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3월 2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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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 위의 유려한 백조처럼

랄프 고토니/KCO(협연 김유빈)

2월 5일 롯데콘서트홀

한 작곡가의 한 장르만 파고들기. 음악에 더욱 깊게 파고들고 싶은 수많은 자들이 이에 도전장을 낸다. 도전의 성공 여부는 역시 시작보다는 끝에 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는 2019년에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46곡) 연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팬데믹의 우여곡절을 지나 지난 2월 여정을 마무리했다.

1부에서 교향곡 9번 K73과 12번 K110을 감상하고 나니, 떠오르는 확신은 그들이 모차르트에 확실히 익숙해졌다는 것. 모차르트의 생기발랄함을 어렵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이 ‘어렵지 않아 보이는’ 연주 내막엔 어려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수면 아래 끊임없이 발을 젓는 백조의 음악이 바로 모차르트이니 말이다.

우아한 수면 위에 얹어진 김유빈(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의 플루트는 백조와 함께 물살을 따라갔다. 단조로운 진행이 많은 작품인데도 그 모든 16분음표를 흥미롭게 만드니, 세 개의 악장이 어느새 훌쩍 끝나있었다.

2부의 시작인 교향곡 29번 K201의 마지막 악장은 가장 집중이 높았다. 모든 악기가 서로의 타이밍을 듣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 집중은 어쩌면 마지막 작품인 39번 K543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주자를 추가하여 규모를 넓힌 이 내림 마장조 곡은 마지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고 수려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굴레를 벗고, 음색의 넓은 바다로

박하양 비올라 리사이틀

2월 2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연세대·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한 박하양(1998~)은 지난해 도쿄 비올라 콩쿠르 우승으로 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무대의 1부에서는 브리튼의 첼로 모음곡 1번(편곡 이마이 노부코), 브람스 비올라 소나타 1번을 연주했고, 클라크 비올라 소나타,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를 연주하며 2부를 이어갔다.

브리튼의 첼로 모음곡 1번은 비올라를 위해 편곡되었지만, 박하양은 첼로 특유의 저음을 구현하려는 듯했다. 밀도 있는 중저음은 첼로의 풍성한 저음에 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는 곡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피아노(피아니스트 박영성)에 자칫 주도권을 뺏길 수 있지만, 박하양은 그 사이에서 비올라의 위치를 잘 가늠해 갔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벌려, 피아노 페달의 울림이 잘 배게 배려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2부에서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활시위가 비슷한 결의 두 작품을 잘 연결했다. 순간순간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녀의 연주는 저음이 풍부한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것 같다. 소리의 한계를 이야기하기에 비올라는 아직 탐험할 것이 많은 악기라는 듯, 그다음 활시위가 어디로 달려 나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궁금증이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화려한 고양이의 남은 수명은?

뮤지컬 ‘캣츠’

1.20~3.12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981년 ‘캣츠’를 작곡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알았을까. 40여 년 후의 한국에 이토록 ‘냥집사’가 많아진다는 걸. 아, 그보다 먼저 19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T.S. 엘리엇이 ‘캣츠’의 원작인 극시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를 썼을 때로 말이다. 앤드루는 손주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자 피아노 반주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뮤지컬계의 고전이자 명작 ‘캣츠’가 됐다.

엘리엇의 고양이 관찰기는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냥집사’들이 보기에도 공감할 구석이 충분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뛰어난 표현력, 앙상블의 합이 더해져 매력적이고 화려한 ‘고양이 쇼’는 여전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양이의 실제 평균 수명이 15년쯤인 걸 감안한다면, 이 화려한 고양이 ‘캣츠’들은 벌써 인생 2회차를 훌쩍 넘었다. 발레와 마임을 연상하게 하는 안무, 1970년대 영화배우처럼 느끼해져 버린 인기 고양이 ‘럼 텀 터거’의 묘사에서 그 세월이 물씬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고리타분한 기승전결 대신 ‘이상하고’ ‘착하고’ ‘짓궂은’ 고양이를 소개하는 시를 기반으로 한 것은 그 외의 시대착오적 요소에서 ‘캣츠’를 해방해준다. 오히려 방해하는 것은 배우들의 열정에 따라오지 못한, 심지어는 관객들의 집중력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연주자들이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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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

 

노부스 콰르텟 리사이틀

노련한 절제로 베토벤에 다가가다

2월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노부스 콰르텟(김재영·김영욱(바이올린), 김규현(비올라), 이원해(첼로))이 분명히 노련해지고 있다. 불필요한 부분이나 과장이 없어 더 또렷해지고, 정확해졌다.

