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서주리가 들여다본 일상의 작은 순간, ‘장남감 가게’ 초연을 앞두고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2월 27일 3:39 오후

SPOTLIGHT

작곡가 서주리

거인만큼 확장되는 나의 세계

일상의 작은 순간, 기억들로부터 쌓아올리는 작곡가의 언어

© Andrew Wilkinson

서주리는 고전의 유산을 존중하고, 동시대의 서정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음악을 탐구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 덕분에 음악에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며, 감상자에게 이해와 충격을 동시에 일으킨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활동 중인 그는 12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리사이틀에서 ‘장난감 가게’를 초연으로 올린다. 그와 대화를 나눴다.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던 어머니께서 어린이들을 가르치시며 나도 함께 봐주셨다. 간단한 소품이나 노래 작곡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내 경력으로 만들어야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예고에서 작곡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제대로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연세대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 대학교(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작곡가로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입학할 때만 해도 서정적인 조성음악과 모방적인 작품만 썼는데, 일리노이를 거치며 작곡의 폭이 확장됐다. 레이놀드 타프와 스티븐 테일러 교수님이 ‘스펙트럼 음악’을 소개해 주어 화성 언어를 조성 너머로 확장할 수 있었고, 잭 브라우닝 교수님이 재즈와 결합한 리듬감 있는 스타일을 쓰는 데 도움을 줬다. 일리노이의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철학이 나의 조성음악과 결합하면서, 나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나타났다.

작곡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생을 좋은 작곡가로 키우기 위한 교육 방침이 있는가?

학생이 가요·전자음악·즉흥연주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때, 그들의 배경을 존중하면서 도와줄 부분을 찾으려 한다. 어떤 스타일로 작곡하든, 자신의 음악과 관련된 기술이 향상될 수 있는 노력을 들이라고 권고한다.

경험한 모든 것이 음악으로

작품에 구조적인 진행이 돋보인다. 음악적 구조에 무슨 의미를 담아내고 있나?

음악의 구조는 다양한 요소를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추상적인 음악에 여러 요소가 조합돼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로 변하고, 여러 아이디어가 합쳐지고 없어지기도 하는, 그 자체에 이 세상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의미가 있다. 음악적 아이디어에 따라서 새로 구조를 만들기도 하고, 옛 음악을 응용하기도 한다.

대립 구도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한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인가?

음악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인간 본성에 대한 표현이다. 인생의 모든 측면을 반영해야 한다고 믿는다. 서정적이거나 듣기 좋은 협화음뿐만 아니라, 아주 지저분하고, 어둡고, 폭력적인 부분까지. 그런 작업의 최종적인 목적은 음악을 통한 치유에 있다.

‘아리랑’이나 ‘젓가락 행진곡’과 같이 기존 작품의 주제를 사용한 사례도 여럿 보인다. 과거의 음악을 소재로 취하는 이유는?

인터넷이 있기 전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경험이 장소와 시대에 국한됐지만, 21세기 음악가는 여러 시대의 음악을 동시에 공부할 수 있으니, 각 시대 음악의 깊이를 배운다. 수많은 사람이 수백 년 동안 개발한 언어를 쓸 때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간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고전부터 현대까지의 양식, 이국적인 음률과 대중적인 요소 등, 음악 텍스처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원래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몇 년 전부터 재즈 화성을 공부했고, 최근에는 헤비메탈에 빠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음악의 고향은 베토벤이고(웃음). 다양한 음악들로부터 얻은 여러 표현들은 곡마다 조금씩 다르게 어우러진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을 다 들이부어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주로 무엇을 통해 얻고, 어떻게 발전시키나?

어느 순간 갑자기 생각 나는 것 같다. 화성에 기반한 곡은 어느 정도 문법을 따라가는 요소가 있어서 반복 구조가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기존의 구조나 화성 없이 작곡할 때는 제스처나 리듬 아이디어를 반복하면서 발전시킨다. 휴대용 타악기 곡들이나 ‘가위바위보’ 등이 그러하다.

21세기 음악 경향을 설명하자면? 그리고 본인은 어떤 방향으로 곡을 쓰고자 하는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21세기에는 다시 청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 대학교에 있어 자유롭게 여러 방향을 시도한다.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난해한 곡도 있고, ‘장난감 가게’처럼 익숙한 재료로 전개하는 곡도 있다. 그리고 타악기 연주자인 남편과 함께 드럼과 신시사이저를 조합한 메탈 밴드도 시작할 예정이다.

어른의 마음속 순수함, 장난감에 남아

바로 그 ‘장난감 가게’를 12월에 서울에서 초연한다. 작곡 계기가 궁금하다.

작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한 현악 6중주 ‘소리새’를 우연히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영상으로 보고 내게 연락했다. 그 후 다른 기회로 직접 만나 바이올린과 전자음악을 조합한 프로젝트 얘기를 시작했다. ‘장난감 가게’라는 주제는 조진주와 비디오아티스트 옥창엽을 만나 같이 구상했다. 총 30분, 다섯 악장의 작품으로, 어른이 경험하는 어린이의 감성을 표현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속으로는 어린이 같은, 복잡하고 격렬하지만 순수함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장난감 가게’의 악장마다 장난감 이름이 적혀있다. 장난감과 음악적 특징이 얽혀 있을까?

1악장 ‘잭 인 더 박스’는 오락실에서 놀던 기억으로 썼다. 시끄럽고, 놀랍고, 재미있고, 좌절한 경험들. 빠르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여럿 있으며, 비디오게임 음악 같은 분위기이다. 2악장 ‘몬스터 트럭’은 헤비메탈 기반의 폭력적인 곡으로,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3악장 ‘모빌’은 잠자리에 들며 느끼는 부드러운 감성과 중압감을 모순적으로 조합한 서정적인 악장으로, 마지막 부분에 조율이 순정률(음끼리의 비가 유리수인 조율법)로 바뀐다. 4악장 ‘롤러스케이트’는 조진주가 어렸을 때 타던 느낌을 내게 묘사해준 데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면서 썼다. 유연한 느낌, 상쾌한 바람, 순수한 행복 등이 미니멀리즘을 통해 들려온다. 마지막 악장 ‘비눗방울’은 가볍고 섬세하면서도 유희적이다. 하모닉스, 피치카토 등을 썼으며, 아주 바쁘고 웅장한 전자음악 파트와 함께 협주곡의 규모로 연주된다.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사랑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요즘은 동료·가족·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에게 내 음악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한다. 즉, 교감할 상대를 상상해보는 게 이를 위한 좋은 연습일 듯하다. 아무리 소수라도 예술을 통해 서로 연결할 수 있다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니!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서주리(1981~) 연세대·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일라노이 대학교에서 작곡을 공부, 박사를 취득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쿠세비츠키 재단, 하버드의 프롬 재단, 탱글우드 음악센터 등에서 작품을 위촉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에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장난감 가게 & 다른 기차들’

12월 9·10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 스티브 라이히 ‘다른 기차들’, 서주리 ‘장난감 가게’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