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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상투스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 3.16
만들고, 이끌고, 나누어온 30년
악상투스 합창단·인슐라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로랑스 에퀼베를 만나다
“클래식 음악계의 성 차별에 대한 질문이라면, 저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저보다는 마린 올솝(1956~)이나 조안 팔레타(1954~), 로랑스 에퀼베(1962~), 나탈리 스투츠만(1965~)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네요. 저보다 먼저 등장해 진정으로 여성 지휘자의 지위를 끌어올린 훌륭한 분들이니까요.”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타르(TÁR)’의 첫 장면.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 여성 지휘자로 설정된 주인공 리디아 타르는 ‘뉴욕 타임스’ 기자의 성 차별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언급된 지휘자 중에서도 로랑스 에퀼베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데, 미국과 가까운 접점이 있는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에퀼베는 온전히 프랑스 음악계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의 마린 올솝과 조안 팔레타는 각각 볼티모어 심포니, 버팔로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이며, 나탈리 스투츠만은 현재 애틀랜타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다.
로랑스 에퀼베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음악사와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유학을 떠난 빈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에게서 배웠으며,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활동을 통해 합창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러나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파리에는 그가 사랑한 합창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전문 합창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에 1991년 전문 합창단 ‘악상투스’를 창단했다. 창단 당시, 행정을 맡았던 올리비에 만테이(현 파리 필하모니 대표)는 이렇게 돌이켰다. “로랑스 에퀼베와 악상투스의 등장은 혁명이었다. 나는 항상 업계와 청중 그리고 관계자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합창단은 지역의 아마추어 단체나 파리의 성당 합창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 전문적이고 창조적인 합창단이 있다고.”
악상투스는 성악 작곡에 관심을 둔 현대 작곡가들을 사로잡았다. 파스칼 뒤사팽(1955~)의 경우, 자신의 작품을 들고 악상투스를 찾아오기도 했다. 당시 이르캄(IRCAM)의 예술감독이었던 로랑 바일은 악상투스 20주년 기념 영상 인터뷰에서 “악상투스는 음악계의 새 바람이었다. 작곡가들에게 현대 합창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했다.
지난 3월 16일, 악상투스는 파리 필하모니에서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실제 30주년은 2021년이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연기됐다. 그의 지휘는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때론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작품마다 유연하게 균형을 잡아나갔다. 함께 음악을 한다는 기쁨과 확신에 찬 연주였다. 30주년을 기념하며 로랑스 에퀼베와 인터뷰를 나눴다. 누구보다 앞서 많은 것을 창조하고 이끌어온 그는, 이제 쌓아온 경험을 나누기 위한 프로젝트에 한창이다.
영화 ‘타르(TÁR)’의 첫 장면에서 리디아 타르가 당신을 선구적인 여성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작품에 영감을 준 인물로서 소감이 어떤지,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도 궁금하다.
감동적이었다. 동료 지휘자들과 함께 등장해 더욱 기뻤다. ‘타르’는 잘 만든 영화다. 토드 필드 감독은 지휘자라는 직업을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아는 듯했다. 타르 역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훌륭했다! 지휘자 캐릭터를 이처럼 잘 묘사한 배우는 그가 처음이다(에퀼베는 영화 속 리디아 타르의 지휘 스타일이 레너드 번스타인의 그것에 가깝다고 ‘르 피가로’에서 밝힌 바 있다). 관객은 타르의 권력 남용과 표류, 쇠락을 통해 ‘권력을 쥔 여성’을 본다. 권력과 미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성별을 떠나 지배의 자리에 선 ‘사람’을 묘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여성 지휘자의 존재에 집중한 영화 ‘더 컨덕터’가 상영된 2018년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다.
그사이 포디움에 선 여성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라 마에스트라 콩쿠르는 젊은 여성 지휘자의 등용문이 되고, 파리 필하모니는 매 시즌 더 많은 여성 지휘자를 초청하고 있다. 그러나 유리천장이 무너졌다고 말할 순 없다. 프랑스의 여성 지휘자 비율은 아직도 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여성이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는 개방적인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진보하고 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다. 19세기 여성의 지위가 역행했던 것처럼, 지금의 움직임도 갑자기 퇴보할지도 모른다. 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악상투스를 창단한 1991년에는 ‘여성 지휘자’와 ‘전문 합창단’ 모두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악상투스를 창단할 결심을 했으며, 30년간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었나.
합창 레퍼토리에 대한 열정 덕분이다. 빈의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에서 2년간 노래하며 슈트라우스·쇤베르크·풀랑크의 아카펠라 작품에 매료됐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80년대 후반, 그 작품들을 연주할 수 있는 합창단이 없어 직접 창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티켓을 구매해 합창 공연을 본다는 문화조차 전무했던 때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부와 민간 재단들로부터 조금씩 지원받기 시작했고, 이후 공연장과도 관계를 맺기 시작해 파리의 시테 드 라 뮈지크, 오페라 코미크 등을 거쳐 오늘날 파리 서쪽의 라 센 뮈지칼에 상주하게 됐다.