노부스 콰르텟의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가 지난 2월 마무리됐다. 이날은 1부에 초기와 중기 작품(2·8번)을, 2부에 후기 곡(11번)을 소화했다. 점입가경의 안정적인 코스요리 같았다. 첫 곡인 4중주 2번은 김영욱이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악장이 시작되자 객석의 적막함 속에 관악기처럼 녹아든 현악기 넉 대는 점층적으로 음량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베토벤의 부드러운 속살 같은 의외의 면모가 와 닿았다. 잠깐의 조율 후 시작한 2악장은 느리게 시작해 빨라지는 부분은 잡아채듯 표현했다. 3악장 스케르초는 발랄한 시작이었다. 중후함과 격렬함을 그 위에 실어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4악장에서 바이올린은 이원해의 절제된 첼로의 뒷받침 속에 질주했다. 좋은 부위만 탁탁 잘라주는 오마카세를 접하듯 쾌적한 연주였다.

8번에서는 김재영이 제1바이올린 자리에 앉았다. 1악장의 시작이 꽤 맹렬했고, 총주에서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예전에 비해 발산보다 절제가 더 잘 느껴졌다. 각 파트가 군더더기를 제거함으로써 몸이 더 가벼워지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해석의 치열한 에너지는 여전했다. 2악장 몰토 아다지오는 경건하고 고즈넉했다. 은은하게 방사하는 현악의 빛이 느껴지며, 제1바이올린의 노래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네 멤버들의 강약과 완급 조절이 빼어났다. 3악장은 경쾌한 템포 속에서 감상적인 터치가 느껴졌고 눈앞에서 네 악기가 펼치는 돌림노래 같은 푸가가 즐겁게 다가왔다. 마지막 4악장의 빠른 질주에서는 속도감과 안정감이 균형을 이뤘다.

2부가 시작하고 12번에서도 김재영이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네 악기가 두터운 화음을 내며 시작했는데, 각 악기의 특징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요컨대 입체적인 연주였다. 베토벤 특유의 정서이지만 2악장의 숭고함은 듣는 이를 먹먹하게 했다. 여기서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천변만화하는 기나긴 악장이었다.

3악장은 원전연주처럼 절제된 이원해의 첼로와 김규현의 비올라가 은은하게 보여주는 따스한 중후함이 일품이었다. 그 위에 차가운 바이올린이 놓이면서 베토벤적인 발산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부분에서 맞아떨어진 네 멤버의 호흡은 감탄할 만했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에서 노부스 콰르텟은 원숙함을 들려주었다.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모은 집중력과, 이와 대조적으로 여유로운 넓은 시야 속에서 21세기의 피상적인 세계관과 사고로는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베토벤의 오의(奧義)가 넉 대의 현악기에서 우러나왔다.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특히 현악 4중주 음반을 고를 때 오래된 연주를 찾곤 한다. 왜 우리는 위스키처럼 숙성된 4중주단의 연주를 찾아 헤맬까. 그에 대한 해답을 노부스 콰르텟이 어느 정도 알려준 무대였다. 창단 15년을 넘긴 이 4중주단은 베토벤에게 노련한 절제로 다가가고 있었다.

* 김재영은 3월 2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일리야 라쉬콥스키(피아노)와 함께 하는 이번 공연에서 코른골트, 시마노프스키, 랠프 본 윌리엄스, 레스피기의 소나타를 선보인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목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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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뮤지컬 ‘베토벤’

과잉 속에 사라진 삶과 음악

~3월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박효신·박은태·카이(베토벤)/조정은·옥주현·윤공주(안토니 브렌타노)/이해준·윤소호·김진욱(카스파 반 베토벤)

예술가를 소재 삼은 창작 뮤지컬을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있다. 드라마틱한 삶과 탁월한 작품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텐데 왜 뮤지컬은 그들을 가십으로만 담아낼까? 뮤지컬 ‘베토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예술가의 자존감으로 자신을 지켜낸 베토벤의 삶과 예술은 여기에 없다. 버럭 화를 내는 괴팍한 작곡가가 어느 날 사랑에 빠졌을 뿐. ‘불멸의 연인’이라는 가십에 또 붙잡혀버린 셈이다.

이런 결과는 의아하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1943~)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1945~)의 전작 뮤지컬 ‘모차르트!’ 때문이다. 천재성이라는 운명과 그 운명에서 자유롭기 위한 인간 모차르트의 삶을 서사와 상징을 섞어 유려하게 풀어낸 전적이 있기에 그들이 해석해낼 베토벤이 궁금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같은 창작자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소재와 창작자, 제작사가 같고 심지어 배우까지 같은데 왜 이리 다른 결과물이 나온 걸까?

