 한국 적응을 완료했다.

1997 미국 순회 공연 출국사진

1997 샌프란시스코 공연 포스터

2000 태국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동남아 3개국 투어(10.30)

2003 제391회 정기연주회

2021 부산시향의 두 번째 뮤직비디오 ‘짠!!’

 

 

 

 

 

2012년 부산시향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리 신차오는 자신의 본거지 중국(베이징·상하이·광저우) 투어를 가졌고 협연자는 칭다오 중국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 김봄소리를 썼다. 10월 마크 고렌슈타인의 귀환은 지역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2013년 부산시향의 화두는 베토벤이었다. 리 신차오는 이때를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해로 삼아 저명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올렸고, 교향악축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이 과정에서 뤼벡 필하모니 카를로스 존슨을 영입해 연주력 신장에 톡톡한 효과를 봤다. 2014년 5월, 리 신차오는 정기연주회에 앞서 흰 꽃을 들고나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다. 앙코르는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였다. 리 신차오와 부산문화회관은 단원 공개 전형에서 합격자 선정에 이견을 보였다. 부산문화회관은 심사위원관 사정 회의를 청한 리 신차오 요구를 “미리 생각한 인물을 채용하려는 규정에 없는 요구”임을 들어 묵살했다.
2015년 부산문화회관 법인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고 산하 예술단의 위상 정립 문제를 미완으로 남겼다. 리 신차오는 교향악축제를 마치고 임기 만료 시 사퇴를 고려한다는 뜻을 언론에 밝혔다. 그는 단원 채용 과정에 서명 진위에 대해 경찰 수사를 받았고 상임지휘자직을 종료했다. 2016년까지 부산시향의 혼란이 계속됐다. 지역 언론은 전년도 객석 점유율 하락의 책임으로 사무국 통합의 혼선을 들었다. 객원 지휘자 구인난을 겪으며 교향악축제 참가가 무산됐고 객원 지휘자 투입을 ‘차기 후보 지휘자 오디션’으로 매체가 언급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2017년 부산시향은 새 선장 찾기로 한 해를 시작했다. 2015년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리 신차오는 2월 을숙도문화회관 객원 지휘로 호평받았다. 부산시향은 지휘자선정위원회의 공식 절차를 거쳐 11대 상임지휘자로 최수열 전 서울시향 부지휘자를 선임했다. 최 감독은 인위적인 콘셉트 만들기를 피하고 곡목 간 알레고리를 통해 인문학 토대를 드러내는 프로그래밍을 보였다. 2018년 최수열 감독은 그동안 국립극장 여우락을 통해 양악과 국악을 조합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년음악회에서 강준일 작품을 숙독했다. 정기연주회에는 윤이상 ‘예악’을 배치하면서 큰 차원에서 근현대성을 대하는 악단의 탄력성을 보강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등에서 함양한 R. 슈트라우스 관현악에 대한 노하우를 R. 슈트라우스 교향시 시리즈로 극대화했다. 2019년은 프로그래밍 내실화와 더불어 단원과의 스킨십에 공을 기울였다. 뜨거운 감자였던 시향 단원 평정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단원 연습 시간을 근무 시간에 효율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했고 예술감독이 고용 안정을 위협하는 외부 환경에 바람막이로 나섰다.
2020년, 부산시향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 프로젝트 완주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2월부터 코로나19로 부산문화회관이 폐관하면서 시향 공연은 중단됐다. 비대면 공연과 소규모 공연을 최수열과 부지휘자가 나눠 맡는 묘책이 발휘됐지만, 대면 공연에 대한 관객의 경계심을 허물긴 어려웠다. 2021년은 전년도 취소된 프로그램을 일단 재생하는 계획으로 시즌이 시작됐다. 절반만 열 수 있는 거리두기 배치로는 매진이 되더라도 재정은 악화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심지어 7월 정기연주회는 공연 전날 단원의 코로나 확진으로 공연이 취소됐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였다. 최수열이 주도한 ‘알프스’ 교향곡의 뮤직비디오 작업은 코로나19가 계기가 됐다.
2022년 최수열은 신년연주회로 포문을 열고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탐독했으며 진은숙 ‘수비토 콘 포르차’에 이어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양인모와 함께했다. 연말 프로그램 역시 베토벤 ‘합창’ 대신 브리튼 ‘세레나데’와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으로 변격을 줬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INTERVIEW

