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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겐 극장 ‘서부의 아가씨’ ~3.11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마음으로
푸치니의 재발견과 작품에 윤을 낸 한국 성악가들
그것은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1848년 1월에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이들이 인생 역전을 꿈꾸며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이 열기는 이듬해 절정에 달했다. 그곳에는 영국의 공무원, 남미의 귀족, 중국의 농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작은 술집 또한 생겨났다. 모든 집단 광기는 거품처럼 커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거품이 터지든지 사그라들든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푸치니의 마음을 읽은 하겐 극장
푸치니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는 바로 이 19세기 중반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삼았다. 19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지휘하고 엔리코 카루소(1873~1921)가 주역을 맡는 등 초연됐다. 푸치니 자신도 이 작품이 ‘라 보엠’을 이길 것이라고 기대했고, 이 안에 새로운 음악적인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 작곡가로서 전혀 다른 길을 가던 안톤 베베른조차 이를 두고 ‘완전히 독창적인 소리의 악보’라고 스승인 쇤베르크에게 편지를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오페라는 푸치니가 남긴 10개의 오페라 중에서 초기 작품인 ‘요정 빌리’(1884)와 ‘에드가’(1889)를 제외하면 공연 빈도가 가장 낮은 작품이다. 이 푸치니의 덜 알려진 대작을 올리는 큰 도전은 독일 서부 루르 지역의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마음으로 푸치니의 재발견과 작품에 윤을 낸 한국 성악가들 하겐 극장 ‘서부의 아가씨’ ~3.11 작은 도시 하겐이 시도했다. 작년 12월 3일에 첫선을 보인 하겐 극장(Theater Hagen)의 도전은 독일 언론으로부터 열렬한 박수와 함께 호평을 끌어냈다. ‘베스트팔렌포스트’지는 ‘오케스트라의 화음, 훌륭한 성악가들 그리고 조화로운 연출이 위대하고 매혹적인 오페라의 밤을 만들었다’라고 적었으며, ‘테아터푸어’지는 ‘하겐 극장이 용감하고 자신감 있게 지난 수년 동안 귀한 프로젝트에 도전한 것은 항상 경이롭다. 무대 아래, 위, 혹은 뒤에서 에너지 넘치는 앙상블이 자신들의 작업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라고 기록했다.
푸치니는 첫 오페라 ‘요정 빌리’ 이후 오페라를 시작할 때 전주곡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는 격렬한 오케스트라 음향으로 시작한다. 요제프 트라프톤(1978~)이 이끄는 하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하나로 집중된 놀라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풍성함을 더한 연출
이번 무대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홀거 포토키(1974~)는 인터뷰에서 이 오페라 속 푸치니가 그리고자 한 음색에서 때로는 드뷔시나 알반 베르크가 들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포토키가 설정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를 상징하는 무대 위 배경과 인물들은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막같이 결핍된 공간에 희망을 상실한 삶의 패잔병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다.그리고 그 안에 유토피아적인 작은 섬이 있고 그 위에는 오페라 속 유일한 여인, ‘미니’가 있다.
미니는 디스토피아 속 모든 남성을 절묘한 균형으로 다스리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누구도 미니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한다. 그녀는 이 집단을 하나로 묶는 끈이다. 모두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고, 그녀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 앞에서는 순한 어린 양이 된다. 이들에게는 미니가 종교이고, 구원인 셈이다. 그런 절묘한 균형을 깨뜨리는 두 남자가 등장해서 갈등을 일으킨다.
비열한 보안관 ‘잭 랜스’는 미니를 갖고자 한다.하지만 미니는 자신의 부모처럼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고 랜스의 마음을 거절한다. 그리고 그런 미니를 사로잡는 진정한 사랑인 ‘딕 존슨’이 등장한다.
포토키는 이 프로덕션에서 그만의 장치를 하나 더 추가했는데, 바로 미니에게 아이가 있다는 설정이다. 미니의 시종인 워클 역을 미니의 아이로 치환했다. 연출자는 이를 두고 “미니에게 더 강한 희망을 부여하고, 그녀의 캐릭터를 더 입체적이고 성숙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성악가들의 활약
이렇듯 연출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이 오페라 속에서 더욱 반가웠던 것은 한국인 성악가들이 빛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초초상·미미·수녀 안젤리카·류 등 푸치니 소프라노로서 풍부한 경험이 있는 소프라노 주자네 제어플링이 자신만의 미니를 선보이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동안 상대역으로는 테너 제임스 리(이정환)가 확신에 찬 고음을 선보이며 화음을 이루었다.
또 하나의 발견은 잭 랜스 역을 노래한 바리톤 황인수였다. 마치 미니가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과 팽팽하고도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악역을 노래하는 황인수가 보여준 과잉되지 않은 연기적, 음악적인 균형 또한 흥미로웠다. 그가 노래하는 스카르피아(토스카)나 이아고(오텔로)는 어떨지 호기심을 자아냈다. 또한 애슈비 역과 빌리 잭래빗 역으로 분한 베이스 서동원도 묵직한 존재감을 증명했다.
서동원과 황인수는 오는 5월에 개막하는 하겐 극장의 ‘돈 조반니’에서 기사장과 돈 조반니 역으로 다시 한 무대에 서게 되며, 제임스 리는 상반기에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테너 김재형과 함께 ‘닉슨 인 차이나’ 중 마오쩌둥 역으로 노래할 예정이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사진 하겐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