그 이유를 되짚어가기 위한 단서는 음악에 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과 소나타의 유명한 테마를 응용해 뮤지컬 넘버로 활용했다. 일종의 클래식 음악 주크박스다. 기악곡이 성악곡이 되었을 때의 어색함은 차치하더라도 베토벤의 아름다운 가곡을 하나도 활용하지 않은 점에서 이 작품의 음악 콘셉트는 이래저래 의아하다. 이 의아함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까닭은 분명하다. 작곡가를 소재 삼은 국내 창작 뮤지컬이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던 방식과 똑같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음악에 많은 공을 들이는 빈(Vienna) 뮤지컬이 아닌 한국 창작 뮤지컬의 영향을 받은 작품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선택은 기존의 창작 뮤지컬이 그랬듯 효과적이지 못하다. 클래식 음악 테마 자체는 우아하다 해도 그 몇 소절을 단순한 구조로 엮었을 때, 뮤지컬 넘버로는 오히려 매력을 갖기 힘들다. 베토벤의 음악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 음악 자체는 뮤지컬이 될 수 없다는 상식을 놓쳐버린 결과인 셈이다. ‘모차르트!’에서 가장 빛나는 넘버는 모차르트의 소나타나 협주곡이 아닌 ‘황금별’과 ‘나는 나는 음악’이었음을 기억했어야 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장면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그 음률에 맞춰 여섯 명의 앙상블이 춤을 추는 장면이다. 피아노 선율에 담긴 베토벤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장면이 온전히 춤과 연주로만 채워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여기서조차 연주곡은 가사가 붙은 노래가 되어버리니 작품에서 베토벤의 곡이 제대로 연주되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지점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또 다른 장면에서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3악장의 열정적인 선율이 돈벌이를 모의하는 협잡꾼의 배경음악이 된 것처럼 베토벤의 음악은 유쾌하지 않게 낭비되고 만다.

이 작품에서는 참 많은 것이 낭비된다. 무대·조명·성량 등 시청각적 볼륨은 언제나 최대치를 구현한다. 이러한 과잉이 국내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EMK뮤지컬컴퍼니만의 개성이 되기 위해서는 과잉으로 덮어 감춘 빈 곳을 잘 메우는 일이 급선무다. 화려함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

글 정수연(뮤지컬평론가)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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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모든 컴퍼니 ‘On the Rock(온더락)’

완등이라는 삶의 도전, 혹은 또 다른 인간의 욕망

2월 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김모든(안무·연출)/김모든·류지수·문경재·배민우·염정연·이소진·이예림·조연희/도재명(음악감독)/최상지(무대디자인) ©옥상훈

흰 조명이 만들어낸 가로 직선. 무용수들이 한 명씩 걸어 나오고 관객석 위쪽을 가만히 응시한다. 묵직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들의 시선과 몸에서는 긴장과 결연함이 느껴진다. 암전 후 세워진 벽에는 책상·의자·책장·문·계단 등이 중력 법칙을 거스른 채 설치되어 있다. 무용수들은 마주하게 되는 타인의 신체, 그리고 산 모양의 오브제에 맞서 이를 넘어서려고 고군분투한다. 공중에 위치한 가구에 매달려 버티다가 실패해 추락하기도 하고 손쉽게 밟고 올라서기도 한다. 정상적인 방향으로 걸려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시계가 보여주듯, 무대 위 시간은 공연 속 허구가 아니다. 움직이는 초침은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 실제성을 더하면서, 벽을 오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임을 은유한다.

모든 컴퍼니 김모든의 안무작 ‘On the Rock(온더락)’은 스포츠인 클라이밍 형식과 움직임에 착안하여 만든 작품(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이다. ‘경쟁 구도 안에서 정해진 규칙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평가하는 스포츠는 고도의 운동 감각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많은 무용가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이다. 김모든은 2021년 펜싱을 소재로 한 ‘피스트: 여덟 개의 순간’을 선보인 바 있다. 클라이밍과 발레의 유사성은 중력을 거역하지만, 추락을 ‘안 하는 것’이 아닌 ‘늦추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그가 스포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소재로 클라이밍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다.