상임지휘자·예술감독 최수열
60주년을 향한 6년간, ‘조금씩 나아가기’

지난 2017년, 20개월의 지휘자 공백을 깨고 최수열이 부산시향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주인은 단원들”이라며, 악단의 안정과 개성 살리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지휘자라는 프레임에서 시작된 임기 초, 그는 자연스럽게 기대와 실망을 겪었다. 6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최수열은 “조금씩 나아지는 법”을 터득했다. 창단 60주년을 함께 맞이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그는, 부산시향과 자신의 6년을 함께 돌아보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 중이다. 그렇게 문득 뒤돌아보면 느끼게 마련이다. ‘에법’(제법) 왔다는 것을!

부산! 마, 살아있네!
부산의 바다는 뭔가 다르다. 최수열 지휘자와 부산시향을 만나기 위해 부산문화회관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 다리 아래로 보이는 빛바랜 컨테이너와 크레인을 품어, 이 바다는 거친 내음을 풍기는 항구다. 사사로운 걱정 따위는 무색해질 만큼, 크고 호방한 항구 도시. 도시의 분위기에 덩달아 조금 호기로워진 마음가짐으로 최수열을 마주했다. 평소보단 조금 단단한 질문들을 던졌건만, 그는 짙은 눈매로 서글서글 웃으며 답변해온다.
오는 길에 부산의 매력을 한껏 느꼈습니다. 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있네요. 큰 항구와 산 너머의 작은 집들, 시끌벅적한 밤….
매력이 넘치는 도시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멋과 자존심, 시원시원하고 마초적인 감성 등이 이곳에 살며 직접 느낀 개성들입니다.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죠.
이 강렬한 도시를 기반으로, 부산시향이 올해 창단 60주년을 맡았습니다. 많은 교향악단이 그러하듯이 부산시향에도 역시 굴곡의 역사가 있었는데요. 교향악단의 해체 위기나 지휘자의 공백, 불화도 모두 부산시향에게는 어려운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오케스트라가 이어져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시와 악단, 관객 모두가 포기하지 않아서죠. 물론 경험하긴 싫지만, 실패를 겪으며 더 단단해질 수 있죠. 억지로 숨기고 덮으면, 결국 썩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버텨온 부산시향이 자랑스러워요.
현재 단원의 수가 꽤 많은 편인 것 같습니다. 파트별 수석 연주자의 자리도 모두 채워져 있나요.
상임단원 87명, 비상임단원 10명으로 총 97명의 4관 편성을 기본으로 하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입니다. 부지휘자 외 더블베이스·플루트·바순 수석이 현재 공석이라 조만간 충원 오디션이 열릴 겁니다.
지역 기반 오케스트라에 대해 갖게 되는 흔한 인식이 있습니다. 지역 출신의 음악가가 많아, 이에 따른 지역 색이 강할 것이라는 점이죠.
물론 부산 출신 단원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출신지역이나 학교를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오디션 방식을 취해, 오직 실력만으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취임한 이후로 새로 선발된 20여 명의 단원 중 75%가 서울 혹은 외국에서 공부를 한 단원들입니다. 신입 단원의 기량과 기존 단원의 경험치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지 지역 기반 오케스트라라는 특징으로만 부산시향을 정의할 순 없을 것입니다. 국내외 여러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해오셨는데요. 부산시향만이 가진 음악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느끼나요.
매우 강한 개성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요. 제가 객원 지휘 병행을 꽤 많이 하고 있어 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거친 뉘앙스를 다른 악단보다 훨씬 잘 표현하고, 지난 몇 년간 R. 슈트라우스 사이클을 거치며 넓고 화려함을, 라벨 사이클을 거치면서 섬세함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봤습니다. 현대음악을 자주 연주하며 그 이해도와 초견 능력도 우수하고요. 가장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매우 넓은 표현 범위를 가진 오케스트라죠.