악상투스는 30년간 40장 이상의 음반을 냈다. 희소한 합창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해왔는데, 로랑 바일은 이런 행보를 두고 “일련의 녹음으로 특정 작곡가를 지지하는 전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이다. 예를 들어, 초창기 녹음 중 하나인 풀랑크의 종교음악 음반 ‘Sacré’는 20세기 초 프랑스 합창 해석의 표준이 되었다. 이후, 독일 낭만주의 작품에 집중했고, 동시에 악상투스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관현악 작품이 아카펠라로 변용된 작품이 수록된 음반 ‘Transcriptions’(Naïve V4947)를 냈다. 현대 합창에도 일찍 눈을 돌렸다. 프랑스 현대 작곡가의 합창 세계를 탐구한 세 음반(파스칼 뒤사팽: 레퀴엠(Montaigne MO782116), 필립 마누리: Inharmonies(Naïve V5217), 만토바니: Voices(Naïve V902762))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곧 젊은 작곡가 시반 엘다르(1985~)의 작품을 담은 음반도 출시된다. 합창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하고, 새로운 청중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훌륭한 고전과 현대의 창작물 모두를 헌신적으로 기록해 나가야 한다.
지난달, 파리 필하모니에서 30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10주년과 20주년에는 악상투스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연주하고 음반을 냈는데, 이번에는 멘델스존에 집중했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조명하는 앞으로의 계획을 고려해, 일관된 작품 세계 아래 신성하고 세속적인 다양성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멘델스존은 이에 적합하면서 악상투스가 가장 많이 연주한 작곡가다. 바흐를 오마주한 합창 칸타타는 우리가 오랫동안 탐구한 바로크 레퍼토리에 대한 찬사다. 오라토리오 ‘크리스투스’는 악상투스가 아끼는 아주 희귀한 작품이다. 멘델스존 사이에 볼프강 림(1952~)의 아카펠라 ‘고프라그멘타 파시오니스’를 넣었다. 이는 지난 30년간 초연해온 현대작품에 대한 조응이다. 2부의 ‘발푸르기스의 첫날밤’은 건방지게 느껴질 정도로 세속적이면서도 음악적 힘이 가득하다(파리 필하모니 라이브에서 9월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악상투스를 창단하고 21년 뒤, 시대악기 연주단체 인슐라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아르농쿠르에게 배운 후로 시대악기 연주단체를 지휘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작품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사조에 최대한 가까운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 프랑스 오드센 주의 제안으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기회가 생겨 꿈을 이뤘다. 주로 1730년부터 1850년까지의 작품을 다루며, 2017년부터 라 센 뮈지칼에 상주하고 있다. 라 센 뮈지칼은 프로그래밍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베토벤 시대에 활동한 여성 작곡가 루이즈 파렝(1804~1875)처럼 덜 알려진 작곡가의 곡을 올리고, 연극·무용·시각예술 등 다른 분야와 협업으로 혁신적인 작품도 만든다.
루이즈 파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의 교향곡 1·3번이 담긴 음반을 녹음했고, 교향곡 2번과 서곡도 곧 발매된다.
그를 존경한다. 작곡가이자 교육가, 음악학자이자 분석가였던 그는 파리국립음악원(CRR) 사상 두 번째 여성 교수였고, 투쟁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급여를 받을 만큼 진보적이었다. 오늘날, 여성 작곡가의 작품을 부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파렝의 교향곡처럼 환상적인 작품이 존재함에도, 연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당하게 잊힌 작품들이 제 위치를 찾도록 돕는다. 이것이 인슐라 오케스트라와 파렝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이유다. 앞으로는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에밀리 마이어(1812~1883)의 작품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인슐라 오케스트라의 시대악기 디지털 연구 플랫폼 ‘LaDocumenta.eu’가 6월 오픈 예정이다. 2017년부터 악상투스의 합창음악 아카이브 ‘Cen’을 운영하는 등 체계적인 연구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앞장서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스무 살 때 악보나 번역 자료를 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축적한 자료와 노하우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합창 기법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Cen’의 자료들이 합창 공연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LaDocumenta.eu’는 각국의 시대악기 연주단체의 지식과 노하우를 모으는 공동 연구 체제다. 프랑스의 인슐라·레자르 플로리상, 오스트리아의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아 비잔티나, 체코의 콜레기움 1704가 참여한다.
두 단체의 대중 친화적인 접근도 돋보인다.
교육,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한 ‘디지털 별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젊고 역동적인 이벤트를 좋아한다. 플래시몹이나 행인들의 지휘에 맞추어 연주하는 ‘지휘봉을 잡아라’ 등 재미난 야외 행사도 연다. 대중을 만나고 음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이들이 예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연결점을 찾는다. 연주자가 무대에만 머무르면 관객들은 흥미를 잃기 쉽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능한 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과 별개로, 음악 단체의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모델을 구축하고 싶다. 개념이 잘 정착되어 설립자가 떠난 후에도 유지가 되는 구조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적이고 교육적인 프로젝트를 일관성 있게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조직과 국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악상투스·인슐라 오케스트라
로랑스 에퀼베(1962~) 1991년 합창 불모지였던 프랑스에서 최초로 전문 합창단 ‘악상투스’를 창단했다. 2012년에는 시대악기 연주단체인 인슐라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으며, 2019년에는 국립성악센터를 맡아 설립했다. 현재 파리국립음악원(CRR)에서 젊은 성악가를 양성하며, 예술 행정적으로 프랑스 문화부와 공연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로랑스 에퀼베가 객석 독자에게 추천하는 악상투스 음반
파스칼 뒤사팽: 레퀴엠(2000)
Montaigne MO782116
‘Transcriptions 1’(2003)
Naïve V4947
R. 슈트라우스: 아카펠라(2009)
Naïve V5194
모차르트: 레퀴엠 K626(2014)
Naïve V5370