이번 신작은 암벽을 탈 때 요구되는 근력과 균형감, 홀드에서 홀드로 넘어가기 위한 민첩성과 유연성, 안전한 착지를 위한 낙법 등을 활용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설치된 벽뿐 아니라 다른 무용수의 신체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거나, 옆으로 눕혀진 산 모양 오브제의 봉우리를 잡고 허우적거리는 등의 모습으로 변형시켜 구현한다. 또한 체조 링을 잡고 버티거나, 허들을 뛰어넘으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벽과 마주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바닥을 잡고 버티는 레슬링 움직임 등 다른 운동 종목의 움직임도 차용한다.

안무가는 클라이밍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좌절·분투를 삶과 연관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클라이밍 행위로부터 일상적 삶의 모습을 투영하는 방식은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졌으며, 클라이밍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이를 통한 움직임의 창의적 변주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운동 종목 속 동작의 파편적 차용, 현대무용 작품에서 보일 법한 접촉 즉흥 동작,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에서 클라이밍 선수가 마주한 추락의 공포감과 고도의 집중력, 악바리처럼 버텨내는 에너지는 다소 무뎌진 듯하다.

무대 위 노을이 지고 달이 뜨면서 무용수들은 완등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공연 말미에 완등에 성공한 무용수들이 벽 뒤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클라이밍 행위가 채워지지 않는 인간 욕망의 대상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클라이밍은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 힘으로 추락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목표 지점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다. 안무가는 완등이라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글 한석진(무용학자)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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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ITIONAL DANCE

 

서울남산국악당·무용역사기록학회 ‘코리아그라피’

새로운 춤이 보인 순간

1월 27·28일 서울남산국악당

 

최해리(예술감독)/정혜정(연출)/김홍(협력연출)/유인상(음악감독)/전통음악그룹 판(연주) 문진수의 입춤

차수정의 산조춤

‘한국미(美)에 대한 안무적 탐색’을 표방하는 무용역사기록학회(회장 최해리)의 ‘코리아그라피(Korea+Choreography)’는 익숙한 레퍼토리의 관성을 벗어던진다. 전통을 째려보면서 기어이 결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과 재료를 더 잘 보존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새것을 만들었다. 특히 악(樂)·가(歌)·무(舞) 일체-연주와 노래와 춤이 하나의 종합예술이라는 개념-를 지향하는 10명의 춤꾼은 음악과의 긴밀한 협연을 시도했다. 협연의 카테고리는 다섯 종류였다. 소리꾼의 구음에 맞춰 입춤을 선보이는 ‘구음심무’, 거문고 산조를 춤으로 해석하는 ‘겹겹산조’, 판소리 발림을 춤으로 확대하는 ‘춤춤발림’, 근대민요에 신민요춤을 맞추는 ‘음풍농짓’, 타악기 춤을 신명나게 풀어내는 ‘박동’ 등이다.

경쾌하게 포문을 연 작품 ‘춤의 향기가 만리를 넘다’는 민요에 춤을 얹은 최준명의 댄스드라마로 춤꾼 배구자(1995~2003)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민요 등을 편곡해 엮으며 재즈풍을 넘나드는 고현경의 보컬과 이성순의 타악, 강희수의 아코디언이 큰 역할을 한다.

김수현의 ‘박씨전, 추어지다’는 맥이 끊긴 판소리 ‘박씨전’을 최교익의 대본, 서정금의 소리로 복원했다. 막간극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형식은 소극(笑劇), 즉 웃음거리극이다. 재치 있는 소품 활용과 노골적인 골계미를 극대화한다.

거문고산조에 맞춘 독무는 차수정과 유정숙이 소화한다. 차수정의 춤과 그것을 떠받치는 이진우의 연주는 둘다 일품이다. 한편, 유정숙은 이선희의 거문고 가락에 몸을 맡긴다. 무게감 있는 낮은 음과는 반대로 춤꾼은 ‘그 너머의 봄’을 바라본다. 빠른 장단에서 느려지는 역순의 음악 구성 속에 내면에서 우러나는 잔잔한 생명력을 표현해냈다.

남수정의 ‘섬섬(閃閃)’ 그리고 서정숙의 ‘흰 그늘’은 보다 진중하게 우리의 삶을 파고든다. 남수정은 ‘수궁가’ 중 별주부가 육지의 풍광에 감탄하는 대목에서 인생무상의 주제를 끌어낸다. 동작이 크고 유려한 신무용의 사위를 대범하게 사용하는데, 그 시원시원한 춤선으로 번쩍번쩍(閃閃)한 풍광과 허무함의 정서를 백현호의 소리와 함께 양가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서정숙의 담백한 움직임은 정중동의 극치이다. 단전으로부터 뿌리내린 단단함과 어슷하게 고정한 몸체, 바닥을 향한 시선만으로 그가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음을 알 수 있다. 황민왕의 구음과 소리가 크게 기여한다.