오늘날의, 부산시향 성장기
앞서 말한 대로, 2017년부터 3년 동안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전곡에, 2020년부터는 라벨 관현악곡 전곡에 도전해왔죠.
부산시향이 다른 악단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엇’을 정하기 위해 여러 조건을 고려했습니다. 악단에게 생소하지 않은 것, 제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부산과 닮은 것 등이었죠. 저는 각종 악기 소리에 매력을 느낀 것이 지휘를 시작한 계기라, 자연스레 관현악법을 잘 다루는 R. 슈트라우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서울시향 부지휘자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꽤 많이 작업하기도 했고요. 부산시향도 앞선 상임지휘자 곽승, 리 신차오 등과 적지 않게 연주했더라고요. 화려하고 강렬한 사운드가, 부산의 DNA와도 잘 맞아 떨어지겠다 싶었습니다. R.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오케스트라 오디션 단골 과제곡으로 등장할 만큼, 모든 악기에게 까다로운 테크닉과 음악성이 요구되는데요, 악단의 실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10월에 완주한 라벨 관현악곡 전곡 사이클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된 것이고요.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레퍼토리 선정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악단의 예술감독은 급식 영양사와 닮았습니다. 맛있고, 영양가가 있으면서도, 편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죠. R. 슈트라우스와 라벨 사이클을 각각 3년간 기본으로 진행하며, 고전부터 현대까지 모든 나라의 음악들을 골고루 선정했습니다. 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는 필수 영양소고, 현대음악도 소외되지 않게 했죠. 동시에 악단만의 개성 있는 주력 메뉴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악단의 성장을 위한 방법 중 연주 투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이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부산시향은 유독 많은 해외 상임지휘자들이 거쳐 갔습니다. 제5대 마크 고렌슈타인(1989~1992), 제6대 블라디미르 킨(1993), 제7대 반초 차브다르스키(1993~1995), 제9대 알렉산더 아니시모프(2005~2009), 제10대 리 신차오(2009~2016). 이들이 오케스트라에 남긴 유산을 체감한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렌슈타인은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상임지휘자이죠. 부산은 지리적으로 항구 도시이고, 문화적으로도 개방적입니다. 타지 사람에 대한 텃새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고, 해운대에서는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죠. 부산의 개방성이, 시향이 외국인 지휘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한 부분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고렌슈타인은 아주 엄격한 리허설로 당시 시향의 연주력이 굉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니시모프의 러시안 레퍼토리, 리 신차오의 정통을 기본으로 한 유연함이 악단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부터 ‘올해의 예술가’ 제도를 시작, 작곡가 김택수(2021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022)와 함께 했습니다. 선정한 예술가들의 전공 분야, 나이 등 모두 다른데요,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시스템은 상주작곡가를 두는 것이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속성 부분에서 확신이 서지 않더군요. 그래서 주로 연주자로 선정하는 ‘올해의 음악가’를 ‘올해의 예술가’로 넓혀보았습니다. 작곡가나 연출가, 무용가 등 모든 예술가가 적용될 수 있게요. 나이나 전공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고, 본인만의 뚜렷한 음악 철학과 개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2023년 ‘올해의 예술가’를 ‘객석’ 지면을 통해 처음 공개하자면, 피아니스트 손민수입니다. 최근 임윤찬의 스승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선생님께 제안해오고 있었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같이 작업하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년 시즌, 부산시향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선보일 예정이랍니다.
오는 11월에 있을 창단 60주년 기념 연주회 ‘회갑’의 레퍼토리가 이 모든 시간의 집약체군요. 스트라빈스키의 ‘축하 전주곡’을 시작으로,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협연 양인모), R.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축하 전주곡’은 생일 축하 노래를 그만의 방식으로 비튼 아주 짧은 곡인데, 부산시향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성대한 도입부가, 창단 60주년을 모두에게 알리며 자축하는 무게감으로서 손색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동안 부산시향과 현대음악을 꽤 자주 다뤄온 만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씨와 제가 동시에 도전하고 싶은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골랐죠. 한국 초연은 이미 했지만, 외국인 연주자였기 때문에 이번 협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시향과 저의 개성, 그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선곡이라고 믿습니다.
‘회갑’은 육십갑자가 한 바퀴를 돌았다는 뜻으로,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부산시향이 맞은 60주년을 한 번의 운명 사이클을 돌고,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는 해라고 본다면 미래를 보며 지향하고 있는 운명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부산에 중요한 공연장 두 개가 곧 들어섭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클래식 음악 전용홀인 부산국제아트센터입니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 전용홀이 부산시향과 연관 있겠죠. 상주 여부를 떠나, 악단에게 좋은 홀이 생긴다는 것은 엄청난 발전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부산시향의 개성 있는 사운드를 새로운 홀에 녹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최수열/부산시향(협연 양인모).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선보인 지난 5월 공연

