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이사장 박의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3월 10일 9:00 오전

ANNIVERSARY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이사장 박의숙

철의 여인이 가진 따뜻한 진정성

남편의 뜻을 이어 오페라 저변 확대와 함께해온 재단의 10주년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오페라 사랑이 지극했던 세아그룹 이운형(1947~2013)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된 재단은 그의 뜻을 고스란히 이어왔다. 재단을 맡아 운영해온 고 이운형 회장의 아내 박의숙 이사장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세아타워에서 만났다. 그는 “오페라가 사랑받는 기회가 오도록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남편이 떠나고, 그해에 바로 재단이 설립됐습니다. 종합예술로서 오페라는 중요한 장르지만, 대중에게 쉽게 느껴지지 않죠.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내 직원들에게 오페라에 대해 강의해주면서 저도 함께 공부해 오고 있는데, 직원들도 배울수록 오페라에 대한 흥미를 느끼더라고요. 회식 자리에서 딱딱한 얘기 대신 ‘그 오페라의 아리아는 어떻게 들었는지’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재단의 방향성대로 ‘오페라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니 보람차죠.”

 

예술후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다

2013년 설립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오페라 관련 예술 단체와 젊은 성악가들을 위한 후원이었다. 그 결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돋보인 소프라노 여지원을 비롯하여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후 활발히 활동 중인 황수미,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소프라노 박혜상 등 재단의 후원을 받아 국제 무대로 발돋움한 성악가들의 명단이 수두룩하다. ‘1세대의 성과’는 선순환의 구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는 3월에도 소프라노 여지원·황수미·정호윤이 멘토로 참석해 마스터클래스를 연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기본이 3년이고 5년까지도 후원을 이어가요. 유럽에서 학업을 이어가려면 필요하니까요. 저는 오롯이 정통 클래식 음악의 길을 걸어갈 인재를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재단의 후원 방향성을 순수 예술에만 두고 싶은 거죠. 오페라에 헌신할 수 있는 인재를 미리 알아보고, 지켜나가고자 합니다.”

재단의 활동은 후원사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5년부터는 학술연구 지원도 이어왔다. 현재 음악미학연구회가 후원받아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총서’를 발간하고, 관련 학술 포럼을 열고 있다. 박 이사장은 “음악학자들을 지원하는 곳이 많이 없었다. 연구회에서 발행되는 총서가 학사·석사생들에게 교과서로도 사용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같은 해에 시작한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는 정기음악회로 자리 잡아 매년 열린다. 오페라를 접하기 어려운 군산·부산·창원·충주 등에서 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음악회’는 모두 무료로 개방한다.

“지역 음악회를 하면 오페라를 생전 처음 봤다는 사람도 여럿 만납니다. 5월, 군산예술의전당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올릴 예정인데, 개관 10주년 만에 오페라를 군산에서 처음 올리는 거라고 하더군요. 부산의 F1963에 있는 3~400석의 야외 공연장도 저희가 지난해에 멋지게 꾸몄죠. 부산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피가로의 결혼’을 올렸는데 시 관계자들도 참석하고, 반응도 정말 좋았습니다.”

 

스토리를 품은 메세나의 힘

이제는 직원들에게 강의해줄 만큼 깊은 오페라 애호가이지만, 박 이사장 또한 오페라를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인 이운형 회장이 국립오페라단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함께 공연장을 지키며 ‘손님맞이’를 한 것이 시작이다. 지루하기만 했던 오페라에서 ‘볼수록 가까워지는’ 매력을 찾게 됐다고.

“오페라 강의도 많이 들으러 다녔죠. 퇴근 후 김밥 한 줄 먹고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이곤 했으니까요. 공부할수록, 들을수록 왜 오페라가 걸작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로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다시 정신 차려 꾸준히 공부하려고요.”

생중계되는 유럽 오페라 무대들까지도 꾸준히 챙겨본다는 그의 모습에 고 이운형 회장의 전기 한 장면이 겹친다.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가 열릴 때면 이운형 회장은 객석 제일 뒤에 앉아 참가자들의 점수를 직접 매겼다. 콩쿠르가 끝나면 심사위원들과 자신의 점수를 맞춰보고, 비슷한 점수가 나오면 “이제 나도 귀가 틔었나 보다”라며 좋아했다고. 결국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의 정체성은 이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진정으로 오페라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정신이 깃들어있다는 것은, 이 기업의 메세나가 가진 힘이다.

“성악가들과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코로나로 유럽이 봉쇄됐을 때는 현지 인재들에게 특별 후원을 진행하며 신경 썼어요. ‘이번 콩쿠르에서 꼭 우승해서 돌아와 재단 오페라 무대에 서줘야 해!” 하며 작은 동기부여가 될 응원을 하기도 하고요.(웃음) 앞으로는 오페라 연출가나 무대 미술분야도 양성되었으면 해요. 이 또한 꾸준한 관찰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죠.”

오는 3월이면, 재단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가 개최된다. 1부는 이운형 회장이 생전 사랑했던 아리아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6중창, ‘리골레토’ 4중창을, 2부에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부활의 합창 등 장엄한 합창을 선보인다. 고 이운형 회장이 생전에 인연을 이어온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박혜연, 테너 정호윤과 박용명, 바리톤 강형규, 베이스 전승현이 모여 이 음악회에 함께 축하와 추모의 의미를 담는다. 이브 아벨이 지휘를, 서울시향과 노이 오페라 코러스가 연주를 함께 맡았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선대 회장님과 재단, 그리고 함께해온 연주자들, 관객들까지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10년의 활동을 돌아보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세아이운형문화재단

 

ABOUT

이운형의 삶과 음악

이운형 회장

오페라 사랑이 지극했던 ‘철강계의 신사’가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직을 맡았지만, 이내 오페라에 대한 지식과 열정을 가득 쌓았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제 당신만 오페라를 알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오페라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라며 오페라 CD를 건넸다는 일화가 그를 잘 설명한다. ‘오페라 전도사’로도 불렸던 그는 2013년 작고하기 전까지 평생을 국립오페라단의 후원회장으로 있으며 오페라계에 ‘최고의 오페라 관객’을 만들어냈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운형은 1974년 부산파이프(현 세아제강) 이사로 취임했다. ‘철과 같은 마음으로’ 66년간 정도 경영을 이뤄왔던 그는 2000년 당시 국립오페라단 단장 박수길의 제안으로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03년 메세나 대상 ‘창의상’ 대기업 부문 수상, 2009년 제18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수상을 비롯해 별세한 후에도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 수상,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 선정, 보관 문화훈장 수훈 등 남아있는 기록들은 오페라계에 그가 남긴 영향력을 증명한다.

“회장님이 이사장으로 오시고 난 후 국립오페라단 관객의 분위기가 달라졌죠. 같은 작품이어도 4회면 4회, 6회면 6회 모두 공연장에 오셨습니다. 음악가들에 대한 배려도 남달랐어요. 공연이 끝나면 회식까지 참여해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니까요. 예술가들의 입지를 이해하는 기업가였어요.”(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박수길)

“기업에 오페라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심어주는 역할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단순히 한번 오라는 식으로 초청하는 게 아니라, 오페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관객이 되도록 만드셨던 거죠. VIP석의 1열 좌석은 늘 ‘다음에 후원을 부탁할 사람’을 기준으로 선정하셨으니까요.”(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정은숙)

 


Performance information
‘세아이운형문화재단 10주년 오페라 갈라 콘서트’

3월 1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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