설장고춤과 진도북춤의 협연인 ‘지음 지음 지음’은 장고를 맨 성윤선의 화려한 솔로에 이어 염현주의 진도북춤이 무대를 휘젓고, 두 사람이 장단을 주고받으며 절정을 만든다. 문진수의 ‘음유재인’은 연희적 특징이 강한 소고입춤이다. 소고의 화려한 기예 뒤에 김보라의 구음에 맞춘 정적인 사위로 마무리한다. 유일한 남성춤으로 다양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이주희의 ‘적벽화전’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등장한 그의 뒤로 휘장이 걷히며 13개의 북이 위용을 드러낸다. 일반 북과 대고를 조합한 2열 횡대를 이주희는 적진인 양 염탐하고 가죽을 뚫을 듯 두드리며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무용역사기록학회 임원인 춤꾼들이 ‘움직임 특징’ ‘음악 구성’ 등을 적어낸 ‘안무자 리서치 계획서’를 프로그램북 뒤편에 상세하게 소개했다.

글 윤대성(댄스포럼 편집장) 사진 혜강신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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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연극 ‘빵야’

1945년산 총이 들려준, 장황한 역사와 현실

1월 31일~2월 26일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김은성(작가)/김태형(연출)/하성광/문태유/이진희/정운선/오대석/이상은/김세환/김지혜/진초록/송영미/최정우

연극 ‘빵야’는 1945년 인천 조병창에서 만들어진 장총이 TV 드라마 작가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설정이다. 해방 전후 광풍의 시대는 물론 한국전쟁과 여러 역사의 순간을 온몸으로 거쳤을 것이 예상되었고, 총이기 때문에 귀여운 제목과는 정반대의 아프고 끔찍한 내용으로 점철될 것만 같았다. 이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맞은 절반은 ‘빵야’라는 장총이 겪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무대 위에 펼쳐지는 것이었고, 틀린 절반은 빵야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빵야’는 두 가지가 중첩되어 있다. 겉의 이야기는 드라마 작가 나나가 집필하고 있는 회차별 대본과 트리트먼트이고, 그것의 내부 이야기는 1945년에 만들어진 장총 빵야의 연대기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대본에 초점을 두면 빵야가 겪은 장황한 역사의 장면이 펼쳐지고, 현실에서는 드라마 편성여부를 놓고 제작자와 작가가 끊임없는 토론과 이야기를 나눈다. 극중극 형태를 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빵야가 주인공인 드라마 대본을 제작자에게 소개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사들은 대체로 상황이나 인물을 설명하고 제시하는 데에 활용되었다.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끼리 한 문장의 대사를 끊어서 발화하며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강한 집중력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문장을 두세 명이 차례로 들려주는 방식인데, 그러다보니 누가 어떤 문장의 어디 부분을 말하는가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지고 대사의 강조점도 달라졌다.

무대 전체를 소품창고로 꾸며낸 것도 효과적이었다. 소품창고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빵야가 겪은 긴 세월과 수많은 장소를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었다. 벽면을 채운 소품들로 인해 안정적이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무궁무진한 공간이 펼쳐질 수 있는 다변의 무대. 견고해보이지만 그 안에 우주를 품은 빵야와 닮은 무대였다.

한편, 빵야가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처음 총을 쏠 때의 경험이 마치 아기가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의 경험처럼 보이는 것이나, 다양한 주인을 만나 빵야도 조금씩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총이라는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고민하게 되는 변화들이 있다면 빵야가 그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들려주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악기가 되고픈 간절함에 완벽히 교감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빵야가 더 인간적이었다면, 나나가 그려내는 빵야의 역사 또한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작가들은 역사의 순간순간을 절실히 담아내고자 하고, 나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어느 한순간도 가벼운 역사는 없다. 그러나 나나의 작품에 대한 한 줄 평인 “별이 똥 싸는 이야기, 물고기가 뻐끔대는 이야기”는 별과 물고기만큼 흔하고 가볍고 진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힘이 세다. 사건과 역사보다는 세월을 겪으며, 그 속을 살았던 주인들과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빵야가 중심이 되었다면, 나나의 작품은 분명히 방송 편성이 확정된 기대작이 됐을 것이다.

고단한 세월을 살다가 이제는 쉬게 된 빵야에게, 함께 견뎌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에게 막걸리 한 잔 건네고 싶어졌다. “애썼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엠비제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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