사람과 더불어 있다는 것
취임 당시, 한 인터뷰에서 “판을 새로 짜는 것에 대해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고 언급하셨습니다. 그럼에도 6년간, 부산시향과 함께 하며 추구하고 싶은 ‘최수열만의 정체성’은 없었나요.
예술감독이 처음이었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 1, 2년은 실망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데, 시스템상 안 되는 것들도 많아 화가 나기도 하고, 이해도 안됐죠. 3년차부터, 조금씩 요령이 생기더군요.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흘러가면, 부작용도 없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꽤 많이 걸어왔다는 걸 느꼈어요.
포디엄 위에서는 음악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지만, 그 아래에서는 단원들이 음악가라는 길을 함께 걷는 동료이자 선·후배이기도 합니다. 동고동락하며, 이들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들은 무언인가요.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책임은 어떻게 지는 것이 현명한지, 신의를 얻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하는지, 비겁하지 않은 중립은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단원 모두, 그리고 부산시향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제 스승이에요.
요즘의 이상적인 지휘자 상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것입니다. 이상적인 지휘자의 모습을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방법들로 소통하시나요?
유럽에 비해 한국은 오케스트라의 많은 권한이 예술감독에게 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권한을 단원들과 나누려고 노력했어요. 군림하는 지휘자의 시대는 더 이상 설득력 없다고 믿습니다. 부산시향은 연주가 끝나면, 저 혼자가 아닌 모든 단원이 같이 인사하는 특별한 인사법도 가지고 있답니다.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 한국 초연, 교향악축제에서 선보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 등으로 현대 음악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꾸준히 보여 왔습니다. 현대 음악의 적극적 실연을 설득하기 위해, 단원들과 공유한 현대 음악 연주의 가치 등이 있었나요.
설득에는 어려움이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음악은 제가 늘 가지고 있는 사명감이었고, 달라진 점은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우선으로 하되, 연주하기에 가치가 있는 옥석을 잘 골라서 올리는 것이죠. 진은숙 선생님 덕분에, 부산시향이 영국의 부지앤호크스(Boosey & Hawkes)와 인연이 닿은 것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내년에 이 출판사에 소속된 작곡가 신동훈의 작품을 독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산시향이 공동 위촉했습니다.
2023년을 끝으로, 부산시향에서의 임기가 끝난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9월, 마지막 계약을 했습니다. 부산시립예술단의 모든 예술감독은 최초 계약 후 최대 두 번의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조례가 있으며, 아쉽지만 약속이란 것은 지켜야 합니다. 내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창단 60주년을 함께 한 지휘자임에 영광이며, 내년의 정기 연주회는 감사함과 떠나는 아쉬움을 담아 ‘6 Last Works’라는 테마를 가지고 특별한 곡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창단 60주년 기념 연주회 배너 옆에 선 최수열 ©김진철

은퇴를 앞둔 단원들. 왼쪽부터 김성덕(첼로), 김영립(하프), 류재환(오보에), 이호영(더블베이스) ©김진철

앞으로 지휘자로서 이루고 싶은 본인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필요한’ 지휘자가 되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일 때, 제 행복지수가 가장 높더군요. 목표라면 그 상태가 계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입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부산문화회관

최수열(1979~) 2017년부터 부산시향의 예술감독으로, 2021년부터 KCO(구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치용을 사사했고, 드레스덴 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으며, 앙상블모데른이 주관하는 아카데미에 합류해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했다.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3년간 재직한 바 있다. 브장송 지휘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바 있고,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 중국국가대극원오케스트라, 일본 센다이 필하모닉 등을 지휘했다.

 

 

부산시향의 역대 지휘자들
초대 지휘자 오태균
1962.10~1971.02

2대 지휘자 한병함
1972.01~1979.03

3대 지휘자 이기홍
1979.04~1981.06

4대 지휘자 박종혁
1981.10~1988.08

5대 지휘자 마크 고렌슈타인
1989.11~1992.01

6대 지휘자 블라디미르 킨
1993.02~1993.04

7대 지휘자
반초 차브다르스키
1993.09~1995.12

8대 지휘자 곽승
1996.01~2003.12

9대 지휘자
알렉산더 아니시모프
2005.06~2009.05

10대 지휘자 리 신차오
2009.06~2016.12

Performance information
최수열/부산시향(협연 양인모)
11월 2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1월 1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TOUR

부산시 음악 생태계 탐방
도시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를 찾아서

인구 330만의 도시, 부산.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답게, 부산의 풍경은 국내 어느 도시에서도 만날 볼 수 없는 그만의 색채가 가득하다. 높은 빌딩숲에 걸맞게 화려함을 뽐내는 공연장부터, 주변의 자연에 녹아들어 고즈넉이 자리한 공연장까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부산의 예술 문화 공간과 단체, 축제를 둘러보고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01 음악이 가득한 공간

 

 

 

 

 

 

#금정문화회관
2000년에 개관한 금정문화회관은 부산시 금정구에 위치한 구 단위의 문화회관이다. 2020년부터 2년 반 동안 약 110억 원의 예산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금정문화회관은 최적의 건축 음향을 구현할 수 있는 재정비를 마쳤다. 880석의 금빛누리홀, 394석의 은빛샘홀, 500평 규모로 확장한 금샘미술관 등이 있으며, 주로 언덕에 위치한 다른 문화회관과는 달리 지하철 1호선 부서역 건너편 평지에 위치하며 위치적 이점도 갖췄다. 2004년부터 시작한 금정 수요 음악회를 통해 공모로 선정한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을 올려왔으며, 짝수 달 마지막 화요일에 열리는 11시 콘서트도 약 300여 명의 고정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제작비를 들여서라도 좋은 연주자를 선정, 저녁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제대로 된 콘서트”라는 것이 금정문화회관 강창일 관장의 설명이다.
잘 갖춰진 극장 하드웨어는 부산국제춤마켓(BIDAM)·국립오페라단·국립현대무용단 등 여러 단체 및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금정문화회관 공동 주최로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갈 예정이다.
금정문화회관 강창일 단장 | “금정문화회관 근처로는 부산예술중·고등학교, 브니엘예술중·고등학교, 그리고 부산대가 위치하며 예술 교육 기관과 인접하며 마치 서울 예술의전당 앞 서초구처럼 음악 연습실, 악기점 등의 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2022년까지 리모델링을 거치며, 금정문화회관은 여러 예술가가 찾는 극장으로 알려지고 있고, 이에 여러 협력을 통해 부산에 경쟁력 있는 작품을 선보여 갈 예정입니다. “역사는 변방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죠. 부산에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도시의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져 잘 활용되지 못합니다. 다양성을 갖춘 부산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해, 동급 최고의 콘텐츠를 가진 선두의 문화회관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이정필

#부산문화회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76번길에 위치한 부산문화회관(대표 이정필)은 부산의 대규모 복합 문화 공연장이다. 대극장(1,409석)이 1988년 가장 먼저 개관되었으며, 현재는 중극장(777석), 사랑채극장(312석), 챔버홀(410석)까지 함께 운영 중이다. 대극장과 중극장은 다목적 공연장으로, 사랑채극장은 어린이 전용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017년 개관한 챔버홀은 부산·울산·경남의 최초 클래식 음악 전용홀로, 음향과 시야 모든 면에서 아티스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2017년 공식 출범한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이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시향을 비롯하여 부산시립의 합창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극단·청소년교향악단·소년소녀합창단 등의 7개의 예술단으로 구성된 부산시립예술단이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시민회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시민회관(대표 이정필)은 1973년 개관, 부산 문화예술 발전의 밑거름이 된 문화공간이다. 부산문화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부산의 유일한 예술공간이었으며, 오랜 기간 부산시립예술단의 상주공간이기도 했다. 부산광역시 동구 장성로에 위치해 현재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에서 통합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극장인 만큼 여러 차례의 개·보수 및 증축 공사를 거쳐왔고, 최근 2020년 무대기계자동화사업을 완료하며 새롭게 대극장(1,606석) 문을 열었다. 음향반사판을 교체하며, 잔향을 1.56초까지 높였다. 외에 소극장(385석), 야외무대 등이 시민들의 문화쉼터가 되어오고 있다.

 

 


 

02 관광과 함께하는 공간

F1963 스퀘어

GMC

#F1963
공장과 공연장. 유사한 것은 음절뿐이라 느껴지는 두 단어를 연결한 장소가 있다. 1963년에 수영공장이라는 명칭으로 와이어 생산을 시작했던 이 장소는 45년간 돌린 컨베이어 벨트를 끊고, 2016년에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너른 땅 위에 새로운 건물을 쌓아 올리지 않고, 기존의 공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F1963의 기다란 공간은 투박함과 세련됨이 신묘하게 어우러진다.
공연은 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석천홀은 이동식 무대를 통해 전시장과 공연장의 역할을 동시에 해낸다. 전시가 열릴 때는 공장의 긴 구조가 빛을 발한다. 기다란 통로를 따라 나란히 걸리는 작품들은 한 작가의 스타일을 한눈에 둘러보게 만든다. 좌우의 간격도 좁지 않아 임시 벽을 세워 공간을 분리한 전시에도 적합하다. 공연장으로 활용할 때는 공간 가운데에 임시 벽을 세워 대기 공간과 관객 공간을 나눈다. 다만, 기다란 터널과 같은 구조로 음향이 크게 울린다는 단점이 있다. 석천홀 공연은 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F1963 스퀘어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지만 하늘은 열려 있다. 야외 공간이지만 주변의 벽으로 인해 소리가 퍼지기보다 울린다. 직접 클래식 음악을 공연할 때도 있고, 밤에는 공연영상을 상영하기도 한다.
공연 공간으로 신경을 많이 쓴 곳은 GMC(Gum-nanse Music Center)이다. 객석 입구는 지하 1층에 있지만, 높은 층고와 유리 벽을 활용하여 1층의 외부에서도 공연장을 내려 볼 수 있다. 지휘자 금난새가 공연 기획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가 직접 초대한 연주자가 약 2주에 한 번씩 연주를 선보인다. 현재 공연은 모두 전석 초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SNS 예약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F1963 이안기 이사 | “민간과 관의 협업을 통해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의 첫 사례입니다. 부산시와 고려제강, 부산문화재단이 적극적으로 협업해 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F1963은 어린이부터 청소년,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가 365일 즐길 수 있으며, 땅과 하늘과 사람이 만나는 친환경 열린 공간입니다.”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

#해운대문화회관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 해운대의 한 가운데에 놓인 해운대문화회관(관장 서영지)은 매일 클래식 음악·뮤지컬·대중음악·연극·마술 등의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문화회관은 신라의 문신이었던 최치원의 자를 따라 각 공연장의 이름을 ‘해운홀’ ‘고운홀’로 지었다. 45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해운홀이 주요 공연을 맡고 있으며, 130명을 수용하는 고운홀은 청소년, 유아 공연, 문화강좌 등 교육시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공연을 감상하고 밤바다를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을숙도문화회관 전경

#을숙도문화회관
공간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을숙도문화회관(관장 홍희철)은 섬에 자리 잡은 공연장이다.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토사가 쌓이면서 형성된 을숙도는 1916년에 생겨난 섬이다. 육지와 연결된 두 다리가 섬의 양옆에 일자로 놓여 있으며, 이 두 다리 사이로 섬을 관통하는 큰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을숙도의 주요 시설들이 모여 있는데, 을숙도문화회관은 여러 시설 중에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연 시설은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공연장에는 오케스트라가 거뜬히 들어가고, 700명을 웃도는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부산영화의전당 외관

#부산영화의전당
2011년에 개관한 부산영화의전당(대표이사 김진해)은 지난 10월 5~14일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장소로 유명하다. 그 이름 때문에 영화관이라 여겨질 수 있으나, 영화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오페라·뮤지컬·연극 등을 소화하는 하늘연극장과 무용·오페라 갈라 등이 펼쳐지는 야외극장을 갖추어 매달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의전당의 본 건물은 크게 열린 공간이 특징으로 2층과 3층에서도 1층 로비를 내려다 볼 수 있고, 유리로 된 벽면 덕에 자연채광이 느껴진다. 야외 공간은 넓은 광장으로 공연이 아니더라도 관광 공간으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03 바다와 어우러지는 국악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7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은 1984년에 창단되었다. 부산시향이 1962년, 부산시립무용단이 1973년에 설립된 것에 비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전통음악 계승과 발전’을 목표로 38년의 세월을 꾸준히 걸어왔다.
부산창작국악관현악축제를 통해 전통을 과거에 놔두지 않고 끊임없이 동시대의 옷을 입혀왔으며, 한국음악창작곡집 악보집을 발간해 동시대 전통음악의 탄생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튀르키예, 싱가포르, 덴마크 등 주요 국가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선보이는데 앞장서 왔다. 그중에서도 2013년 한·독 수교 130주년과 파독 광부 50주년을 맞아 뒤셀도르프와 함부르크에서 ‘수제천’ ‘소고춤’ 현악합주 ‘침향무’ 등을 선보인 무대는 한국 전통음악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부산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의 뿌리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개원한 국립국악원에 닿아있다. 이후 2008년 국립부산국악원이 개원하여 춤의 고장 부산에서 전통예술의 계승과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영남지역의 전통공연예술까지 아우른다. 총 세 개의 예술단이 상주하고 있다. 5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기악단·성악단은 정악·민속악·창작전통음악을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여 오고 있다면 무용단은 영남지역의 역동적인 춤사위를 널리 알리고, 그 가치를 보존해오고 있다. 698석의 연악당(대극장)과 276석의 예지당(소극장), 벽천광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국립부산국악원장 이정엽은 “부산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국립국악원 최초의 개원지이자, 수영야류, 동래아류, 동래학춤 등 우리 춤과 연희의 본고장”이라며 “부산과 영남지역의 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특색 있는 공연콘텐츠를 제작과 지역민의 국악 향유 증진을 위해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무대에 오르는 공연들은 부산 고유의 특색을 띠고 있다. 국악뮤지컬 ‘자갈치 아리랑’, 국악극 ‘대청여관’, 소리연희극 ‘구포당숲-안아줄 수 있다면’ 등과 같이 부산의 역사와 흔적을 춤사위와 전통음악에 얹어 재해석해 오고 있다. 지역 시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한다. 국악문화학교를 통해 판소리, 민요, 해금, 가야금 등의 강의를 국악교육전문 강사들에게 배울 수 있다. 수강료는 유료이다. 개관 15주년과 연수센터 개관을 앞둔 2023년에는 ‘부산 동래 지역 전통예술의 명맥을 이은 예인의 삶’을 소재로 한 대표 공연 등이 준비 중이다.

 


 

04 문화의 꽃, 음악 단체

KNN방송교향악단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예술감독 오충근)는 2010년 9월 사단법인으로 전환, 이를 기념하여 2011년 3월 법인설립 기념음악회를 개최하며 새 출발을 선포했다. 2014년에는 부산 민간 오케스트라 최초로 서울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2003·2004년에는 문화관광부 지방순회음악회에 지방 악단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어 총 15회의 연주를 선보였다. 2006·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축하공연, 2007년 부산국제합창제 전야대음악회, 2008·2012년 부산국제음악제 신년음악회 등 국제적 행사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언제나 새로운 형식의 음악회를 모색하며 21세기 문화 환경 요구에 부합하는 교향악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KNN방송교향악단
2016년, 우리나라 지역 민영 방송사 처음으로 KNN방송교향악단(음악감독 서희태)이 닻을 올렸다. ‘KNN’은 ‘Korea New Network’의 약자. 창단 이후 지역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공연 형식의 다변화, 관객과 소통하는 자세로 지역민과 함께 호흡해왔다. ‘퇴근길 콘서트’ ‘시네마 음악회’ ‘서희태와 함께하는 talk talk 오페라’는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부터는 부산 출신의 지휘자 서희태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부임해 악단을 이끌고 있다. 취임 당시 서희태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KNN방송교향악단을 오페라와 발레 음악 전문 오케스트라 겸 현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컨템퍼러리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시립합창단

#부산시립합창단
1972년 창단한 부산시립합창단(예술감독 이기선)은 다양한 합창음악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단체다. 특히 1997년 전국 시립합창단으로서는 최초로 해외 공연을 가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09년에는 독일 4개 도시를 투어하며 재외 한인들에게 ‘조국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에는 창단 40주년 기념으로 동유럽 3개 국가(루마니아·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공연했고, 2018년에는 부산을 대표하여 하얼빈 개막공연에 참가했으며, 2021년에는 윌리엄 월튼의 ‘벨사살의 향연’을 부산 초연해 주목을 받았다. 올해 창단 50년을 맞은 부산시립합창단은 섬세한 하모니로 부산을 넘어 세계로의 도약을 시작할 예정이다.

 

 

 

솔오페라단

#솔오페라단
이탈리아어로 ‘태양’을 의미하는 ‘sole’와 ‘단 하나’를 의미하는 ‘solo’에서 이름을 가져온 솔오페라단(단장 이소영)은 2005년 창작오페라 ‘춘희’를 올리며 창단을 알렸다. 이탈리아 베로나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동시에 전공한 이소영 단장이 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다. 2008년 부산문화회관 개관 20주년 기념 오페라 ‘아이다’로 제1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대상 없는 금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 페스티벌, 아풀리애 페스티벌 등 유럽 무대에 한국 창작오페라 ‘춘향아, 춘향아’ ‘선덕여왕’ 등을 공연하며 국내 오페라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오페라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야외 공연을 올리며 음악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부산광역시 음악협회 청소년음악제

#부산광역시 음악협회
부산의 예술가들은 1963년 부산시가 광역시로 승격함에 따라 그에 맞는 예술계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당시 한국음악협회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산하 단체로 편입되는 때에 맞추어 한국음악협회 부산지회 창립을 추진했고, 1965년 지금의 부산광역시음악협회(회장 유영욱)를 설립했다. 현재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며 다양한 공연 기획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어 보다 많은 시민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로 9회를 맞이하는 ‘창작오케스트라의 밤’을 통해 부산 내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신인음악회’ ‘부산청소년예술제’ 등을 통해 젊은 음악가들의 무대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는 피아노·성악·현악·작곡·국악·음악학술비평 등 12개 분과에 약 700여 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다.

 

 

 

 


 

05 더불어 즐기는 음악 축제

#부산마루국제음악제
부산마루국제음악제(이하 BMIMF)는 부산 예술 생태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의 내세우는 키워드는 ‘균형과 조화’로, 그 축은 부산의 예술가들과 문화예술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산문화회관, 해운대문화회관, 동래문화회관, 영도문화예술회관 등 부산의 다채로운 문화적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부산시향, 부산청년오케스트라 등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의 무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축제는 미래의 BMIMF 무대에 설 차세대 음악가들을 키워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콘체르토 컴피티션’을 통해 지역의 젊은 음악가를 발굴하고, 차세대 오케스트라 육성을 위한 드림프로젝트를 운영하고 경남과 부산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무대 기회를 만들어 오고 있다.
#부산국제합창·작곡제(BCFC)
2005년에 시작해 올해 10월 19일, 부산국제합창·작곡제(Busan Choral Festival&Competition)는 18회를 맞이했다. 합창 부문은 올해에는 6개국에서 총 36개 팀이 참여했으며, 부산영화의전당과 소향씨어터에서 진행됐다. 부산국제합창제는 아마추어 합창단만이 참가 가능하며, 참가비 없이 경연에 응모할 수 있다. 작년 대회는 대상에게 20,000달러(한화 약 2,800만 원)를 수여했으며, 1~3등 외에 지휘자상과 연출상도 수상을 진행했다. 국제합창제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름에 담겨 있듯이 작곡 부문도 매년 모집한다.

06 앞으로가 기대되는 장소

부산국제아트센터 조감도

#부산오페라하우스(2024년 개관 예정)
부산의 중구와 동구에 걸쳐 조성되고 있는 북항재개발지구 내 해양문화지구에 위치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현재 2024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5층의 구조로 29,542㎡의 규모로 주요 시설은 18,000석의 오페라 전용 대극장, 300석의 소극장, 야외공연장 등이다. 예상 개관 시기와 공사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공연장 건립의 일반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지난 10월 6일, 해양수산부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북항재개발사업에 흡수시켜 추진한다”고 발표하며 타당성 재조사 기간까지 필요하게 되었다.
#부산국제아트센터(2025년 개관 예정)
부산국립국악원 건너편 부산시민공원 내에 위치할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다. 부산시가 설립을 발표한 것은 2010년으로, 10여 년이 지난 2021년에서야 착공에 들어갔다. 현재 2천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과 400석 규모 챔버홀 등이 들어서며, 빈야드 스타일의 대극장에는 30억 원의 예산을 들인 파이프오르간 설치도 예정되어 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는 현재 운영 주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부산시와 부산연구원은 신규 공연장 운영 모델로 신규 재단법인 설립을 제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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